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전쟁과 영화 - 지각의 병참학 3장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2-09 10:46
조회
765
전쟁과 영화 - 지각의 병참학 3장 이미지의 지옥에 들어선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기술 발전에 따른 지각의 변화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미국인들은 성전과도 같은 거대한 영화 사찰을 세운다. 여기서 관객은 마법 의식과 신성 모독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계의 종말을 체험한다. 스테인드글라스 광선이 스크린 속으로 집중됨으로써, 영화는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빛을 생산하는 새로운 산업 시장, 즉 탈물질화 거래의 특권적 장소가 된다. 비릴리오는 이 새로운 사찰에서 ‘집합적 기억’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가령 나치는 영화를 통해 유대인의 이미지와 그 피해를 조작했는데, 유대인들 스스로 끔찍한 사실을 직면하기보다 나치의 정신적 마취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보부가 대량학살의 정확한 인원을 알고 있던 아이히만을 집요하게 쫓았던 이유다. 그를 통해 학살당한 600만의 유대인을 불러와 국민국가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국가의 기초로 삼는 활동은 군사 국가를 설립하고 재건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강도 높게 이루어진다. 이때 국가는 꿈과 결부된 시각적 환각으로서 애초에 몽환적인 존재일 뿐이다.

비릴리오는 이집트 회화 양식을 간직한 묘지에서 예술의 죽음과 순간의 관성을 보았다. 태양 신앙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속도에 바쳐진다. 묘지 자체가 속도론의 도구들, 즉 수레와 용기 같은 기술적 운반 도구를 포함한다. 이집트 예술의 야망은 죽은 파라오의 육체가 움직이는 것보다 그 육체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이집트의 ‘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영화적 유혹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덤을 꾸미는 것은 미래의 점유자를 위한 ‘속도적 시야’의 쾌락이 된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승객은 스펙터클한 영화를 관람하듯, 거기에 상당한 물질적, 기술적 수단이 할애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비릴리오는 이집트 회화에서 지각의 해부학적 문제와 외양의 생산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영혼의 능동적 작동’을 읽어낸다. 그것은 “이러저러한 속도로 걸어가는 살아 있는 존재가 주어진 어떤 순간의 공간에서 점유한 상이한 위치를 나타내는 연속적 이미지들”과 같다. 고대 사회에서는 꿈과 몽상에 잠겨들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활동이었다.

유럽 르네상스기에 인쇄의 발명과 더불어 묵독의 혁명이 일어난다. 이 계기로 우리는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관행들을 발견한다. 이제 종교적 성격을 가진 몽환적 이야기의 언어 기억력 상실은 더 이상 발화(parole)의 집합과 구전을 경유하지 않고, 산업적 재생산인 표준(standard)을 경유하게 된다. 십수 년 만에 수백만 권의 책이 출판되는데, 그것은 미래의 사진 및 영화의 보급과 오늘날 전자 공학 확산의 전조이다. ‘묵독’의 혁신은 개인에게 쓰여진 것을 믿게 만든다. 그것을 읽는 순간에 그는, 고대에서 불면과 역설적 수면 간의 등가성을 만들어 낸 움직이지 않는 몽상가처럼, ‘자신이 그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갖기’ 때문이다. 비릴리오는 이 지점에 언론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제국주의가 개입한다고 보았다. 독자는 자신이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양 신문에 진실을 부여하게 된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가 ‘눈으로 보면서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반화된 기술적 혼합은 종교의 대체 숭배로서 쉽게 나타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묵독의 노출 시간은 카메라의 해부학적 눈 속에서 사라지며, 그것은 선진 국가들 속에서 거대한 문맹의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이제 문제는 이해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과 전장의 연속성

정치철학자 도미야마 이치로는 저서 ‘전장의 기억’에서 전장을 일상과 동떨어진 예외적 상태가 아닌, 나날의 진부한 일상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 일상생활이란 관습적인 행위로 구성되는 공간이며 그 공간에는 무의식적인, 다시 말해 신체화된 다양한 실천들이 존재하고 있다. 비릴리오는 영화라는 지각의 병참학을 중점으로 그 실천을 분석한다. 초기 무성 영화는 종교의 위치를 대신해 발할라 궁전이 됨으로써, 가난한 이주민들이 욕망하는 토착성을 충족시켜줬다. 목표 대상이 된 이들은 군사-산업적 프롤레타리아라는 ‘무정형의 사회학적 집계’로서, 이들은 공장과 전쟁터로 무차별적으로 소환되었다. 군사-산업적 영화는 전쟁과 살인 - 자살의 결투를 무한정 재생산하고, 관객들을 공격자에 위치에 놓아 그 심성을 바꿔놓았다. 이때 영화 산업은 1차 세계 대전 중 이름을 날리게 될 군수 회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전기 공학자 부시는 기계 장치, 라디오, 오토바이 장거리 경주를 배우고 운전하는 젊은이들이 군사 훈련 캠프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훈련은 전쟁의 순간이 왔을 때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전쟁 장치를 구축하는 데 적합한 것으로 변환된다. 영화관 역시 의심할 나위 없는 훈련 캠프이다.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미국인’은 끊임없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것에는 일체성을 구성하는 군사-산업적 영화 뿐만 아니라, 마천루, 껌, 성경, 야구 같은 요소들도 포함된다. 그러한 행동은 군대의 힘과 무력함을 잘 보여 준다. 지각의 병참술의 지원을 잃게 되자마자 군인들은 혹독한 군사 행동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스타-여성이 남성 전사의 병참 지원물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들은 주체가 아닌, 공통적인 특색의 임의적 선택으로 비유기적인 개체가 된다. 또한 부품처럼 무한정 재생산될 수 있게 되고, 곧 자신의 사생활조차 계약에 의해 억압되어 ‘언어 기억 상실의 국지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처녀 잔다르크 연기를 했던 잉그리드 버그먼이 혼외 임신으로 미 상원 의회에서 질문 공세를 받게 되고, 할리우드 경력을 망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설적인 것은 병참자원으로 스타-여성이 이용되었지만, 흑인들처럼 오래 전부터 시민권 투쟁을 해온 미국 여성들의 목소리는 외면되어 왔다는 것이다.

1982년 B급 영화배우였던 레이건은 대통령에 선출되고 나서 ‘사상최대 규모’라는 레이건 쇼를 준비한다. 방송 제작을 담당한 미국의 소리는 선전 방송사로서 미국 내에 방송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방송을 허가했다. 이 방송은 소련과의 다른 ‘전쟁 방식’이었으며, 레이건은 자신의 영화적 지식에 기초한 국경 침범의 새로운 유형을 준비한 것이다. 비릴리오는 레이건 쇼의 전세계적 방영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삼으며, 국가 건립의 낡은 의식을 초월하고자 하는 시도를 목격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스펙터클 방송에 시청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이들은 정치와 영화 스타들 모두에게서 등을 돌렸다. 비릴리오는 여기서 ‘천지창조 이후의 최대의 쇼’라 불린 거대한 쇼가 동시에 가장 작은 쇼인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신학자 본회퍼가 폭로한 ‘즉시성의 속임수’를 예고하며, 차원의 위기이자 동시에 재현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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