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중 269 ~ 274 쪽 발제

작성자
rakuta
작성일
2019-06-01 18:56
조회
308
그냥 번역했는데요, 케이님 주신 자료가 더 훌륭합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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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일 다지원 셈나/ 발제:신지롱




15장: 그리고 지금 무엇을? (And Now What?)







전술의 입안자인 새로운 군주(Prince)가 오늘날의 생산적이고 재 생산적인 주체들subject 행동 속에 이미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표명(register)하는데---자신들의 목소리에서 그것의 맛을 보고, 이미지 속에서 그것을 듣고, 자신의 욕망 가운데 그것을 느끼는---공감각(synesthesia)의 힘을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 보인다. 2부와 3부에서 행한 연구의 결과로 최소한 다중(multitude)들이 가지는 신생하는 권력들의 개요를 확인하는 위치에 와 있다. 다중이 어떻게 오늘날 정치적 영역에서 전략을 생성해내는 능력을 가지는지---멀리 볼 수 있고, 현존하는 형태의 지배/통치(rule)과 싸울 수 있는 반세력counterpowers을 구성할 수 있고, 지속적인 기관에 사회적 권력/힘(forces)을 배치할 수 있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방법---그 방법을 명확하게 언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 1부에서 결론을 내렸듯이, 핵심은 수평성과 수직성의 퍼즐(puzzle of horizontalism and verticality)을 해결하는 것에 있다. 그 목적은 리더십(leadership)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술과 전략의 역할을 뒤집으면서 리더십을 상황에 따라 채택되고 무시되는 전술적(tactical) 역할로 귀속/강등/격하(relegate) 시키는 것이다. 이 지도력에 관한 전술적 위치/입장positiom은 다중의 전술적 능력들의 성립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담보된다.






다중을 무장시키는 헤파이스토스(Hephaestus) 1)



무장한 자기 방어의 두 가지 고전적인 장면을 생각해 보자. 1871년 3월 파리의 여성들은 프랑스 육군이 몽마르트에서 대포를 철수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에 코뮨(the Commune)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 대포를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런던에서 맑스가 “무장한 파리는 무장한 혁명이다.(Paris armed is revolution armed)”라고 썼다. 거의 일세기 후 1967년 3월에 블랙팬더 당(Black Panther Party)의 구성원 26명은 장전한 무기loaded weapons를 들고 새크라멘토의 주 의회 의사당으로 들어가 폭력경찰에 대항해서 흑인 사회를 방어할 권력과 의도를 선언한다.

다중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무기가 필요할까?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부분의 상황에서 총알과 폭탄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알고 있다. 사실상 그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자멸하는 것이고 자살행위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쩐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질문으로 판명되었다. 방어적인 무기 문제를 제기해서 시작하면 여러분은 얼마 가지 못해서 종말에 다다를 것이다. 자신들의 무기로 한갓 범죄자가 되는 많은 정치적 무장단체(militants)를 보아왔다. 그런 난제를 제기함으로써 우리는 무기사용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그 반대다. 우리는 재현된 내용으로 모든 곳의 고결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더 이상의 게르니카를, 그 가증스러운 패배, 끔찍한 잔혹한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을 원한다.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 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장의 문제를 다른 식으로 제기해야 된다는 점을 단지 주장한다.

무기의 사용은 항상 두 방향을 가리킨다: 적에 대항해서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변형을 위해서 외적이고 내적인 방향으로. 그렇다. 방어적으로, 우리들의 무기들은 폭력의 형태에 대항해야 한다---전쟁이라는 거시적 폭력(macroviolence)과 금융, 빈곤, 인종주의, 성억압, 환경의 (질적) 저하와 같은 미시적 폭력(microviolence)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하고 가해자들을 무장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는 또한 내적으로 자율성(autonomy)을 확보하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사회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내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핵심은 이 두 가지 기능의 순서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무기의 생산적 사용이 앞서야 하고 그 뒤를 방어적인 적용이 뒤따라야 한다. 실질적인 방어는 무기의 효용성 뿐만 아니라 주로는 커뮤니티의 권력/힘power에 달려있다. 유명한 말 “정치적인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political power grows out of the barrel of a gun)” 은 질서와 우선순위를 잘못 생각한 것이다. 진정한 무기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에서, 우리들의 집단적인 주체성의 힘(power of collective subjectivity)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전도(inversion)는 우리가 전에 이야기한 두 가지 예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제공한다. 코뮨의 진정한 권력/힘은 그 대포(artillery)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일상적인 작업들, 그것의 민주적 통치/관리(governance)에 있다. Kristin Ross가 훌륭하게 기록하였듯이, 정치적 혁신은 코뮨이 성립되기 이전 몇 년 동안에 파리 구역에 있었던 대중적 재결합popular reunion과 클럽미팅을 통해 마련되어 있었다. 비슷하게 블랙팬더(Black Panther)의 힘은 무기의 배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식 무료 제공 프로그램과 무료 건강 크리닉과 같은 사회적 프로그램의 구성에 있었다. 사빠띠스타(Zapatistas)는 이점에서 자명하다---EZLN의 권력은 무기와 군사적인 명령 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평의회community council과 사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실험에 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가 먼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나서, 평화와 안보를 이루면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자유로운 공간을 가지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다. 전쟁으로 시작하면 전쟁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폐허 속에서 현재의 무질서와 폭력 속에서, 우리의 방어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속화하면서 건설해야 한다. 자기 방어 무기의 효율성은 그것들이 건설적인 투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해서 우선적으로 판단되어져야 한다. 역사가들은 회고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방해를 하는가라는 ---기준을 가지고 몽마르트의 포대, 블랙팬더당(Black Panther Party)의 총들 그리고 EZLN의 방어적 무기를 평가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의 요점은 오늘날의 다중을 위한 무장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데 (또는 파괴하는데) 다중의 주체적 능력들/수용력들subjective capacities 및 무기가 효용성일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극단적인 맥락에서 무기와 군사적 행동이 우선해야 한다고 반대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일부분만 사실이고 심각한 환경에서도 무장 투쟁이 주는 가장 감격적인 실례들이 민주적 형태를 동시에 어렵게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쿠르드족 운동은 IS 전사들의 진격에 대항해서 2014년 Rojava에 있는 Kobane (Kurdish Syria)을 방어하기 위해서, 총과 폭탄이 필요하였다. 쿠르드족 운동은 미국으로부터 간헐적이고 제한적인 원조와 터키로부터 받은 빈번한 방해에도 전통적인 군사 무기로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쿠르드 전사들의 군사적 솜씨와 용기를 이용할 관리administration만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투의 승리만을 보는 것은 잘못일 수 있다. 전투 중에도 Rojava의 쿠르드 커뮤니티들은 “민주적 자주권democratic autonomy”의 형태를 만들고, 예를 들면 각 포스트 (post 병사근무 위치)마다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인 두 명의 대표자(representative)가 있은 관리 위원회(governance councils)를 설립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혼란과 폭력의 극단적 상황에서도, 진정한 힘은 옛 사회질서를 변형하고 새롭고 민주적인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커뮤니티의 능력에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에 주체의 생산은 의식을 일깨우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층층으로 침전하는 방식으로 지역적으로 사회적 존재를 건설해 가는 일종의 존재론적 침전물(deposit)이다. 이것이 삶치학적인 변형이다.(biopolitical transformation)

쿠르드의 예는 무장 투쟁을 통합하는 반파시트 저항의 많은 예들과 해방지구liberated zone에서 민주주의 사회 조직---때로는 직접 민주주의---의 구성에 관련된 많은 예들을 상기시킨다. 나치 선단과 파시스트 프랑스 부역자들의 부대를 저지시킨 일단의 프롤레타리아를 이끈 시인이자 알렉산드라 선장(Capitaine Alexandre)이란 이름을 가진 르네 샤르(Rene Char)는 각각 다른 잡동산이 파리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다이나믹을 어떻게 일구어 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쓰기를, 놀라운 일은 이 응석받이에 훈련되지 않은 아이들로 된 오합지졸의 지지자들, 전통으로만 성장한 노동자들, 순진한 신봉자들,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공포에 시달린 소년들, 외인부대와 같이 말을 타고 너무 이르게 시작한 모험심을 부추긴 조숙한 모험가들, 막연하게 상상한 민족주의을 가지고 행동하는 농부들 그리고 스페인의 내전에 유혹당한 농부들: 이 복합체(conglomerate)가 프랑스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비옥한 네 개에서 다섯 개의 온상 가운데 하나가 되게 되었다. 프랑코 포르띠니(Franco Fortini)라는 다른 시인은 1943년 8월 이탈리안 농부들이 무장 투쟁의 기반을 제공하면서 민주적으로 영토를 구성하는 하나의 공화국을 Val d’Ossola에 비슷한 방식으로 어떻게 건설하였는지를 상기하고 있다. 그들은 짧은 기간동안 성공하였고 압도적인 적의 힘에 공화국이 즉시 항복을 하였지만 그 경험은 판티스틱한 창조의 도가니가 되었다. Fortini는 이렇게 말한다.




르네상스의 잔인무도하고 진정한 양상을 표현할 말은 없다. 그것은 혼란을 가져왔으나 심오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에 관한 유일한 말은 단테 이래로 “사람들이 이해했을 것 같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시적인 말들 이었다. . . . 역사는 그러한 가장 잔혹하고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그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여러분들의 심금을 울린 유일한 진정한 지지자들의 합창(partisan song)을 빠뜨리고 있는데 그 노래는 ”소위도 없고, 대위도 없고, 대령도 없고 장군도 없“다. 그것은 무정부의 결렬한 외침이고, 그 순간에는 완전히 진실이었다.




그 노래는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French Alps 낮은 지대와 Italy와 Switzerland 중간의 Val d’Ossola 두 곳에서, 해방 지구에서liberated zone, 파르티잔paritisan들은 무기를 들고 하나의 민주적인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것들을 “코바니(Kobane) 경험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알제리 독립 전쟁 중에 프랑스로 이주한 알제리 이민 출신 노동자들의 저항이 유사한 사례를 보여 준다. 프랑스 국가의 테러리즘 (1961년 10월에 항의하는 알제리 시민들이 파리에서 학살을 당해 수백명의 죽음을 가져온)에 행한 공모한 행위들(conspiratorial activities)과 저항 가운데 한동안 해방된 알제리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심장(heart)을 형성한 정치적 커뮤니티들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도 역시 두 가지 요소vector--- 무장한 선봉대vanguard를 생산하는 다중multitude의 저항과 다중을 고취시키는 무장한 선봉대들이 동등하게 교차하고 섞여, 민주적 다중의 구성과 전투적인 주체들combative subjectivities의 생산 사이에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것들(민주적 다중의 구성과 전투적인 주체들combative subjectivities)이 서로 서로 영양을 공급하고 서로 서로 먹이가 되어 의존한다.

반 파시스트 저항의 영웅주의에 너무 푹 빠지지 마라! 그렇다, 이 예들이 보여주듯이, 극단의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민주적인 형태를 창안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이 지금 파시스트 정권에 대면하고 있지 않고 분명히 우리의 지금 환경 아래 전통적인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반 생산적counterproductive 이고 자살적(몹시 위험한 것)이다. 이미 이야기 하였듯이 그것은 무장을 단순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권력과 무기의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기의 “내적” 효과(inward effect)와 그것이 주는 주체(subjectivity)의 생산에 주안을 두는 것은 우리들의 무장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바꾸게 해 주어야 한다. 앞 장에서 우리는 폭력의 표준적 이해를 넓히는 것이---폭력의 객관적 형태와 미세한 공격이 주는 깊은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듯이 하나의 무기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기계에서 공고하게 구체화된 지식, 지능, 정보 같은 고정 자본은 오래 전부터 효과적인 무기로 자산의 역할을 해왔다. 맑스가 말하기를 “자본이 노동계급의 반발/저항/봉기(revolt)를 막는 무기를 제공해 준다는 유일한 생각으로 1830년 이래로 이루어진 발명품들의 전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1970년대에 도입된 표준 수송 컨테이너가 조직적인 부두 노동자들의 힘, 전통적으로 가장 반항적인 노동 분야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는지 생각해 보아라. 또는 좀더 도전적인 예를 보면, 구글이나 페이스 북 같은 거대 기업이 채택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지능/지식/정보intelligence과 관계connection을 강탈해서 모든 사용자들에게 일종의 폭력을 어떻게 가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제 7장에서 보았듯이, Google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Pagerank algorithm)은 사용자가 구축한 link을 추적하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web searches의 위계(hierarchy)를 만들어 낸다. 각 link는 작은 표현의 지식/정보intelligence이고,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알고리즘은 고정자산/고정자본의 형태로 그 지식/지능/정보intelligence를 추출해서 축적한다. 그러나 머쉬닉(machinic) 고정 자산은 단순한 중립적 권력이 아니다: 살아 있는 노동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수단으로써 자산의 소유주에 의해서 그 자산이 좌지우지 된다. 만약 우리가 고정 자산을 다시 전유하게 되면 그리고 우리로부터 빼앗아간 것을 되돌려 받게 되면, 우리는 축적된 지식과 지능/정보intelligence를 가지고 있는 기계를 살아있는 노동의 손에 쥐어 주고 그들을 비생산적인 자산 dead capital의 지휘로부터 자유로워 질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 무기들을 손에 쥐고 그것들을 중화시키고 또는 더 좋게는, 새로운 목표를 향한 작동하도록 하고, 그보다 더 좋게는 그것들을 보편화시켜서 그 결과 일반적인 사용이 되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디지털 알고리즘같은 삶정치적 무기는biopolitical weapons는 사실상 현재 투쟁의 가장 중요한 급소(focus)가 될 수도 있다.




헤파이스토스(Hephaestus)는 그가 아킬레스를 위해서 만든 것 같은 방패를 다중을 위해 만들 어야 한다. 지배하는 권력의 폭력에 대한 안전 장치임은 물론이고 마술적 권력이 부여된 도구로서 말이다. 아킬레스 방패의 앞면은 동심원으로(concentric circle) 커뮤니티 전체와 그것의 세계 구성을 기술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상 아킬레스는 전체적으로 그 커뮤니티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다중을 위한 방패의 동심원은 하나의 새로은 문명, 새로운 모드의 삶, 인간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살아 있는 종과 지구, 그리고 우주까지 그들 가운데 생기는 관심의 새로운 관계를 표현해야 한다.




1) Hephaestus는 대장장이, 금속공, 목공, 기술자, 예술가, 공예가, 야금공, 불, 그리고 화산의 그리스 신이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 또는 단위생식(처녀생식)으로 난 아이. 기형으로 생겨서 헤라가 올림푸스에 버렸다거나 또 다른 기술에 의하면 헤라가 제우스의 접근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제우스가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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