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대테러전쟁과 국가 권력의 야욕 / 이도훈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1:35
조회
2406
대테러전쟁과 국가 권력의 야욕
다시 쓰는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역자 후기


이도훈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옮긴이)


솔로몬 휴즈의 『대테러전쟁 주식회사』는 테러방지법안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시점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지난 2월 말, 테러방지법이 국회에 직권상정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발언을 시작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국회에 쏠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소 야대의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의 가결을 막아낼 제도적 방법은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과 영국이 벌인 대테러전쟁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시기적인 부분을 고려해봤을 때, 이 책은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사회 질서가 대테러전쟁에 의해 새롭게 조직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9/11 사태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대테러전쟁이 서구의 국제적인 지배력 강화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자국 시민들의 자유를 희생해가면서 영미가 내세운 국토 안보라는 거대한 전략 기획은 사실상 민간 기업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대테러전쟁을 움직인 것은 관료와 기업가가 결탁해서 만들어낸 안보산업복합체였다. 때문에 휴즈는 이 전쟁이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증대된 국가 권력이, 사영화론자들의 축소 국가와 뒤섞여 있는 기묘하고 새로운 잡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대테러전쟁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단계별로 따르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대테러전쟁을 둘러싼 관료와 사기업의 결탁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세부적으로는 수용시설의 사영화, 군사기지의 사영화, 미래 전략 급유기 사업, 국제적인 군사 개입을 통한 국가건설, 대테러전쟁에서의 민간 용병 투입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어서, 이 책의 후반부는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감시 경향과 통제 경향이 날로 강화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의 비전이 사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언론을 통한 선전활동, 사설 첩보 요원을 통한 정치 공작, 민간 안보 업체가 불법적으로 자행한 감금, 고문, 범죄를 비롯해 최첨단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정보 수집 활동 및 감시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대테러전쟁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것을 해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그것이 탐욕, 기만, 위선, 부정부패, 고문, 폭력 등으로 얼룩져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대테러전쟁은 냉전 이후의 적이 사라진 국제 정치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악의적인 전략이면서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수익을 얻기 위한 관료들과 경제인들의 전략적 공모의 결과물이다. 이 전략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주역들은 정치인, 관료, 기업가들 그리고 이러한 엘리트들에게 고용되거나 매수된 단체, 집단, 조직, 그리고 용병, 퇴역 군인, 사설 첩보 요원 등이다. 프레임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는 이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화된 논리를 내면화한 사람들인 동시에 국가에 봉사하는 사람들, 즉 국가의 행위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솔로몬 휴즈의 이 책은 대테러전쟁에 봉사하는 국가 행위자들이 테러를 기회 삼아 얻으려는 이득이 무엇인지, 그들의 행위를 뒷받침하는 정당성은 어떻게 획득되는지, 또한 대테러전쟁의 최종 심급으로서의 국가는 어떻게 그 스스로가 추구하는 이득과 정당성을 획득하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대답하면서, 저자는 대테러전쟁이 국가 권력의 존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폭로의 내러티브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러한 내러티브 전략은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솔로몬 휴즈는 대테러전쟁이라는 담론에 속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추출하고 그 요소들의 연결 고리를 추적해나가는 방식 속에서 극적인 긴장감을 도출해 낸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성과이다. 다만, 그가 수집하고 발견한 항목들은 특정 사회적 현상을 둘러싼 해석적 논쟁보다는 서사적 흥미를 자극하고 그것을 소진하는데 봉사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9/11 이후의 테러의 기원, 성격, 주체, 대상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마이클 웰치처럼 도덕 공황론 혹은 희생제의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테러를 둘러싼 여러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대테러전쟁에서 나타난 논리를 동시대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비판적인 독해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의 능동적 읽기는 곧 대테러전쟁의 네트워크를 넘어서 그 모든 관계망들을 포함하는 최종 심급으로서의 국가에 대해 고찰을 요구한다. 대테러전쟁의 최종 심급이 국가인 이유는 이미 솔로몬 휴즈가 제시한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국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거니와 대테러전쟁의 주역들이 대부분 국가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대테러전쟁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자본과 폭력을 정당하게 독점하여 무법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대테러전쟁과 국가 : 자본의 축적과 물리적 폭력의 독점

대테러전쟁은 국가의 힘이 조직적으로 비대해지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다. 첫째, 대테러전쟁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목적을 도덕적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는 모순적인 전쟁이다. 9/11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고 이들을 공공의 적으로 돌림으로써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솔로몬 휴즈가 말하듯이, 대테러전쟁은 단순히 테러리스트들을 겨냥했다기보다는 미국의 군사적인 지배력을 전면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전략 기획이었다. 미국은 테러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척결한다는 도덕적 명분을 바탕으로, 일상에 만연한 테러의 공포로부터 전 세계를 구출해 항구적인 평화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이들의 전략에는 전쟁과 평화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대테러전쟁의 행위자 중 하나는 민간 계약업체이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중적인 공포 분위기를 이용해왔던 민간 기업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과거의 적을 테러리스트라는 새로운 적으로 교체했다. 이렇게 태어난 안보산업복합체는 국가의 도덕적 명분에 뒤따르는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기 때문에 국가가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였다. 결국, 대테러전쟁이 명분 없는 전쟁인 것은 이 전쟁의 중심에 있는 윤리적 공백이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안전판과 같았기 때문이다.

둘째, 테러와 대테러전쟁의 기묘한 역학 관계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 이미 냉전 시절부터 테러리즘의 배후에는 미소 양국의 자금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미국과 소련은 자국에 유리한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지형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의 무장단체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왔다. 한편, 이와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솔로몬 휴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동안 서구 열강이 개발도상국들의 국가건설을 인도주의적으로 지원했고, 이 흐름이 9/11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개입에서 미국의 국제적 권위를 세우겠다는 전략으로 변형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 즉 냉전 시절부터 테러를 지원하거나 역으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명목의 자금들은 서구 열강의 지배력 강화에 봉사했다. 민간 기업은 테러를 지원하는 자금에 편승해 사업을 확장해왔다. 솔로몬 휴즈가 보고하고 있듯이, 이미 영국과 미국의 민간 업체들은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적인 사영화론에 힘입어 수용시설, 교정시설, 군사기지 구축, 공중수송 미래전략 급유계획을 비롯해 이라크에서의 재건 사업, 용병 사업, 안보 계약 등을 따내기 위해 로비를 벌인 끝에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바 있다. 테러와 대테러전쟁라는 새로운 시장을 통해서 기업과 국가는 자본을 축적 및 독점해왔던 것이다.

셋째, 대테러전쟁은 한 사회의 지배적 질서 체제를 감시에서 통제로 변형시킨다. 솔로몬 휴즈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대테러전쟁으로 새로운 종류의 정보기관의 외주업체들의 등장을 서술하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은 은밀하면서도 부도덕한 업무 수행을 민간 업체에 떠넘김으로써 만일에 불거질 수 있는 도덕적 책임 소재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국가 정보기관의 업무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공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된 사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은 주민등록제, 신분확인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개발하는 동시에 디지털 정보 수집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가 정치적 불온세력이라고 간주한 자들을 감시 및 통제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 정치적 불온세력의 범주가 무한정하다는 것이다. 테러의 발본색원이라는 대의적 명분하에서 모든 대중은 잠재적 사회악으로 분류되어 자유, 안전, 인권, 시민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에의 희생을 강제 당한다. 이러한 감시와 통제에의 순응을 강제하는 힘에 의해서 대중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국가에 구속된다. 결국 대테러전쟁은 대중을 통치하고 길들이기 위한 통치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테러전쟁은 국가가 정당하게 폭력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전략적 계획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테러전쟁은 공포정치를 조장하고 선동하면서 테러리스트의 척결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기 위해 정치인, 각료, 기업인들이 결탁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여기서 기업은 시장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국가는 권력을 독점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지배조직”이라고 한 말을 상기해봤을 때, 대테러전쟁은 정치인, 고위 관료, 그리고 민간 기업가들과 같은 국가 행위자들이 정당하게 자본과 권력을 축적하고 독점하는 최상의 수단이다. 때문에 우리는 대테러전쟁의 최종 심급에는 국가가 있으며, 그 국가는 폭력의 정당한 독점을 위해 대테러전쟁을 새롭게 발명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도 대테러전쟁의 전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솔로몬 휴즈가 이 책의 말미에서 정리하고 있듯이, 대테러전쟁은 ‘야만인’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야만인’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소수자-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노동자-이다. 이들에 대한 대중적 공포, 분노, 혐오, 증오의 정서는 차원은 다르지만 국가가 ‘야만인’에 대해 갖는 위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변질되어 무고한 시민을 불온세력, 종북좌파, 테러리스트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공포의 시대는 지금이다. 이미 사회적 혐오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 정보기관, 보수 단체가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과 그에 대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물론, 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한국 사회가 대테러전쟁의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 단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자본력과 무력을 앞세웠던 영국과 미국과 달리, 한국은 선전선동의 전략과 제도적 법안의 마련에 집중하면서 대테러전쟁의 예비적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테러방지법안은 통과되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1호 법안 중 하나로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은 한국이 테러에 대응하는 전략들이 제도적인 수준에서부터 차근히 준비 중에 있음을 뜻한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그래서 지나치게 큰 희생이 따르는 대테러전쟁의 논리와 질서가 이미 한국의 사회 질서에 스며들어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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