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연재)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역사학(上)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6:40
조회
808
종합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니체-니체와 역사학(上)

김상범


1.

역사학에 있어서 목적론과 기계론을 제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론과 기계론을 넘어서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목적론이나 기계론, 혹은 둘의 혼합 중 하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2.

우리는 과연 목적론적 역사관으로 벗어나 있는가?(여기서 목적론은 넓은 의미의 목적론, 즉 사물/제도/형식의 선험적 의미나 목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담론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물/제도/형식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좁은 의미의 목적론을 포괄하는 것이다.) 아직도 국가가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다는 주장이 살아남아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안전보장’이라는 국가의 현대적 의미/효용성/목적을 과거에 투영시킨 것으로서, 일종의 오류에 불과하다. 이것은 ‘눈은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니체에게 있어서 “어떤 것의 발생 원인과 그것의 궁극적인 효용성이나 그것의 실제적인 활용과 목적체계로의 편입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동떨어져”있다. (<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그러나 니체가 어떤 사물이나, 제도, 형식에 있어서 의미/효용성/목적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월한 힘과 의지가 사물/제도/형식의 의미/효용성/목적을 결정하고 그러한 의미/효용성/목적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 절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다. 이렇게 힘과 의지가 의미/효용성/목적을 결정한다는 것은 힘 관계의 배치가 바뀌면 사물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 효용성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어떤 다른 것, 어떻게든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것보다 우월한 힘을 지닌 것에 의해 번번히 새로운 견해로 재해석되고 새로 독점적으로 이용되어 새로운 용도로 유익하게 바뀌고 전환된다. 유기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의 제압과 지배이며, 그리고 다시 모든 제압과 지배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자 정리인데, 이로 인해 종래의 ‘의미’와 ‘목적’이 필연적으로 모호해지거나 지워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니체는 ‘유기체 세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세계’에서도 성립한다. 물론 니체의 주장은 어떤 진화론 혹은 사회진화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화론이나 사회진화론을 효과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유기체’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유기체 내부의 여러 기관등이 힘의 배치가 바뀌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 ‘의미’와 ‘목적’이 바뀌는 것처럼 사회 내부의 “법률제도, 사회풍습, 정치관습”등도 힘 관계가 달라지면 그 ‘의미’와 ‘목적’이 바뀐다.

이렇게 니체는 역사학에 있어서 ‘목적론’을 극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물/제도/형식의 선험적 의미나 목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담론을 넘어서는 것은 사물/제도/형식이 정해진 목적을 따라 발전한다는 담론을 넘어서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에 따라서 어떤 사물, 어떤 관습, 어떤 기관의 ‘발전’이란 결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진보가 아니며,...”(<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3.

그렇다면 니체는 어떻게 ‘기계론’을 극복하는가? 앞에서 인용된 문구를 다시 써보자.

“...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의 제압과 지배이며, 그리고 다시 모든 제압과 지배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자 정리인데...”(<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니체는 기계론적 ‘생성’의 무의미성에 대항하여 ‘사건’=‘의미’의 차원을 도입한다. 어떤 차이-생성이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기 위해서는 그 차이-생성이 새로운 힘의 배치를 만듦으로써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건은 하나의 제압과 지배”인데, 이러한 새로운 힘 관계의 창조는 사물, 제도, 형식에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므로,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자 정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 관계의 변화는 힘들의 양적차이를 생산해내는 미분적 요소인 권력의지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권력의지인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권력의지를 통한 사물, 제도, 형식에의 의미부여를 간과하고 '사건'을 통한 의미발생을 간과하는 기계론을 비판한다.

니체는 이러한 이러한 ‘무의미와의 화합’이 현대적인 지배자 혐오주의를 보여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자 혐오주의”는 힘 관계를 생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권력의지와, 적극적인 힘, 그리고 능동성을 “요술로써 슬쩍 없어지게” 한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니까 삶 자체도 외적 환경에 대한 점점 더 합목적적인 내적 적응이라고 정의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정의는 삶의 본질을, 생명이 지닌 권력의지를 오해하고 있다. 이 정의는 자발적이고 공격적이며 침략적인,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방향을 정해 형태를 부여하는 여러 힘,,...그 힘들의 원칙적인 우선권을 간과하고 있다.”(<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4.

니체가 이러한 역사 해석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분석한 것은 형벌의 역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형벌이 '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잘 못된 것이다. '죄'의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형벌은 존재했다.

형벌은 태곳적부터, 가장 원초적인 사회관계인 채권자-채무자 사이에 존재했다. 형벌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채권자의 분노를 발산할 수 있게 했다.

“인류역사의 오랜 기간을 살펴보건대 악행을 저지른 장본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즉 죄를 지은 자만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벌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날 부모가 자녀를 벌 줄 때처럼 손해를 입은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벌을 받게 된 것이었다.”(<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4)

형벌의 의미와 목적은 시대에 따라 힘 관계가 변화함으로 인해 바뀔 수 있고, 따라서 형벌의 현재적 의미/목적/효용성을 과거에 투영하여 그것이 마치, '기원에 대한 동기'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별개의 문제를 하나의 문제로 취급하는 우를 범한다.

“여기서 형벌의 기원과 목적에 대해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제각기 별개의 문제이거나 별개의 문제여야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유감스럽게도 보통 하나의 문제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형벌에서 예컨대 복수나 위협과 같은 어떤 ‘목적’을 찾아내서 그런 다음에는 천진난만하게 이 목적을 형법의 유발요인으로서 처음에 다루고는, 이 문제가 끝난 것으로 여긴다.”(<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2)

형벌의 의미와 목적은 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힘 관계를 구성하는 데에 다양한 힘들이 참여하므로 그 의미와 목적은 다양할 수 있다.

"지극히 후기의 문화상태...에서는 ‘형벌’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단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미의 총합‘을 나타낸다. 지금까지의 형벌 일반의 역사, 즉 다양한 목적으로 형벌을 이용해온 역사는 결국, 분해하고 분석하기 어려우며, 강조되어야 하지만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일종의 통일체로 결정화된다.”(<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3)

오늘날 '형벌'은 '죄'를 처벌한다는 구실아래서 많은 책략과 전략과 전술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니체는 현대 사회에서 형벌의 다양한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①위험성을 없애는 것,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으로서의 형벌
②피해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손해를 변상하는 것으로서의 형벌
③형벌을 정하고 집행하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형벌
④범죄자가 그때까지 누려온 것들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의 형벌

......

(<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3 참조)

형벌의 의미와 목적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힘과 의지의 다양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모두 평등한 것이 아니며, 형벌은 자신을 독점하는 힘들 중 더 우월한 힘과 유사하다.(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 <니체와 철학>(민음사, 2008),p.22 참조)

따라서 형벌은 다양한 의미요소들이 종합된 복합체인데, 어떤 의미 요소가 중요한 것인지는 어떠한 힘이 우월한지에 의해 규정된다.

5.

우리는 형벌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결론을 일반적인 사물/제도/형식의 역사에로 일반화시킬 수 있다. 질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물의 역사는 그것을 독점하는 힘들의 연속이고,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힘들의 공존이다."(<니체와 철학>,p.21)

그리고 이러한 힘들의 관계는 사물의 의미를 생산한다. 역으로 "만약 우리가 사물을 소유하는 힘, 그것을 이용하는 힘, 그것을 독점하는 힘, 혹은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힘"(<니체와 철학>,p.20)을 찾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물은 그것을 탈취할 수 있는 힘들의 개수만큼 의미를 갖기 때문에, 사물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의 다양성에 대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은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의미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즉 의미의 복수성, 성좌constellation, 연속들의 복합체...가 존재한다."(<니체와 철학>,p.21)

그러나 니체가 이러한 의미의 복수성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각각의 의미-요소들은 흩어져 있지 않고 사물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그러한 의미-요소들은 종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앞서 형벌의 역사의 경우에서 보듯이, 모든 의미가 동일한 위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물은 자신을 탈취하는 힘들 중에서 더 우월한 힘들과 유사의 관계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우월한 힘에 대응하는 의미-요소가 더 우월하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게 된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개별적인 경우에 종합의 요소들이 어떻게 자신의 결합가를 변화시키고 그에 따라 새로이 배치를 바꿀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때로는 이런 요소가 때로는 저런 요소가 여타의 요소를 희생시키며 나타나서 지배하는가를,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요소(가령 위협하려는 목적)가 나머지 요소 전체를 폐기해 버리는 듯한 것을 아직 인식할 수 있다."(<도덕의 계보학> 제 2논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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