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 『존재권력』 서평ㅣ김영철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12-17 10:54
조회
558
 

『존재권력』 서평


김영철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후 위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등 다종다양한 위협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브라이언 마수미는 그의 책 [존재권력 ONTO POWER]에서 그런 위협들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권력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한다.

독자들은 저자가 소개하는 존재 권력의 두드러진 특징들을 통해 그 권력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존재권력”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존재권력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존재 권력은 부정적인 negative 권력이 아니라, ‘관장하는-권력’ power-over이다. 그것은 ‘향하는-권력’ power-to이다. 생명이 막 움직임을 시작하며 아직 있는 듯 없는 상태로 barely there 존재가 되려는 찰나, 세상의 구멍에 자신을 넌지시 암시하는 창발을 조장하고 방향 짓는 권력이다. 그것은 존재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positive 권력이다.([존재권력] 14쪽)”

‘생명이 존재가 되려는 찰나 자신을 넌지시 암시하는 창발을 조장하고 방향 짓는 권력’이라는 표현이 그 권력이 존재와 관련되는 지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넌지시 암시하는) 창발을 조장하기”, “방향 짓기”라는 문구가 존재 권력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을 넌지시 암시하는 창발”이라는 표현에서 존재 권력이 유연성을 갖추려는 면을 읽을 수도 있다. “생명이 막 움직임을 시작하며 아직 있는 듯 없는 상태로 barely there 존재가 되려는 찰나”라는 불확실하거나 잠재적인 상태에 대해서 작용하는 권력이기 때문에 그 권력은 유연성을 갖추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존재 권력과 관련하여 비선형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정의상, 비선형 시스템에서는 주어진 입력과 결과 간의 정확한 일대일 대응을 보장할 수 없다.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결과는 일종의 변조 modulation이다. 창발의 단계에서 공명 및 간섭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존재권력] 126쪽)”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존재 권력에 대해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존재 권력은 9.11 테러 등과 같은 위협들에 대해 대응하는 권력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건 위협이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현재화된 것은 구체적인 위협 또는 위협들의 집합이 아니며, 여전히 더 많은 위협들이 경고 없이 출현하리라는 잠재성 potential뿐이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상황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위협을 생성하는 것, 즉 위협-유발 threat-o-genic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을 결정짓는 것은 어떤 순간이든, 모든 순간마다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내는 세계의 능력이다. ... 객관적 불확실성이란 인식론적 범주인 만큼이나 직접적으로 존재론적인 범주이기도 하다. 위협은 ‘미결정적 잠재력이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갖춘다. ([존재권력] 29쪽)

“위협은 미결정적 잠재력이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갖춘다.”라는 표현에서 “미결정적 잠재력이라는 존재론적 지위”라는 구절이 특징적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현한 위협들’로 인해 위협의 잠재성이 주목받고 그 잠재성은 “존재론적 지위”를 갖추게 되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존재 권력은 존재 또는 존재론과 결합하는 독특한 권력이 된다.

존재 권력이 잠재성의 존재론이라고 할 만한 것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
“가능성과 현실성”의 관계와 “잠재성과 현실성”의 관계 중에서 잠재성과 현실성의 관계가 “창조적인 발생”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는 측면이 더 강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능성이 어떤 무엇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말하는 것에 비해서, 잠재성은 어떤 무엇이 될 수 있는 잠재력과 함께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 고갈되지 않는 잠재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은 존재 권력이 “전 지구적 상황은 위협을 생성하는 것, 위협-유발 threat-o-genic에 가깝다”고 본다는 것이다. 존재 권력의 존재론에는 잠재성이 포함되면서도 그 잠재성은 “잠재적 위협”에 국한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존재권력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법들은 어떠한 것들일까?
우선 시행착오와 관련된 방법을 예로 들 수 있다.
‘잃어버린 원인을 따라가지 마라. “효과 기반 작전을 채택하라.” 이는 창발 단계에서 “통제 수단들”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이는 어둠 속을 상당히 많이 탐색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시행착오의 경험적인 실습이다. 한 번의 개입으로 성공할 수 없다. 시행, 착오, 시행, 착오. 통제란 끝이 없는 반복이다. 결과들의 연쇄가 야기되고 즉시 그 후에 재조정이 필요하다.’ ([존재권력] 166쪽)

인과관계라는 과학적인 인식체계와 거리를 두고 연속적인 시행착오를 통해서 상황에 대한 조정 내지 통제를 목표로 하는 것에서, 존재권력이 그 자신의 적극적이고 치열한 방법론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화 priming 현상’과 관련된 방법도 특징적이다. 점화 현상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경험이 다음 자극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관계라고 한다. 이 영향을 미치는 관계 안에는 의식적인 지침이나 의도는 없다고 한다.
TV에서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점심시간에 그 메뉴를 보았을 때 별생각 없이 그것을 주문했다면, 그것은 점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TV를 통해 지각한 것과 음식점의 메뉴에 대한 지각 사이에 비 인식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 권력에서 점화 현상의 비 인식적인 영향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불확실하고 잠재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점화 현상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먼저 “기억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기억은 녹음 장치에 저장된 정보와 달리 동일하게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 사용될 수 있다.
미지의 위협들에 대응하기 위한 전투 훈련에 점화 현상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불확실하고 잠재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초년병들은 기민하고 적응력 있는 군인다운 반응의 습관을 깊이 배게 하려는 전투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 훈련은 단지 고정된 것들을 회상하는 습관만을 심어줄 수는 없고, 더 많은 훈련된 습관들에 대한 회상들이 인식되지 않은 채 행동으로 이행되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라든지 점화 현상을 이용하는 것들 등은 존재 권력이 미지의 위협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방법론이지만, 시행착오라는 것이 실패를 전제로 한다는 점 그리고 잠재적인 존재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오는 비선형적 결과 등으로 인해 존재 권력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03년 5월 이라크 전쟁에서 선제적 ‘승리’를 했노라고 말한 부시의 선언은 아프가니스탄, 그다음은 파키스탄, 다시 이라크로 번졌던 지리멸렬한 자가-증폭하는 지리 정치적 위기 이상의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했으며, 그 위기는 미국 정부가 교체된 지금도 여전히 수년 동안 지속하면서 자체 진행된 결과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존재권력] 93쪽)

저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존재 권력의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풍부한 방법론들을 통해 독자들이 존재 권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존재 권력이 미지의 위협들에 대해 대처하는 적극적인 면들과 한계들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존재 권력에 대한 이해는 존재 권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후위기, 팬데믹, 다종다양한 각종 미지의 위협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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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정동정치』(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8)


정동(affect)은 지난 수년간 인문학계의 핵심적 키워드이자 치열한 논쟁의 주제다. 우리 시대에 정동 개념 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정동의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브라이언 마수미가 2001~2014년 사이에 동료 학자, 활동가, 비평가, 예술가 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모은 대담집이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마수미는 정동 개념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며, 이해하기 쉬운 생활 속 사례를 들어 정동 개념을 설명한다.


가상과 사건 : 활동주의 철학과 사건발생적 예술』(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정유경 옮김, 갈무리, 2016)


사건은 늘 지나간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지나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현실적으로 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금-존재했던 것과 곧-존재하려고-하는-것을 포괄하는 경험을 지각하는가? 『가상과 사건』에서 브라이언 마수미는 윌리엄 제임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질 들뢰즈 등의 저작에 의존하여 ‘가상’이라는 개념을 이 물음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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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영화, 그리고 인터넷 같은 미디어를 살핀다. 미디어는 수사학적이고 기호학적 표준 모델에 기초한 읽기 테크닉의 영역을 넘어 감각의 다양한 등록체계 위에서 작동하는 처리과정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급진적 경험주의와 앙리 베르그송의 지각에 관한 철학을 들뢰즈, 가타리, 그리고 푸코와 같은 전후 프랑스 철학의 여과를 통해 재개하고 평가하면서, 마수미는 운동, 정동, 그리고 감각의 문제와 변형의 문화논리를 연결시킨다.


정동 이론 : 몸과 문화·윤리·정치의 마주침에서 생겨나는 것들에 대한 연구』(멜리사 그레그·그레고리 J. 시그워스 지음, 최성희, 김지영, 박혜정 옮김, 갈무리, 2015)


이 선집은 정동 연구라는 이제 막 발아하는 분야를 정의하는 시도이자, 이 분야를 집대성하고 그 힘을 다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글쓴이들은 정동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정동이란 의식적인 앎의 아래와 곁에 있거나 그것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내장[몸]의 힘으로서, 우리를 운동과 사유, 그리고 언제나 변하는 관계의 형태들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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