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호] 객체지향예술론이 다시 소환한 ‘예술의 자율성’ㅣ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5-02 15:42
조회
468
 

객체지향예술론이 다시 소환한 ‘예술의 자율성’


이수영 (미술작가)


철학에서 ‘인간-주체’를 없애고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연 객체지향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이하 OOO)이 자신의 예술론에서 인간의 역할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한 것은 언뜻 기이하게 들리기에 흥미롭다. 물론 OOO에서는 인간 역시 객체들의 민주주의의 주권자 중 하나인 객체일 뿐이다. 하먼이 폐기한 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 주체의 이항 대립적 특권이지 비인간 객체를 인간이 누렸던 특권 자리에 대신 올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객체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 하먼 철학의 핵심이기에 하먼은 예술의 자율성을 수호해온 예술 형식주의 계보에 입적한다. 그러나 하먼은 선배 형식주의자들이 ― 감상자가 배제된 작품 자체의 어떤 형식만을 예술이라고 주장하거나(프리드, 그린버그), 아니면 작품과 상관없이 감상자의 어떤 판단력을 아름다움으로 보거나(칸트) ― 여하튼 예술의 형식을 인간과 세계라는 근대적 이원론에 기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먼은 ‘예술 작품’과 ‘감상자’ 두 객체가 융합한 제3의 상위 객체로 예술형식을 주장한다. 마치 물이 수소분자와 산소분자 두 객체들의 융합객체인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작품과 감상자의 융합에는 ‘연극적 상연’이라 부르는 감상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뒤샹의 변기가 예술형식으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감상자(최초의 감상자인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가 그것을 어쨌거나 미적으로 경험하는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변기가 하얀 빛깔의 딱딱한 세라믹 덩어리라는 성질들에서 물러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인간 감상자의 역할이다. 현전하는 항에서 현전하지 않는 항을 불러내는 이 인식이야말로 미적인 것이고 객체가 자율적이라는 증거이다. 변기의 구성요소와 변기의 효능으로 해소될 수 없는, 자신의 감각적 성질들 뒤로 실재적 객체가 사라지는 상태를 하먼은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한다. 하먼이 미학을 철학의 으뜸으로 삼는 이유도 바로 미학이 객체의 자율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먼에게 예술적인 것과 예술적이지 않은 것의 갈림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명확하다. 바로 ‘직서적인 것’(literalism)은 비예술이고 ‘은유적인 것’은 예술이다. 세탁기 매뉴얼처럼 세탁기의 구성 부품들과 세탁기의 효능들의 나열은 직서적인 것이며 세탁기가 자신의 감각적 성질과 효능에서 분리되어 현전하지 않는 어떤 객체의 물러섬으로 은유된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것이다.

그러나 변기든 세탁기든 레디메이드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먼에게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OOO의 시각에서 너무 뻔한 일상적 사물인 레디메이드는 그냥 감각적 성질들의 덩어리로 머물러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간혹 물러서 있는 실재를 소환하는 미적 인식이 일어난다 해도 하이데거의 존재처럼 전체주의적 혐의가 짙은 일자가 강림한 표면일 뿐이기 십상이다. 레디메이드 미술의 사촌인 아카이브 미술도 OOO 예술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한낱 혼합매체 벼룩시장에 불과한’ 직서적인 것들의 배열이거나 정치적 메시지의 단순 콜라주로 예술형식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해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행성 예술 작업들 역시 사건들의 끊임없는 흐름(들뢰즈, 베르그손)으로 객체의 자율성은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이다.

현대미술은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거나 대리석으로 조각된 사물형태의 오브제이기보다는 설치, 상황, 사건, 과정, 개념, 우연성, 편집, 아카이브 등 비형식적인 매체에 올라타 과학, 철학, 사회, 복지, 정치적인 비예술 분야들과의 경계를 흐리며 미술계 밖으로 집단적 엑소더스를 하고 있다. 하먼은 상황, 사건, 개념, 퍼포먼스 모두가 객체이기에 OOO 예술은 구식의 미술을 배제한 최신 예술과 화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먼이 말하는 미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예술형식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 여느 예술들이 OOO의 예술 시험에 합격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OOO에서는 사회정치적 맥락, 전기적 맥락, 언어학적 맥락, 심리학적 맥락과 경계가 뒤섞이는 작업들은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분야와 다른 한 분야 사이 혹은 한 객체와 다른 한 객체 사이에 자유로운 관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관계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은 불교의 화엄사상에서는 가능하겠지만 하나의 작품을 우주 전체와 연결해서야 객체들의 자율성은 해체되고 떠도는 시뮬라크럼 미학이론이 되어 버리고 만다. 코수스의 개념미술이 OOO 예술에서 낙제한 이유도 무언가를 예술이라고 선언하는 언어 수행만으로 객체의 자율성을 우주로 흩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자율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의 현존에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정확히 “어떤 실재적 객체와 그 감각적 성질들 사이에 형성된 균열의 연극적 상연”으로 정의된다. ‘연극적 상연’은 인간 객체-감상자의 은유적 인식이 예술을 좌우한다는 말로 들려 양자물리학의 ‘관찰자 효과’까지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인간에 절대적으로 기댄 무한히 열린 예술을 상상하게 하지만 하먼이 탈락시킨 현대미술의 항목들을 보면 실제로 그런 인식 퍼포먼스가 가능하기 위한 예술형식은 매우 협소해 보인다.

하먼은 번다한 바깥을 차단하고 예술 객체의 내부를 차갑게(매클루언) 하여 감상자의 풍요로운 몽상이 피어오르는 예술형식을 21세기 앞으로의 예술로 점친다. 하먼에게 앞으로 촉망받는 가장 차가운 예술은 건축이고 20세기적인 보수적 예술은 소설과 영화이다. 지금 칭송받고 있지만 객체의 자율성이 확보되기 어려운 모든 뜨거운(매클루언) 예술들, 즉 관계적인, 정치적인, 규정적인 형식들은 박물관으로 내쫓길 것이라는 오멘(omen)으로 책은 끝난다.

1900년대 미술의 이념이었던 ‘예술의 자율성’과 ‘연극적 선회’는 선대 미술에서 탈출하려 했던 독립선언이었다. 그렇게 얻은 자유에 너무 지나치게 취해 애써 지키려 했던 자율성을 다시 잃어버렸다고 판단한 듯, 하먼은 앞으로의 예술을 건설하기 위해 다시 이 복고적 이념인 ‘예술의 자율성’과 ‘연극적 선회’를 소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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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객체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4월 22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s://bit.ly/3vYCTuB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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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브뤼노 라투르 :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1)


브뤼노 라투르의 진화하는 정치철학에 관한 선구적인 해설서이면서 객체지향 정치학을 발전시키려는 실험적 시도다. “라투르의 고유한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로서 제시되는 이 책에서 하먼은, 이전의 저작 『네트워크의 군주』에서 시도한 대로, 브뤼노 라투르를 본격 철학자로서 고찰한다. 이 책에서 하먼은,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관련성에 의거하여, 라투르의 사상적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하며 초기 라투르, 중기 라투르, 후기 라투르를 각각 대표하는 세 가지 저작, 즉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자연의 정치』,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를 정치철학적 견지에서 주의 깊게 검토한다.


비유물론 : 객체와 사회 이론』(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사회적 세계에는 어떤 객체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특정한 피자헛 매장은 그 매장을 구성하는 종업원과 탁자, 냅킨만큼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매장이 종업원과 손님의 삶에 미치는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과 피자헛 기업, 미합중국, 행성 지구만큼 실재적이기도 한가? 이 책에서 객체지향 철학의 창시자인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사회생활 속 객체의 본성과 지위를 규명하고자 한다. 객체에 대한 관심은 유물론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고 흔히 가정되지만, 하먼은 이 견해를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비유물론' 접근법을 전개한다.


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


현대 철학의 ‘사변적 전회’를 선도한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 만나는 풍경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를 현대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설득력 있게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화를 넘어서는 ‘실재론적 객체지향 형이상학’을 인류세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철학으로 제시한다. 브뤼노 라투르를 형이상학 철학자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와 더불어 라투르를 경유하여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공히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사물들의 우주 : 사변적 실재론과 화이트헤드』(스티븐 샤비로 지음,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1)


이 책은 비상관주의적 사고에 대한 사변적 실재론의 일반적인 주장, 즉 인간 정신이 관계하고 이해하는 방식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사물 및 객체에 대한 주장을 탐구한다. 스티븐 샤비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현재에 지배적인 사변적 실재론 사상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한 세기 동안의 형식화와 정화를 향한 집요한 근대주의적 시도를 거쳐, 어쩌면 애초에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시대에 화이트헤드는 마치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듯이 돌아온 것이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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