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연재)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 5:니체와 언어학(中-2)-니체 대 비트겐슈타인-2|김상범(대학생)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4:45
조회
681
니체 대 비트겐슈타인-2

김상범


니체는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언어는 ‘비유’이며 개념적 진리는 이 비유를 재료로 해서 구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텍스트에서의 니체에 의하면 비유는 생생한 체험으로서의 직관과 인상에 기반해있고 따라서 구체적인 반면에 (무의식적) 지성은 이러한 생생한 인상들과 직관들을 탈색시켜 ,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화시킨다.

"그는 이제 자신의 행위를 이성적인 것으로 설정하여 추상화의 지배에 예속시킨다....인간을 동물들과 구별짓는 모든 것은 바로 생생한 직관적 비유들을 하나의 도식으로 휘발시키는, 즉 어떤 영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용해시키는 능력에 달려있다.”(프리드리히 니체, 이진우 옮김,<비극적 사유의 탄생>(문예출판사, 1997), p.201)

그리고 무의식적 이성 또는 무의식적 지성은 이러한 개념들 사이에 체계적이며 규칙적인 질서를 수립한다.

“왜냐하면 생생한 첫 인상들 밑에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 저 도식들의 영역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계와 정도에 따라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질서를 건립하는 것, 법칙과 특권과 종속과 경계설정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거대한 개념의 건축물은...융통성 없는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으며...수학에 특징적인 엄밀함과 냉정함을 내뿜고 있다.”(<비극적 사유의 탄생>,pp.201~202)

그러나 생생하고 개별적인 내적 체험의 언어와 사회적으로 형성된 구조/체계/법칙으로서의 언어를 대비시키고 있는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에서의 니체의 주장은 문제가 없을까? 이 텍스트에서 니체는 모든 직관의 비유는 개별적이고 똑같은 것이 없으며, 따라서 표제어를 붙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내적 체험의 고유성과 이러한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사적인’ 성격을 주장하고 있지만, <철학적 탐구>에서의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이렇게 ‘공적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생생한 직관과 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증명한 것이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불가능성의 논증'이다.

그러나 니체의 이 텍스트에서 취해야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니체는 '사물 그 자체'에 언어를 통해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 자체의 수수께끼 같은 X는 한번은 신경자극으로서, 그리고는 영상으로서, 마지막에는 음성으로서 작용한다."(pp198~199)

그리고 니체에 의하면 이러한 감각(=신경자극), 영상, 음성 사이에는 '자의적'인 관계가 성립하며, 따라서 이들을 등치시키는 것은 일종의 '비유'이다.

"신경자극을 우선 하나의 영상으로 옮기는 것! 첫째 비유, 영상을 다시 하나의 음성으로 만드는 것! 둘째 비유.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영역을 완전히 건너뛰어, 전혀 다르고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p.198)

따라서 니체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언어'에서 '비유'는 본질적인 것이며 감각과 영상, 즉 직관과 인상으로서의 개별적인 내적 체험은 '음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소박한 생각에 불과하다. 개별적인 내적 체험 이전에 '음성'들 사이의 차이의 체계가 존재하고, 이러한 차이의 체계에 의해 생산된 의미가 이미 감각이나 영상이라는 개별적인 내적 체험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

니체도 후기의 <권력의지>라는 텍스트에 가면 이러한 ‘내적 체험’이 1차적이고 우선적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벗어던진다. 언어체계가 '내적 체험'에 선행한다.

"우리가 <내적 경험>을 의식하기에 이르는 것은, 기껏해야,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그것이 발견한 후-바꿔 말하면, 어떤 상태가 개인에 대해 더 한층 숙지의 여러 상태로 번역된 후에 있어서이다--."(<권력의지>, §479)

‘개별적인 내적 체험의 표현으로서의 언어’로부터 ‘사회 속에서 사용되는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건축물로서의 언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사회계약으로부터 국가가 출현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 텍스트에서 니체는 ‘진리로서의 언어’, ‘개념으로서의 언어’의 탄생을 사회계약과 연결시키고 있다.

“인간은... 평화조약을 필요로 하고 그 후에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자신의 세계에서 사라지도로 노력한다...다시 말해 지금부터 ”진리“이어야 할 것이 이제 고정된다. 즉 똑같이 타당하고 구속력 있는 사물들의 표시가 발명되고, 언어의 입법은 또한 진리의 첫 번째의 법칙을 제공한다.(<비극적 사유의 탄생>p.196)

그러나 개인들이 먼저 존재해서 자신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 국가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탄생에 의해 개인 주체들이 생산되고, 개인들의 ‘내면’이 구축된 것처럼,'사회적 언어', 즉 '체계로서의 언어'가 조직된 후에야 개인의 내적인 인상과 체험을 (이 언어에 의해)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비유'는 '체계로서의 언어'가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본래부터 '사회적 성격'을 띄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사적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니체는 후기로 갈 수록 낭만주의적 언어관을 극복한다. 비록 니체의 후기텍스트에서 '감정'의 촉발에 의해 언어가 창조되지만, 이러한 '감정'은 '내밀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회적 감정'에 의해 언어체계가 창조되고 이러한 언어체계에 의해 비로소 개인의 '내적 인상/체험'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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