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회 맑스코뮤날레 다지원 섹션 김미정 발표에 대한 토론문

작성자
smellsound
작성일
2019-05-25 11:05
조회
816
별자리와 대피소

김대성(생활예술모임 <곳간>)

1

공식화된 깃발을 부착하고 안정적으로 띄운 ‘공인된 드론’이 아니라 크고 작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띄운 ‘비인가 드론’으로 세상을 조망하면서도, 너무 복잡하고 시시때때로 굴절되는 탓에 그 면면을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바로 그 세상의 세세한 면들을, 저공비행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비평적 글쓰기로 읽혔던 이 글의 아슬아슬한 운전술에 주목하게 된다. 상공에 떠 있는 상태이지만 발딛고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까지 내려와 그들 사이를 정교한 테크닉으로 가로지르며 채집한 오늘의 ‘꼴’이 어떤 ‘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일정한 예열이나 문턱 없이 곧장 펼쳐보이는 ‘비평적 운전술’에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문학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매개와 유관/무관하게 네트워킹하며 예술의 경험을 공유하고 구축하는 ‘관계성’의 원리”(김미정, 『움직이는 별자리들-잠재성 운동 사건 삶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시론』, 갈무리, 2019, 36쪽)에 주목하며 기존의 미학적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하는 예술현장과 조건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이 글은, 생명정치시대의 통치술과 그 조건을 전유하는 비정규적이고 비규정적인 집합(assembly)의 현장에서 생성되는 예술의 가능성과 그 “존재론적 자리바꿈”(42쪽)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스스로 무리를 이루고 자기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양태와 원리”(22쪽)가 헤게모니 쟁투의 장이기도 한 터라 하나의 깃발(민주주의) 앞에 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셈블리라는 말속에 집회를 대의제로 이동시킨 ‘의회’라는 뜻이 잠복해 있는 것처럼 새로운 주체들의 출현이 언제라도 혐오와 차별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우리가 인민이며 민중이자 다중이다’) 재전유되고 재맥락화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염려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은 이 글은 그럼에도 무엇보다 무언가가 바뀌고 있는 생생한 트랜지션 현장에 흘러넘치는 정동적 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 변화를 조망하고 진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위험할 수도 있는 비평적 운전술을 통해 현장(들)을 누비는 과정이 내겐 이 글이야말로 존재론적인 자리바꿈을 감행하고 있는 비평적 현장이라 생각되었다.

2

내 글쓰기는 진단하고 조망할 수 있는 드론을 띄우기는 커녕 한줌의 영역도 벗어나지 못해 애면글면 아등바등 하는 형편이라 이 글과 같은 눈높이에서 응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작은 ‘오솔길을 찾는 걸음의 감각’으로도 괜찮을지 염려되지만 산자락을 타고 산맥을 횡단하는 트래킹 모드로 전환해 그간의 이력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작게나마 만들어보고 싶다. 『움직이는 별자리들』을 읽으면서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글이 ‘#문단_내_성폭력’에 관한 글(주제)이었던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별자리’(“필부필부인 우리가 오히려 별이 되고 별자리를 대신할(늘 대신해왔을) 역량을 갖고 있음을 지금 다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47쪽)와 ‘흔들리는 재현체계’에 관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 저간의 사정을 다각도로 접근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 그런 상황에도, 아니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더 선명하게 논의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의욕과 그 전선이 차별화된 지점일수도 있겠다는 욕심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뚜렷해졌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겪으면서 물어야 했고 묻고 싶었던 것은 나-우리가 믿으며 기대고 있었던 ‘문학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오래전부터 자행되어온 ‘문단 내 성폭력’을 통해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하게 이끌렸던 작품과 작가들이 여성혐오(misogyny)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집단군’임을 조망하고 그에 대한 비평적 반성과 성찰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해보고 싶었다. 

2015년 이후(‘신경숙 표절 사건’이 아닌 ‘문단 내 성폭력’이 사건화된 이후) 변화된 비평장의 분위기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싶다. 이런 물음을 품고 있다. 문단은 자신에게 도착한 편지를 ‘수신’하지 않고 ‘대독’하게 함으로써 답장이라는 응답이 아닌 이슈화해버린 것은 아닌가?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재빨리 ‘페미니즘적 독해’라는 방법으로 전환해 그것을 새로운 해석이나 해석의 확장이라는 미명으로 논점을 희석시켜버리지 않았는가? 소수자성(퀴어 서사)에 대한 주목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것처럼 심화의 논리화를 꾀했지만 보다 보다 핫한 주제로 옮겨간 것은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거친 규정이자 도식화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이런 문제일수록 문단 내의 차이를 선명하게 하고 가시화되지 않은 전선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진술하는 이유는 그간 ‘문단의 구조에 관해 뭔가를 말하기 위해선 그와 관련된 논의들을 빠짐없이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이자 내부의 명령) 탓에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경험이 적지 않기 때문에(실은 그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고 좌초된 글이 대부분이어서) 여기에선 이런 의구심을 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한국문학장이 ‘문단 내 성폭력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문학장 내부엔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비평을 쓰는 이들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비평을 쓰는 이들과 다급하게 돌이킬 수 없게 된 이 길이 잘못된 길임을 공표하며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 이들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포스트 대의제 현장과 문학에 대해, ‘이후’를 가능하게 한 역사의 동력에 관해 논의하거나 주요 사건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유, 응답하지 않았던 이유, 당사자라는 감각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된다. 능력과 역량 부족이라는 말은 지루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점이라고 말이다. 게으른 자기정당화처럼 보이는 이 진술은 비평 행위의 영역이 보다 광범위해졌고 보다 세분화되었다는 변화에 대한 감각을 가리킨다. 문학이라는 공통장이 과거처럼 비평가 집단의 지평에 다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 포섭될 수 없을 정도로 다종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평가 개인의 역량 부족이나 메인스트림의 감각을 가지지 못한 결여의 표지가 아니라, 이런 표지가 가리키고 있는 보다 선명한 현실의 좌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까. 비평(영역)은 국지화되었다. 또 비평은 국지화되어야 한다. 전처럼 (한국) 문학 전체를 포괄할 수도 없고 효과적으로 조망하거나 논평할 수도 없다. 너무 많은 주체들이, 다종한 욕망들이 앞다투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비행술로 개척한 항로 위에서, 각자의 걸음과 보폭으로 보고 말하고 상상하고 예감하는 논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건 비평이 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비평 무용론이나 몰락의 징조가 아니다. 할당 받은 비평의 역할이 아니라 각자가 구축해가는 비평적 전선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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