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3-26 19:11
조회
472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3월 26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투스트라』, 4부

<차라투스트라>가 사자에서 어린 아이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면, 달리 말해 ‘사자’가 ‘어린 아이’를 잉태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곧 사자인 차라투스트라가 지금의 자신을 극복하는 새로운 ‘차라투스트라’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서사인 셈이다. (결혼에 대하여(?) 어디선가) “결혼은 자신보다 더 낳은 아이를 낳으려는 두 사람의 약속이다.” 새로운 아이를 배고 있는 사자-어머니-차라투스트라. 그렇다면 아버지는 누구인가?
꼭 남/녀의 이성애적 관계는 아니더라도, 결혼과 잉태의 메타포에는 항상 이질적인 두 존재의 결합이 있다. 자기 자신 혼자만으로는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건 어쩌면 아이덴티티(정체성/동일성)의 반복, 자기증식일 뿐이리라. 반드시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는 과정이 필요하며, 때문에 두 이질성이 결합한다는 의미가 중요하다. 다시 묻자. 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와 이질적인 존재는 누구인가?
이미 짐작하겠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만났던 모든 이들이다. 가장 처음 산에서 내려올 때의 은자와 시장터의 사람들로 시작해서, 그동안 함께 웃고 울고 때론 격노하며(이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만나왔던 사람들, 4부의 ‘보다 높은 사람들’까지, 이 모든 이들이 아버지 역할이었고, 차라투스트라와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물론 차라투스트라에 동의한 이들만 ‘아버지’역할에 넣고 싶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동의하고 잘 맞는 이라면 이질적이지 않아서 ‘결합’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남편’이나 ‘결혼’이 즐거움만 있을 리가 없다. 결혼과 남편이라는 존재야말로 진정한 삶의 시련이지 않은가! 오히려 니체가 보기엔 큰 고통이 중요하리라. 따라서 실은 낯선 이들에게서 오는 고통이야말로 진정 아버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고통이 아버지라는 느끼도록 해준, 결정적인 책이 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자서전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이며, 이 책은 그녀가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내용은 자신이 무정부주의자가 된 계기나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아나키즘이나 박열은 책이 모두 끝날 때쯤 잠깐 나온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뼈 빠지게 고생하는, 지독하리만큼 혹사당하는, 절망적인 삶의 경험 밖에 없다. 그러니 책을 덮고 나서 의아할 수밖에. 무엇이 나를 이렇게,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나 자신이 되도록” 만들었는가? 후미코의 답은 놀랍게도, 억압, 혹사, 가난,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 고통 속에서 존재의 각성을 이뤄냈고, 그 때문에 기존의 가치와 일본 제국주의에 자유롭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나키스트다운 명랑함이 있기 때문에, ‘저항정신’이란 말은 어색하다. 그것보다 내려다보기!) 지금의 자기를 완벽하게 긍정할 수 있는 자, 오직 그 만이 이토록 혹독한 고통을 ‘삶의 자양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원인’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되었고, 자신을 긍정하는 자는 과거의 고통에 대해서 이런 태도를 취하리라. 차라투스트라도 이렇게 스스로를 긍정한다면,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 그들이 주었던 고통 “덕분에” 자기를 긍정/극복하고 새로운 아이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와 만나더라도 새로운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에로틱한’ 능력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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