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연재)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3:니체와 언어학(上)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2:37
조회
779
니체와 언어학(上)

김상범


1.언어와 세계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물음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언어는 세계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세계는 언어에 의해 구성되는가? 이러한 물음은 실재론이냐 관념론이냐는 고전적 형이상학의 물음의 반복이다. 니체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비켜나간다. 니체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들은 이러한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새기는 권리를 비로소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고귀함과 거리의 파토스, 좀 더 높은 지배종족이 좀 더 하위의 종족, 즉 ‘하층민’에게 가지고 있는 지속적이고 지배적인 전체감정과 근본감정-이것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도덕의 계보학> 제 1논문 §2)

그리고 이 뒤에 나오는 괄호 안의 말을 부각시켜서 니체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하자.

“이름을 부여하는 지배권은 멀리까지 미쳐서, 언어 자체의 기원을 지배자의 권력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허용해야만 하는 정도까지 이른다: 그들은 ‘이것은 이러이러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한 마디 소리로 봉인하고, 말하자면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것을 점유해버린다.”(위와 같은 곳)

니체가 말하는 ‘고귀한 인간들’이 가치와 이러한 가치의 ‘이름’을 창조하는 것은 ‘거리의 파토스’에 의해 지속적으로 촉발된 후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에 촉발 받아서 언어체계를 창조하는 것은 '무의식적 이성'이다. 그리고 '무의식적 이성'에 의해 창조된 언어를 통해 '고귀한 인간들'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한마디 소리로 봉인하고,...그것을 점유"해 버림으로써 세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언어 자체의 기원"이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니체에게 있어서 언어와 세계는 상호 전제되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나의 응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세계’는 언어에 의해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으며, 처음에 ‘세계’는 언어가 창조되는데 일종의 ‘환경’이자 ‘질료’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감정'의 촉발을 받아서, ‘질료’에 처음으로 형식으로서의 언어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무의식적 이성'이다. 그리고 처음에 언어는 이러한 '환경'으로서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는 않지만 세계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정된 상황에서 창조된다.

그리고 앞에서는 마치 언어에 의해 세계가 즉각적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사실 언어에 의한 세계 구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적 틀이 ‘세계’로서의 권력관계 속에서 창조되었다고 해도, 이러한 언어체계는 재생산되어야 세계를 안정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창조된 언어적 틀이 반복되고 재생산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마침내 이 언어적 틀이 인간의 무의식을 구성함으로 인해, 세계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언어적 틀을 통해 해석되고, 사람들은 이 언어적 체계를 세계의 존재구조라고 생각하게 되며, 심지어는 ‘실제적 세계’가 이 언어적 틀에 의해 창조되고 구성되게 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언어적 틀이 고착화되기 전에는 세계는 언어적 틀이 만들어지는 '환경'이자 '질료'로서 먼저 전제되지만 언어적 틀이 고착화된 이후에 세계는 이러한 언어적 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비록 이렇게 고정된 언어적 틀에 의한, '세계를 구성하는' 해석은 오류이지만 백승영의 말대로 이러한 오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영원한 흐름 속에 있는 생성세계를 포착해내고 파악해내고 붙잡아내어 한 가지 면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삶을 위한 전략에 의한 ‘선택적 행위’”(백승영, <니체-건강한 삶을 위한 긍정의 철학을 기획하다>(한길사, 2011), p.164)이기도 하다.

나는 해석 속에서 ‘지성’ 또는 ‘이성’의 역할을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지성'이나 '이성'은 신체나 무의식을 배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니체는 '무의식적 지성' 또는 '무의식적 이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니체는 이성적인 것을 배제하자고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니체는 오히려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성은 반드시 필요하며 또 인식하는 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나 비이성적인 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2) 또 이성은 세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해석의 도구인 언어체계가 유지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는 생성세계와 개별자에 맞서 동일성과 체계, 범주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폭력이다. 또한 언어적 틀은 권력관계 속에서 창조되지만, 언어적 틀이 고착화되고 나서는 '사물과 사건이 언어에 의해 봉해짐으로 인해' 일종의 권력이 된다. 이처럼 언어는 권력이자 폭력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권력과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대항-권력, 대항-폭력1)을 조직화할 수 있을 때이다. 즉 새로운 언어적 체계를 창조할 수 있을 때이다.

그리고 니체가 추적하는 역사 속에서 대항언어를 창조했던 것은 불행하게도 원한에 가득찬 사람들이었다. 니체는 도덕상의 노예반란이 “원한 자체가 창조적으로 되어 가치를 낳을 때”(<도덕의 계보학>,§10)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들의 가치평가는 좋음-나쁨이라는 ‘고귀한 인간들’의 기준과는 달리 선함-악함이라는 기준에 의해 수행된다. 그리고 담론투쟁 속에서 이러한 가치평가를 내린 것은 민중이 아니라 사제계급이었다.

그리고 니체가 "고귀한 인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사계급이었는데, 사제계급은 그들이 물질적인 힘에 있어서 전사계급에 비해 무력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원한을 품었다. 사제계급은 ‘무력감에서 비롯된 증오’로 가득찼다.

이들은 어쨌든 이러한 증오와 원한이라는 ‘감정’ 에 의해 자극받고 촉발받은 '무의식적 이성'을 통해서 새로운 언어체계를 창조해내었다. 여기서도 언어체계를 창조하는 것은 '무의식적 이성'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체계, 의미체계가 유지되는 것은 ‘2천년에 걸친 담론투쟁’ 속에서노예도덕이 주인도덕에 대해 계속 승리를 거두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계급의 언어체계, 의미체계는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상식’이 되었고 일종의 ‘권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체계, 의미체계는 '이성'에 의해 유지되었다.

2.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거리의 파토스”와 “원한”이라는 감정에 의해 촉발받아 새로운 언어체계가 탄생했다는 니체의 주장은 ‘정념’으로부터, 즉 “사랑, 증오, 동정, 분노”(장-자크 루소, 한문희, <언어의 기원>(한국문화사, 2013),p.20)등의 감정으로부터 언어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루소의 주장과 통하는가? 우선 루소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보기로 하자.

“...젊은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또 부당한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외침이나 불평, 탄식의 어조가 터져나오게 마련이다. 바로 이렇게 하여 가장 오래된 말들이 만들어졌으며......”(<언어의 기원>,p.20)

이처럼 루소에게 있어서 언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순수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반면, 니체에게 있어서 언어는 권력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루소에게 있어서 '정념'은 뿔뿔히 흩어진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표출'되는 것이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감정'은 개인을 구성하고 개인보다 먼저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에게 있어서 이러한 '감정'은 '무의식적 이성'에 의한 언어체계의 생산을 간접적으로 촉발만 할 뿐인 반면에 루소에게 있어서 '감정'은 언어를 창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언어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감정'으로부터 촉발받은 '무의식적 이성'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있어서 언어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무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니체의 초기 저작물에서부터 나타난다. 니체의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라는 텍스트에 의하면 언어는 개인의 의식이나 집단의식의 창조물이 아니다.

“언어는 개개인의 의식적 창작물도 다수의 의식적 창작물도 아닙니다.”(‘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는 복잡성과 ,예리함 그리고 통일성을 그 특징으로 갖고 있다.

“언어는 개개인의 작업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집단적 작업이기에는 너무 통일적인 것으로, 그것은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입니다.”('언어의기원에 관하여')

그렇다면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니체는 '의식적 창조' 대신에 '무의식적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이 창조해내는 것은 통일된 유기체로서의 언어이다. 이렇게 무의식이 언어를 창조해낸다는 생각은 초기의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라는 텍스트와<도덕의 계보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에서는 이러한 무의식이 '본능'이라는 '자연적' 무의식이었다면 <도덕의 계보학>에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무의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언어의 기원이 '감정'과 이에 의해 지속적으로 촉발된 '사회적' 무의식에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무의식에 의해 언어가 짜여간다는 주장은 언어의 '순수한 기원'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과 통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무의식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와 같이 정교하고 유기적이고 통일된 것이 어떻게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무의식적 이성'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니체는 '무의식적 이성' 또는 '무의식적 지성'이 실재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육체는 하나의 큰 이성이며...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대의 작은 이성도 그대의 육체의 도구이다. 그대의 큰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노리개인 것이다...더 위대한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육체와 육체의 큰 이성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1부 §4)

"거꾸로 우리는 우리의 최상의 지식으로조차도 미칠 수 없는 세심함, 선택, 합성, 수리 따위의 어떤 합목적성이 가장 작은 사건 속에서도 지배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에게 의식되고 있는 것보다도 터무니 없이 훨씬 높고 조망할 수 있는 지성에게로 돌려져야 할 어떤 활동을 발견하는 것이다....결국 우리는 의식적 자아 그 자체를 저 고차원의, 조망할 수 있는 지성에 봉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풀이한다."(<권력의지>,§676)

3.통일성과 다양성

그러나 이러한 ‘고차원의 이성’, 또는 ‘고차원의 지성’은 감정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서설>에서 인용한 문장을 다시 써보자.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더 많은 정동이 발언할 기회를 얻게 할수록, 보다 많은 눈과, 색다른 눈들로 하여금 한 사물을 관찰하게끔 하면 할수록, 이러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나 우리의 ‘객관성’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지를 통틀어 제거하고, 정동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일,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지성을 거세한다는 의미가 아닐까?”(<도덕의 계보학>)

이처럼 감정의 지속적 촉발 없이는 지성 또는 이성은 사물세계를 해석하지 않고, 더 많은 감정들이 이러한 촉발에 참여할수록 사물에 대한 ‘개념’과 ‘객관성’이 더욱 완벽해진다고 니체는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성을 통한 세계의 해석은 언어체계'들'의 관점으로서의 작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언어체계'들'은 ‘무의식적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도 감정에 의한 촉발 없이는 이러한 언어체계는 생산되지 않고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으로서 작동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감정들의 지속적 촉발에 의해 사용하는 언어체계가 다양해지고 언어가 풍부해지면 사물세계에 대한 ‘개념적 인식’과 ‘객관성’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니체가 정동과 관점을 대응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정동과 언어체계가 대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정동과 언어체계는 대응되는가?

주체가 세계 속에서 느끼는 지속적인 감정은 언어체계를 창조하도록 무의식적 이성을 촉발한다. 이것이 언어체계가 창조될 때 그 언어체계가 세계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언어체계와 이와 관련된 담론체제가 재생산되면서 이러한 언어와 담론에 의해 주체가 느끼는 감정이 재생산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언어체계가 창조될 때 나타났던 '감정과 언어체계의 연결'은 더욱 강력하게 된다.

가령 약자들은 원한 속에서 강자의 그것과는 다른 언어체계와 담론체제를 창조하지만, 이러한 언어체계와 담론체제가 기독교의 권력에 의해 재생산되고, 이러한 언어와 담론에 담긴 기독교적 세계관이 유지되고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강렬한 원한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주체, 언어, 감정의 재생산 과정을 통해서 원한이라는 감정과 (기독교적)언어체계는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게 된다.

이와 같이 특정한 감정과 특정한 언어체계는 서로 대응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와 같은 강력한 연결관계는 어떤 특정한 감정의 촉발에 의해 즉각적으로 특정한 언어체계가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반면 이성은 언어체계 각각의 고정된 '관점'으로서의 작동과 맞물려서 작동되는 것으로써, 언어체계'들' 각각은 그 재생산이 이성의 작동과 관계가 깊으며, 따라서 다양한 언어체계들 각각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이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가? '통일성'과 '다양성'은 서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각각의 관점=언어체계가 각각의 특이성과 개별성을 잃지 않으면서 '통일' 되는 것이고 , 이러한 통일은 서로 다른 언어체계들이 서로 접속하고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언어라는 일자는 그 자체로 다자인 것이기 때문에 '통일성'과 '다양성'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신경들의 네트워크로서의 뇌의 각 부분이 개별성과 특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접속하고 연결되어 통일된 뇌를 이루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은 각각의 언어체계들로는 볼 수 없는 세계의 단면을 보게 하고, 이러한 단면을 종합함으로써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1) 대항-폭력과 대항-권력은 반드시 보복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원한의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대항-폭력과 대항-권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권력이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대항-폭력과 대항-권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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