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니체와 가치 | 김상범(대학생)

논문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4:02
조회
670
니체와 가치

김상범(대학생)


1.
니체에게 있어 가치는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니체가 '미래의철학자'='진정한 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업이다.

니체는 <철학적 노동자>와 <비판자>,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를 구분하는데, <철학적 노동자>와 <비판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고, 따라서 이들은 기존 가치의 개가 되거나 단지 기존 가치를 비판하는데 그친다. 니체는 <철학적 노동자>와 <비판자>가 <진정한 철학자>의 하인 및 도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철학적 노동자들에 의해 거짓, 기만, 이기심, 정욕 등은 낮은 가치평가를 받아왔고, 진실, 진리, 사심 없는 행위, 금욕주의 등은 높은 가치평가를 받아왔으며, 가치가 낮은 것으로부터 가치가 높은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 "현혹적이고 기만적이고 비루한 이 세계"1)가 아닌 독자적인 기원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어 왔다. 그들은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 존재의 태나 불변적인 것이나 <물자체>등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장이 "상반되는 가치의 대립에 대한 믿음"2)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니체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장이 "피상적인 판단이나 불확실한 원근법에서 나온 것이거나,...(중략)...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식의 원근법이나 편향된 관점에서 나온"3)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가치평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즉 현상세계에 대한 가치 절하), 모든 철학적 주장은 가치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겉보기에는 독자적으로 성립한 듯한 모든 논리도 그 배후에는 가치판단"4)이 전제 되어 있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철학자의 내적 충동들은 각각"다른 충동들 위에 군림"5)하려고 하고, 그러기 위해 철학적 체계를 얻으려고 하는데, 그가 가진 도덕체계가 그의 내적 충동들이 어떤 서열로 배열되어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도덕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알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형이상학을 포함한 모든 철학은 도덕적 가치판단의 토대 위에 성립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니체의 철학을 노예의 도덕과 원한의 도덕을 극복하여 새로운 주인의 도덕을 창조해내려는 시도로 보아야지,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는 비도덕의 철학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니체가 도덕 일반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이노예의 도덕=원한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예의 도덕, 원한의 도덕은 무엇이고, 주인의 도덕, 귀족의 도덕은 무엇인가?

노예적 가치평가는 "너는 나쁘다. 그러므로 나는 선하다."와 같이 정식화되는데, 이러한 가치평가는 '부정의 부정'으로 자신을 긍정하는 변증법적 가치평가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귀족적 가치평가는 "나는 훌륭하다. 그러므로 너는 나쁘다."로 정식화되는데, 이러한 가치평가는 자기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도덕은 자기 찬미의 도덕이다."6)

노예화되어 있지 않은 민족에서 도덕은 주인의 도덕이다. (노예화되어 있지 않은)"모든 민족의 머리 위에는 선의 목록이 적힌 표"7)가 걸려 있는데, 이러한 선은 "한 민족으로 하여금 지배하고 승리하고 빛나게 해주고 이웃민족에게는 두려움과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것"8)이다. 이러한 선은 자신들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에서 비롯되며, 이 선이 나타내는 것은 이 민족의 힘에의 의지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민족이 평가하는 자, 가치를 창조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개인이 창조하는 자가 되었다.

니체는 인간이 가치를 부여하기 이전의 초월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가치는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지, 신이 부여한 것이나 자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인간은 모든 선과 악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했다. 진실로, 인간의 선과 악은 인간이 어디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찾아낸 것도 아니며, 하늘의 목소리로 인간에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9)

이것은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가치는 모든 시공간에 대하여 절대적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절대적 가치가 만약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 가치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당연히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가치에 있어서(그리고 도덕에 있어서) 상대주의자인가? 그렇다. 니체의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니체가 통시적으로 상대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공시적으로도 상대주의자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어떻게 <공동 선>이란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보편적인 것은 항시 무가치하다."10)

"우리가 저마다 자기 나름의 덕을, 자기 나름의 정언적 명령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11)

그러나 이것은 ‘모든 도덕이 가능하다’는 식의 상대주의는 아니다. 노예도덕은 당연히 배제되는 것이다.

2.
니체는 평가한다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원한에 찬 노예적 가치평가조차도 하나의 창조가 될 수 있다. 니체는 <도덕상의 노예반란>이 원한이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예들의 가치 창조는 "적대적인 타자"에 대한 심리적 반작용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산출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 즉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창조라고 볼 수는 없다.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중략)...가치 설정의 시선을 이렇게 전도시키는 것-이렇게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하는 대신에, 밖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원한의 본질이다. 즉 노예도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항시 우선적으로 적대적인 외부세계를 필요로한다.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어쨌든 행동하기 위한 외부적 자극을 필요로한다.-따라서 그 행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인 것이다."12)

여기서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라는 문장은 오독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다.(그리고 여기서 '부정'은 존재론적으로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나쁨'이라고 규정짓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외부적인 것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적 자극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노예도덕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예도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향하는 가치설정의 시선 때문에 "타자", 혹은 "외부세계"가 필요하다. 노예들은 이러한 타자 혹은 외부의 자극에 원한을 품는 심리적 반작용을 하고 이 원한에 의해 가치평가가 발생한다. 반면에 주인의 도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노예의 도덕은 타자 혹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가치평가일 수밖에 없는 반면에 주인의 도덕, 귀족의 도덕에 있어서 주인, 귀족은 가치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창조자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가치평가가 외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훌륭한 특성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특성을 <좋음>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며 이를 통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가치평가가 발생한다.

니체가 <진정한 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철학자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자이며 입법자이다.13)

가치의 창조는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명령이자 입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과 입법은 권력의지(=힘에의 의지)의 표현이다.

권력의지는...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4)

가치의 창조에 의한 명령과 입법이 권력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여지가 있는데, 이것은 권력의지를 "주어진 사회 내에서 현행하는 가치들(돈, 권력, 명예, 명성)을 자신에게 결부시키는 의지"15)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가치들의 창조로서의 권력의지에 대한 절대적 몰이해"16)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기존 가치의 수호자들의 박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선한 자들은 독자적인 덕을 창안한 자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다!"17)

"그들은 창조하는 자를 가장 미워한다. 가치표와 낡은 가치들을 부숴버리는 자, 파괴자를 그들은 범죄자라고 부른다."18)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기성 가치를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을 박해한다고 해서 여기에 원한의 감정을 품고 연연해하면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완성할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가치평가에는 자신의 것과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진 것이 있는데, 니체에 의하면 대부분이 후자에 해당한다. 니체는 이렇게 지배적 타자(국가, 부모, 학교, 미디어 등)에 의해 재생산되는 가치평가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두려움에 의해 사람들은 길들여진다. 지배적인 타자가 재생산하는 가치체계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권력에 의해 자기 자신이 길들여져서 내면 깊숙한 곳까지 권력의 요구에 복종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생각에 길들고 마침내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 되고 만다."19)

가치는 이렇게 국가, 민족, 부모, 학교, 미디어 등에 의해 재생산되어 통념적인 것, 상식적인 것, 지배적인 것이 됨으로써 권력화 되고 보수화되는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이 권력에 '반시대적으로' 저항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권력의 작동에 따른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존재론적으로 선행하고, 이렇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에 대한 박해가 이에 대한 '반응'이 된다.

니체의 가치론은 이처럼 혁명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새로운 도덕을 창조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수 없었다.

니체는 자신의 이후에 도래할 시대를 허무주의의 시대, 즉 오랜 세월동안 최고 가치로 군림해온 가치들이 탈가치화되는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니체가 살던 시대가 오랜 세월동안 군림해온 기독교적 권력이 해체되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적 권력의 해체로 인한 기독교적 가치들의 해체를 예감하면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니체의 예상처럼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적 가치는 힘을 잃었지만 한편으로 현대사회는 이러한 기독교적 가치들 대신하여 비기독교적 권력에 의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비기독교적 가치들이 신의 위치에 서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대는 '우상의 황혼'이 아니라 돈, 권력, 명예, 명성 등의 우상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오늘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이러한 기성의 비기독교적 가치를 파괴하는 일을 수행한다. 이는 물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 기성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파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새로운 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사회의 인정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을 때, 즉 사회의 칭찬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대들이 칭찬과 비난을 넘어설 때,...... 그때야말로 그대들의 덕이 근원에서 움트는 것이다.20)

새로운 가치를 창안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매우 고독한 작업이다. 니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의 파리 떼'들로부터 달아나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군중은 위대한 것, 다시 말해 창조적인 것이 무엇인지"21)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

창조하는 자는 동반자를, 그리고 함께 수확을 거둬들일 자들을 구한다.22)

그러나 이러한 동반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로서의 군중도 아니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양 떼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가 구하는 것은 동반자이지 시체가 아니다. 또한 그는 짐승 떼나 신도들을 구하지도 않는다.23)

차라투스트라가 선택하는 동반자는 "함께 창조하는 자"이고 "새로운 표 위에 새로운 가치들을 써 넣을 자"이다.24) 창조는 이러한 동반자들의 공통적인 행동, 즉 가치에 있어서의 혁명적 운동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1)프리드리히 니체, 김 훈 옮김, <선악을 넘어서>,청하,2003,p.26
2) <선악을 넘어서>p.28
3) <선악을 넘어서>p.27
4) <선악을 넘어서>p.27
5) <선악을 넘어서>p.30
6) <선악을 넘어서>,p.209
7) 프리드리히 니체, 두행숙 옮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북스, 2011,p.89
8)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90
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91
10) <선악을 넘어서>p.67
11) 프리드리히 니체, 송무 옮김,<우상의 황혼>,청하,2004,p.130
12) 프리드리히 니체, 김태현 옯김,<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청하,2011,p.44
13) <선악을 넘어서>p.144
14) 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니체와 철학>,민음사,2008,p.110
15) <니체와 철학>,p.153
16) 같은 책, 같은 쪽
1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323
18) 같은 책, 같은 쪽
19)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아침놀>,책세상,2011,p.112
2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116
2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79
2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p.33
23) 같은 책, 같은 쪽
24) 같은 책, 같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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