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일본, 영상, 미국 1장 영상. 젠더. 연애의 생권력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1-05 01:36
조회
657
1장 영상·젠더·연애의 생권력 - etranger

식민지지배의 알레고리로서의 연애영화

사카이 나오키는 외국연애를 다룬 영화에서 국제관계의 알레고리를 보았다. 이런 영화들에서 나라와 민족 간의 다양한 갈등은 남녀관계를 통해 해소되고 화합에 이르는 전형을 지니고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 비유되는 성관계 즉 지배자 = 남성 대 피지배자 = 여성, 지배자 = 남성 대 피지배자 = 식민적 남성 구도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지배의 초상학’이라 부를 만하다. 그가 영상에 주목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과거에는 ‘국민성의 감정’이라는 감성-미학의 통일이 소설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20세기에는 그 자리를 영상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국민으로의 귀속은 민족, 인종의 동일성을 함께 끌고 가며 개인은 제도화된 역사에 묶이게 된다. 사카이 나오키는 이러한 국민주의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지배하기 위해 공상을 조작하는 식민주의 욕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국민주의는 외세로부터 국민을 해방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전통을 추구하면서도, 국제적인 무대에서는 힘겨루기를 통해 ‘이성애적 남성성’ 과시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상된 시나리오

식민주의 지배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요소는 강간과 연애다. 강간이 피지배자의 의지를 폭력적으로 침해한 것임에 비해서, 연애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동의를 전제하고 있다. 피지배자가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승인할 때 식민지 상황은 정상화되지만, 강간의 지속적인 발생은 종속을 제도화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이런 실패 속에서 식민지배자는 거센 저항에 부딪힌다.(ex. 서방국가를 향한 자살테러 공격) 따라서 지배관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피정복자의 자유를 일부분 인정하고, 지배 관계 승인을 위해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식민지 연애상황을 다룬 영상 작품에서도 그 이야기가 내재하는 ‘구성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알레고리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연애 이야기는 식민지 피지배자의 입장을 상징하는 여성이 남성 = 지배자에 종속한다는 시나리오를 확보하고자 하지만, 여성의 종속은 그녀 의지의 결과로 일어나야 한다.

연애극을 이용해서 권력관계의 수립을 묘사할 수 있듯, 전쟁과 폭력적인 강제의 비유를 이용해서 권력관계 수립에 실패한 사태를 그려 내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국제연애의 영상은 역사가 폭력적인 강제로 넘쳐흐르는 것을 묘사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예컨대 ‘난징대학살’은 시민들이 일본군(침략자)을 거부해 학살당한 사건이지만, 3년 뒤 만들어진 영화 ‘지나의 밤’에서는 그 참극이 연애로 희석되어, 일본점령군 하의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지로 배급되었다. 한편 사카이 나오키는 식민지 지배자 혹은 피지배자의 입장성도 자명하지 않다고 보았다. 종주국의 국적을 가졌다 해도, 계급과 신분이 비천한 사람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민지에서도 우월성을 과시할 수 없었고,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한 인종적·민족적 동일성을 갈구했다. ‘지나의 밤’이 일본 본토에서도 상영되었던 이유다.


등장인물의 상호배치

연애의 영상은 식민지 특유의 정치역학을 일반성의 차원으로 뒤바꿔버린다. 지역적 맥락을 지우고 인종간의 위계를 일반적인 범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배우 제니퍼 존스의 경우 백인 여성임에도 전형적인 동아시아인 화장을 하고 혼혈 연기를 했다. 배역이 혼혈 인물이어도 육체적인 차원에서 이인종은 기피 대상이기 때문이다. 백인 특파원과 사랑을 나누는 역할도 ‘백인’ 여배우가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인종주의적 관습이 강제력을 잃고 나서, 백인 남자배우와 비백인 여배우가 사랑을 나누는 작품도 나왔지만, 시청자들에게 성적인 기호로 환원될 따름이었다.

백인과 비백인 간의 연애를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지나의 밤’도 마찬가지로 이민족 간의 연애라는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반항적인 소녀 꾸이란이 착한 일본 해군 장교에게 구출돼 사랑에 빠지고, 저항하는 중국인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설득하는 이야기다.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셜리 야마구치인데, 그녀는 리샹란이라는 중국적 예명을 쓴 채 선전영화에 참여해왔다. 그래서 팬들은 ‘중국인’이 맡은 중국 여성 배역이 일본 군인과 ‘연애’ 하는 장면을 통해 식민지적 공상을 만들 수 있었다. 리샹란의 예에서 드러나듯, ‘개인’은 분할 불가능하지만, 스타라는 위계의 존재는 개인이 실은 분할가능하며, 자신이 맡은 배역에서뿐만 아니라 배우 개인으로부터도 차이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종군위안부제도에서 전후 아시아 미군 기지 주변의 매춘으로

사카이 나오키는 일본의 종군위안부제도와 전후 미군 기지촌을 둘러싼 매춘 공간에서 식민체제의 연속성을 보았다. 미국이 일본군의 다양한 전략을 계승했을 뿐더러, 군사적인 지배관계에서 ‘연애’라는 합의의 알레고리가 맺어졌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는 강간을 암시한 ‘폭력의 예감’ 때문에, 지배자는 반항으로 인한 불안 앞에서 서로 연애의 형식으로 지배자, 피지배자 연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미군과 아시아의 성노동자들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국민적 동일성 속에서 국민·민족·인종으로 표상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성들이 외화를 벌어오고 지배 군인들을 접대함으로서 ‘애국자’로 상찬 받으면서도, 국민주의의 이성애적 남성성은 그녀들을 수치심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양갈보, 양공주라는 표현과 본문에서 인용된 마루야마 마사오의 ‘팡팡들’이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가며

식민주의가 야기한 조건은 명백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간 식민주주의의 은혜를 입어 온 지배국들에선, 과거의 이야기와 감정으로 회귀하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북한의 여성 납치 문제가 한국인에 대한 적대심으로까지 심화되었다. 왜 그 정도의 반응이 일어난 걸까? 사카이 나오키는 이런 현상에서 한국인을 향한 우월의식이 일본인이라는 동일성을 만드는 데 유효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즉 한국인이라는 동일성은 일본인의 동일성을 쌍-형상적으로 떠받치는 대조항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종군위안부문제의 거절 또한 상징적인 회귀운동으로 여기며, 이제는 성관계가 표상되는 방식과 국제관계 간의 상관성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탈식민지화를 위한 전략을 다시 짜낼 필요가 있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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