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 비평의 재탄생을 위하여ㅣ손보미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5-18 14:46
조회
89
 
 

비평의 재탄생을 위하여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음?"이라는 문장이 인터넷에서 자주 눈에 띈다. 게시글들에서 말하는 '이것'은 무척 다양하다.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이나 우리 문화 곳곳에 스며 있는 낡은 가치관을 지적하는 것일 때도 있고 때로는 심해나 미시세계에서 처음 발견된 생물처럼 너무나 새로워서 지금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떤 것일 때도 있다. 불합리한 혹은 불가해한 '이것'을 '좀 이상하지 않음?'이라는 문장과 함께 인터넷에 올리면 또 다른 사람들이 그 글에 짤막한 감상이나 찬반 의견을 달기도 하고 종종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런 모습들은 우리 일상에서 비평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평의 조건』은 한국의 미술비평가 16인에 대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을 인터뷰한 3인의 저자 또한 미술비평가라는 점이다. 즉 비평가에 대한 비평가의 인터뷰집인 셈이다. 지금껏 미술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이들이 왜 그 시선을 자신들 쪽으로 돌렸을까?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서 불가해한 혹은 불합리한 어떤 것, 한 마디로 좀 이상한 무언가를 발견했던 건 아닐까?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들은 오늘날 그들의 눈에 비친 비평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비평은 어디에 발 딛고 서 있을까? 비평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비평은 어디를 향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해답은 없다. 다만 희미한 형체가 아른거릴 뿐이다." (9)


그들의 눈에 띈 비평은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희미한 비평의 형체를 발견한 이들은 이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또 함께 이야기하며 그 희미한 형체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평가에 대한 비평가의 인터뷰, 미술비평에 대한 비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평, 창작>


'예술비평'이 탄생한 이래, 예술을 비평하는 것과 창작하는 것을 철저히 구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후에 또 다른 비평가들은 자신의 비평작업을 예술 창작의 방법들과 적극적으로 융합하고자 했다. 이들은 비평의 창조성을 강조하며 비평하기의 다양한 형식과 방법들을 실험했다. 책에서 3번째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김장언 또한 비평의 창조성을 강조한 미술비평가 중 한 명이다.


"글쓰기에는 논문, 연설문, 선언문 등 그 목적에 따라 어떤 모델이 있습니다만, 저는 비평에서도 그러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비평 역시 발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86)


그는 비평가의 창조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미술비평의 영역 자체가 이미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영역이라 말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비평이 발명의 장이 되는 만큼 비평 자체도 새로이 발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평이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키며 동시에 자신도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을 따르자면 비평의 창조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비평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창조적 행위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들 속에서 비평 자체가 새로이 창조돼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며 스스로 자신의 경계를 지우고 새로이 태어나는 비평. 죽음과 탄생이 순환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저자들도 책의 프롤로그에서 죽음과 탄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는 기쁨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금 우리는 이미 사멸해버린 세계와 주도적으로 새로운 무엇인가가 태어나지 않는 세계의 사이에 살고 있다. 모더니즘이 사멸한 토대 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세계를 잉태하려 했지만, 무력함만을 보여줄 뿐이다." (9)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 세계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계 사이에 살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오늘날 비평의 형체가 희미하게 된 조건이기도 하다. 죽음과 탄생의 자연스러운 순환과정을 생각해보면 일시적으로 출현한 희미한 모습이 특별히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래도 우리가 이 상태에 붙박여 버린 것 같다는 점이다. 새로운 세계의 탄생 없이는 지난 세계의 사멸도 완료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사이’에 있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상 우리는 여전히 사멸한 세계의 토대 위에 있다. 그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완료되지 않은 죽음, 즉 죽은 채로 존재하는 허상이다.


<비평, 자본주의>


우리는 어째서 새로운 세계를 잉태하지 못하고 허상에 붙박여 버렸을까? 우리를 무력하게 하고 또 그 무력함을 원천으로 자라나는 이 허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책에서 9번째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심상용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에 관한 질문을 던져온 미술비평가다. 그는 "미술 구조가 시장화되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 궤적을 추적"(273) 해왔다. 특히 우리의 동시대 미술을 비평적으로 재조명하며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글로벌화가 지닌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글로벌화란 우리 자신을 스스로 비워내면서, 우리의 두려움과 욕망이 만들어 낸 환타즘의 이름이죠. 그 환타즘을 탐닉할수록 점점 더 자신의 내적 빈곤과 공허에 익숙해지는 그런 특별한 타자화의 어두운 이름이죠."(276)


그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등장한 '글로벌화'가 아주 특별한 환타즘이라 말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이 환타즘은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다. 먼저 88올림픽을 전후하여 세계적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거대한 욕망이 자라났다. 하지만 '글로벌화'라는 환타즘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욕망에 이어 찾아온 두려움이 좀 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이라는 사건이 안겨준 거대한 공포가 기존의 욕망을 강박적이고 무차별적인 것, 즉 특별한 환타즘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욕망이 강박적 환타즘으로 둔갑하고 나면 애초에 그러한 욕망이 생겨난 원인이나 그와 함께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들은 사라져 버린다. 세계화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길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들어진 이러한 환타즘이 미술계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을까? 심상용은 <광주 비엔날레>를 언급한다.


"1995년에 <광주 비엔날레>가 개최되더군요. 그런데 국제전시를 개최하는 동기, 대하는 태도, 기획하는 과정, 저널리즘이 그것을 다루는 양식, 사회가 그것을 소화하는 방식 등, 모든 점에서 내가 머물렀던 파리에서의 그것과 다르더군요. (...) 그 동기가 매우, 그리고 노골적으로 도구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랬어요. 그런 현상은 <광주 비엔날레>가 표방하는 예술축제나 동시대 담론의 장과는 사뭇 무관한 강박적 학습기제, 이를테면 예술 세계화의 빠른 습득이 그 목적인 것처럼 보였어요." (277)


그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큰 국제 미술전이 글로벌 미술을 거역해서는 안 될 모범으로 설정하는 '글로벌화'라는 환타즘의 미술 버전이었다고 말한다. 이 환타즘 안에서 미술계는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온 힘을 바쳤다. 덧붙여 그는 <광주 비엔날레>와 함께 미술계의 많은 것들이 ‘글로벌 빅브라더’에게 인정받기 위한 게임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 게임은 인정받을수록 더 의존적으로 되고 그러면 또 더더욱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하는 아찔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게임의 규칙 안에서는 비평이 차단된다. 작품을 비평하는 대신 그것이 세계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가치를 매겨 삐까뻔쩍한 보증서를 만들어내는 데에 모든 말과 글이 활용된다. 그런데 그 세계적 기준이 이미 글로벌 감정사가 써 붙여 놓은 일급보증서를 달고 있는 작품을 소유한 빅브라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사실상 어떤 작품이 보증서를 달 수 있는 이유도 이미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아찔한 빅브라더 게임의 규칙이다. 이 규칙 안에서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세계적 표준이라는 허상을 온몸으로 갈구하고 받아들이는 강신술이 되어버린다.


"'비평이 죽었다'는 진술은 저에게 특정 작가나 현상에 의미를 집중시키기 위해 글을 생산하는 비평의 주도권이 시장으로 양도되어 온 현상을 떠올리게 해요. 오늘날 비평은 스스로를 왜곡하면서 신화가 되려는 경향이 있어요. 오늘날 비평은 신화로서 작동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기대하거나 촉구하죠."(296)


<비평, 실험>


죽음과 탄생의 순환을 차단하고 희미한 상태에 우리를 붙박아 놓은 거대한 환타즘을 걷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창조적 힘을 다시 촉발할 수 있을까?


"제가 초점을 맞추었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비평적 문제가 제기되고 공론화되는 사회적 기제들과 그에 관한 대안적인 실천에 관한 것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광고 없는 잡지를 통해 공적 저널리즘을 실천한다거나 카피레프트[공개 저작권]에 대한 실험이라든가 하는, 더 많은 사람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그들도 우리의 삶과 예술의 조건들을 결정하는 시스템에 대해 뭐가 문제인지 알도록 하고 싶었으니까요."(295)


비평가 심상용은 오늘날의 미술계를 진단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또 가능한 실천을 이야기한다. 그는 다양한 공적 실험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곧 환타즘 아래 지금껏 환영받던 일과는 다른 일들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다른 길을 낼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 책 『비평의 조건』의 목적 또한 미술비평의 현재 모습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질문을 던지며 함께 비평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이때 ‘그린다’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비평의 재탄생을 도모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평의 조건』은 비평의 재탄생을 꾀하며 미술비평가 22인(팀)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묶인 한 권의 책이 미술비평의 현재를 묻는 또 하나의 질문으로 솟아났다.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비평의 새로운 길을 낼 “강물 같은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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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5월 8일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2ThPs1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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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투명기계(김곡 지음, 갈무리, 2018)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을 선보인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조정환·전선자·김진호 지음, 갈무리, 2011)


다중지성 총서 첫 번째 책.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이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 전통적 통념을 넘어, 예술과 삶 그리고 존재와 생명의 통일을 실천했던 플럭서스 총체예술을 분석한다.


예술로서의 삶(재커리 심슨 지음,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2016)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고, 즐기고, 고통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의 삶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은 바로 이러한 철학의 물음에 충실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커리 심슨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니체,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마리옹, 카뮈, 푸코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예술’을 매개로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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