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 누가, 왜 여성과 소수자를 두려워 하는가?ㅣ문주현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04-11 17:06
조회
1033

누가, 왜 여성과 소수자를 두려워 하는가?


문주현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사람들이 이런 진부한 새로움에 끌리는 것을 아둔한 대중성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식인의 자기만족에만 도움이 된다.” 109쪽


한국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랫동안 앓아온 질문이다. 역사적 사건이 영화나 드라마로 재해석되는 시기에는 역사서를 뒤적이고, 매체나 사람에게 ‘핫한’ 주제를 다루는 실용서도 슬그머니 구매한다. 지식의 깊이가 얕다는 부끄러움으로 유명 학자의 이론서에 눈독을 들이고, 행동변화나 실천의 일환으로 대중 강의에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마다치 않는다. 그 번잡하고 단절적인 시도의 마디에서 느낀 혼란과 실망감. 책은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의 정동을 관찰하고 다시 사건과 현상에서 떠오르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그 정동을 해설한다.


“사실상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자들’이라는 기이한 가부장적 혈통 계승의 서사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127쪽


1부 4장씩, 총 4부로 구성된 약 400쪽 분량의 책. 각 부와 장의 제목은 다루는 주제에 충실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이론과 경험과 해설과 그 너머의 무엇을 총체적으로 논한다. 정치철학자들의 이론과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은 결합되고 해체되며 그 자체가 하나의 한국사회로 해설되기에 이른다. 부대끼는 한국사회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보수/진보의 이데올로기에서 트위터 해쉬태그 운동까지, 다시 법질서와 정책에서 문화예술까지 종횡을 막론하고 관통한다. 서사가 넘어가는 구간에는 문턱이 없고 독자로써 ‘나’는 읽던 문단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맥락에서 한참을 미끄러지기를 반복하지만 곧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경험한 방황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폭력적 경험은 ‘현실’에서 사실적 세부를 휘발시키고 특유의 정동만을 남겨놓는다. 정동이 현실을 대체하고, 정동이 신체를 장악한다.” 287쪽


1부는 젠더와 페미니즘에 대한 오류 및 오래된 관성을 다루며 최근 부상한 여성운동과 여성권력의 논쟁점과 현상을 신체유물론과 젠더 어펙트로 설명한다. 2부는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표상과 묘사되고 은폐되는 경계를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신호로 인식한다. 이는 다시 정동과 여자떼 공포를 넘어 젠더정치로 수렴한다. 3부는 증강 현실적 신체와 부대낌의 복잡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위안부를 주제로 개봉된 영화와 출판물,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파괴적 언행과 침묵, 폭력을 논한다. 4부은 대안으로써 공동체를 시도한 숱한 현장, 실험, 운동의 발자취를 아프꼼의 경험으로 빚어낸다.


각 부의 첫 장은 앞으로 전개할 주제와 영역에 대한 개괄적 설명이 이뤄지는 도입부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서사에는 문턱이 없고 각 장은 (한국어로 쓰여진 한국사회에 대한 내용임을 전제로)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일 확률이 높은 독자로 하여금 강렬한 기시감과 생소함 사이에서 방황을 조장한다. 저자 역시 들어가는 말에서 “계속 나아갈 것인지, 이제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는 것이 좋을 지”를 묻는다. 어딘가 멈춰서 한 구절을 깊게 생각해도 좋을 것이고 우선 밀고 나아가 책의 결말을 맞이하여도 좋다. 책을 통해 투영해본 ‘나’는 범람하는 힘이었고 파시즘적 정치활동에 휩쓸리는 개인이자, 부대끼는 정동으로 온몸으로 피로를 호소했다. 이 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한국사회에서 ‘나’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선의’가 관계의 구원이 될 수는 없다. 선의를 입증하려는 의도는 상대를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배타적 불한당’으로 전도시킨다.” 400쪽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9년 4월 9일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2Gbzy1o)


*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2)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


정동 이론』(멜리사 그레그, 그레고리 J. 시그워스 엮음, 최성희, 김지영, 박혜정 옮김, 갈무리, 2015)


아프 꼼 총서 2권. 정동 연구라는 이제 막 발아하는 분야를 정의하는 시도이자, 이 분야를 집대성하고 그 힘을 다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정동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정동이란 의식적인 앎의 아래와 곁에 있거나 그것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내장[몸]의 힘으로서, 우리를 운동과 사유, 그리고 언제나 변하는 관계의 형태들로 인도한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체 0

전체 48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71
[68호]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초의 포괄적 경계 연구 이론서ㅣ조경희
자율평론 | 2021.05.25 | 추천 0 | 조회 873
자율평론 2021.05.25 0 873
270
[68호] “이 세계가 ‘호의적인 장소’(oikeios topos)가 될 수 있을까?”ㅣ김대식
자율평론 | 2021.05.17 | 추천 0 | 조회 937
자율평론 2021.05.17 0 937
269
[68호] 데카르트 아닌 꽁디약, 멘드비랑, 라베쏭을 아는가?ㅣ이윤하
자율평론 | 2021.05.07 | 추천 0 | 조회 1065
자율평론 2021.05.07 0 1065
268
[68호] 객체로서 인간, 욕망의 대상 아닌 가능성의 존재ㅣ권영빈
자율평론 | 2021.05.07 | 추천 0 | 조회 1037
자율평론 2021.05.07 0 1037
267
[68호] 『근현대 프랑스철학의 뿌리들』: 낯설고도 익숙한 생각들의 지도ㅣ지방
자율평론 | 2021.05.06 | 추천 0 | 조회 782
자율평론 2021.05.06 0 782
266
[68호] 『불타는 유토피아』,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금, 함께 해야 할 이야기ㅣ백지홍
자율평론 | 2021.05.04 | 추천 0 | 조회 605
자율평론 2021.05.04 0 605
265
[68호] 디스토피아로 구현된 유토피아의 이상,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ㅣ성상민
자율평론 | 2021.04.12 | 추천 0 | 조회 678
자율평론 2021.04.12 0 678
264
[67호] “객체는 외부에서 조종될 수 없다”ㅣ김대식
자율평론 | 2021.03.26 | 추천 0 | 조회 804
자율평론 2021.03.26 0 804
263
[67호] “여성, 임금 노예의 노예에서 자연의 동지로 옆에 서다”ㅣ박이은실
자율평론 | 2021.03.09 | 추천 0 | 조회 652
자율평론 2021.03.09 0 652
262
[67호] 신자유주의 서바이벌 가이드ㅣ권두현
자율평론 | 2021.03.03 | 추천 0 | 조회 753
자율평론 2021.03.03 0 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