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솔로몬 휴즈의 『대테러전쟁 주식회사』를 읽고 / 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1:20
조회
2917
솔로몬 휴즈의 『대테러전쟁 주식회사』를 읽고


이수영 (미술 작가)


불안

늦은 밤 길 누가 나를 뒤 따라 오지는 않는지, 누가 내 전화를 도청하지는 않는지, 내 방에 누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건 아닌지 나는 불안하다. 취직, 결혼, 출산, 교육, 건강, 노후, 불안은 전 생애에 걸쳐 세밀해지고 증식되고 있다. 적은 북쪽에 있다고, 붉은 색이라고, 가리킬 수 있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은 우리 안에 있으며 누가 적인지, 왜 그가 적인지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때그때 정할 것이다. 적을 마주보며 형성할 수 있었던 ‘우리’는 이제 없다. 무한경쟁의 생존 전쟁에서 불안은 나의 힘이다. 피해의식과 억울함, 그리고 우울한 날들, 불안은 모두를 적으로 만든다. 똘똘뭉쳐 무찔러야 할 적은 이제 없고, 모두가 나의 경쟁상대이다.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일종으로 신자유주의의를 본다. 즉 위생과 출생률, 수명 등을 조절하여 ‘살아 있는 생명인 인간을 특정한 형태로 생산해내는 통치성’이라는 것이다. 국가행정을 통해 인간 행위를 이끌어가는 합리성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를 자기통제 원리로 삼는 규율적 주체를 생산해내는 이 통치술에 대해 조정환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정념에 대한 지배, 즉 정동적 지배의 필요에 따라 일상화되는 시대로의 이행’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공포와 불안, 조증과 울증 등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우리 삶의 일상적 구성부분으로 정착된다.’

분노

2010년 가을 나는 어느 날 조간신문 첫 페이지에 불타고 있는 연평도 사진이 아주 커다랗게 실렸고, 여러 쪽에 걸쳐 북한의 전력과 테러 가능성에 대한 여러 분석들로 보이는 도표와 그림들이 어지럽게 이어져있었다.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았다.

잠시 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 첫째 이유는: 처음 신문을 봤을 때 내 반응은 ‘또 지랄하는구나’였다. 크고 작은 정치적 일이 있을 때마다 간첩이 내려오고 체제전복 세력들이 발각되고, 비행기가 폭파되었기에 이제 잠수정이 두 동강이 나고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일단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 보도되면, 나는 북쪽을 쳐다보지 않고 청와대를 쳐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악의 축’이 실재함을 확인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로 기뻐할 이명박 정부와 부시 정부, 북한 정부의 카르텔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셋째: 나는 공포정치에 대해 잠시 분노에 떨겠지만 곧 다음과 같은 생각에 더 분노를 느낄 것이었다. 내게 책정된 건강보험료가 너무 비싼 것 같다, 국민연금을 꼭 계속 내야할 것인가, 그래도 노후에 그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활비를 계속 벌 수 있을까, 십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북한의 위협보다, 공포정치의 시나리오보다 나의 일상적 불안은 더 크다.

내면화된 불안이라는 정동적 지배가 작동하고 있는 인지자본주의에서 대테러 공포 정치는 예정된 수순인 것 같다. 조정환은 ‘9.11은 합의에서 테러로의 이행을 군사적 경찰적 수준에서 완결 짓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법이나 합의가 아닌 명령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행로에서 국가의 개입과 조절이 시장과 연결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산과 물과 땅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이 의아한데, 한국에서도 고속도로, 발전소, 가스, 전기, 철도 등이 완전 사영화될까. 솔로몬 휴즈의『대테러전쟁 주식회사』에서 안보산업복합체들은 교도소, 용병, 데이터베이스, 수감과 법률 집행, 군대급식까지 운영한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사법부도 사기업에 맡기고 교육부도 맡기게 되는 날이 올까.

사이렌의 침묵

카프카의 사이렌은 노래보다 더욱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침묵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애써 마녀들의 침묵을 외면한다. 자신이 마녀들을 이기고 그 바다를 통과한 것은 밀랍으로 귀를 막고 밧줄로 몸을 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악귀들이 사실은 살생의 마술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영웅 오디세우스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 휴즈가 인용한 그리스 시인이 고발한 <야만인을 기다리며>처럼, 미국과 영국이 말한 테러리스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혁당은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인혁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은 있었던 것처럼. 솔로몬 휴즈는 안보산업복합체의 영향력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첫걸음은, 안보산업복합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이유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담하게 솔로몬 휴즈의 책을 읽은 후, 사이렌의 침묵을, 야만인의 부재를 어떻게 우리는 고발할 수 있을까, 그 공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테러의 공포는 이미 일상화되고 내재화 되어 주체의 구성원리가 된 불안이라는 생명관리정치의 한 종이다.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인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민주화한다거나 사회안전망을 재구성한다거나 정권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이기를 그칠 때’ 그것은 해결된다는 것이다. 주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조정환은 인지혁명을 제안한다. 공포, 불안,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적 생산과 소유가 아니라 공통적인 것의 생산을, 축적을 위한 지성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자율적 공통지성 즉 다중지성’으로의 전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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