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코뮌적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모색 / 박지환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6 13:45
조회
2927
코뮌적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모색
『마이너리티 코뮌』 서평


박지환(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 이 글은 2016년 4월 6일 인터넷신문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853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조금은 낯선 학문인 문화인류학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말하며 느끼고 행동하는 바를 참여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을 통해 그 실천의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연구자가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연구를 한다는 뜻에서 문화인류학의 핵심적인 연구방법을 현장연구(fieldwork)라고 부른다. 그리고 현장연구를 통해 문화에 대해 이해한 결과를 담은 기록물은 민족지(ethnography)라고 한다. 문화인류학자는 19세기 말 이후 이와 같은 연구방법과 글쓰기를 통해 사라져 가는 원주민의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존 매체에는 좀처럼 반영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마이너리티 코뮌: 동아시아 이방인이 듣고 쓰는 마을의 시공간』의 저자는 문화인류학 전공자가 아니며 이 책에 수록한 글을 “잡문”이라고 스스로 낮춰 부르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소수자들이 전개하는 다양한 실천들을 참여관찰을 통해 기록한 민족지, 특히 여러 현장들 간의 결합과 엇갈림을 다룬 다현장 민족지(multi-sited ethnography)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자는 일본의 반전, 반빈곤 집회, 야숙자(野宿者)-이 책에서는 홈리스의 주거선택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의 텐트촌, 핵발전과 헤이트 스페치에 대항하는 데모현장에서부터 한국의 노동자 투쟁의 현장 및 경제적, 군사적 개발에 저항하는 마을들, 나아가 미국의 반인종주의 집회까지 직접 방문하고 참여하며 이 공간들 사이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기록하지 않으면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잊혀 버리기 쉬운, “소수자들”이 산출하는 “거리의 지식과 코뮌의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마이너리티 코뮌』은 온전히 민족지적(ethnographic)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주제 면에서 말하자면, 『마이너리티 코뮌』은 한국, 일본, 미국의 마을과 거리에서 생산되는 코뮌적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책이다. 부제에서 “마을의 시공간”이라는 표현을 썼으면서도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 있는 “코뮌”이란 표현을 주제목에 사용한 것은 저자가 만난 공간들의 내적 다양성으로부터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을” 혹은 “공동체”라는 언어는 부지불식중에 물리적 경계의 제한 혹은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내포한다. 이에 대비해, 저자는 소수자들이 생산하는 공간들을 “코뮌”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그런 공간들이 갖는 힘, 그리고 그런 공간들 사이의 연계에서 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저자가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면서 경험한 코뮌들이 각각 “이곳”으로서의 독특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저곳”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는 인재(人災)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겹쳐지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맥락에서 미국의 아프리카계 청년에 대한 폭력과 연결된다. 한편, 저자는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연대의 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사고와 목소리를 발견한다.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청년들의 모임이나 일본 시민들이 수상관저 앞에서 연 탈원전 집회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들의 언설과 발화에 담긴 국가주의적 한계나 민족주의적 정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즉, 『마이너리티 코뮌』의 저자는 단순히 코뮌들이 갖는 집합적 힘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코뮌 내부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엇갈림 속에서, 코뮌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과 이질성 가운데, 그 공간들이 갖는 창조적 가능성들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 저자가 일본유학을 하면서 경험한 현장의 실천들을 인터넷 매체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마이너리티 코뮌』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가장 자세하게 기록된 코뮌의 모습은 아무래도 일본의 그것일 수밖에 없다. 2010년까지의 기록을 담은 책의 1장(다시, 코뮌을 듣다)은 일본의 야숙자, 빈곤청년, 대학생, 시민들이 공원, 상점가, 기숙사 등의 공간들을 공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행한 실천들을 기술하고 있다. 2장(파국에서 시작되는 코뮌)과 3장(거리로 나온 소수자들)은 야숙자, 빈곤청년의 활동은 물론 미군기지 이전을 요구하는 오키나와주민의 실천 등을 기술하면서도, 주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탈핵 집회의 양상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4장과 에필로그는 한국의 노동현장, 미국의 반인종주의 집회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2013년 이후 재일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빈번해지고 ‘특정비밀보호법’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등 보수화되어 가는 일본사회의 모습과 이에 대항하는 실천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마이너리티 코뮌』은 2010년대 이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아래로부터 분석하고 있는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현대 일본사회에 대한 민족지라는 맥락에서 『마이너리티 코뮌』을 읽을 때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일본시민들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보여줬던 정치적 가능성이 2013년을 경계로 어떻게/왜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매우 보수적인 정권의 탄생으로 귀결되고, 나아가 ‘재일조선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일명 재특회)과 같은 인종주의적 운동에 의해 약화되고 말았는가이다. 1960년의 안보투쟁 이후 처음으로 십만여 명의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를 외쳤으나 일본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가동을 추진 중이며, 젊은 세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입법에 저항해도 의회는 법안을 통과시켜 버린다. 이것은 저자도 불편하다고 느꼈던 일본 데모의 한계-“길과 호흡하면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교통질서를 지키는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데모를 하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아니면 “연대의 쾌락”에 기반한 코뮌적 정치는 정책을 결정하고 정권을 창출하는 것과 같은 좁은 의미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혹은 코뮌적 정치가 협의의 정치에까지 연결될 방법은 없는가?, 아니면 코뮌들의 정치는 그런 것을 지향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등등의 의문이 생긴다.

『마이너리티 코뮌』을 읽으며 드는 이런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소수자들이 만들어가는 시공간에 내포된 가능성을, 그 속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관계들이 산출하는 힘을 믿고 싶다. 이런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마이너리티 코뮌』은 상상력을 자극할 많은 이야기와 그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는 책으로 다가갈 것이다. 끝으로 나의 이 “잡문”이 『마이너리티 코뮌』의 저자, 그리고 코뮌이 갖고 있는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 여러 독자들이 충돌하면서도 결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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