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수수밭/천양희

작성자
youngeve
작성일
2018-10-30 13:59
조회
1544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 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 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꼬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떄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성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 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이 시는 교과서에도 실리고, 수능 문제로도 출제가 되었던 시다. 수수밭은 마음이 수수하다라는 말에서 온 것도 있고, 빽빽해서 잘 보이지 않는 그늘과 어두움을 말한다. 거기에 머위 잎 몇 장이 더 얹어져 뒤란으로 가니 더 어둡다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을 뜻한다 금성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보는 것은 내가 우울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 쪽도 볼 수 없다. 세상을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세상을 내려놓고 싶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 있는 것은 보리밭이다 보리밭은 삶의 터전이다 보릿고개를 넘은 세워이 있다. 어려움을 극복했던 때도 있다는 것이다. 절골은 절이 있는 마을이다. 몇 번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은 우울을 이겨 내려 했다는 것이다 천불산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 건 구도의 마음이며 마지막에는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로 끝나는데, 어두웠던 마음이 환해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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