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 임상노동자와 ‘임금 없는 삶’의 거리ㅣ김주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9-04 17:03
조회
395
 

임상노동자와 ‘임금 없는 삶’의 거리


김주희 (덕성여대 교수, 『레이디 크레딧』 저자)


눈 밝은 독자라면 최근 번역 출판된 호주의 사회학자 멜린다 쿠퍼와 캐서린 월드비의 신간 『임상노동』(2022, 갈무리)의 이론적 조짐을 진작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일찍이 2008년에 출간된 멜린다 쿠퍼의 단독 저서 『잉여로서의 생명』(2016, 갈무리)에서 임상노동(clinical labor)의 개념이 예비된 바 있기 때문이다.

『잉여로서의 생명』에서 멜린다 쿠퍼는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이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논하면서, '생명의 투기적 잉여가치로의 변형'으로 요약될 수 있는 금융화된 생명경제에 관한 그 자신만의 논리를 전개한 바 있다. 특히 '잉여' 생명이라는 개념의 고안을 통해 (잔여배아, 잔여난자 등으로 불릴 수 있었던) 여성의 신체 세포를 마음껏 활용한 생명공학 산업의 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저자 자신이 "자본주의적 망상"이라고 표현한 신자유주의 정신이 그려내는 허상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 전세계 하층 계급 여성들의 재생산 노동이 있음을 드러냈다.

『임상노동』에서 저자들은 멜린다 쿠퍼의 전작과 유사한 논지를 유지하되 그보다 더 분명하게 '노동'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먼저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LTV)은 초기 산업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였다고 한정하고 "20세기는 생산 과정을 신체 내부로 가져왔다"며 임상노동가치론을 새롭게 제시한다(28). 신체화된 임상노동은 포스트포드주의 체제에 필수적 축적 전략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이들은 임상노동을 "추상적이고 시간적인 축적 명령이 신체의 수준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물질적 추상화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29). 동시에 임상노동은 인간의 재생산 노동이 생산 내부로 재배치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명공학 산업과 자본의 전략 안에 놓여 있다고 전제되기 때문에 단순히 재생산 노동으로만 설명되진 않는다. 나아가 급속도로 부상하는 임상산업에서의 난자 추출, 대리모 수태, 배아 줄기세포 생성, 약물 시험 등과 관련하여 실험 참가자들이 겪게 되는 호르몬 변화, 출혈, 약물 소비 과정 전반이 임상노동이라고 정의된다.

저자들이 정의하는 임상노동은 최근의 보조생식기술(ART)의 발전과 연동하며 여성들에게 두드러지지만, 반드시 여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1상 임상시험은 보통 불법체류자 남성들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저자들은 신체적인 자기관리가 포함되는 측면에서 남성들에 의한 정액 생산과 기증도 이러한 임상노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오해를 미리 방지하고자 말하자면, 저자들은 "환자가 조직을 기증하거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모든 상황을 노동 범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22). 여기서 고려되는 것은 활동보다는 환경인데, "특히 잘 규제되고 보장된 치료 시스템에서 이러한 교환이 일어났을 경우" 노동 범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보다 저자들이 개입하고자 하는 현실은 명료하다. 이들은 첫째, 임상시험 참여자들이 노동에 따른 임금이 아닌 선물에 대한 보상을 받는 지원자로 인식되는 경향과 둘째, 임상시험 참여자들과 공동체에 주어지는 치료적 이익이 부재하거나 부수적으로 되는 경우를 문제 삼는다. 그 (원인이 아닌) 결과로써 이 책은 생식의학 및 재생의학 산업에서의 여성들의 노동에 약간 더 분석적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최근 '제약·바이오주'로 표상되는, 그것이 내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래 가치가 있는 전략적 투자처로 분류되곤 하는 신기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기대를 떠올릴 때 이러한 연구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니콜라스 로즈의 생명정치론, 카우시크 순데르 라잔의 생명자본론, 폴 래비나우의 생명사회성론, 크리스티나 모리니와 안드레아 푸마갈리의 생명노동론 등 생명을 둘러싼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만들어낸 세계를 분석한 여러 이론들이 아카데미 안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임상노동』 역시 이러한 이론적 작업들과 공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포스트포드주의적 노동과정에 관한 자율주의 정치철학(대표적으로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분석에 보다 깊이 의존한다. 생명경제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저자들이 횡단하고 활용하는 현란한 이론적 작업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책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의 핵심 주장 자체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5년 『진보평론』에 실린 "노동자의 시각으로 임신-출산(생식) 기술의 문제를 바라보자"는 글에서 김영식은 다른 임금노동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고 소외된다는 측면에서 성노동자 운동, 대리모 노동자 운동, 난자 생산 노동자 운동은 종교적 우파진영이나 친(親)시장주의자들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들이 담당하는 재생산 노동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드러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틀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재생산 노동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지, 임금을 지급받아야 하는지, 누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여성은 모두 노동자인지, 여성은 노동자가 되어야만 해방될 수 있는지, 각각의 고유한 입장과 논쟁이 페미니즘 안에서 중요한 의제였음을 상기할 때, 동일한 '도착' 지점을 담보할 수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일례로 앞서 인용한 글에서 김영식은 대리모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기 때문에 대리모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임상노동』에서는 착취에 대한 이론화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장려금, 사례금의 명목이긴 하지만 저자들은 임상실험 참가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인센티브를 받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김영식의 글에서도 '이것이 왜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주장은 있지만 정작 '왜 노동인지'에 관한 경제적 설명과 '왜 노동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정치적 설명은 종종 생략되고 있으며, 여성주의자로서 나는 이 점이 오랜 의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노동 정치학을 고려하지 않는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임상노동』은 방대한 사례를 담고 있는, 토론을 청해봄 직한 책이고 나는 앞서 제기한 의문을 계속 이어가 보겠다.

전술했듯이 이 책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폐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자체의 논쟁에는 큰 흥미가 없으며 다만 이로 인해 어떤 분석이 (불)가능한지에 보다 주목한다. 반복하자면 저자들은 임상노동을 "추상적이고 시간적인 축적 명령이 신체의 수준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물질적 추상화 과정"으로 정의하는데, 이들에 의하면 노동력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명령에서 비롯된다. 일례로 저자들은 "사실상 대리모는 자신의 자궁을 독점지대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의 일종으로 구성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37). 여기서 문제는 여성들이 그 자체로 자산이자 자산화 과정에 대한 동의 주체로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임상노동에서 생산은 개인 신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여성들은 자산 소유자(지주)이자 노동자가 된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에 이른다. 이러한 이해 불가능성은 이와 같은 주장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값을 가지는지에 관한 궁금증에 더욱 가깝다.

『임상노동』은 의아할 정도로 의료산업에서의 이윤이나 자본의 동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한 저자들은 임상연구 참여자들 간의 차이를 과감히 삭제하고 의료노동자와 임상노동자 간의 관계나, 임상노동자들 간의 구별적 관계에도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다. 주목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어지는 논지의 방향이 임금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글의 도입부에서 지적했듯, 저자들은 "임금"과 "이익"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개입하고자 했다. 물론 임금은 사회적 차원에서나 개인적 차원에서나 중요한 이슈이다. 하지만 "임금 없는 삶(Wageless life)"에서의 다종다양한 생존 활동이 임금계약과 임금노동으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마이클 데닝이 동명의 글에서 주장했듯 우리는 임금노동을 탈중심화함으로써 자본의 관점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자들이 제기하는 임상실험, 생체실험 참여자들이 직면한 어려움과 불공정함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을 통해 임상연구의 민주화가 진전된 듯 보이지만, "제약기업이 실험에 대한 지적 재산의 독점적 특권을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문제적이다(346).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이윤 배분의 차원이라면, 그것이 노동 임금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지는 고민이 든다. 더욱 근본적으로 글로벌 생명산업이 내재한 문제가 실험대상으로서의 인간(저자들에 따르면 임상노동자)이 지급받는 돈의 성격의 문제로 표상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페미니스트들의 '가사노동에 임금을!' 캠페인은 사실상 여성들의 '무임' 재생산 노동을 드러내는 정치적 시도일 것이다. 이 책 역시 전 세계의 무수하고 다양한 차이를 가진 임상실험 참여자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일깨우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의 신체 일부, 특히 생명활동과 직결된 장기나 세포, 기관 등을 상품화하려는 자본의 전략은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동시에 노동에 대한 다각적 비판 대신 모든 사람이, 여성이 노동자가 되어야 정치적 시민권을 얻고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아가 체제를 변혁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정치학의 어떤 징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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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노동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9월 3일 <프레시안>( https://bit.ly/3KSHtBW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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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잉여로서의 생명』(멜린다 쿠퍼 지음, 안성우 옮김, 갈무리, 2016)


신자유주의와 생명공학 산업은 산업주의적 생산의 종말과 연관된 성장의 생태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한계를 미래의 투기적 재발명을 통해 극복하려는 야심을 공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생명의 가격을 결정하려 시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다가오는 잉여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자본주의화를 거부하면서 고갈, 멸종, 그리고 생존 가능성의 평가 절하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이 책은 성장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자본의 문제설정을 생명진화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인류적 문제로 전복하는 것이 필요하며 혁명의 문제도 생명의 지평에서, 즉 생명진화의 가능성의 모색과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사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주제적 대의민주주의에서 대의 정치가들이 전유하고 향유해온 정치지대는 다중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재전유되고 사회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절대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민주화하며, 집회민주주의와 일상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것이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제이슨 W. 무어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세계생태론’(World-Ecology)의 주창자 제이슨 W. 무어의 대표작이 출간되었다. 근대성 비판이자 자본주의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대단히 논쟁적인 책”이다. 저자가 비근대적인 생태적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관념들을 부각하기 위해 고안한 수사법의 덤불을 헤쳐나간 독자는 21세기 자본세의 현실을 조금 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현행 위기의 본성과 더불어 미래에 관해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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