발제문 211 ~ 220

작성자
commons
작성일
2022-05-14 17:56
조회
290
발제문 211 ~ 220

<이 책의 난해함에 대해서>

차반은 난해하다. 그런데 어떤 난해함인가? 대수방정식의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난해함, 아니면 마치 암벽 등반가처럼 자신 앞의 거대한 바위산을 오를 때, 어떤 행위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어려움과 지난함, 그리고 고독인가? 이 둘은 본성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체계안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는 것이라면, 후자는 카오스안에서 자신의 답을 만들어나간다.

차반이 어려운 것은 전자가 아닌 후자가 그 이유 같다. 들뢰즈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책에서 헤겔 같은 철학 혹은 철학을 넘어 세상의 어떤 설명가능한 체계를 소개시켜주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모든 신앙의 선배들을 무위로 돌리며, 미래에서 다가오는 신앙에 따라 ‘무신론자의 신’과 대면하는 어떤 신앙인, 즉 신앙의 시인(219) - 그것은 오히려 신앙의 근거와 정초를 무위로 돌리는 신앙인 한 신앙의 유머이리라. - 의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차반을 올바로 읽는 것은 책의 체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함에 대해 치를 떠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들뢰즈와 ‘더불어’ 영원회귀의 차이나는 반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무기력에 슬퍼해야 한다.
이 슬픔은 예수에게 구원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부자 청년의 비애와 유사하다. 그 부자청년은 자신의 소유 때문에 예수를 따라는 것을 포기했다. 차반은 우리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한다. 그 결단은 키에르케고르의 신앞에선 단독자의 결단처럼 모든 기성의 체계들을 뒤로 하고 스스로에게조차 낯선 자로 세 번째 시간의 사태를 맞이하라는 것이다. 그 사태 앞에선 난처함이 바로 이 책의 난해함의 근원이리라. 그렇다면 차반은 철학책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윤리학 혹은 신앙 서적(217 반복을 미래의 범주로 ~ 되도록 하기) 아닐까?

1. default, 결핍이라고?
1) “과거 자체는 결핍default에 의한 반복~”(211)에서 결핍을 default의 번역어로 사용했다.
2) 네이버 번역어는 채무 불이행. 이행하지 않다 라는 뜻이다.
3) 근거안엔 근거로서의 결핍이 있으리라. 이때 결핍은 결여라는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차이의 조건이다. 결핍이란 번역은 결여보다 더 부정적인 뉴앙스를 주지 않는가? 맥락상 결핍보다는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이행’ 정도가 아닐까?
3) 결코 현실화 될 수 없는 순수과거는 키케로의 신 혹은 어떤 항해자의 아직 항해하지 않은 바다. 게츠비에게만 보이는 녹색빛의 등대가 아닐까?

2. 반복은 반성의 개념이기 이전에 행위의 조건이다. (212)
1) 반성은 언제나 사후적이고 그런 한에서 경험적이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 쾌락원칙이든 현실원칙이든 – 능동적이다.
2) 반복은 수동적이다. 수동적인 의미인한에서 발생적이다. 수동적 자아는 그 수동성을 어떤 사태로 겪어내야 하는 어떤 표면이 가진 자기 이미지이리라. 울프가 “옷이 우리를 입는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옷이 만들어 내는 사태를 감당하는 자아를 엿본 것이다. 그녀는 이 자아만이 옷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고 판단하는 주체를 분만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동이라는 과거의 조건만이 미래의 생산을 위한 조건 혹은 담당자agents로서 어떤 주체를 낳는다.

3. 영원회귀는 생산물의 자율성을, 작품의 독립성을 구성한다.(212). 영원회귀는 나의~ 비밀스런 일관성이다, 영원회귀는 평민, 이름 업는 인간만을 되돌아오게 한다.(213)
1) 이전의 계시받은 담당자들은 영광스런 신의 현현 혹은 대리자들이었다. 그런데 영원회귀의 계시 이후 돌아오는 자들은 ‘아무도 아닌 자들’이다.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명칭들을 다 무너트리는 그 이름, 차이 그 자체이다.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 우주가 떨어야 하는 것이다. 그 꽃은 단 한 순간도 예전의 그 무엇이었거나 예외나 변수 같은 게 아니다. 모든 우주의 역량이 표현된 차이 그 자체의 무한 역량인 것이다.
2) 꽃이라는 이름조차 없는 꽃은 습관과 기억에서 명명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제3의 시간을 요구한다. 그것은 차이 그 자체를 생산하는 시간이다.
3) 비밀스런 일관성(213), 그것이 바로 차이나는 삶으로서 모든 것들의 운명아닐까? "시간의 순서 안에 '결정적인 어떤 한 순간'once and for all이 있다면, 이는 오로지 그 비의적 의미의 마지막 원환에서 성립하는 '매 순간'every time을 위해서'만' 이다."(213)

4. 순수하고 텅 빈 형식으로서의 시간, 무-바탕, 보편적 근거 와해 (216)
1) 칸트는 미규정자가 규정가능하게 위해 그 매개로 선험적 시간을 구상했다. 그 시간은 아무런 경험적 내용을 담지 못하기에 순수한 시간, 텅빈 형식의 시간이다.
2) 자아도 주체도 모르는 시간, 모든 것을 지나가게 하고 유일하게 차이만을 남게 하는 시간, 우주의 시간, 숭고함이 아니라면 경험할 수 없는 시간.
3) “과거는 조건으로서, 현재는 행위자agents로서 미래에 속한다.(216)” 그렇다면 본성적으로 이 시간 만이 유일한 시간 아닐까?

5. 더나 덜한 차이를 ‘훔쳐내는’draw off? (217)
1) draw off는 withdraw의 뜻이다. 철수하다. (주의를) 딴 데로 돌리다 등의 의미이다. 더와 덜의 사태가 바로 경험적 자아에게 차이가 쏟아지는 사태이다. 경험적 자아는 이 사태를 더와 덜이라 평가하면서 4가지 동일성의 형식에 차이를 종속시킨다. 습관은 더와 덜하다는 평가 속에서 차이를 제거한다.
2) 아래 가변적 차이도 번역이 다소 그렇다. 같음과 닮음에 종속된 반복의 형식(므내모시네)은 차이를 근거 아래 변수로 흡수한다.

6. 왜 키에르케고르고 폐기인가?
1)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 중 왜 들뢰즈는 기독교 신앙인, 두 명을 선발해 위대한 반복자들(218)이라 치켜 세웠을까? 무신론자이며 경험주의자인 들뢰즈는 왜 이 기독교인들을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것일까?
2) 거기엔 이들이 그들의 신이라고 명명된 어떤 무한한 것과의 마주침 때문이 아닐까? 비록 이들은 이 마주침을 기독교의 신으로 환원했을 지라도, 그들의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절대적인 절망과 희망 안에는 들뢰즈가 말한 삶의 비밀스런 일관성이 숨어있어서가 아닐까?
3) 기독교의 몇몇 개념 역시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반신앙의 근거로서! 회계, 하느님 나라, 희년 등등 이 것들은 절대적 회심과, 근거 없음의 세계와, 영원회귀의 원점으로의 회귀 등등


차반이 난해한 것은 우리가 바로 이 일관성 안에 뛰어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바위산을 온 감각으로 더듬고, 모든 근육으로 자신의 유일한 루트를 찾는 암벽가처럼 우린 저 카오스 위에 그렇게 자신을 차이나는 것으로 던지고 있는가?
왜 던져야 하냐고? 키에르케고르의 이 말이 대략적인 답이 아닐까?
“자기란 자기 자신과 관계함과 동시에 전체 관계를 정립한 것에 관계함으로써만 그 형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절망에서 나타나는 부조화는 단순한 부조화가 아니다. 자신에게 관계하는 관계와 동시에 타인에 의해 정립된 관계에 있어서의 불일치이다. 따라서 그 자신만의 관계 안에서의 불일치는 동시에 이 관계를 정립한 힘과의 관계 속에서 무한히 반영된다.~ 여기서 절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의 자기 상태를 나타내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즉 자기 자신에 관계하고 자기 자신이고자 욕구 함에 있어서, ‘자기를 정립한 힘Power의 내부’에 투명하게 자신의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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