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 시의 확장, 시의 새로운 장소성 — 다중지성의 정원 <시 읽기 모임>을 중심으로 / 표광소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9-10 17:52
조회
1572

시의 확장, 시의 새로운 장소성
— 다중지성의 정원 <시 읽기 모임>을 중심으로


표광소


* 이 글은 계간 『리토피아』 71호(2018년 가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litopia21.com/


한국에 생존하는 5,000여 명의 시인들은, 300여 종의 문예지에 한글로 쓴 신작시를 게재하고, 한 해에 1,200여 종(2012년)의 시집을 발행한다. 그런데 시인들이 생산하는 시편들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시를 쓴다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지만, 시를 읽는다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시 읽기를 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시를 혼자 읽는 기쁨 못지않게 여럿이 한 자리에 모여 시를 읽고 삶을 이야기하는 기쁨 또한 귀하다는 두근거림으로 <시 읽기 모임>을 다중지성의 정원에 제안했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2013년 5월 13일(월요일) 오후 7시에 <시 읽기 모임>의 예비 모임을 가졌다. 이날 출판사 사원, 학원 강사, 도서관 사서 등 세 사람이 참석하여 인사하기, 모임의 규칙 정하기 같은 의견을 모았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에 시를 각자 두 편 이상 준비하여 공유하며 한 달 남짓 모일 때 간호사 한 사람이 참여하여 네 사람이 한 자리에서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근이 잦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나는 <시 읽기 모임>에 참여하려고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고, 그 때마다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용기를 불끈 내어 사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하고 매주 모임에 출석했다.

네 사람 중에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부득이하게 결석할 때는 한두 사람의 부재가 무척 크게 느껴지다가 대학생 한 사람이 곧 참여하여 다섯 사람이 모여서 시를 읽을 때부터 한두 사람의 부재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내 회사원 한 사람과 대안학교 교사 한 사람도 참여하여 모두 일곱 사람이 시 읽기를 함께 하면서 모임의 출석 인원은 매번 네다섯 명에 이르렀다.

다중지성의 정원의 <시 읽기 모임>에서 공유한 첫 시는 「취한 배」(랭보. 1871년)였다. 폭풍우 속에 항해하며 바다에 눈 뜨는, 열일곱 살 랭보의 배와 <시 읽기 모임>은 등가라고 나는 판단했다. 선장도 선원도 없이 “초연한 강물을 타고 가는” 그 배와 같이 <시 읽기 모임>에는 “배 끄는 선원들의 인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고, 모임의 규칙은 ‘뒤풀이를 하지 않는다.’와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전부였다.

①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본인이 미리 준비한 시를 1편 또는 2편을 읽는다. 시 읽는 방법은 각자 선택하여 자유롭게 준비한다. 즉 시를 낭송하기 · 시를 노래로 부르기 · 그냥 읽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읽는다. 악기를 준비하거나, 조명과 배경 음악 등을 각자 준비해도 괜찮다. ② 본인이 읽은 시를 자유롭게 소개한다. 소개할 때는 그 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유, 그 시를 공유하고 싶은 이유 등을 간단하게 들려줄 수 있고, 작품을 분석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그 시와 아무 관계가 없지만, 그 시를 통해 연상되는 사회 뉴스, 본인의 생활이나 기억 등을 얘기할 수도 있다. 본인이 읽은 시에 대해 굳이 소개의 말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③ 한 사람이 ‘시 읽기’(읽기+소개)를 갈무리하면 또 다른 한 사람이 ‘시 읽기’를 시작한다. ④ 앞 사람에 이어서 다음 사람이 준비한 시를 읽고 시를 소개한다. ⑤ 이상과 같은 형식으로 <시 읽기 모임>을 진행하며 최소 1시간 이상 한 자리에 머문다. ⑥ 모임에 참석하는 동기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⑦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이 적으면 한 사람이 읽는 작품의 수가 많을 수 있다. ⑧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이 많으면 한 사람이 읽는 작품의 수가 적을 수 있다. ⑨ 특정 시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날도 있다. 해당 시인을 모임에 초청할 수도 있다. ⑩ 다음 모임에서 어느 작품을 읽을지 미리 공지할 수 있고 공지를 안 할 수도 있다.

나에게 <시 읽기 모임>은 사막의 우물 같았다. 1주일에 한 번 모여서 시를 읽고 있으면 시를 읽는 사람과 시를 듣는 사람들 곁에 시가 와서 공기와 같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 자리에 현현한 시는 시집이나 잡지, 신문의 종이 위에 인쇄한 활자가 아닌 시였다. 그렇게 시를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시 읽기 모임>을 제안하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다. 시를 향유하는 기쁨의 누적을 보람이라고 명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는 무엇인가? <시 읽기 모임>에 참여하며 이 질문 앞에 설 때가 있다. 시는 종이 위에 ‘시’라는 이름으로 인쇄한 낱말들의 집합이 아닐 수 있다. 시집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어둠에서 새로운 세상의 빛이 반짝이고, 이 세상의 공허는 저 세상으로 가는 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마음으로 나는 시를 읽었다. 현실의 물신주의 사회를 부정하고 다른 사회를 창조하는 행위가 시를 창작하는 행동이라면, 물신주의 사회에 잠재하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열쇠를 시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만나고도 싶었다.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 읽기 모임>을 하다보면 이 질문과 마주서는 시간이 반드시 있다. 나는, 시를 읽을 때 시에 나타난 주어와 서술어를 찾는다. 주어나 서술어를 생략할 수는 있어도 주어나 서술어가 처음부터 없는 시는 불가능하다. 즉 시인이 써놓은 그대로의 문장을 차분하게 따라가고, 시인이 최초의 문장을 어떤 방법으로 수정하여 표현하고 있는지 찾아본다. 그렇게 시를 읽기 시작하면 형식주의 비평을 만나고, 형식주의 비평을 한 꺼풀 벗기면 역사주의 비평도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때부터 시 작품 바깥의 자료를 찾는다. 인터넷 검색도 도움이 된다. 한 걸음 더 다가서면 인터넷에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들이 눈에 띈다. 이번에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시 읽기 모임>을 하며 현존하는 시의 유통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시를 향유하는 공유지를 개척한다는 일말의 자긍심도 있었다. 이상의 집 · 윤동주문학관 · 김수영문학관 등을 방문하는 일정도 <시 읽기 모임>을 하는 즐거움이었다. 도시락을 들고 남산에 올라 소월 시비 · 조지훈 시비 앞에 서 있어도 보고, 백운호수에 들러 해 저무는 호숫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럿이 걷기도 하였다. 그런 나들이를 할 때도 각자 시를 찾아 들고 와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중지성의 정원의 출판 정원(갈무리)이 발행하는 ‘마이너리티 시집’ 시리즈의 <시집담회>에 <시 읽기 모임>의 회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신간 시집을 읽은 따끈따끈한 감회를 허심탄회하게 발표하기도 했다. 조문경 시집 『엄마 생각』(2013년 7월), 이한주 시집 『비로소 웃다』(2013년 12월), 오진엽 시집 『아내의 시』(2013년 12월), 객토문학 시집 『탑』(2014년 1월), 문래동 예술가들의 시집 『ㄱ』(2015년 12월)의 <시집담회>에서 창작 주체와 대면하여 속내를 표현한 시간들도 <시 읽기 모임>에 활력으로 작용했다.

삶과 예술은 <시 읽기 모임>에서 교호했다. 여럿이 한 자리에서 또박또박 시를 읽으며 삶의 기억을 조심스레 끄집어내어 공유하고, 공유한 기억은 새로운 시를 생산하는 역동적 기능을 하여, <시 읽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의 신예 시인이 출현했다. 시를 읽으며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 어떤 분들은 만학의 길에 도전하여 학위를 새로 취득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20대 이후 30년 남짓 언론 및 출판계에 종사한 나는 언론 출판계의 생업을 접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인생 2모작’을 시작하는 동력을 <시 읽기 모임>에서 얻었다. 이쯤 되면 ‘시는 쓸모없는 물건’이라거나, “시를 만드느니 버터를 만들어라.”(영국 속담)와 같은 언표들은 물신주의 시대의 편협한 생각이다.

다중지성의 정원의 <시 읽기 모임>은 2018년 1월부터 시인을 한 사람씩 선정하여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그 동안 한용운(1월) · 김소월(2월) · 정지용(3월) · 김영랑(4월) · 이상(5월) · 백석(6월) · 이육사(7월)를 읽었고, 계속해서 윤동주(8월) · 김광섭(9월) · 김춘수(10월) · 김수영(11월) 시인을 읽을 계획이다.

올해 읽고 있는 시인들은 일제 강점기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거의 같은 시간에 생존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로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 사실에 착안하여 이 시인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시 읽기 모임>에서 지금 논의하고 있다. 현재는 아이디어 단계여서 어떤 양태의 무대와 극으로 연출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런 논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를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기와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이육사 「교목」(전문)

이번 7월에 만난 이육사는 강인한 의지와 기개의 사람이다. 그는 서릿발 칼날 진 억압과 박해에 타협하지 않는다. 당대 현실과 마주치며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고 현실 극복 의지를 나무에 투사한 시 「교목」을 읽을 때 한 분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라고 질문했다. <시 읽기 모임>에 모처럼 제기된 이 진지한 주제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는 돈. 돈을 버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아직은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로봇이 생산 현장에 등장하고,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는 미래 사회에는 시를 읽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까?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이육사는 생전에 발표한 시에 무지개를 자주 호명한다.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강 건너간 노래. 1938년 7월), ‘무지개 같이 황홀한 삶의 영광’(아편. 1938년 11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절정. 1940년 1월), ‘운하는 밤마다 무지개 지네’(독백. 1941년 1월), ‘새벽 하늘 어디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끝없이 헤어지세’(파초. 1941년 12월) 같은 시들을 읽다가 나는 몇 해 전에 목격한 무지개가 기억났다.

2014년 8월 10일 오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의도의 새누리당 당사를 방문할 때였다. 경찰이 집권 여당의 당사를 에워싸고 유가족의 방문을 봉쇄한 길에서 어머니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 때 빌딩과 빌딩 사이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에서, 지금 여기 이 길을 지켜보고 있는 ······ 것만 같은 ······ 무지개가 떠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 호명한 무지개와 물신주의 사회에서 내가 목격한 무지개는 똑같은 무지개가 아니다. 이육사의 시를 여럿이 함께 읽으며 대화는, 2014년 서울 하늘에 뜬 무지개와 2016년의 촛불 혁명으로 번져갔다.

시는 삶의 현장에 있고, 시 읽기에 왕도는 없다.

표광소 : 시인. 1991년 월간 『노동해방문학』에 시 「지리산의 달빛」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지리산의 달빛』. 현재 다중지성의 정원 <시 읽기 모임> 길잡이.

◎ 시 읽기 모임 안내 http://daziwon.com/?page_id=76&uid=51&mod=document&page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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