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사이토우 마리코

작성자
youngeve
작성일
2018-10-30 14:08
조회
1078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 땅에다 깊이 뿌리 박으면서 하늘을 날고 싶다는 병에 걸리는 이가 있다 몸통을 쪼개 자기 나이테로 보고 싶어지는 병이 있다 자기 몸에다 많은 새들을 안제 하고 싶어지는 병. 같은 데에 날마다 새롭게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서있고 싶다는 병
서울 비원 주변의 나무들이 당당하고 그 그림자들이 더 없이 짙은 해질녘 거기 가면 푸른 눈사태로 생매장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니 어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육이오 때, 여기는 희생자들의 유체를 모으는 장소였다 서울대 병원 가까이 있었기에. 그때 땅이 비옥해졌고? 나무들도 잘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저 나무 그림자들은 짙고도 짙은 거란다
사람에게서 나무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병. 이 거리의 내력을, 이 땅의 모든 내력을 빠짐없이 배고 싶다는 병. 거기 서서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모든 따라붙는 이, 모든 앞지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비춰주고 싶다는 병. 고하고 싶다는 병.

이 시는 일본인이 우리 말로 쓴 시다. 사이토우 마리코는 나무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는 것은 나무의 속성을 사람이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땅에다 깊이 뿌리 박으면서 하늘을 날고 싶은 병은 출세욕을 뜻하고 몸통을 쪼개 자기 나이테를 보고 싶다는 것은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기 몸에다 많은 새들을 앉게 하고 싶다는 것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고 같은 데에 날마다 새롭게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서 있고 싶다는 병은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을 뜻한다 나무들이 잘 자라는 것은 시체를 많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에게서 나무에게로 옮는 병도 있다는 구절은 위의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는 구절과 연결된다. 이 시의 제목이 미열인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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