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연재)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사회심리학(上)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6:27
조회
580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사회심리학(上)

김상범


니체는 선구적인 사회심리학자이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감성이나 감정의 문제를 개인의 내면 문제나 뇌신경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과 달리 니체는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찰한다. 이것은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생성되는 것임을 니체가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그 사회적 기원을 바로 알 수 있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 ‘원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조차도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졌고 또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동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니체에 의하면 '영혼' 자체가 사회적 관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죄의식’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니체는 놀랍게도 ‘부채’와 채권자-채무자 관계에서 죄의식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꼭지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순수하게 내면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통념을 깨뜨린다. 니체에 의하면 오히려 국가에 의해 인간의 공격적 본능이 발산되는 것이 끊임없이 억제되면서 이러한 공격적 본능이 인간 자신을 향하게 됨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은 생산되고 또 다시 생산되게 된다. 양심의 가책은 사회 속에서 구성되고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오래된 자유의 본능에 대해 국가조직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저 무서운 방어벽은-특히 형벌도 이러한 방어벽에 속한다-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인간의 저 본능을 모두 거꾸로 돌려 인간 자신을 향하게 하는 일을 해냈다. 적의, 잔인함과 박해, 습격이나 변혁이나 파괴에 대한 쾌감-그러한 본능을 소유한 자에게서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 이것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도덕의 계보학>, §16)

니체는 심지어 이렇게 국가조직의 방어벽에 의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본능들이 ‘안으로’ 향하게 됨으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라 부를만한 깊고 넓은 내면세계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체로 이 본능들은 새로운, 말하자면 지하의 만족을 찾아야 했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인간의 ‘내면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후에 ‘영혼’이라 불리는 것이 인간에게서 자라난다. 처음에는 두 개의 피부 사이에 펼쳐진 것처럼 얇았던 내면세계 전체가...더 분화되고 팽창되어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얻게 되었다.”(<도덕의 계보학>, §16)

그리고 국가의 성립에 의한 이러한 ‘영혼’의 탄생과 동시에 (이렇게 국가 상태로의 이전으로 인한 환경변화와 더불어서) ‘의식’의 지배가 나타나게 된다.

“저 변화란 인간이 결국 사회와 평화의 구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변화를 말한다....이 불행한 인간인 그들은 사유, 추리, 계산, 인과의 결합으로 축소되었고, ‘의식’으로, 즉 그들의 가장 빈약하고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관으로 축소되었다.”(<도덕의 계보학>,§16)

여기서 ‘사회와 평화의 구속’은 국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니체의 위와 같은 주장을 단순히 과거에 대한 역사적 기술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로 볼 필요가 있다.

2.

인간은 ‘자기개념’이라는 것을 형성한다. ‘자기개념’이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신념들의 총화”를 뜻한다.(한덕웅 外,<사회심리학>(학지사, 2005),p.90)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자기와 ‘자기개념’의 형성이 ‘사회비교’1)를 통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들은 모든 저급한 것과 저급하다고 생각되는 것, 비열하고 천민적인 것과 달리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훌륭하다고, 즉 최상급의 것으로 느끼고 평가한다....보다 높은 지배 종족이 낮은 종족, 즉 ‘하층민’에 대해 갖고 있는 지속적이고 압도적인 전체감정이자 근본감정-이것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도덕의 계보학>,§2)

강자들은 이처럼 타자와의 ‘차이’ 혹은 ‘거리’ 속에서 ‘자기개념’으로서의 ‘좋음’을 먼저 형성하고 나중에 이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타자개념’으로서의 ‘나쁨’을 형성한다. 반면에 약자들의 ‘사회비교’를 통한 자기형성은 이와 반대로 ‘타자개념’으로서의 ‘악’을 먼저 형성하고 나중에 이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자기개념’으로서의 ‘선’을 형성한다.

“그런 인간은...‘악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더구나 그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거기에서 그 것의 잔상이나 대응인물로 ‘선한 인간’을 생각해낸다-바로 자기 자신을!”(<도덕의 계보학>,§10)

그런데 강자들의 ‘자기개념’의 형성과정과는 달리 약자들의 ‘자기개념’의 형성은 ‘주체’라는 환상을 매개로 한다. 즉 약자에게 있어서 나는 선하다'라는 자기개념의 형성은 우선 '너는 악하다'라는 타자개념의 형성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타자를 악으로 규정짓는 것은 그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라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역으로 자신을 선으로 규정짓는 것은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 자신의 약함이 이러한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도출되는 결론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약하게 되는 것은 강자의 자유이고, 어린 양이 되는 것은 맹금의 자유이다”라는 이러한 믿음을 스스로를 위해 이용하고, 사실 이런 믿음을 다른 어떤 믿음보다 더 열렬하게 고집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이러한 믿음으로 그 감정은 맹금에게 맹금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권리를 얻게 된다.

억압당한 자, 짓밟힌 자, 박해당한 자가 “우리는 악인과는 다른 존재가, 즉 선한 인간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선한 인간이란 모름지기 박해하지 않는 자, 누구에게도 상해를 입히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신에게 복수를 내맡기는 자, 우리처럼 숨어서 지내는 자, 악이면 뭐든지 피하고 대체로 삶에 관해 요구하는 것이 적은 자, 즉 우리처럼 인내하고 겸손하며 공정한 자이다”라고 무력감에서 생긴 복수심에 불타는 간계로 서로를 설득하지만...그것은 마치 약자의 약함 자체가-이는 그의 본질이고 작용이며, 피할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는 하나뿐인 현실 전체를 뜻한다-자유의지에 의한 일종의 능력이고, 의욕되고 선택된 것이며, 하나의 행위이자 공적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임의의 중립적 ‘주체’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1) 한덕웅 外,<사회심리학>(학지사, 2005),pp98~99,pp.108~1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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