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12년 8월호] 새로운 연구 공동체 : 인문학의 쓸모를 믿는 사람들

언론 속 다지원
작성자
다중지성의정원
작성일
2018-02-19 22:34
조회
1306

나의 눈으로 ‘오늘’이라는 텍스트를 읽는다


* 이 글은 『럭셔리』 2012년 8월호 게재되었습니다.
전문 링크 : http://luxury.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p_no=&info_id=60433&pageno=2&c_id=-



서양 현대철학 연구 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 “21세기 마르크스라 불리는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더 잘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어려운 질문에 세미나실은 순간 조용해진다. “세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씌워놓은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다중지성의 정원을 의미하는 ‘다지원’은 <지구제국>, <아우또노미아>, <제국기계 비판>, <인지자본주의>의 저자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 대표가 현대철학을 담당하는 대학 교수 및 문화 운동가의 연구 모임이었던 ‘다중네트워크센터’의 활동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4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 연구 공동체다. 현존하는 30~40대 젊은 철학자까지 아우르며 서양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다중지성의 정원 사무국 김정연, 김하은, 오정민, 임가혜 연구원, 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실천’과 ‘연대’ 그리고 ‘변화’다.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슬라보예 지젝… 철학자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서양 현대철학은 어렵다는 막연한 두려움마저 든다. 서양 현대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현대철학은 오늘의 삶의 문제들을 다룬다. 쉼 없이 변하는 사회에는 그에 맞는 새롭고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글과 네이버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예전에 없던 것이다. 단지 우리는 필요에 의해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글을 올리는 것뿐인데 그들은 자신들과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사람들,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에서 부를 창출한다. 노동자를 더 고용해 그들이 창출하는 ‘잉여가치’에서 자본을 축적한다는 과거 마르크스적 해석이 통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속에서 최신 어젠더와 시각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철학의 매력이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동시대 철학자 중 주목해야 할 한 명을 추천하자면.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 그의 대표작 <제국>이 출간됐을 때 마치 애플의 신제품을 기다리듯 많은 이들이 뉴욕 대형 서점에 줄을 서면서 화제가 됐다. 그는 우리 사회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산업사회에서 네트워크 사회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과거 지구를 지구촌이라 불렀다면 지금은 ‘제국’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의 이론은 2008년 뉴욕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연쇄적으로 주변 국가를 어떻게 몰락시킬 수 있는 지 명확하게 설명한다. 지구 어디에도 한 국가만의 문제는 없다는 것. 제국의 특징, 취약점, 대처 방법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로 가득하다.

과거 철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현대철학자들만의 특징이 있을 것 같다. 현대철학자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이든 하라고 강조한다. ‘자,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 당신의 세계로 뛰어들어가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한다. 공부를 책상에서 끝내지 말고 실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용산 참사 추모 집회, 한진중공업 희망 버스 등 한국 사회의 생생한 현장 속에서 공부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중이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폄하하는 것들이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