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모음] 7/29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Ⅱ. 입자와 에너지 (206~ 230)

작성자
bomi
작성일
2018-07-29 14:02
조회
563
배추님

Ⅱ. 입자와 에너지
1. 실체론과 에너지론
1.1 변환역학적 인식론의 목표는 실재의 개체화를 인식하고자 하는 과학적 사유의 전개를 알기 위해서 변환역학적 사유의 양상들을 진실로 적절한 유일의 것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207
1.2 이 두 개념들(파동과 입자)은 변증법적 운동의 말미에서 명제와 반명제가 그러한 것처럼 진정으로 종합된 것이 아니라, 사유의 변환적 운동 덕분에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그것들은 이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기능적 특징을 보존한다.

2. 연역적 과정
2.1 파동의 개념은 에너지 문제들의 해명에 현저하게 합리적인 계산수단을 가져왔고, 이전에는 상이한 범주들로 분리되어 있던 아주 넓은 사실군들을 공통의 원리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이론적 역할을 한다. 그와 반대로 입자의 개념은 대립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2.2 맥스웰에 의해 연속체 가설에 기초하여 에너지 문제에 응답하는 연역적 합리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이루어졌다. 그는 전기 영역에서 따로따로 발견된 여러 법칙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단일한 체계에 에너지보존원리를 적용하고자 오늘날 사용되는 전자기파라는 개념의 전신인 “변위전류(courants de déplacement)”라는 개념을 형성했다.
2.3 유사종들의 경계들인 불연속성들이 도입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생명적이고 기술적인 활용 때문이다. 217
2.4 변환적 사유와 유,종 그리고 포함관계에 의해 진행하는 사유 간의 차이에서 중요한 한 가지 결과는 유적특징들은 변환가능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아마도 인식론에서 핵심적인 내용일 것이다. 221~222

3. 귀납적 과정
3.1 파동역학과 상보성 원리의 입장에 이르게 된 탐구의 두 번째 길은 귀납적 과정의 말미에서 물리적 실재성의 불연속적 본성을 단언한 길이다. 224
3.2 본질적으로 연역적인 과정의 말미에서 얻어진 변환성의 영역은 양극단을 향해 열려 있어서 분류되고 정돈된 다양한 값들의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귀납적인 과정의 말미에서 얻어진 변환성의 영역은 자기 자신 위에 닫혀 있으며 그 배열은 주기적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유한수의 값을 포함한다. 229


--------------------------------------------------------------------------
공유지님

<입자와 에너지>

Ⅰ. 실체론과 에너지론

1. 드 브로이의 파동역학(λ= h/p, P=mv)과 보어의 상보성 개념을 통해 물리적 개체 설명할 때, 개체는 에너지 조건과 구조적 조건 사이의 관계에 의해 발생적으로 구성된다. .. 모든 관계에는 언제나 연속항과 불연속항이 있으며, 그것은 각 존재자가 스스로에게 연속적 조건과 불연속적 조건을 결합할 것을 요구한다.

2. 파동역학 발견에서 변환역학적 인식론이 중요하다. 이인식론의 목표는 실재의 개체화를 인식하고자 하는 과학적 사유의 전개를 알기 위해서 변환적 사유의 양상들을 진실로 적절한 유일의 것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3. 변환역학적 인식론의 원리
1) 변증법적 종합의 위계적, 논리적, 존재론적 상위 개념과 반대로 변환의 말미에서 얻어진 관계는 항들의 특징적인 비대칭을 유지한다.
2) 변환적 사유 안에는 종합의 결과는 없고 단지 상보적 종합적 관계만 있다. 종합은 없다.
3) 사유의 여러 영역 사이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그것은 변환의 재료이다.

4. 윤리학에서도 변환역학적 인식론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윤리학 자체도 생명체들의 고유한 관계(고유한은 직접적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특징들이 다른 존재자들에서 보다 훨씬 더 주용한 방식이라는 의미로서 ‘생명체들에 따라서’ 라는 의미이다.)의 탐구로 드러나야 한다.

Ⅱ. 연역적 과정

1. 파동의 개념은 특히 에너지 문제의 해명을 향한 주목할 만한 연역적 노력(E=nhν)의 결과 이며, 에너지 문제들의 해명에 합리적인 계산 수단을 가져 왔다.

2. 파동의 개념은 빛뿐만 아니라 전기화된 입자들(전하들)의 이동과 관련된 현상들의 해석에도 동일한 역할을 해왔다. 이로 인해 그것은 맥스웰의 빛의 전자기 이론의 개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작업은 프레넬의 연구에서 구체화 된 것이며,- 1815년에는 프레넬(Fresnel)의 빛의 파동성, 1865년 맥스웰(Maxwell)의 전자기파존재 예측,- 이 후 두 번째 작업은 맥스웰의 발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후에 헤르츠에 의해 실험적으로 증명된다.

3. 맥스웰은 빛의 진공 속 전파와 전자기장들의 전파 사이에서 실재적 유비, 즉 연관들의 동일성에 주목하였다. (전자기장 내의)에너지가 전기를 보존하다는 것을 고찰함으로 발견된 상수 c는 진공 속에서 빛의 속도의 척도로 변환 가능하다.

4. 전자기파들처럼 변환성의 영역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종들의 수나 아종들의 수는 연속의 역량을 갖는다. 긴 헤르츠파들로부터 가장 날카로운 감마선들까지는 다양한 파장들을 갖는 무한수의 전자기장들이 있다. .. 유사종들의 경계들인 불연속성들이 도입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생명적이고 기술적인 활용 때문이다. 전자의 예는 가시광선이고 후자는 헤르츠파를 들 수 있다. 후자인 헤르츠파의 구분들처럼 이런 구분들은 결코 고려된 현상의 고유한 본성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과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기술의 관점에서 존재한다.

5. 동일한 산업으로 조직화되는 모든 기술들의 ‘특수한 영역들’ 사이의 다소간 불안정한 일치로부터 일정수의 산업적 개념들이 만들어진다. 이 산업적 개념들은 점차 모든 과학적 성격을 잃어버리고 결국 상업적이고 행정적인 것이 된다. 그것들은 사용과 관련되어 실용적 의미만을 갖기 때문이다.

6. 텔레비전 파장의 결정은 라디오방송과 전화에 의해 이미 점유된 영역밖으로 쫓겨난 결과이다. 그 파장의 특성상 정보를 멀리까지 실어 나를 수 없어, 정보나 예술의 스펙터클이 이미 포화된 지역의 중심에 도달한다. 또 전달된 이미지의 기술적 질을 향해, 즉 고화질의 채택을 향해 완벽한 개선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 일정한 가치들의 코드의 채택은 초기의 상황들로 혜택을 받은 결과 그 코드를 낳은 조건들을 강화하는 그리고 이 조건들을 단번에 정당화하는 규범성을 만들어 낸다.

7. 텔레비전이라는 개념의 진정한 경계들은 심리 사회학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회귀적 인과성이라는 순환의 폐쇄로 정의된다. 이는 일종의 내적 심리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은 기술과 진행절차와 기술자들을 동화하고 분리함으로써 내적 조절을 하는 덕분에 항상성을 부여받는다.

8. 변환적 영역이라는 순수 연속체는 개체를 상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연속적 잠재성을 재단할 수 있는 기준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는 물리적 개체를 파악할 수 없다. 물리적 개체가 상보적인 두 가지 인식에 의해 파악된다면 비판적 문제는 이 두 인식들 사이의 관계의 타당성 그리고 개체 자체 속에서 존재론적 기초의 타당성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Ⅲ. 귀납적 과정

1. 파동역학과 상보성 원리의 입장에 이르게 된 탐구의 두 번째 길은 귀납적 과정의 말미에서 물리적 실재성의 불연속적 본성의 길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귀납적 탐구에 기초로 소용될 수 있는 구조적 표상의 필요성이다.

2. 파동 개념은 연역적 사유를... 폭넓은 영역 속으로 도입할 수 있기 위해 만들어 졌다. 그것은 이론적 표상의 우의에 상응한다. 반대로 전기 입자의 개념은 실험적으로 확인된 현상을 가지적 구조에 의해 표상할 수 있기 위해 도입하였다... 전자는 언제나 같은 것이며, 귀납이 가능한 것은 전자가 동일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3.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원자량을 고려하여 확립한 귀납의 결과인 동시에, 기지의 원소들을 원자량의 증가의 순서로 배열하고 그것들의 속성들의 주기성 쪽으로 방향을 잡은 변환성의 노력의 결과였다.

4. 본질적으로 연역적인 과정의 말미에서 얻어진 변환성의 영역과 본질적으로 귀납적인 과정의 말미에서 얻어진 변환성의 영역 사아에 차이가 있다. 전자는 양 극단을 향해 열져 있다. 그것은 분류되고 정돈된 다양한 값들의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는 반대로 자기 자신 위에서 닫혀 있으며 그 배열은 주기적 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유한수의 값을 포함한다.



<"내재성: 생명" 그리고 노회찬>

틈새 인간


“하나의 어떤 생명을 구성하는 특이성들 또는 사건들이 그에 대응하는 정해진 한 생명의 우연한 일들과 공존한다.”

어린 왕자는 어리지 않다. 그는 작은 것이다. 작은 왕자 혹은 작은 왕자들이라고 해야 할 순수 생명들이 순간들의 틈새에서 피어오른다. 그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어떤 것 속에 있지도 않고 어떤 것에 대하여 있지도 않은)지복의 행복감은 우리를 지고한 인간으로 닿게 한다. 때로 이 행복감은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기실 생명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봄날 산책만 해도, 무더운 여름 바다로 뛰어들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왁자지껄 터들기만 해도, 틈새인간은 낯설지 않은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틈새를 숨기는 순간들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처럼 절대적으로 디디고 서도록 명령하는 집합들, 혹은 도형의 꼭지점처럼 그 점들을 이은 공간만을 살아가는 의식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대다수에겐 저주인 삶, 하지만 그들의 축복은 지복이 아니다.

“더 이상 자기 고유의 이름을 지니지 않는 사람에게 내재하는 특이한 생명을 위하여, 즉 특이한 본질을 위하여, 또는 하나의 어떤 생명....을 위하여 이런저런 개별성의 생명이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노회찬! 이미 개별성의 생명은 며칠 전 화장장으로 소멸했다. 어떤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절박한 질문 때문일까? 우리는 하지만 이라고 접속사를 붙인다. 하지만 그는 사라진 것일까? 사라졌다면 무엇을 위하여? 특이한 생명을 위하여, 틈새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노회찬이란 특이한 주체가 있었다. 남들이 “절망해야 해!”라고 말할 때 그는 춤을 추었다. 단 한 순간도 주판알을 굴리지 않으면 몰락할 것 같은 세상에서 주판으로 누군가의 등을 긁어주고, 수많은 구두들이 윤기를 내며 삶의 윤택함을 즐기라고 할 때 한 컬레의 낡은 구두만으로도 부족을 몰랐다.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게 가장 행복하고 지혜로운 것일 지도 모른다는 낯선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 두렵고 낯설지만 우리에겐 작은 왕자이며, 사랑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그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비인격적이면서도 특이한 하나의 어떤 생명을 사물들 한복판에서 육화하는 주체”라고.

그가 죽은 날은 너무도 무더운 날이었다. 모든 죽은 것들이 부패되기 쉽고 더 맹렬하게 악취를 풍길 수 있는 그런 날이었는데, 아무런 포장도 없이 맨 몸을 그렇게 던졌다.
정해진 한 생명을 꾸역꾸역 감당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타까운 사건인데,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틈새인간이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개별성이 가진 초월적인 의식의 지점이 없다. 그에겐 내재적인 정동만이 내면에서 웅성거리고 무한 속도로 그를 사로잡는 정념만이 있었다. 그러니 그에겐 살아가기 위해 틈새를 감추는 무한 반복의 운명은 삶이 아니었다. 그에게 죽음은 개별적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틈새 인간의 지복을 육화한 지고한 인간에겐 강박적 반복을 견디며 사는 것이 유일한 죽음이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사라지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의식의 절대적 틀 뿐이었다. 생명은 그가 가진 정동, 정념뿐이었다. 주체와 대상으로 가려지기 이전, 생명들이 고유한 가치를 반짝이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향유하며, 내재성의 지평들이 현실화되는 축제뿐이었다.

그러니 미련은 없었으리라. 우리가 낡은 의식에 겨우 매달려 있을 때 그는 자유를 택했으리라.

우리는 그의 죽음을 초월적인 사라짐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우리 안에 죽음은 이미 내재되어 있고 항상 잠재적이다. 죽음은 어쩌면 내재성으로의 회귀이며, 생명이 스스로 변이하는 조건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코 개별적인 죽음은 없다. 우리 가운데 공존하는 죽음만이 있다. 공존하는 죽음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리라. 무더운 날 노회찬의 죽음이 던진 질문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그리고 노회찬의 죽음은 말한다. “아무것도 두려워 마시라. 죽음은 이미 내가 감당했으니 삶을 살라!” 그리고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죽음일 것이고 삶일 것이다.

“생명은 오로지 잠재적인 것들만을 포함한다. 즉 생명은 잠재성들, 사건들, 특이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잠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잠재적인 것 고유의 실재성을 그에게 부여하는 내재성의 평면을 따라가면서 현실화의 과정 속에 뛰어드는 어떤 것이다. 이때 내재적인 사건은 내재적인 사건 자신을 [현실의 차원 속에] 도래하도록 하는 사물들의 상태와 체험된 상태 속에서 현실화된다.”
전체 0

전체 227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건축과 객체』 게릴라 세미나 - 8월 6일 일요일 1시 시작
ludante | 2023.07.29 | 추천 0 | 조회 1246
ludante 2023.07.29 0 1246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1371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1371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3468
ludante 2019.02.10 0 3468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3385
ludante 2019.01.27 0 3385
133
[발제] 12/9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464~482
bomi | 2018.12.09 | 추천 0 | 조회 529
bomi 2018.12.09 0 529
132
[발제공지]12/9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464~482
bomi | 2018.12.05 | 추천 0 | 조회 459
bomi 2018.12.05 0 459
131
181202 발제문
commons | 2018.12.02 | 추천 0 | 조회 527
commons 2018.12.02 0 527
130
20181202 발제문
absinth | 2018.12.02 | 추천 0 | 조회 457
absinth 2018.12.02 0 457
129
[발제공지]12/2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452~464
꼬꼬 | 2018.11.25 | 추천 0 | 조회 395
꼬꼬 2018.11.25 0 395
128
발제문 439~452
commons | 2018.11.24 | 추천 0 | 조회 493
commons 2018.11.24 0 493
127
20181125 발제문
absinth | 2018.11.23 | 추천 0 | 조회 427
absinth 2018.11.23 0 427
126
[발제공지]11/25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439~452
bomi | 2018.11.19 | 추천 0 | 조회 545
bomi 2018.11.19 0 545
125
발제문 420-438
commons | 2018.11.18 | 추천 0 | 조회 548
commons 2018.11.18 0 548
124
20181118 발제문
absinth | 2018.11.17 | 추천 1 | 조회 521
absinth 2018.11.17 1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