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페미니즘의 투쟁 2부~3부 세미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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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ond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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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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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183) 자본 역사 초기 단계에서 자본이 노동력 재생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복지국가가 창설된 후에야 관심을 보였다고 얘기를 하는데,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다가 이들이 더 생산할 수 없게 됐을 쯤에야 재생산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맥락이랑 같은 맥락인 건지 궁금했다.

c: 이 맥락은 초기 자본주의를, 맑스주의 담론체계에서는 18세기부터, 브로델 계열의 저자는 14세기부터로 잡는데, 달라코스타는 맑스주의에 뿌리를 두므로 초기단계를 18세기로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생태주의적 페미니즘은 이를 훨씬 앞당기기 때문에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초기 자본주의에서 노동력 재생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없이도 자본이 잘 굴러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노동력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다고 여기며 무상수탈을 해왔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복지국가가 창설된 후에야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되었냐는 문제가 되겠다. 복지국가는 2차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아이디어를 그려낸 사람은 케인즈로 알려져있다. 그것은 1930년대였다. 세계 대공황과 그 전 약 10년 전에 있었던 러시아혁명이 복지국가라는 아이디어의 핵심-노동을 착취만 할 것이 아니라 유효수요, 즉 노동자가 소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야 1920년대와 같은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핵심으로 한다. 러혁이 나오는 이유는 케인즈는 러혁 이후에 러시아의 발전 과정을 눈여겨보았고 러시아가 굉장히 빠른 시간동안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1935년 정도가 되면 미국을 바짝 뒤쫓는 대국으로 올라가는데, 이는 20년에 불과한 기간동안의 발전이었다. 그런 발전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국가가 충분한 유효수요, 보상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독해를 하고, 즉 러시아를 복지국가로 봤던 것. 동부 사회주의국가를 본떠 국가 영역을 키우고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유효수요를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2차대전이 닥치면서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세계대전 끝난 후 미국에서 마셜플랜을 시행하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일정한 복지 아이디어가 현실로 시작되게 되고 유럽에서도 벤치마킹되어 유럽에서도 복지국가가 발전하게 된 것.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가 혁명적 저항에 대한 위로부터의 대응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 혁명적 저항 속에는 주로 남성 주도적인 노동운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여성도 일정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여성 목소리의 고려도 복지의 목표로 채택이 되었다. 이후의 발전과정은 상이하지만 달라코스타가 보기에는 그 무관심이 없어지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d: 궁금한 게 있다. 이어서 궁금한 것. 183페이지. ‘주요 금융 기관인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모두 복지 정책과 경제 정책의 경계선을 다시 그렸다. 최근(1994) 이탈리아에 도입된 경제 후생, 사회 복지, 사회 보험 방안은 제3세계 국가 다수에 적용되고 있는 각종 ’구조 조정‘ 계획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라고 서술하는데, 여기에서 당시에 어떤 경제후생, 어떤 사회복지, 어떤 사회 보험 방안을 달라코스타가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c: 구조조정이라는 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염두해두며 하는 말. 복지국가에서는 후생, 보험, 사회복지, 이런 것들이 임금체계를 넘어서 임금체계 외부에서 이야기된다. 영어에서 임금은 wage이기 때문에, 어떤 수혜에 대한 대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복지는 benefit이라고 불러서 어떤 수행이 있건 없건 상관 없이 주어지는 것. 그 후생이나 보험(주로 국가보험)같은 것들은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한 사회의 잉여가치 중 일부를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즉 생존이 보장될 수 있을 정도로의 안전. 그런 정도의 복지 혜택들이 주어졌던 것인데 당시 활동가들의 시각에서는 국가가 대중들에게 주는 시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부분에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다. 그래서 사회적 임금으로 부르며 개인적 임금과 구분했다. 사회 수준에서 주는 임금이라고. 신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임금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임금, 즉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의 대가만 인정하고 국가차원에서 사회적으로 주어지던 임금, 즉 재정을 축소시켜 복지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게 국가로부터 시장으로의 권력 이전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작은 국가(국가 기능과 복지를 축소)라고 하기도.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국가의 차원을 통해 이루어지던 재분배를 차단했다. 대신 은행을 통해 부채를, 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금융자본주의로의 이행. 복지를 통해 무상으로 주어지던 것을 금융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왔다. 이게 제 3세계 국가에 적용되었다고 했는데, 신자유주의를 실험한 최초의 국가는 남미였고 구체적으로는 칠레였다. 멕시코로 넘어가게 되고 이탈리아에 적용되었다. 지금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1부 뒷부분

a: 한국같은 경우는 외환위기 97년 이후 기초생활수급권이 99년에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같은 경우 구조조정이 이루어졌을 때 국가차원에서 복지가 이루어졌으나 선별적으로 이루어졌고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면 시민들의 잉여가치를 재분배한 것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어느 정도 일치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되었다.

c: 한국은 많이 다르다. 이탈리아는 45년에 만들어진 노동헌법이 있는데, ?디오니소스의 노동?이라는 책에 보면, 이탈리아의 전후 헌법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사회주의 국가의 헌법과 같다. 노동권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헌법만 놓고 보면 상당히 사회주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후지 다케시가 쓴 박사학위 논문에 보면 한국 사회에서 ?적 요소가 어떻게 성장했느냐하는 문제를 한국 헌법의 변동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한국 헌법의 기초자가 사회주의적 관점을 강하게 헌법 속에 도입해 놨었지만 그게 현실 정치에서는 이탈리아와 다르게 박정희 정부와 같은 권위주의적 정부를 서포트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왜곡되는 과정이 헌법 개정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념이 상당히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정희 자신이 한때는 남로당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우파적인 자기 보신을 위해 자기 반성문을 쓰고 정권을 잡았을 때도 자기 보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인해서 거꾸로 크게 방향을 트는 태도를 보였다. 제헌헌법에서 사회주의 요소가 많이 있었지만 현실정치에서는 권위주의적 개발독재같은 형태로 나타났고 여기서 언급되는 복지라는 요소가 거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는 사회적 임금이 없었다는 것. 지금 시점에서 소급해 보면 그것도 복지와 비슷한 형태인데 아주 한정된 고용체계를 구축해놨던 것. 전두환 시기의 실업률은 2% 이하였다고 하기 때문에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고용안정성은 컸다. 그 고용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여서 임금의 수준은 열악했다. 그러니까 아까 김대중 정부 때 복지가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박정희 정부 때 있었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지만 고용안정성을 깨뜨리면서 주어지기 시작했다. 노사정 위원회를 처음으로 만들어서 민주노총까지 불러들였다. 그 노사정 위원회에서 한 것이 정리해고였다. 대규모 기업체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노동자 조직이 동의해주는 장치로 노사정 위원회가 돌아갔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정석이 커지는 와중에 국가로부터의 복지 제공을 통해서 사회안전망의 최소한도를 확보하려는 게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이었어서 유럽에서의 복지도입과정과는 다른 컨텍스트 속에서 복지가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해 과정을 일정하게 완화시키는 차원에서의 복지였다.

d: p.191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했다. ‘숨어있는 문명들은 자신을 말살하려는 힘에 저항했기 때문에 비밀을 간직할 수 있었다.’ ‘대지는 너무나 다양한 힘을 춤고 있는데, 특히 자신을 재생산하는 힘과 자신의 일부로서 인간을 재생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과학보다는 여성의 지식이 이 힘들을 발견하고 보존하고 강화해왔다. 다른 지식, 곧 여성의 지식, 토착민의 지식, 대지의 지식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수동성’으로 생명을 재생할 수 있다.’ 비밀이라는 단어를 달라코스타가 사용해서 전달하려는 게 뭐였을까, 생명을 재생할 수 있는데 ‘수동성’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쓸 때 전달하려는 게 뭐였을까.

b: 저도 여기에 대해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오늘날 고착화된 성별이분법, 여성-대지-비밀-재생산이라는 도식 속에서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90년대 당시 페미니즘에서 익숙한 구도였겠다. 지금 다시 생명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도식은 이제 어떻게. 재현 비판 맥락에서 많이 비판되었던 도식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면. 이걸 어떻게 전유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d: 말씀 들으니 제 고민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뒤에 얘기 나오는데 에코 페미니즘.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즈 얘기를 하고, 또 1세계 여성들과 3세계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재생산과 엮여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 자본이라는 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파괴하고 죽이는 거다라는 얘기를 하며 재생산과 엮여있는 얘기를 하는데, 펼쳐진 양상만 보면 모순되어보인다는 얘기를 한다. 3세계 여성들에게는 그 폭력이 가해지는 방식이 공동체를 재생산하는 과업의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즉 토착민의 여성들은 공동체를 재생산하는 과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빼앗기는 방식으로 자본에 의해 공격받는다는 것. 그런데 1세계 여성은 노동력 재생산을 강요받는 방식. 에코페미니즘의 전략이 이 책에 서술된 걸로 추측해보면 기계적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하는 것도 전략이지만, 에코페미니즘은 오히려 공동체를 재생산한다는 여성의 과업을 더 내세우면서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인가보다는 추측을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말씀해주신 대로 대지, 재생산 이런 것들이 여성이 연결되는 걸로 고착되는 문제 혹은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혼란에서 빠져나와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책의 개념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수동성, 비밀 같은 단어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e: 같은 맥락에서 ‘수동성’이라고 되어있어서 봤더니 반다나 시바를 인용한 것이었다. 뒤에서 보면 결국은 달라코스타가 자신의 운동의 경험을 역사화하며 얘기하는데, 즐거웠던 적 없던 운동에서 처음으로 즐거웠던 게 에코 페미니즘을 만나면서였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수동성이나 비밀이 곧이곧대로이기보단, 자본주의적 발전이 자연을 파괴하는 적극적인 방식과의 대비를 이루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것 같다. 여성성이 대지를 품어안으면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공동체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맥락에서 수동성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지 않나.

a: 숨어있는 문명 같은 경우 마야 문명 등의 예시를 들고 있다. 자궁 절제술을 할 때 여성 치료자가 어떤 식으로 저항하고 퇴출당하고 하지만 남성 의사들을 어떻게 이겼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런 비밀들이 3부의 몸과 연결시키면 잘 이해가 된다고 생각했었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노동의 속도, 멈추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수동성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기존에 여성을 항상 대지로 묘사한다거나 은유들이 불편하긴 했는데 3부를 읽으면서 해소된다는 느낌.

c: 수동성을 능동성하고 대비시켜서 보통 우리는 오늘날 갖고 있는 이미지-수동성은 나쁘고 능동성은 나쁘다는 인식을 비판하는 개념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동을 할 줄 모른다는 게 현대인의 큰 약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능력이랄까. 계속 능동만 강요받아온 역사가 낳은 폐해라는 생각.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맑스주의 담론 속에서도 자연을 인간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형하는 작업이라고 정의가 되는데, 인간 중심적으로 자연을 변형하는 거니까 자연에 대한 가해, 파괴작업이 없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생산작업이라는 것은 자연에 대한 파괴이고, 재생산은 그와는 달리 수동에 기반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철학적 맥락에서 스피노자도 수동 개념을 중시한다. 어팩트를 다루면서 수동, 수동이 영어에서는 passivity. 외부의 에너지가 내 신체를 통해 지나가는 것일 터인데 바로 외부의 힘에 대한 그 수동으로부터 능동의 능력이 집적된다고 스피노자는 파악을 한다.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이 수동성과 연관되는데, 슬픔 속에도, 슬픔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요소가 들어오게 되는 건데 기쁨의 요소를 간추리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연결시켜서 능동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건데 능동 수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스피노자에서 정리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공통관념으로서의 이성을 낳는 에너지. 수동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능동적인 형태로 이해된다. 이 책에서 대비시킨 방식이 특이하달까. 보통 지식과 지혜를 대비시켜서 과학을 지식으로 넣고 개념적 대비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이제 호모 사피엔스할 때 사피엔스와 센티엔스(호모 센티엔스(Homo Sentiens)),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거라서 수동적인 건데, 둘을 대비시키는 것이 더 유효한 대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보통 사피엔스로 정의되어 왔다.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능력을 말하고, 여성의 지식 말고 지식 지성 이런거와 통하는 건데 센티엔스라는 것은 수동성과 연결이 되면서 정동성, 예술성과 더 잘 연결되는 범주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용어는 다르다쳐도 달라코스타가 얘기하려는 지향점은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합리성과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감성의 영역, 감성적인 것도 넓은 의미에서 앎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것과 대비시키려는게 아닐까. 비밀이랄까 토착민의 지식은 숨겨진 문명. 드러낸 지식이 아니라 자연 혹은 대지의 음성을 수동적으로 기록하면서 자신과의 공통관계를 살펴나가는 기회로 지칭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통상 생각하는 사피엔스로서의 지식과는 다른 앎의 범주를 마리아로사가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 개인적으로는 달라코스타의 지향이나 추구에 대해 공감이 되기는 하는데, 언어라는 게 기존의 언어표상을 넘어서 사고하기가 어려운 걸 많이 느낀다. 기존의 말들이 이미 고착이 되어서 각각의 회로가 정해져있다고 할 땐 도식성이나 표상을 전유해서 다르게 고민하는 게 과제이지 않을까.

a: 궁금했던 건 197쪽에 저발전이라는 용어가 뒤에도 반복된다. 이 저발전을 어떻게 이해하는게 좋을까에 대한 고민. 아까 말한 수동성의 형태로 이해하긴 어려웠고, 이게 무슨 뜻인지 정리가 안돼서 독해가 어려웠다. 여기서 말하는 저발전 전략은 무엇일까. 발전을 저어하겠다는 걸까.

d: 그 부분이 어렵게 느껴졌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발전이든 저발전이든, 여기서 말한 발전은 자본주의의 방향에서의 발전을 말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무조건 전 세계에서 같이 발전시키면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어디는 발전을 시키고 어디는 발전을 못하도록 지연시키는 전략을 동시에 취한다는 생각. 1세게, 3세계의 위계를 만들어놓고 저발전국을 발전국리 착취하는 방식이 그려진다. 자본주의가 발전을 하는데 발전 전략과 저발전 전략을 동시에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a: 정보혁명이라는 말이랑 매칭이 어려웠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정보혁명이라고 했을 때는 지금 읽었을 때의 느낌은 ‘인터넷’ 이런 개념들이 생각이 나서 어떻게 매칭이 되는 걸까. 앞에 정보혁명에서 저발전은 뭘까.

c: 저발전은 종속이론에서 만들어진 말. 안드레 군더 프랑크라는 사람이 있다. 1980년대에 많이 읽혔다. 이 사람의 책 중에 ?저개발의 개발?이라는 책이 있다. 언더 디벨롭먼트는 언디벨롭먼트와 다르다. 보통 발전국과 미발전국으로 생각을 하는데, 이때의 후진국의 미래표상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 시간이 흐르면 선진국이 된다는 기대를 줌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건데, 프랑크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 종속된 제3세계 나라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파악하면 안되고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 하나의 발전 과정으로서 이해해나가야 한다.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는 사실상 발전의 중심부에 있는 거고, 후진국은 주변부. 그때 관계는 뭐냐면 발전된 나라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주변구 국가가 쓰레기를 떠안는 것. 원료를 강탈하거나 비싼 공산품과 교환하거나. 중심부에서는 부가 축적되지만 주변부에는 기아와 빈곤이 축적. 원래 그 토지, 그 지역이 갖는 부의 상당부분을 중심부에 빼앗긴다는 것. 제3세계 종속국가의 경우엔 시간이 흘러도 발전된 나라의 현 상태로 다가갈 수가 없다. 이를 저발전이라고 표현.
종속이론이 설명력을 가졌던 게 20세기 중후반에 설명력을 가졌고 한국같은 경우는 1980년대 수입이 되어 80년대 후반까지 설득력을 가졌는데, 설명력을 잃게 된 게 90년대에 정보화 과정을 거치고 안병직이 중진자본주의론을 내놓고 독점강화, 종속심화가 신식국독자론의 기본 테제인데, 독점강화와 종속심화에서 독점강화는 계속 간다고 볼 수 있겠는데 종속심화의 명제가 허물어지는 한국 경제의 자립화 과정이 중진자본주의에 의해 진행이 된다고 주장이 된다. 그러면서 종속이론은 북한의 주사파 쪽에서 생명력을 간직하는 식으로 되고 맑스주의 쪽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종속이론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폐기처분되었다. 달라코스타는 정보혁명이라고 하는 것도 저발전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게 현상적으로는 뭘 염두할 수 있냐면, 정보혁명 과정에서 (종속이론이 말하는) 중심국, (보통 말하는) 선진국들은 인지자본주의화 되어갔다. 한국도 95년부터는 인터넷이 부상하면서 인지자본주의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인지자본주의화가 일어나는 게 정보혁명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지자본주의화된 여러 선진국들의 산업구조는 어떻게 바뀌냐하면 자본 내의 낡은 전통적 산업 영역이 제3세계로 이전하는 것. 이게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인지자본주의도 하루종일 타이핑하거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전처리하는 막노동이다. 이런 작업들을 인도 등 3세계에 맡긴다. 이 사람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임시직. 종속시대와 다를 바 없는 저발전. 말하자면 그 지역 노동자들에 대한 수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탈이라 함은 공동체의 지식을 독점해서 병에 걸려도 그 지역의 나무를 약재로 사용 못하게 만들고 이런 식의 폭력적인 자산 수탈. 이런 식으로 저발전, 종속이론이 말한 저발전이라는 현상이 정보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d: 말씀 듣다보니 드는 생각이 종속이론에 맞지 않는 중진국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자본이 책에서처럼 발전과 저발전 전략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원리 자체가 깨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 종속이론은 중심과 주변이 영구적으로 고정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진입한다거나 하는 여지를 남겨두기는 하는데, 오늘날의 경우 그래도 종속이론은 지구를 지역적으로 나눠진 부분으로 사고한다. 유동성이 있다고 쳐도 지역적으로 분할된 지구를 사고한다. ?제국?이라는 책에서 네그리와 하트가 이를 깨뜨리는데 미국을 생각하면 미국 속에 중심부와 주변부가 동시에 존재한다. 발전된 미국 지역과 저발전된 미국 지역은 지구 상에서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맞먹는,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다. 한국 같은 경우에도 산동네 같은 것들이 다 철거되어 90~2000년대 초에 산동네가 남아있었고. 이처럼 한 지역 내에 1세계와 3세계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지구가 두 쪽이 나는 게 아니고 지구 전체에 산포되는 재구조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림을 재조정하는게 필요하다고 보는 것. 미국에 반대하는 걸 영구적인 전략으로 채택할 수 있기 때문에.

d: 다층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국가 안의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세계적으로도. 세계의 층위에서만 고정시키는 건 문제이지만. 그 점은 책에서도 달라코스타가 에코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1세계에서의 빈곤 문제를 제외시켜버리는 문제들이 있다고 말한다.
또 생각이 났던 것은 인공지능 관련해서. 인공지능이 발전되면 얼마나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하는데, 그런 혜택은 사실상 선진국 혹은 중심부만 누릴 수 있지 사실상 인공지능의 발전이 주변부에는 요원하고 상관 없다는 말을 하는데, 반론으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을 예시로 들며 한국이 정보화 시대를 맞아 큰 도약을 할 수 있었느냐라고 한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힘들게 사는 국가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논리. 어떻게 보면 오히려 종속이론을 반발하는, 정보화가 종속이론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는 논리에서 인공지능이나 4차산업혁명에서 핑크빛 미래를 꿈꾸는 것에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 2장

a: 2부 2장에서는 대안이 될 발전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하며 끝마무리를 한다. 책에서 말한 ‘발전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앞에서 말한 ‘수동성’ 이런 부분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그런 것을 인정할 때 발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얘기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있어서 발전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사고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 3장

a: 3장에선 앞에서 얘기했던 것들이 도움이 돼서 궁금했던 건 특별히 있진 않았다. 별 질문은 없고 대안적 발전을 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한국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한국은 뭘 대입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b: 멘추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노벨평화상을 91년도에 받았는데 98년도에 그가 자신을 재현시키는 것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아까 도식성 얘기 하는 중에, 재현이나 표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수록 백래시의 언어들과 마주친다는 생각이 든다.

소영현: 아까 저발전 얘기에서, 저도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긴 했는데, 계속 읽다보니 지금 관점에서 읽으면 선진국의 발전이 사실은 계속해서 저발전을 유발하면서 발전을 이어간다는 얘기인데 지금의 관점으로 이해하자면 식민적인 어떤 대상이랄까, 그게 존재일 수도 있고 지역일수도 있고. 식민적인 대상을 만들어내며 발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발전과 식민이 결합되면서 가는 거다. 그래서 전체를 한꺼번에 봐야 한다는 관점으로 얘기한 게 아닐까, 지금 관점에서는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관점에서 얘기해보자면 발전 개념을 어떻게 봐야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발전과 경제성장은 구분되어야 하는 거고 발전을 경제성장으로 환원하는 걸 문제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면 발전이라는 용어를 구해낼 생각이 있느냐,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착민’, ‘원래 있었던 것’, ‘비밀’을 발굴해야 발전 개념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이런 궁금증이. 앞에 본인이 생태주의, 에코페미니즘, 토착민 운동을 구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설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니고. 어떻게 구분하면서 에코페미니즘을 포지셔닝하고 있을까 궁금하긴 했다.

3부 1장

a: 사실 이 파트에선 마지막 문장이 와닿았다. ‘이와 같은 학대와 오늘날의 학대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이. 여성의 몸의 형태를 바꾸려는 수술, 개입, 통제가 여전하다는 생각. 의학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성 노인들에 대한 몸을 짚어주는 부분이 있긴 한데, 정보접근성이나 의학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학대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마무리지었다.

b: 앞 얘기와 연결되는 것 같다. 종속에 대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얘기해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여성의 몸에 한정되지 않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d: 강아지들도 자궁 절제술 많이 하는데, 동물병원 갔는데 권유하더라. 놀라서 찾아봤더니 정말 많이 하고 있더라.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치료술로 활용되고 있고 절제술을 하면 온순해지고 강아지도 질병에서 자유로워지고 본인도 편안해지고 그런 식으로 권유를 하더라. 그게 떠올라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절제술이 반려동물에게까지 옮겨가서 적용된다는 게 떠올라서 씁쓸한 감정.

b: 여성의 몸에 한정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 동물에 가하는 인간의 통제와 수탈. 같이 고민할 수 있게 하는. 동물권이나 페미니즘에서도 이 문제를 같이 연동해서 운동하고 있는게 떠올렀다.

a: 강아지는 반려동물이니까 계속 발전하는데 소는 가축으로 인식하니까 의학이 발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누구는 재생산을 하는 위치, 누구는 박탈당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 때 국가통제, 자본과 많이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생명의 몸에 대해 개입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형태가 있구나 하는 생각.

3부 2장

a: (p.279) 저자가 돌봄노동을 단순히 돈을 달라는 개념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가 됐는데, 수당 자체가 돌봄에 대한 수당일 수도 있지만 아동에 대한 기본소득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이 돈을 엄마한테, 아동한테 줘야하는지도 고민이 되기도 했다.

b: 정책으로 연결시켰을 때 구체적인 현실화의 의문을 얘기해주셨다.

c: 복지와 기본소득하고의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기본소득같은 경우에는 살아있는 모든 개인들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일정한 소득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일정한’이 최소한의 생계 유지인지 행복한 삶인지에 따라 큰 격차가 벌어진다는 생각. 베이직하다는 게 맨 처음 제기됐을 때는 무조건적인 보장이라는 말로 나타나서 개인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복지라는 것은 달라코스타가 ?집안의 노동자?라고 하는 책에서 복지체제를 매우 비판한다. 복지라는 것은 기본소득 운동과는 달리 위로부터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고 성장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로서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소득과는 발상 자체가 다른 맥락에서 나왔고, 운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지배장치로서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운동으로 보면 아래로부터의 소득 요구에 가깝다는 그 차이를 유념하면 좋을 것 같고, 이는 말씀하셨던 위로부터의 복지과정에서 유자녀 가구 원조 기금을 어머니에게 지불하는 것을 아래로부터의 복지라고 하는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작업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부터의 복지 운동을 넘어서 아래로부터의 복지 요구로 나아갈 필요성이 강하게 주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래로부터의 복지 차원에서 보면 아동에게 기금이 지불되는게 맞다고 봐야겠다.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질까는 세부규정의 문제이고 원리로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논란이 됐던, 어머니가 자녀를 보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상속권을 보장할 수 없어야 한다며 법제개정을 시도해서 운동을 진행중인 걸로 아는데 그런 케이스를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이 실감있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b: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가 여성이나 모성으로 전가되는 방식에 고리를 끊는 의미에서도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소위 모성 이데올로기를 끊는.

a: ‘온전함’이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그 개념을 다르게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장애인의 온전함과 같은 키워드라기보다는, 장애나 트랜스젠더, 퀴어이론에서 쓰는 온전함은 다른 측면이 있어서. 개별적인 존재로 존중받는 온전함인데 이렇게 다르게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궁금했던 건 p.286에서, 남성들이 부양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면서 여성이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감을 덜 느낀다 이런 구절이 나왔던 것 같은데, 사실 의무감을 덜 느낀다는 것도 있겠지만 상대 남성이 부양을 하지 못하면서 여성도 임금노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가사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형태가 더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권리 상승이라는 형태로 읽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자본에 착취당하는 구조 아닐까.

b: 글이 쓰여진 시점에서 파악하지 못했을 노동시장 구조 변화가 아니었을까.

a: 3부 제목인 ‘내 몸은 내 것’이라는 구호. 낙태죄 논의에서도 그 구호가 의미있었던 것을 인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는게 적절한가는 고민도. ‘내 것’이라고 했을 때 몸에 대한 것이 모두 내 책임이 되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b: 이번 낙태죄폐지공동행동에서 건 슬로건은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였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당사자성의 확장에 초점을 두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확실히 관련된 운동에 있어 변하는 것들도 보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

d: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달라코스타가 운동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 분열되는 경험을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맞닥뜨렸겠다 싶은 장애물이 엿보이기도 했다. 1세계 여성과 3세계 여성이 페미니즘 운동을 펼쳐감에 있어서 연결되는 지점이 강력하게 있지만 놓여있는 조건이 달라서 전략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 느끼기로는 3세계 여성들 같은 경우는 구호도 더 강력하고 거침없고 근본적인데서 나오는데, 1세계는 자본주의 임노동으로 짜여져 있는 구조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앞서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에서도 보듯이 권리라는 논의로 펼쳐지게 되는 한계가 생긴다는 생각. 이런 다른 지점들에서 1세계와 3세계 여성을 연결함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구호를 정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지만 1세계라는게 어떤 면에서는 더 슬픈 곳으로 느껴졌다. 3세계가 겪는 고통이 덜하다고 읽힐까봐 조심스럽지만. 1세계 여성들은 현실에 안주할 위험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c: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는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한 구호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라고 하는 말이 전통 속에서 국가라거나 가족이라거나 이런 것으로 너무 쉽게 수렴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라고 하는 게 외부에서 가질 수 있는 독립성같은 것들이 보장이 안 되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낙태 비범죄화같은 경우에는 여성 신체에 대한 국가 소유, 마치 여성 신체가 국가의 것으로 간주하는 역사가 남아있다는 것이고, 남성 신체 역시 병역 같은 경우에도 국가의 것으로 다루듯이. 국가같은 거대 집단의 것으로 개별자들이 환원되고 수렴되는 가부장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정치문화환경이 존속하고 있어서 낙태를 범죄화한다는 것은 여성 신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여성 신체에 대한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체가 고유하다는 의미인데. 사적 소유, 국가 소유, 개별 소유를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을 사적 소유로 받아들일 수 있고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앞선 문제제기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적 소유는 영어로 private property라고 하는데 프라이빗이라는 것은 영어의 내용으로 보면 타인에게서 강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맑스도 private property라고 말할 때는 부르주아 계급이 생산수단을 강탈하는 축적 과정을 염두하면서 그 말을 쓴다. 생산수단에 대한 부르주아계급의 강탈과 독점 지배를 사적 소유로 생각하는 것이지, 칫솔과 신발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individual property라고 해서 다르게 생각하며 미래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런 형태의 소유가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몸은 나의 소유라는 것은 private property가 아니라 individual property에 대한 주장이고 그것은 국가 소유(private property의 한 형태인)에 대항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individual property 자체가 맑스에게는 목적이 아니고, 그것은 근거지이고 이를 근거로 해서 property를 넘어서는 사회로 나아가느냐를 관건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는 목적지는 아니고 출발지로 사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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