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연재)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존재론(下)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8:08
조회
699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존재론(下)

김상범


4.

<니체와 정치학>이라는 꼭지에서 나는 '힘'은 일종의 역능으로서 '권력'과 구분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두 종류의 '권력' 개념을 구분함으로써 이러한 이론에 수정을 가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사회를 진정으로 움직이고 구성하는 권력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념으로서 사회적 위치나 표상의 대상으로서의 '권력' 개념이다.

노동-자본의 힘 관계를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사회 자체를 움직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것은 언제나 노동이므로, 노동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이지만, 자본은 사회적 위치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를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권력'이라고 볼 수 있다.

들뢰즈는 이렇게 두 종류의 권력을 구분한다.

"그들은 항상 니체가 근본적으로 비판했던 그 의미에서 그것에 관해 언급했다. 마치 권력이 의지의 최종 목적이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 또 그것의 본질적 동기이기라도 한 듯이. 마치 권력이 의지가 의욕했던 것이기라도 한 듯이...그때 사람들은 권력을 하나의 표상의 대상으로 해석한다....우리가 권력을 표상의 대상으로 만들 때, 우리는 그것을 그것[요소]에 따라 어떤 것이 표상되거나 되지 않는, 재인식되거나 되지 않는 요소에 필연적으로 의존케 한다. 그런데 단지 이미 현행하는 가치들, 인정된 가치들만이 그렇게 재인식의 기준들을 제공한다."(<니체와 철학>,pp.150~153)

"권력의지는 의지가 권력을 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권력은 표상에 의해서 저울질되지 않는다....기원적 요소(권력)는 힘과 힘의 관계를 결정하고 관계 속에서 힘들에게 성질을 부여한다. 조형적 요소인 그것은 그가 결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성질을 부여한다."(<니체와 철학>,p.158)

니체는 실제로 권력을 표상의 대상으로 삼고 권력을 통해 자신을 재인식하게 하려는 이들을 다음과 같은 언어로 비꼬고 있다.

"그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보라, 이 재빠른 원숭이들을! 그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기어오르고 ,그러다가 진흙탕과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들은 모두가 왕좌에 오르려 한다. 마치 행복이 왕좌 위에 앉아 있기라도 하는 듯이 여기는 것, 그것이 그들의 광기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제 1부 §11)

또한 니체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이 사회적 위치와 명성을 가진 '배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적이 있다. <니체와 정치학>에서 인용된 문구를 재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가치를 고안해내는 자들을 중심으로 세계는 돌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회전한다. 그러나 배우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은 군중과 명성이다. 세상의 움직임이란 이런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12)

이처럼 니체의 권력과 '권력의지' 개념은 존재론적 개념이기 이전에 사회적/정치적 개념이다. 이것은 그의 존재론이 곧 사회적/정치적 존재론이라는 것을 뜻한다. 니체에게 있어서 존재론과 사회과학은 분리되지 않는다.

니체가 '철학적' 개념인 '권력의지','강자','약자'등을 무리하게 정치적 영역에 적용했다는 김진석의 비판은 성립하지 않는다.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 했는가> 참조)왜냐하면 니체는 처음부터 '강자'를 육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개념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니체의 '힘','권력','권력의지'의 존재론은 곧 윤리적 존재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월한 힘들과 열등한 힘들의 양적 차이를 극대화하는 긍정의 권력의지를 통해서 우월한 힘으로써의 적극적인 힘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이로써 사회적, 정치적 신체를 구축해야 한다.

5.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판의 공통점은 영원회귀를 '동일성'의 반복으로서의 숙명론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동일성'에 기초한 '순환'으로서의 영원회귀 개념을 비판한다. 이러한 '순환'개념은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순환적 가정이 설명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공존하는 순환들의 차이와 특히 순환 속에서 다른 것의 현존이다."(<니체와 철학>,p.101)

들뢰즈에 의하면 이러한 '순환'으로서의 영원회귀는 '기계론적 영원회귀론'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러한 '기계론적 순환'에서는 양적 차이는 무화되어 최초의 미분화된 상태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들뢰즈에 의하면 영원회귀는 이러한 '동일성'의 회귀가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니체에 따르면, 영원회귀는 전혀 동일자의 사유가 아니라, 종합적 사유, 과학 밖에서 새로운 원리를 요구하는 절대적인 차별자의 사유이다."(<니체와 철학>,p.97)

이러한 영원회귀의 사유는 곧 '선악을 넘어선' 사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니체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잘 드러난다.

"물 위에 다리가 있을 때, 흐름 위에 판자 다리와 난간이 걸쳐져 있을 때. 진실로 그 때 "만물은 유전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바보들까지도 그에게 반박한다.

"뭐라고>" 바보들은 말한다. "만물이 유전하다고? 그러나 다리와 난간이 흐름 위에 걸쳐져 있지 않을까! 흐르는 물 위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잇다. 사물의 모든 가치와, 다리들과 개념들, 모든 '선'과 '악', 이런 것들은 모두 고정되어 있다!"라고.-

(...중략...) 따뜻한 바람은 황소, 그러나 땅을 가는 황소가 아니라-사납게 날뛰는 황소, 그 성난 뿔로 믿음을 부숴버리는 파괴자이다! 그러나 부서진 얼음은-판자 다리를 부숴버린다!

오 형제들이여, 이제 만물은 유전하지 않는가? 모든 난간들과 판자다리들이 물 속에 빠져버리지 않았는가? 누가 아직도 '선'과 '악'에 매달릴 수 잇겠는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12)

절대적이고 고정불변한 진리는 없다. 만물은 유전하고 선과 악은 끊임없아 파괴되고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괴와 창조의 반복, 혹은 다른 말로 하면 영원회귀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위의 인용문에서 "만물은 유전한다"는 생성의 사유와 영원회귀의 사상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들뢰즈는 "순수 생성의 사유가 영원회귀의 기초"(<니체와 철학>,p.100)가 된다고 말한다.

생성은 어떤 실체의 '운동'이 아니다. 니체는 '운동'개념에 대해 작용과 생성 배후의 실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작용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지각에 대한 세계-속으로 번역해주는 것이 <운동>이라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운동시켜지고 있다고 은근히 생각되고 있다.-그때 원자라는 작은 덩어리가 허구되건, 그 추상, 즉 역학적 원자조차가 허구되건 작용을 영위하는 어떤 사물이 변함없이 사고되고 있다.-바꿔말하면 우리는 감관과 언어에 의하여 미혹되어 빠져 있는 습관에서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주관/객관, 행동/행동하는 자, 행동/행동을 영위하는 자, 이러한 것들이 분리되고 있으나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한 증후이자 아무런 실재적인 것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권력의지>§634)

우리는 '순수생성'을 사유해야지, 생성으로부터 분리되고 생성의 배후에 있는 존재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유일한 '존재'는 생성자체의 존재, 생성되고 있는 것의 존재로서 '되돌아 오는 것'이다. 무엇이 되돌아오고 반복되는가? 그것은 <순수생성으로서의 시간>의 종합이다. 이러한 종합으로서의 영원회귀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잘 드러난다.

""보라",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순간을! 이 순간이라는 출입구로부터 하나의 기나긴 영원의 길이 뒤로 뻗쳐있다. 우리의 뒤에는 하나의 영원이 놓여 있다. '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이 길을 달렸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언젠가 행해지고 달려 지나가 버렸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그리고 모든 것이 이미 있었던 것이라면, 난쟁이여, 그대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출입구도-역시 이미 있었던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리고 모든 사물들은 장차 올 모든 것들을 이 순간이 자신에게 끌어당기도록-그리하여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당기도록 서로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이 기나긴 길을-언젠가는 한 번 더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3부 §2)

얼핏 보면 이 글은 '동일성'의 영원회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출입구의 이름이 '순간'이라는 것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의 무한성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언젠가 한 번 행해 졌고, 앞으로도 한 번 행해질 것이다. 이렇게 일어난 일이 '순간'의 뒤쪽으로 난 길을 향해 "달려 지나가" 버림으로써 과거가 구성되고, 일어날 일들이 '순간'의 앞쪽으로 난 길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미래가 구성된다. '순간' 속에는 현재, 과거, 미래가 모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에 의해 사물들이 '서로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들의 종합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은 이미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영원회귀의 의미이다. 들뢰즈의 말대로 영원회귀는 "순간과 현재, 지나간 것, 도래할 것으로서의 자신과의 종합적 관계"(<니체와 철학>,p.100)의 형성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종합과 함께

힘들의 미분적 요소로서의 권력의지가 일종의 매 순간 마다 일종의 미분화된 '잠재성'으로서 기능하게 되며, 이러한 권력의지에 의해 힘들의 양적차이가 생산됨으로써 힘들의 종합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의 반복은 '차이'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의 종합'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기억'을 통해 이루어진다. <니체와 인류학>이라는 꼭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억'에는 생물학적이고 개체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기억은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래의 기억'이고, 이러한 표현 속에는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기억이 현재, 과거, 미래를 종합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6.

이처럼 니체의 가장 중요한 존재론적 개념인 영원회귀와 권력의지는 '종합'과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종합' 때문에 혼돈으로부터 질서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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