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일본, 영상, 미국_4장

작성자
keenist
작성일
2019-01-19 11:28
조회
739
4. 내전의 폭력과 국민주의 ―「박하사탕」(1999)을 해석한다


광주항쟁과 한국현대사의 트라우마를 그린 한국영화

「박하사탕」은 주인공 김영호의 자살 장면을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시작한다. 관객은 김영호의 자살의 순간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의 죽음을 저지할 수 없다. 관객은 철교 아래에서 김영호를 바라보는 동우회 선배의 얼굴을 요구받는다. 관객은 김영호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부채의식과 대체 그가 “왜 죽어버렸는가”라는 물음을 떠안은 채 남겨지고, 영화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을 통해서 김영호의 삶을 되감기한다.

― 일상생활의 자동차화

되감기 숏에 의해서 7개의 시기(1999년 봄/동창회 3일전/1994년 여름/1987년 봄/1984년 가을/1980년 5월/1979년 가을)가 연결된다. 각각의 시기는 고유한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각 시기의 세부묘사는 소비자본주의의 전개가 얼마나 깊게 한국인의 존재방식을 변화시켰는지 주지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특징은 ‘일상생활의 자동차화’다. 중산계급의 성공 기준은 자동차 소유 여부였고 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시차를 두고 진행되었을 뿐, 미국도 유럽도 한국도 중국도 다른 장소에 이식 가능한 소비자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박하사탕」은 ‘이국’ 영화라는 거리감각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관객은 쌍-형상화(서양과 서양에 의해 응시된 동양)의 방식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없다.

― 인격적 통합성의 분열

광주의 반란을 토벌하는 것은 국민공동체를 향한 봉공이며 공안경찰관으로서 반체제 운동가를 고문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이며 기업가로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받쳐주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헌이다. 그럼에도 김영호는 이 체제에 완전하게 순응할 수 없었다. 「박하사탕」의 중요한 전략은 바로 이 지점이다. 광주에서 여학생을 오인 사격하여 죽인 일은, 체제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1980년 5월의 기억을 소거하고자 한 노력에도 자기에 대한 배신과 성실함 결여라는 증후로 드러난다. 김영호는 자신의 인격적 통합에 실패한다.
첫사랑 순임과 아내 사이에서 동요하는 김영호의 감정은 자기에 대한 배반이다. 영화는 무구함을 시사하는 이상화된 순임과 다른 한편에 구체적인 일상성을 상징하는 아내라는 두 여성을 배치하고 순임을 거절하기 위해 선택된 아내와의 세부적 생활묘사를 통해 김영호의 인격적 통합성의 분열이 알레고리적으로 그려진다. 박하사탕은 김영호가 순임과의 약속을 지시하는 은유고 그가 체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순임을 배반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김영호가 광주의 여학생을 죽인 숏에서 순임과 여학생의 영상이 겹쳐져 등장하는 것은, 그가 죽인 것이 어느 특정 개인인 여학생이나 첫사랑 순임을 넘어, 개인이 자신을 바쳐야 하는 공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그 정통성을 획득하고 있는 한국군이 자신의 동포를 죽인 것은 인격적 통합성이 결핍된 김영호로 대표되는 살해한 쪽과 살해당한 여학생으로 대표되는 살해된 쪽으로 국민공동체가 분열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있을 수 있는 역사

이런 국민주의적인 해석은 관객들의 강한 자책감을 환기하면서 개인의 기억을 국민사의 문맥에서 상기시키고 체제의 국민사에서 배제되어 왔던 저항하는 자의 역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해석에는 분열되어 통합성을 잃은 국민 분열된 통합성을 회복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설정되어있기 때문에 영화는 어떤 방법으로 국민의 통합성을 회복할 것인가의 발상에서 수용될 것이다. 「박하사탕」은 관객들로 하여금, 체제가 부여한 것과는 다른 정치적 정통성의 근거사, ‘있을 수 있는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국민주의에 회수되지 않는 독법은 가능한가

― 내전으로서의 적

그러나 김영호가 가담했던 체제를 한국의 국민공동체가 아니라, 고도성장경제를 표방한 근대화의 논리가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군과 경찰을 구별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국가체제는 19세기 이래의 국민국가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군사력을 이용해 동포를 표적으로 한 경찰 행위가 가능한, 군사력과 경찰력의 기본적인 차이가 소거된 이 새로운 사태는 군사적 폭력의 대상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내전에서의 적’으로 규정되었음을 드러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만들어 갈 때, 군사력과 경찰력의 기본적인 차이가 처음부터 휴지 상태였음을 상기해보자. 한국과 일본의 국민주의에서 볼 때, 군사력과 경찰력의 구별은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소거되어버렸다.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를 깊이 상처 입히고 그를 자살로까지 몰고 간 자각, 자신이 내전의 논리에 가담하고 있다는 이 자각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와 공범해서 키워진 국민주의 전체에 들어맞는 것이 아닐까. 원리적으로 경찰력의 폭력과 군사력의 폭력을 구별할 수 없는 내전의 폭력논리가 국민주의에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 자위대냐 타위대냐

1950년, 미국 군대가 일본에 직접 주둔하면서 연합국최고사령부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명령으로 자위대의 전진인 경찰예비대가 국민군의 지위를 받으며 만들어졌고 1954년에 ‘자위대’로 그 이름이 바뀌면서 육군, 해군, 공군의 삼군체제를 완비하게 되었다. 경찰예비대는 한국전쟁을 위해 한반도에 그 병력을 나누어야 했던 미국이 인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고안한 '경찰-군대'였다. 그 임무는 미 주둔군과 이를 지탱하는 하부구조를 잠재적인 반란이나 방해에서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 잠재적인 적인 미군 기지나 미군 병참설비를 습격하는 일본인 혹은 일본인 내 반미․반체제 세력이었다.
미국 점령군은 일본 국가와 일본 국민의 전쟁책임이나 식민통치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간과함으로써, 일본의 보수・자본가층과 전전부터 연관되어 있던 관료제를 점령군 측으로 끌어당기는데 성공했다. 미군 병사가 표면에 나서서 원주민에게 군사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피하기 위한 쿠션 역할을 자위대가 맡았다. 1990년대, 자위대에게 유사법제로 통칭된 일련의 입법을 통해서 고전적인 국민군의 지위를 복권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2000년대가 되어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그때까지 불문율이었던 미국에 의한 일본의 군사력관리가 명문화되었고, 문자 그대로 자위대의 식민지군으로서의 성격이 제도화되었다. 현재 아베 정권 하에서 자위대를 국민군으로 승격시키려는 움직임은, 일본 식민지화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가 조직화된 시기에 일본의 국민교육이 우경화되었고, 전후 일본의 국민주의 논리가 미국의 군사지배를 정비하는 단계에서 추진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제국을 상실한 후 일본의 국민주의는 미국의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이다. 자위대는 미국을 위한, 일본에 의한 '타위대'인 셈이다. 일본 국민-민족주의와 미국의 헤게모니는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이 국민주의는 미국의 헤게모니의 일부이며 이 헤게모니 또한 일본 국민주의에 의존해 있다.

― 슈퍼국가성과 국민적 인간주의

근대의 정치는 민족이나 인종의 동일성을 국가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는 명목을 내세워, 국내 계급투쟁을 국제 세계의 전쟁으로 해소하여 국민국가 간의 질서를 유지해왔다. 주권을 독점한 국민국가의 병존으로 상상되어 온 국제사회의 질서 그 자체는 20세기가 된 이후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는 미국발 ‘글로벌리제이션’이다. 고전적 국민국가관에서 보면, 국가주권은 시장의 일방향적인 충격에 대해서 국민의 복지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되어 왔지만, 이제 주권은 급속도로 계급투쟁이나 국가이익의 경합을 내포하지 않는 새로운 ‘슈퍼국가성’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점차 주권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국민국가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민 사회의 환상과 국민국가의 대결로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글로벌제이션에 대한 비판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자본이나 이민에 반대해 정주해 있는 국민을 옹호하는 등, 완벽하게 어긋난 사태로 전위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슈퍼국가성은 인간성을 국적을 가진자, 즉 인간성을 국민이나 민족으로 서서히 환원할 수 있는 자로 보는 ‘국민적 인간주의’를 통해서 폭력적으로 기능한다. 동포가 인간이고 외국인은 비인간이라는 국민적 인간주의가 국가, 국가의 관리에 귀속한 자(인간)와 귀속하지 않은 자(비인간)로 변해가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란 국가에 귀속하지 않은 비인간의 가장 단적인 표현이고, 테러와의 전쟁이란 새로운 국민적 인간주의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슈퍼국가성은 개개의 국민국가와 공범 관계를 맺으면서, 국민국가의 주권을 찬탈해간다.

이러한 공범의 결과로, 군사행동이 경찰화되어 간 것이며, 여기서는 말할 것도 없이, 경찰 행위의 대상은 적국이 아니라, 무법자 즉 법을 침범한 자들이다. 김영호는 국민군의 군인이면서도 무법자를 탄압하기 위해 동원되었고, 비무장 상태의 어린 여학생을 죽였다. 「박하사탕」은 이중 폭력의 구별 불가능성의 최후를 한 남자의 자살로 풀어내며 제시한다. 국민주의 감정에 촉구되어 내전의 폭력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광주시민・한국민을 넘어서, 슈퍼국가성 아래서 몸부림치는 우리 대부분의 숙명이 되어 있다. 「박하사탕」이 제시한 내전의 논리로 찢어진 한국의 역사는 오늘날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고, 우리는 그 역사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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