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불가능한 개혁주의 첫 부분 발제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9-05-04 19:16
조회
439
14장 불가능한 개혁주의

1. 한 세기가 넘는 기간 공식 좌파, 사회주의 좌파의 소위 정치적 현실주의에 의해서 개혁주의가 유일하게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경로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주의(자본 지배에 적응하는 것 즉 정부에 참여하고, 자본 규율을 존중하고, 임금, 노동조건, 사회복지가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히 개선될 수 있도록 노동과 기업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등)은 환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2. 오늘날 좌파는 개혁의 영역을 완전히 유실한 것처럼 보인다. 이유 중 하나는 개혁이 신자유주의의 정치 용어집에서 가장 자주 소환되는 단어 중 하나라는 것인데, 실제로 개혁은 신자유주의의 "중도"에 대한 집착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수중에서 개혁은, 때때로 은폐된, 그러나 종종 노골적인 폭력 형태를 동반하는, 국가로부터 금융시장으로의 통제의 이전을 우선 의미한다. 삭스 같은 이들이 옹호하는 포스트사회주의 동유럽의 시장 개혁은 "충격요법"[급격한 사유화]의 형태를 띠었다. 이것은 19세기-20세기에 진보적인 세력들 사이에서 개혁이 가졌던 의미와는 큰 관계가 없다. 개혁이라는 것은 오늘날 완전히 찬탈되어, 과거 사회주의 개혁주의가 추구했던 것과 거의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때때로 가져오기도 한다.

3. 진보적 개혁주의가 오늘날 불가능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조직된 산업 노동계급이라는 주체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노동계급 주체성과 분리된 사회적 개혁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거의 구별불가능한, 자본주의 발전 관리 기제에 다름 아니게 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4.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산의 조건이 얼마나 변화하였고, 그리하여 정치 행동의 잠재성이 얼마나 변화하였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현대의 사회 생산 및 사회 재생산 주체성에 기초하여 개혁이라는 개념도, 혁명이라는 개념도 재사유되어야 하고, 두 과정은 함께 전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전진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그것이 정치적 현실주의의 경로다.


시스템 정비

1. 개혁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하기 전에 사회주의 개혁주의의 역사에서 핵심 측면들을 간략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19세기 후반부에 사회주의 수정주의자들은 맑스주의와 혁명적 세력들에 반하여 경제 개혁을 위한 협상이라는 "현실주의적" 경로를 택했다. 그 이후 사회민주주의 전략은 무참한 실패로 입증되었고 사회주의라는 불치병을 가져왔다. 20세기 개혁주의가 실패한 세 장면을 살펴보자.

1) 장면 1 : 20세기 초 국가[민족]주의적 수정주의

국가의 산업적 운명에 참여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데서 오는 경제적 이점들에 눈이 멀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차 세계대전의 군사 개입을 지지했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행동들이 조합주의적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것을 넘어 당연한 것으로 상정된 국가적 이익을 노동의 이익과 혼동하는 것도 포함하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들의 국제주의 정신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자국들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모험을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그들은 군사주의적 규율과 압제자의 망토를 신봉하기 위해 연대와 투쟁의 유산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각자가 택한 쪽의 승패와 관계 없이, 지난 반세기의 노동자운동의 투쟁들을 배반하는 것은 범죄적이었다. 여기에서는 국가라는 개념과 그것의 동일성에의 헌신이 사회주의 개혁주의를 실패로 몰고갔다.

장면 2 :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주의

1959년의 나쁜 고데스베르크회담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자본에 대한 반대를 포기하고 협조 정책을 채택했다. 이것은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주의적" 경로는 경제 생산의 자본주의적 운영에의 완전한 협조라는 개혁주의 관점의 상징적 사건 중 하나다. 사회민주당의 노동조합들은 자본주의의 경제, 정치 세계에 자신들을 믿을 만한 파트너들로서 제공했다. 이 개혁주의는, 노동생산성에서의 과장된 성과(이것은 더 많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왔다)와 노동자들의 삶에서의 규율 심화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찬양하는 와중에, 공장과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예속 수준과 착취 수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공격적인 제국주의들과 (알제리에서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식민세력들의 방호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보수적이고 파시즘적인 문화들과의 연속성을 드러냈다. 반식민, 반제국주의 투쟁들은 이 시절에 비로소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승리에서 유럽과 북미의 사회민주당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또 즉각적으로 신식민주의의 사무소를 개소했다.

장면 3 : 포스트 냉전 신자유주의

1989년 이후 영국의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자문위원회(DLC)를 시작으로 하여, 가장 맹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합리화하고 지구적 금융자본의 뒷자락을 잡고 승승장구했다. 국내에서는 복지구조들을 무너뜨리고, 해외에서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부과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특징이었다. 신자유주의 모델에 동의하고 보증한 그들의 결정의 무게는 오늘날에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의 직접적 도구가 되었으며, 노동자들을 지옥 같은 노동조건과 긴축 임금에 처하게 했다. 사회를 잔인하고 부패하는 시장에 맡김으로써, 그들은 복지기관들을 파괴하고 노동 불안정, 사회 불안정을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구실조차도 폐기했다.

그러나 20세기 개혁주의의 실패에는 사회민주주의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또한 "혁명적 개혁주의"라 부를 만한 것이 가져온 재앙도 있다. 예컨대 볼셰비키 혁명은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국가에게 개혁의 집행을 맡겼는데, 이것은 서구 유럽 사회민주주의만큼이나 극적인 실패를 보여줬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처음에는 산업적이고 그다음에는 금융적인, 종국에는 자본주의 발저의 "계획된 통제"로 이어진 근대화의 동력으로 기능했다. 성공한 혁명이 우리에게 실패한 개혁주의를 남겼다. 이는 이 개혁들이 자본 축적이라는 서구 유럽의 후렴구를 재창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는 노동계급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주장하는 개혁 과정이 실패하고 독재적 명령 체제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시도 속에서 허물어졌다.

사회주의적 개혁주의(와 우리가 "혁명적 개혁주의"라 부르는 것)의 재앙적 귀결은 포스트-마오 시대의 중국 사회주의가 택한 경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89년 천안문에서 민주적 학생과 노동자들은, 이데올로기적 형태가 아니라 다중적 민주주의의 형태로서 다시금 혁명노선이 채택될 것을 요구했다. 권력자들의 응답은 물론 억압뿐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한층 더 밟아나가는 것이었고, 그것은 산업적 발전과 금융자본의 통제를 혼합하는 것이었다. 학생과 노동자 들이 패배하면서 중국 사회주의 정체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거대한 게임에 진입했다.

다양한 사회주의적 개혁주의는 자본의 정치 세력, 경제 세력과 종종 공조하면서 시스템을 내부로부터 정비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지배의 최악의 형태들을 약화시키고, 모두의 사회 전망을 고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경험들이 보여준 것은 자본이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은 정비되었다. 마치 카지노의 룰렛 테이블 처럼 말이다. 도박장 쪽이 언제나 이긴다.


대항권력을 제도화하기

그렇다면 개혁은 불가능한가? 지금까지 우리의 고찰을 통해서는 그래 보인다. 사실 민주주의, 자유, 계급 투쟁처럼 의미가 공허해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역사 속의 성공적인 현실주의적인 경험들을 살펴봄으로써 (수정주의적이고 사회민주적인 맥락 모두에서) 진정한 개혁주의가 대항권력의 제도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소련과 중국 사회주의의 국가 독재 경험이 시초부터의 혁명적 경험을 특징짓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컨대 레닌은 대항권력들을 둘러싸고 조직된 거버넌스 체계를 상상했다 - 국가에 대항하는 소비에트, 그리고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 - 그럼으로써 국가와 자본 모두의 실제적 변형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권력의 이중성, 또는 권력의 다중성은 노동하는 대중을 예속과 비참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정을 시작할 것이었다. 중국 경험의 많은 시기들에서, 특히 문화혁명기에, 대항권력의 설립과 제도화, 국가 내부와 국가에 대항하는 적대적 형태들의 조성은 사회개혁과 정치개혁의 실제적 과정을 밀어부쳤다. 물론 양국의 사회주의적 발전은 점점더 외연을 넓히는 독재의 구둣발로 민주적 개혁의 희망을 짓밟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기의 대항권력의 실제적 효과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의 몇몇 성공사례들도 활동적인 대항권력들 덕분이다. 예컨대 미국의 뉴딜 시기와 20세기 유럽 복지정책의 발전. 뉴딜은 1929년 공황이나 다른 객관적 기준에 대한 대응이기보다는 러시아 혁명의 승리로 재조명된, 조직된 노동 권력이 창출한 정치적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노동의 전투성은 이윤의 생산을 위협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 재생산의 기본 조건들의 유지를 위협하는 "이중권력" 상태를 창출했다. 대항권력의 설립은 따라서 경제, 사회, 정치적 의미에서 물질적 구성을 변형시키는 과정을 지시했고,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일부 사회 위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부의 분배의 조건들을 변경했다. 물론 제한적이고 일시적으로 그렇게 하였지만 그럼에도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러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스스로 개혁할 수는 없지만 대항권력들에 의해서 밀어부쳐지고 위협받을 때에는 개혁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이 사례들이 대항권력들의 개혁주의적 효과뿐 아니라 그것들의 왜곡된 거울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실험들에서 새로운 삶의 형태들과 새로운 생산양식들 속에서 민주적이고 공통적인 모든 것과 저항과 혁명으로 체험된 모든 것은 "공적인 것"으로 대표되기에 이르렀다. 즉, 우선적으로 국가 행위로서 대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실제적 개혁주의가 있는 곳에서는 사적인 것에 대한 적대뿐 아니라 공적인 것에 대한 투쟁, 국가에 대한 저항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정치는 공사 이분법에 휘말렸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공적인 것의 비극"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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