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마지막 삐라ㅣ김명환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11-25 18:57
조회
1579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15


마지막 삐라


지난 몇 년 동안 ‘삐라의 추억’을 연재했다. 삐라에 얽힌 이야기를 쓰는 동안, 불편했다. 삐라쟁이가 삐라를 만들지 못하고, 삐라에 얽힌 이야기나 쓰고 있다니! 그러다가, 연재를 묶어 삐라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삐라이야기로 만든 내 ‘마지막 삐라’다. 삐라를 만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내가 만드는 삐라는, 내가 세상에 보내는 신호다. 나는 내 삐라 한 귀퉁이에, 내 작은 신호를 감췄다. 누군가가 내 신호를 감지한다면, 그는 내게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그 누군가의 신호를 기다리며,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았다. 내가 칼을 뽑았을 때, 그 칼이 녹이 슬거나, 무뎌져 있을까봐 나는 두려워했다. 나는 긴장 속에서 칼을 갈며, 끝없이 신호를 보냈다.


내 ‘마지막 삐라’는 후배 선전활동가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멋진 선배들을 만났고, 선배들의 꿈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후배들에게 전해준다. 삐라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삐라 한 마리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어떤 혁명시보다 빛나는 혁명가들의 이야기다.


* 내 ‘마지막 삐라’는 등사판이다. 선배들의 이야기니 선배들처럼,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긁고,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낭만이야말로 인텔리적 감상이오!” 선배들은 틀림없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삐라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었다.


**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같은 제목의 시집과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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