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상태 6장 발제문

작성자
moony
작성일
2020-05-12 13:55
조회
695
『예외상태』 6장 권위와 권한


폭력비판세미나 20200512 희음


1. 권위의 후견인적 성격

사법영역에서 그것은 권리 능력을 가진 인격(가부장), 즉 후견인의 소유권을 말한다. 피후견인의 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것. 아버지의 권위가 아들의 결혼을 허가하는 예처럼. 이 권위라는 말은 증대시킨다augeo는 단어에서 파생했는데, 이 동사는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모으고 늘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자체의 품 안에서 생겨나도록 하고, 존재케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방브니스트, 『인도 유럽 제도 어휘 연구』). 그러나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창조 행위는 언제나 형상 없는 질료나 불완전한 존재처럼 완성시키고 성장시킬 필요가 있는 다른 무언가를 포함했다. 권위를 가진 요소와 행위를 주도하는 요소 간 관계가 중요한 것.
후견인의 ‘힘’은 법적 대리권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격에, 그것도 원래는 물리적 인격에 구비된 속성이며··· 특정 조건하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법적 상황에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한 명의 로마인에게 귀속되던 특권”(피에르 노아이유)이다. 즉 권위는 후견인의 인격 자체에 내재하는 비인격적 잠재력의 실현이다.
원로원 의원들의 권위로부터 유스티티움이 선언되기는 하지만, 원로원은 자체에 고유한 직무 영역을 갖고 있지 않았고 민회의 결정을 보완하는 식으로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무관이 자문을 구할 때 권고나 조언의 형식으로서만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했다.
즉 원로원 의원의 권위와 사법에서의 후견(인)은, 행위의 완성을 위해 상호 보충적인 두 요소가 맺는 관계의 구조상 서로 유비될 수 있다(“미성년자와 인민은 일정한 지도를 따라야 하지만, 그런 복종은 다른 주체의 협조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하인체, 1925)

2. 권위와 권한, 배제하는 동시에 보완하는 관계

1) 유스티티움: 법질서의 진정하고도 고유한 효력 정지를 이끌어낸다. 집정관들이 민간인 지위로 재분류되는 반면, 모든 민간인은 마치 최고 명령권을 부여받은 듯 행동한다.
2) 인테르레그눔: 공위 기간에 섭정왕을 두는 제도. “인테르레그눔 동안 국법은 효력 정지된다··· 아버지들로 이루어진 원로원 의원 집단이 회의를 열어 초대 섭정왕을 지고의 권력으로 임명한다.”(맥델렌, 1990) 진공 상태에 있는 권한을 되살리는 힘은 인민이나 정무관이 수여한 합법적 권력이 아니라 아버지들의 개인적 지위로부터 직접적으로 비롯되는 힘인 셈이다.
3) 공적 판정: 로마 시민이 음모나 배신 행위로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예외상황에서, 원로원이 그를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 이때 그는 만민법의 보호를 받는 외부의 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모든 법적 지위를 박탈당한 채 재산과 생명권을 몰수당했다. 권위가 법질서뿐 아니라 로마 시민의 지위 자체도 효력 정지시킨 것.

3. 황제(주권자)의 권위

아우구스투스는 『업적론』에서 자신의 원수로서의 지위 근거로 권위를 요구한다. “이후 나는 비록 각 정무를 담당하는 동료들보다 많은 권한을 갖지는 못했지만, 위엄(이것이 원래 ‘권위’였다는 것이 『안티오케이아 비문』을 통해 밝혀진다) 의 측면에서 모든 이를 능가했다.” 원로원이 그를 ‘아우구스투스’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이는 '증대시키다augeo'나 후견인과 동일한 어근을 가지며 “권위의 광채”를 드러낸다. 아우구스투스는 공화국을 인민과 원로원에게 권리 이양되도록 한 후견(보증)인이다. 황제라는 로마의 원수 정체는 정무관직의 권한이 아니라 권위의 극한적인 형태인 셈이다. “··· 그와 달리 권위는 특정 인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를 통해 만들어지고 그의 인격 안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 되며 그와 더불어 사라진다”(하인체, 1925) 카시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저택 전체를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지낼 수 있도록··· 온통 공공의 것으로 만들었다”(『로마사』)고 전한다. 파시즘의 영도자(무솔리니)와 나치즘의 총통(히틀러)의 자질 또한 육체적 인격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권한의 법적 전통에 속하는 것이 아닌, 권위의 생명정치적 전통에 속하는 것이다.

4. 인격적이고 원천적인 권위

권위가 원로원 의원이나 원수의 살아 있는 인격에 직접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현대 연구자들의 주장은, 생명 속에 법이 내재함을 보여주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베버의 ‘카리스마적’ 권력이 1930년대 권위 개념과 결합돼 ‘총통 체제론’으로 주조된 것 -> 1933년 슈미트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의 혈통의 동일성” 개념, 1938년 비를린 법학자 하인리히 트리펠의 『헤게모니』 속 원천적/인격적/심리학적 카리스마에 기초한 권위로서의 총통 체제에 대한 논구, 1947년 원조 로마법 연구자 피에트로 데 프란치치의 『지배의 비밀』에서의 권위와 권한 대립 개념 및 영도자나 총통의 권위의 원천이 ‘가치의 우월성’에 대한 동의와 자유로운 승인에 기초해 있다는 논의. 이들의 주장은 모두 법이 최종적으로 삶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5. 서양의 법체계, 권위와 권한의 이중 구조

결론은 이것이다. 서양의 법체계는 다음의 이중 구조로 드러난다는 사실. 규범적이고 법률적인 요소(권한)와 아노미적이고 메타 법률적인 요소(권위). 적대적이지만 기능적으로는 결합된 이 두 요소 사이의 변증법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인 한, 법의 오래된 거처는 언제나 이미 붕괴와 부패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두 요소가 개념적, 시간적, 주체적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상관관계를 유지하는 한에서 두 요소 사이의 변증법은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인격 안에서 합치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것이 결정불가능하게 돼버릴 때, 즉 예외상태가 상례가 될 때 법적·정치적 체계는 죽음을 초래하는 치명적 기계로 변형되고 만다.

6. 항구적인 예외상태에 대항할 (목적 없는 수단으로서의) 순수 행위

예외상태는 1차 세계대전 이래 파시즘과 나치즘을 거쳐, 오늘날 최대한으로 확산돼 전 지구적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이 폭력은 대외적으로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항구적인 예외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법을 적용하는 척 하고 있다. 법을 설립하고 설정하는 힘과, 작동을 멈추고 해제하려는 힘이 길항하고 있다. 예외상태란 이 두 힘의 긴장이 정점에 달하는 지점이자, 오늘날에는 규칙과 일치되어 이 두 힘을 식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아노미와, 예외상태를 통한 법의 포섭은 선후관계가 아니다. 이를 구분하는 가능성은 생명정치적 기계를 통한 이 둘 사이의 절합과 일치한다. 벌거벗은 생명은 이 기계의 산물이다. 생명과 법, 아노미와 노모스, 권위와 권한은 모두 무언가의 산물로, 이 두 요소를 절합시키는 픽션의 폭로를 통한 분리를 통해서만 그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다. 진정으로 정치적인 행위란 폭력과 법 사이의 연계망을 끊어내는 행위뿐이다. 법을 생명과 연결시키던 장치를 작동 중지시킨 후에야 법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을 수 있다. 이것이 순수한 수단으로서의 행위일 것이며, 이 행위로서만 순수한 법을 드러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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