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 읽기 넷째 날

작성자
點心
작성일
2018-03-29 22:35
조회
887
일제시대에 내가 시니 산문이니 죄그만치 썼다면 그것은 내가 최소한도의 조선인을 유지하기 위하였던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해방 덕에 이제는 최대한도로 조선인 노릇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는데 어떻게 8ㆍ15 이전 같이 倭少龜縮(왜소위축)한 문학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랴?

자연과 인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문학에 간여하여 본 적이 없다.

오늘날 조선문학에 있어서 자연은 국토로 人事는 인민으로 규정된 것이다.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남들이 나를 부르기를 순수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스스로 순수시인이라고 의식하고 표명한 적이 없다.

사춘기에 연애 대신 시를 썼다.

그것이 시집이 되어 잘 팔리었을 뿐이다.

이 나이를 해가지고 연애 대신 시를 쓸 수야 없다.

사춘기를 휠석 지나서부텀은 일본놈이 무서워서 산으로 바다로 회피하여 시를 썼다.

그런 것이 지금 와서 순수시인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이다.

그러니까 나의 영향을 다소 받아온 젊은 사람들이 있다면 좋지 않은 영향이니 버리는 것이 좋을까 한다.

시가 걸작이던지 태작이던지 옳은 시던지 글른 시던지로 결정되는 것이지 괴테를 순수시인이라고 追尊(추존)한다면 막심 고르키를 汚濁(오탁)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이 兩거장에 필적할 문학자가 조선에 난다면 괴테는 단연코 나오지 않는다.

조선적 토양에서는 막심 고르키에 필적할 만한 사람만이 위대한 것이요 또 가능성이 분명하다.

시와 문학에 생활이 있는 근로가 있고 비판이 있고 투쟁과 摘發(적발)이 있는 것이 그것이 옳은 예술이다.

걸작이라는 것을 몇 해를 두고 계획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도 <불멸>에 대한 어리석은 허영심이다.

어떻게 해야만 <옳은 예술>을 급속도로 제작하여 건국투쟁에 이바지하느냐가 절실한 문제다.

정치와 문학을 절연시키려는 무모에서 순수예술이라는 것이 나온다면 무릇 정치적 영향에서 초탈한 여하한 예술이 있었던가를 제시하여 보라.

─ 散文 [정지용 (1948년 4월, 5월.《문학》7호, 8호)]에서


● 지난 주에는 정지용 시인이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발표한 작품을 중심으로 시를 읽었습니다.

● 다음 모임(3월 3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서는
임화 시인의 시 <현해탄> 연작을 읽고 얘기를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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