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사과: 바타유편

작성자
yoonsoi
작성일
2018-05-18 20:43
조회
1255
<세잔의 사과> 책에서 바타유 편 발제


바타유의 에로티즘, 세잔의 초기 누드화
'탈승화의 미학', '이질성의 철학'이라고도 불리는 바타유의 사상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미술 행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세잔을 우리는 흔히 현대미술의 아버지, 현대미술의 시초라고 부르는데, 그의 가려져있는 초기 누드화 작품을 바타유의 개념으로 읽어내보는 작업을 통해 세잔을 보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바타유의 이러한 관점은 현대미술의 화두이다.
이 논의는 현대미술의 지향과 세잔의 초기작에 대한 재조명, 그리고 바타유라는 세가지 관심이 만나는 지점으로 모인다.



탈승화의 미학
바타유는 철학이나 예술이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식 '승화'의 과정이 아니라, 파괴 본능과 억압된 성적 충동을 발산하는 '탈승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세잔의 초기 회화에 나타난 여성들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세잔이 여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해석(이 책의 앞선 크리스테바, 프로이트의 해석에 의하면)이 있으며,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여성의 표현이 어색하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운 굴곡의 선이 드러나는 회화 방식이 아닌 통제되지 않는 격정과 번뇌가 폭발하듯, 근육질의 남자같은 모습을 하고 있거나, 고릴라 같이 힘이 넘치는 여성상으로 그려져있다. 세잔은 왜 사랑의 대상인 여성 신체를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관계없이 표현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조르주 바타유이다. 바타유는 아름다움이 '에로티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더렵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로티즘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얼굴, 즉 아름다운 그 얼굴을 모독하는 일이다. 고뇌가 크면 클수록 한계 초월의 느낌은 그만큼 커지며, 거기에 따르는 격정의 환희도 그만큼 커진다. 추한 여자는 더 이상 더럽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에로티즘의 본질이 '더럽히기'인 한 에로티즘에서는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 아름다움이 크면 클수록 더럽힘의 의미는 그만큼 커진다."

우리의 본성에 이런 악의가 있다면 정말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타유의 독설이 어느 정도 인정이 되는 면이 있기에 현대 이론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재조명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물의 철학자' 혹은 '과잉과 위반의 철학자'로 불리는 바타유를,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지적인 작가'인 세잔과 연결하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잔의 뒤에 숨겨진 얼굴을 조명하면서 드러나는 미술의 역설, 즉 세잔의 작품은 중 후반기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기작에서 의외의 양상이 드러나곤 하는데 그것은 미술의 승화가 아닌 인간 본능의 표출이란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세잔의 초기작에서 보이는 직접성의 화법(이를테면 길들여지지 않은 욕망의 분출과 같은)은 바타유의 화법과 통하며, 바타유의 화법은 애초부터 미화나 예술적 승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의 미학은 탈승화의 미학으로 보여진다.

모더니즘 시기에 미술계가 주목한 세잔은 미적 절제가 능숙해진 완숙한 세잔이지, 성적인 욕망과 본능을 나이브하게 표출하고 거침없이 우울을 노출하는 세잔이 아니었다. 또 다른 세잔의 얼굴은 그렇게 묻혀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미학은 그의 감춰진 얼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인다. 세잔의 감춰진 얼굴이 드러내는 본능과 욕망(세잔의 누드에서 보이는 성과 폭력)은 특히 바타유가 제시하는 에로티즘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보는 것이 두렵다': <성 안토니의 유혹> 연작
세잔의 내면의 성적 환상과 욕망이 표출된 대표적인 그림이 초기 작 <성 안토니의 유혹>연작이다. 사실 성 안토니는 성적 유혹뿐 아니라 다른 무서운 유혹과 협박에 시달렸는데, 그 중에서도 세잔은 특별히 성의 유혹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여성의 벗은 몸을 '본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런 경험이었던 것이다. '본다'는 문제와 '유혹'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본다'는 것에서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본다'는 것에서 '눈' 이야기로
'근대화 시각'이란 르네상스 이후 고전적 시각틀에서 19세기 이후 모던 아트로의 이행을 함축하는 말이다. 객관적이고 관념적인 시각적 진리를 추구하는 고전주의 미술에서 벗어나 개별 주체가 경험하는 눈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근현대적 시각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자율성에 근거한 시각중심주의를 의미한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19세기 전반, 과학과 생리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신체 기관인 '눈'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실험이 이어졌다. 괴테의 <색채론>은 실증주의적 사고를 기반하면서 모던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중요한 미술서로 색채란, 외부에서 설정되어 수동적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눈에서 인지되는 빛과 대상의 색채가 조합되어 나오는 생리색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의 근본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것은 미술과 연관되는 추상적이고 미학적인 사고가 실은 인간의 신체 기관인 '눈'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바타유만큼 눈 자체에 집착적으로 파고든 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눈은 형이상학적인 '시각'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인체의 '눈'이다. 그의 소설 <눈 이야기>는 그의 삶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 매독 환자이자 장님이었던 아버지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기도한 어머니 아래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그가 장님인 아버지로 인해 눈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짐작할 만 하다. 눈이 없는 부친으로 인해 눈에 패티시적으로 집착하고, 경건하지 못한 가정 배경이 그로 하여금 가톨릭 신부를 꿈꾸게 했다. 이후 1920년대에는 종교에 대한 극도의 집착이 육체적 폭력과 공포에 대한 관심으로 전복된다. <눈 이야기>는 기본 줄기가 에로티즘과 죽음의 이야기이다.

바타우는 위반과 과잉의 주도자로 여성을 내세운다. 이들이 이끄는 엑스터시의 세계에서 순수와 신성은 폭력적으로 위반된다. 그러니까 순수함과 신성이 욕망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욕망은 순수와 신성을 더럽히고 끌어내려 죽음의 희열로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희생과 가해 사이의 분리가 확실하지 않고, 고통과 쾌감 사이의 차이가 흐려진다. <눈 이야기>에서 고통과 쾌감은 그 구분이 불가능하다. 금기의 허위가 하나씩 벗겨지면 또 다른 금기가 제시된다. 그리고 이 금기는 다시 위반된다. 여기에는 자신을 초월하는 니체적 사유가 개입되어 있다.

현대 미술이론의 방법론은 작가의 전기적 내용이나 작품의 내러티브보다는 작품의 근본 구조에 더 관심을 둔다. 회화에서 표현의 문제는 작가의 심리 구조가 미적 표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세잔의 초기작은 무절제하고 나이브하고 어색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여성에 대한 두려움, 에로틱한 환상, 그리고 극도의 폭력성과 맞물려있다.






세잔의 에로틱한 환상, 동물적 본능의 표출과 폭력: <모던 올랭피아>
이 그림에서 세잔은 다듬어지지 않고 나이브한 성적 욕망을 폭력적으로 표출한다. 그가 들라크루아를 존경했기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다른 화가들보다 강인한 여성 신체를 그린다.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존경을 바치며 참고했음을 밝히면서도 자직 작품이 갖는 차이를 강조한 <모던 올랭피아>에서도 여성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기 보다는 동물성이 강하게 발현되어 있는 여성이다.

그림의 무대는 여성의 침실이고 여인을 둘러싼 사치스러운 주위 환경이 그녀가 진실로 '모던 여성'임을 나타내고, 작가 자신은 이 젊은 여인을 숭배하면서 오른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남성으로 그려져있다. 자신을 몽상가, 잠재적인 연인, 또는 관음자로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다. 세잔은 다양한 회화적 위장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승화시킨 듯 한데, 그의 경우 욕망은 줄어들 수 없고 거리는 좁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시각에서 일어난다. 폭력이 가해지는 대상은 실제로는 손이 닿지 않는, 오로지 시각적인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세잔의 작품에 보이는 시각적인 폭력은 가까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거리감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근접할 수 없는데 격정이 표출되는 식이다.







에로틱한 사과
보통 세잔에게 사과는 어떤 의마나 내용을 갖는 것이 아니고, 그가 형태를 탐구하는 단순한 모티프라는 식의 해석이 팽배하나 그것은 형식주의 방법론이고, 미술사학자 샤피로에 의하면 세잔의 사과를 그의 에로틱한 관심이 대치된 것으로 본다. 이것은 형식주의 방법론에 대응하는 의미론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결혼의 상징이자 비너스를 상징하는 사과는 서구의 시와 신화 등에서 성적인 환상과 연계되어 왔다. 세잔은 1870년대 초부터 과일 정물화가 부쩍 늘어나는데, 이것은 세잔의 작업에 전반적인 변화가 정물의 대두와 근본적으로 연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 세잔은 카미유 피사로의 영향을 받아, 어둡고 무겁게 표현하던 폭력적인 회화를 점차 밝고 부드러운 색채와 완화된 내용으로 바꾸고자 노력하던 때여싿. 더불어 격정적인 성적 욕망의 표현이 잦아들게 된 것도 세잔이 정물에 몰두하던 때와 유사한 시기이다.

세잔이 사과를 그렸다고 해서 그가 초기에 표출했던 성적 욕망과 폭력을 시각적 기호로 극복, 승화시켰다고 본다면 이는 프로이트와 브르통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미술사 담론은 작품을 다층적이며 심도있게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발전해왔듯 세잔에게서 바타유의 개념이 가져오는 방법론적 확장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바타유의 '이질성의 철학'은 적어도 세잔의 초기 회화와 추기 회화 사이의 단절과 불연속성을 이해하게 한다. 그의 독창적인 주장은 세잔의 초기와 후기의 관계를 도약, 진보로 보는 발전론적 사고관을 벗어나게 해준다. 세잔의 초기 회화가 보여주는 '이질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타유가 제시하는 이질성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타유의 '이질성의 철학'
바타유는 1927년경 '이질적인 물질'에 대한 견구를 발전시켰는데, 전통적인 개념에 저향하는 물질로 심리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질을 의미한다. 바타유는 기존의 서양철학이 이같은 물질적인 것이나 육체적인 것, 비속하고 더러운 것을 무시하고 억압해왔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질적인 물질이 속한 영역을 재조명하고 철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그래서 바타유의 사상을 한마디로 '이질성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고란 동질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의 이중적 모드로 되어 있는데, 그간 서양철학사에서는 전자를 위해 후자가 배제되어왔다고 강조한다. 바타유는 동질적인 한쪽만을 수용하고 이질적인 다른쪽은 배제해온 서구의 사상에 대해 이질적인 영역의 해방을 유도한다. 이는 이질적인 것으로 취급되며 배제된 '타자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질적인 것을 해방시키는 방식에서도 바타유는 프로이트의 '승화'외는 대조되는 '탈승화'를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사회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성적 충동이 승화를 통해 예술이나 과학 등 수준 높은 문화활동으로 전환되며, 이것이 인간의 에고를 형성하고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바타유는 성적 충동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깃은 탈승화를 통해 가능하며, 예술은 승화의 결과가 아니라 파괴적 본능의 발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대 초현실주의를 주창하면서도 주변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바타유. 하지만 왜 현대의 이론가들이 새삼스럽게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가 흥미롭다.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조소의 대상이었던 그의 사상을 넘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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