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305 ~315: 아마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작성자
commons
작성일
2019-11-22 12:48
조회
638
<발제문 305 ~315>


아마도 아프리카
- 이 제니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호랑이, 그것은 나만의 것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는 것


살고 있나요 묻는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반은 쑥색이고 반은 곤색이다
쑥색과 곤색의 접합점은 성홍열 같은 선홍색


열두살 이후로 농담이 입에 배었다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손톱 끝에도
주황색 양파자루 속엔 어제의 열매들
양파가 익어가는 속도로 너는 울었지


눈을 감아도 선홍색이 보이면
다시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너무나 멀리 있지만 아마도 이미 아프리카

나는 하룻밤 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출처] 아마도 아프리카 - 이제니



1. 칸트적 비판의 애매성: 칸트는 실체적 자아의 자리에 시간의 선에 의해 심층적으로 균열되는 자아를 놓았다. 또 이와 똑같은 운동 안에서 신과 자아는 일종의 사변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어쨌든 킨트는 세 가지 비판의 개념적 장치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암묵적 전제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 상상력, 이성, 지성 등은 이런 식으로 인식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또 어떤 ‘논리적 공통감’을 형성한다. .. 그러므로 칸트는 공통감의 형식을 전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수화했을 뿐이다. .. 죽은 신과 균열된 나는 어떤 다른 관심, 실천적이거나 도덕적인 관심 안에서 부활하여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공고해지고 확실해지며,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확신하게 된다.

2. 네 번째 공준(재현의 요소): 재현은 특정한 요소들에 의해 정의된다. 개념 안의 동일성, 개념의 규정안에 있는 대립, 판단 안의 유비, 대상 안의 유사성 등이 그 요소들에 해당한다... 이 네 가지 형태 전체 아래에서 차이는 비교 원리에 해당하는 어떤 충족이유를 가질 수 있다고 간주되기도 한다. .. 여기서 반복은 재인, 할당, 재생산, 유사성 둥울 통해서만 파악되고, 이것들이 접주사 재RE를 재현의 단순한 일반성들 안으로 소외시키는 한에서만 파악된다.

동물들, 나, 선홍색, 12살 이후의 농담, 주황색 양파자루, 조금 살고 있고 ‘나는 하룻밤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는 고백에서, 당신은 어떤 논리적 공통감이나 재현의 동일성, 대립, 유비, 유사성 등의 요소들을 찾았는가? 『아마도 아프리카』라는 제목을 처음 접할 때 우리는 어떤 아프리카와 관련된 일반적인 상상을 기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는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 ‘아마도’라는 수식어는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기대감과 연관될 땐데, 시의 내용에선 아프리카와 어떤 실재적 인 기대감을 연장시킬 맥락이 전혀 없다. 너무도 낯선 두 단어의 마주침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발제문과 관련해서 살펴보자. 먼저 기존의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하나의 개념으로, 그리고 ‘아마도’를 실천적 기대감으로 이해하면서. 이 시에서 논리적 공통감을 추출해 시를 해석하자. 이 시는 그렇게 이해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위의 재현의 네 가지 요소 즉 동일성, 대립, 유비, 유사성 등을 이 시에선 건져내 보자. 하지만 이 시에서 사용되는 모든 단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의 선입견을 벗어난다. 재현의 4요소는 없고 자신의 개념 안에서 넘쳐나는 어떤 의미들이 꿈틀거린다. 이 시의 모든 단어들 혹은 개념들은 서로 서로 내부적으로 공명하며 생동하는 조합으로 새로운 의미관계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즉 이 시는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낯설게 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진다.

3. 개념에는 어떤 발톱이 없다. 절대적 필연성의 발톱, 다시 말해서 사유에게 가해지는 어떤 원천적 폭력의 발톱, 어떤 이방성의 발톱, 어떤 적의의 발톱 같은 것이 없다. 사유는 오로지 이런 적의의 발톱을 통해서만 자연적 마비 상태나 영원한 가능성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유는 비자발적인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고, 사유 안에서 강제적으로 야기되는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다. 사유는 이 세계 속에서 불법, 침입에 의해 우연히 태어날수록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이 된다. .. 또 사유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지혜의 사랑을 상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것은 어떤 지혜의 증오에서 출발한다. 사유에 기대어.. 어떤 마주침,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과의 우발적 마주침에 기대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사유행위와 사유하려는 정념의 절대적 필연성을 일으켜 세우도록 하자. 진정한 비판과 진정한 창조는 똑같은 조건들을 따른다.(310~312)

아프리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대상. 시인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것. 이 시인은 12살 이후 농담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 그 농담들이 지금 아프리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어떻게 아프리카가 그녀에게 마주쳤을까? 그것은 시인이 아마도 아프리카의 “아프~”의 두 음소에서 멈추어 서서가 아닐까? “아프~”는 시인의 “아프니깐”의 해답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심층의 결핍을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에서 “아프~”는 하나의 다양체이다. 그것은 시인의 내면에서 아프리카로 호명되지만 그것은 이미 전치와 위장을 거친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대상’이다. 두 현재- 12살때와 현재적 현재-는 “아프~”라는 대상=x를 징후로 농담으로 위장되는 것이다.
그 다양체인 “아프~”는 시인에게 ‘아프리카’로 개체화된다. 시인의 호랑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나만의 것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는 것” 이 호랑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맹수가 아니다. 그 맹수라는 동물이전에 “아프~”을 간직하고 발현하고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시인의 호랑이는 발톱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발가락 사이 털의 부드러움과 발바닥 패드의 보드라움을 간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시인의 “아프~”가 시로서 형상화되는 현실은 이런 호랑이와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들이 공존하는 아프리카이다. 발톱 없는 발톱, 그것이 시인의 사유다.


4. 오로지 감각밖에 될 수 없는 것(이와 더불어 감각 불가능한 것)이 현전할 때 감성은 어떤 고유한 한계-기호-에 부딪치게 되고, 또 어떤 초월적 실행-n승의 역량-으로 고양된다. 마주침의 대상이 지닌 두 번째 특성은 ... 오로지 감각밖에 될 수 없는 것(감각되어야 할 것 혹은 감성적인 것의 존재)은 영혼을 뒤흔들고 막-주름지게perplexe만들며, 다시 말해서 어떤 문제를 설정하도록 강요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조금’ 시인은 살고 있고, 슬프고 위로 받는다. 마치 어떤 아이가 완성된 케이크의 한 꼭지를 맛보면서 모양이 망가진 케이크를 보며 “아주 조금 맛보았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주황색 양파자루 속엔 어제의 열매들 양파가 익어가는 속도로 너는 울었지” 시인이 대상화시킨 나는 양파 껍질만큼이나 겹겹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울음으로 적셔야 했다. 그런 내가 아프리카에서 위로를 삶을 아주 조금 겪었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삶의 틈새에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 조심스럽게 시인은 아프리카로 넘어간다.
감각 불가능하지만 감각밖에 될 수 없는 것, 그것은 이 ‘아주 조금’ 의 역설이다. 들뢰즈의 전조는 여전히 ‘어두운’ 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 ‘어두운’은 마찬가지의 역설, 즉 ‘아주 조금’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또 마찬가지의 역량이 ‘아주 조금’ 안에서 고양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은밀하고 단호하게 ‘아주 조금’ 감당할 수 없는 사건으로 드러난다.

5. 경험적인 의미에서 망각된 것이란, 그것을 다시금 찾을 때 기억을 통해 다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그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망각에 의해 나와 기억내용이 분리되거나 그 기억내용이 지워졌다.) 그러나 초월론적 기억이 파악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리고 일차적으로 상기 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 기억이 어떤 사태를 본질적으로 포착할 때 그것이 기억에 대해 몸소 망각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이다.

“반은 쑥색이고 반은 곤색” 어제와 오늘은 그런 색이다. 쑥색 혹은 곤색으로 고유한 채색을 바꾸지 않으며 반복한다. 헐벗은 반복이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인 것처럼, 삶은 어떤 원망의 원환아래 허덕인다. 어제와 오늘이 새로운 시간으로 넘어설 수는 없을까? 그 접합점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응시하는 작은 시인-주체의 내면을 붉게 태운다면 삶은 칙칙한 사물에서 홍채 가득한 생으로 변모할 수 있다. 기억안의 망각은 쑥색 혹은 곤색인 지 모호하게 판단하지만 본원적 망각은 기원도 모를 생동력을 추동한다. 몸을 태우는 성홍열이 선홍색으로 표현될 때 이미 어제와 오늘은 어떤 종합안에서 사라진다.


6. 마지막으로 초월론적 기억은 다시 사유를 강요하며 오로지 사유밖에 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서 사유되어야 할 것, 곧 본질을 파악하게 만들고, 바로 여기에 마주침의 대상이 지닌 세 번째 특성이 있다.... 이 존재는 사유의 마지막 역량에 해당할 뿐 아니라 또한 사유 불가능한 것에 해당한다. 감각되어야 할 것에서부터 사유되어야 할 것에 이르기까지 개봉되고 전개되는 것은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것의 폭력이다. ... 이런 폭력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요소에 대면한다. 하지만 이때 이 고유한 요소라는 것은 각각의 인식능력이 자기 자신과 불균등하고 비교불가능하게 되는 사태 자체인 것이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사유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역량, 그것은 유목하는 것이다. 유목은 “아프~”라는 전조를 감당하는 시인-주체가 겪은 성홍열이 스스로 선홍색으로 위장하듯 자신의 위장을 통해서 현재 속에서 수많은 가면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수많은 가면이 사유의 고유한 역량이다. 이 시에서처럼 “아프~”의 전조는 때로는 아프리카로 선홍열로 선홍색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의 동물들로 자신을 변모시키고 있다.
시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그것은 선입견이나 기성의 교훈을 잘 마무리 지어서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사유 불가능한 사태를 마주치게 하고 그 사태 속에서 사유의 참된 역량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언어가 자신의 과잉된 의미를 스스로 펼치게도 하고, 때로는 삶의 가장 무력한 열망을 가장 빛나게 한다. 그 역설감에 의한 자리 바뀜은 우리 삶의 불균등함과 또 차이나는 것의 비교불가능한 본색을 보여준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우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프~”의 어떤 감정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이 경험을 통해 표현될 수 없는 시적 화자의 망설임과 슬픔에 우리는 먹먹하게 젖어든다. 그 슬픔은 이미 우리 일반에겐 너무도 익숙한 슬픔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슬픔은 다시 어떤 문제이며 그 문제인 한 어떤 역설 감으로 표현된다. 성홍열이 선홍색으로 빛나듯, 우리 삶에서 이전에 없었던 비교불가능한 수많은 아프리카의 동물들이 공존하는 어떤 작품을 빌려서 말이다.
전체 1

  • 2019-11-22 12:50
    sleep365님 감사 이번주도 좋은 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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