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전쟁과 영화 1-2장 심아정님 발제문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2-11 23:26
조회
1611
심아정님 로그인이 안되셔서 발제 대신 올립니다.

전쟁과 영화-지각의 병참학 (Paul Virilio)

2019/02/09(Sat)심아정

프롤로그

폴 비릴리오는 시각 테크놀로지가 전쟁기계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그것의 주체인 인간조차 기계화되는 양상을 진단하면서, '지각의 병참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속도와 시각과 전쟁을 접목하여 기술이 개입된 시각 체계의 공격성과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속도와 시각을 강화하려는 기술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되며, 시각기계의 발명과 전쟁 테크놀로지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군사위성을 활용한 우주공간의 전 세계 감시정보 시스템에서 병사들 개개인에게 전쟁의 포괄적 상황을 시각적으로 전송하고 전송받는 디지털 군사카메라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시각기계가 전쟁의 명백한 주권자 노릇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된 기술 네트워크는 21세기 지구의 어떤 곳, 어떤 활동도 한눈에 내다 볼 수 있는 원격감시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며, 사이버광학은 과거의 미학이나 민주주의의 윤리학을 허물며 전체주의적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릴리오는 매체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파멸의 가능성을 숨기고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인간 실존까지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면서, 특히 '기계가 개입된 시각'이 가져올 파행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인간이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옹호이며 일종의 '기술의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스펙터클의 생산을 목표로 삼는 행위이고 따라서 무기를 지각(知覺)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행위이며 필연적으로 표상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점이 비릴리오가 전쟁을 영화와 관련짓는 이유다. 그렇기에 그는 ?전투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그 지각 장(場)의 형태 변환의 역사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비릴리오는 전쟁에서 어떻게 영화적인 재현 방식이 (어떨 경우에는 영화보다 앞서서) 이용되어 왔는지를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그 밖에도 할리우드는 어떻게 1차 세계대전에 귀속되었는가, 스타 시스템은 어떻게 지각의 병참술의 효과가 되었는가 있는가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전쟁과 영화의 착종된 관계에 대한 논의의 소재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비릴리오가 주목받는 이유는 테크놀로지 문제에 대한 철학의 지속적 관여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구 역사에서 테크놀로지는 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곤 했지만, 비릴리오는 테크놀로지가 사회․정치․문화․예술을 아우르는 인간의 전체 삶과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천착한다. 건축학자로서 도시 계획 등에 관심을 가졌던 경력도 이런 사유를 뒷받침한다. 그의 사상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형태가 사회 형태를 촉발한다?고 보았던 발터 벤야민(1892~1940)의 문제의식과 세계를 파악하는 통로로서 감각․지각의 중요성을 일깨운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의 현상학이다. 또한 인간은 어떤 대상을 어떤 배경 속에서만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다고 본 20세기 초 ?게슈탈트 심리학?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요컨대 비릴리오는 인간의 신체가 물리적․기술적 환경에 놓일 때 지각이 구조화되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고, 그런 관심 속에서 세계에 대한 상투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새롭게 지각할 것을 촉구했다.

스스로의 사고체계를 ?질주학?(dromology)이라고 했듯, ?속도?는 비릴리오 사상의 핵심 개념이다. 비그는 사회적․정치적․군사적 공간이 그 근본 수준에서 운동 벡터와 이 운동 벡터를 달성하는 전송 속도로 형성된다는 점을 먼저 깨닫지 못하면 사회사나 정치사, 군대사의 진실에 올바르게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속도'는 단지 물리적 운동의 빠르기가 아니라, '사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핵심 동력'이다. 예컨대 인터넷의 발달로 가능해진 원격 실시간 통신과 비행기의 발달로 실현된 고속 운송은 서로 다른 차원의 능력인 것 같지만, '가속을 통해 우리와 사물의 시공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는 점에서 다 같은 ?속도기계?다. 그는 현대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전송․통신 속도의 가속화가 즉각적인 ?눈앞의 존재?(presence) 대신 가상․원격에 대한 감각을 부추기고 공간에 바탕한 체화된 체험을 축소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맥락의 분석도 날카롭다. 비릴리오는 현대 운송 및 통신에서 '거리를 폐기해온 가속의 문제'가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속성의 변화와 세계화 진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속도의 발달이 영토지정학에 뿌리를 둔 ?공간 차원?의 정치를 밀어내고, 실시간 정보 교환, 시장 활동, 세계적 자본 이동의 관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시간 차원?의 정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이런 '시간정치의 발흥'은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최소국가주의 정치학을 밑받침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제1장 군사력은 허상에 의해 지배된다.

현대의 전쟁은 점점 더 심리전이 되어 간다. 비릴리오에 따르면, 전쟁은 기술 과학의 혁명 이전에 마술적 스펙터클로서 기능한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적을 포획하는 것이 아니라 사로잡는 것이고, 죽음 이전에 죽음의 공포를 적에게 심어주는 일?이고 ?무기의 힘은 야만적 힘이 아니라 영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상없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심리적 신비화를 수반하지 않는 최첨단 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르크 블로크는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에서 프랑스 시민들이 독일군의 폭격기 융커 87이 뿜어내는 기괴한 사이렌 소리에 '이미' 질려 있었고, 그 순간 패배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견고한 요새를 자랑하던 프랑스군은 이러한 심리전에 단번에 위축되었다. 이 이상한 패배의 원인은 독일군의 빠른 이동속도와 고도의 심리전 때문이었다.

또한, 핵과 관련해서 사용되는 ?신뢰성?이라는 개념은 상대의 타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의지, 즉 엄포의 신뢰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늘날 전쟁의 억제가 '공포의 평형'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히로시마 원폭이 적들에게 보여준 것은 가공할 파괴력뿐만 아니라 대량학살도 서슴치 않겠다는 의지와 그로 인한 공포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도 금새 낡은 것이 되었고, 새로운 공포의 창안을 위해 각국의 군대들은 결코 사용될 것 같지 않은 같은 무기를 매입하고 개발함으로써 ?극장용 무기?가 ?작전 무대?를 대체하게 되었다.

?전투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그 지각장의 형태 변환의 역사이다. (영토적, 경제적인...) ?물질적? 승리를 쟁취하는 문제이기보다 지각 장들의 ?비물질성?을 전유하는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는 ?사실상 무기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비릴리오는 말한다. ?따라서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에 컬러 영화가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괴벨스는 최초의 아그파컬러 영화인 마리카뤽크가 주연한 <아름다운 외교관>의 상영을 금지했다. 그가 본 미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비해 영화의 채색법이 혐오스럽고 음울했기 때문이다. 이어 아그파컬러 기술이 향상되었고 1943년 UFA 창립 25주년 기념식과 ?히틀러 영화? 10주년을 맞이하여, 거대한 예산을 들여서 성공적인 특수 효과를 도입한 아그파 컬러 영화인 <문크하우젠 남작의 모험>의 시사회를 성대하게 연다. UFA는 국가의 보조금 혜택을 누리면서 설립 초기부터 자본가와 ?무기산업'에 의존했다. 독일은 전면전이 끝날 때까지 거대한 예산을 들여 영화촬영을 계속해 나갔다.


제2장 영화, 그것은 ?나는 본다(see)?가 아니라 ?나는 난다(fly)?이다

타륜의 작동 방식을 관찰하며 탄창과 크랭크 핸들로 된 기관총을 구상하거나, 다발콜트 권총에서 착상을 얻어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천체용 리볼버식 사진기를 발명한 아이디어는 공중에서 이동 중인 대상을 조준하여 그 대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고속 촬영용 소총의 창안에 이용되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연방군은 공중 지도 송신이 가능한 기구를 이용했고, 솔개와 카메라, 비둘기와 사진기, 기구와 카메라 등 다양한 혼합물을 거쳐 1967년, 미 공군은 라오스 상공을 비행하며 태국이나 베트남의 IBM 센터로 정보를 발송하는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다. ?이제 더 이상 '직접적 시각'은 없다. 사격장은 촬영장으로, 전장은 영화 세트가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중 선전영화를 찍었던 그리피스 감독은 전쟁이 끝날 무렵 프랑스 전선에 도달했다. 그러나 거기엔 이미 낡은 전쟁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육안으로 볼 때 전장은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나무도, 식물도, 물도, 육탄전도 없었다. 죽이는 자와 죽는 자의 쌍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들은 종종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전투원들은 적을 살해했더라도 자신이 누구를 살해했는지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보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간접적 시각'을 갖게 된 병사들은 모든 감각적 준거를 갑자기 상실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눈에 보이는 목표를 과대 평가한다.

19세기 말에 영화와 비행이 정확히 동시에 나타났다. 그리고 비로소 비행은 ?보는? 방식, 어쩌면 ?보는 것?의 최후의 수단이 된다. 지상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포격을 조정하며 사진을 찍을 임무를 띤 비행기 그 자체는 ?날아 다니는 감시탑?으로만 인정되었지만, 이내 비행사들이 제공한 정보를 고려하여 성공적 공격에 필요한 성향을 최초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 초에 조종사들은 촬영을 위해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해야 했다. 1917년, 전투 조종사들은 이미 공중 회전 등으로 불리는 ?특수 효과?를 비행기술에 도입했고, 비행은 가능한 한도 내에서 놀라운 '위상학적 시각'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정찰기는 일정한 고도와 부동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쉽사리 노출되었고, 비행기에서 주는 정보는 지상 근무자들이 사진을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베트남에서 미국인들은 이러한 항공 정찰의 문제점을 깨닫고 ?실시간? 정보의 즉각성을 확보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때부터 생리적 흔적이 중요해졌다. 사물의 이미지보다는 진동, 소음, 냄새에 민감한 실재계의 센서, 적외선 플래시, 온도와 체질에 따라 신체를 구별하는 온도 기록 이미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실시간 녹화의 출현으로, 과거의 사진술에 의한 고정된 정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폭격기로부터 도주하는 사람들은 파괴가 아닌 '거리화'에 매달렸다.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것으로만 살아가고, 순전히 거리에 의해서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보화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면서 땅의 습곡, 풀숲이나 나무숲에 숨었다. 조셉 로지의 영화 <풍경 속의 형상들>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미국 서부 대평원에서 인디언들을 추격하던 바로 그 기병 제1사단이 전투 헬리콥터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던 때에 촬영되었다. 이는 10년 후에 제작된 <지옥의 묵시록>은 헬리콥터의 움직임을 시각화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애초에 전장은 지각의 장이며 군사령관에게 병기는 화가의 붓과 팔레트와 같은 재현수단이었다. 비행사의 손은 무기와 함께 이중 카메라의 셔터를 자동적으로 가동시키게 된다. ?전쟁 중인 인간에게 무기의 기능이란 곧 눈의 기능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은 영화인들은 전장에서 뉴스나 선전 영화를 제작했고, ?예술 영화?로 연속적 진화를 하게 된다. 영화 감독들은 비행사들처럼 자신도 기술 엘리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전쟁 직후 아방가르드 작품 생산 전반에서 기술적 놀라움으로 융합된 창조물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감독들은 전쟁 뉴스 영화나 공중 고속도 촬영 자료들이 보여주는 기술적 효과들을 전대 미문의 스펙터클로 대중에게 전달한다. 전쟁 사진은 아메리칸 드림의 사진이 되고, 상업화된 할리우드 시스템의 이미지들과 뒤섞이게 된다.

최초로 군대 숙소에 사진이 걸린 핀업걸은 헤니 포르텐이었다. 이상적인 소녀 이미지의 핀업걸은 아득히 먼 곳에 있어 만질 수 없는 미지의 여인이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여인의 신체에 던져지는 군사 정복자의 시선은 그가 전쟁으로 황폐화된 영토적 신체에 던지는 시선과 동일선 상에 있다. 그것은 ?스타?를 찍는 연출자의 관음증에 선행하며, ?표적 거리에서 총구를 들이대는 것?과 같다. 실제로 1914년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감독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등에서 전쟁을 치렀다. 스트립 쇼는 군에 의해 영국에 공급되는데, 무대 위의 옷을 벗는 쇼 걸은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영화가 된다. 무대를 둘러싼 유리는, 셔터를 누르는 고객과 쇼 걸 사이의 스크린을 이룬다. 비릴리로의 관점은 이처럼 스타 시스템, 섹스 심벌의 창조를 1차 세계 대전 동안 모든 분야에서 전개된, 강도 높은 지각의 예기치 못한 병참술의 차원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1914년 비행기 조종사는 모터와 바람의 소음을 막기 위해 솜으로 귀를 막고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경을 써야 했는데, 30년 후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폭격기의 조종사석은 놀라울 정도로 통상적 감각이 스며들지 않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고립은 조종사들에게 정신적 타격이 되었고, 공군 전략 사령부는 이를 완화할 방법을 고안해 낸다. 폭격기의 장비 위에 밝은 색깔의 만화 주인공을 핀업 걸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함께 그려 넣고, 감미로운 음성의 여자 아나운서들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조종사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정신적 안정을 제공했다.

마릴린 먼로가 한국전이 한참일 때 미군 사진 작가에 의해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먼로는 미스 화염 방사기라는 별명으로 군대 막사의 벽에 가장 많이 붙어 있는 핀업 걸이 된다. 핀업 걸들의 이미지는 실물 크기가 아니었고, 스크린처럼 확대될 수도, 포스터, 잡지 표지나 잡지에 접혀진 페이지처럼 작고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다. 안정적 차원을 결여한 이 육체들은 머지 않아 ?조각난 채로?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1914년 이후, 할리우드가 기상 천외한 카메라의 운동을 증식시켰다. 거리, 깊이, 3차원, 공간은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불과 몇 년 만에 역동적 공격을 위한 조종의 장, 거대한 에너지 기계 장치가 된다. 영화는 대상에게 새로운 형상을 부여하는 새로운 기하학의 은유가 되었고, 전쟁 산업은 1차 세계 대전 후 커뮤니케이션과 운송 수단의 생산과 항공 공간의 상업화로 전환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생산한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14년 이후 영화는 강력한 산업이 되는데, 그때부터 움직이는 것이 생산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국가는 여론 형성의 수단을 별로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신문은 제한된 수의 독자들과 접촉할 뿐이었다. 이때 소련에서 레닌이 낡은 니켈 오데온(미국 초기 5센트짜리 영화관)을 전 국가 차원의 활동으로 만들었고, 영화를 조직화된 집단의 생산물로서 제조하는 전쟁 이미지의 강도 높은 생산에 기초한 산업적 실용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다.

스텔란 리에의 <프라하의 대학생>에는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이미지를 마법사에게 파는 대학생이 나온다. 이미지는 주인공을 대신해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정복자, 호전주의자로 남을 것을 강요하며 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이 분신을 파괴하려고 주인공은 그에게 총을 쏘지만 오히려 죽는 것은 자신이다.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도난당한다. 배우는 그의 이미지가 감독이나 마법사 같은 타자의 욕망을 따라서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비릴리오는 영화는 전쟁이라고 단언한다. 전쟁은 인민의 물질적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합리성이 아닌 신비적인 것에서 나오는 힘이며, 신비적 공식들의 매혹적 암시는 충분히 모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하다. 비물질적 힘이야말로 전투의 진정한 지휘자이다.

<사족>

1) '보기(seeing)의 실패'라는 문제를 명시하는 영화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비릴리오의 지각이론과 전쟁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근무하는 폭발물 제거반 대원들이 시각기계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서 그 스스로가 전쟁기계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복합적 시점 체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전쟁의 지각방식을 관객들이 그대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비릴리오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실패는 곧 시각체계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보기의 실패, 오인과 착시, 그릇된 판단, 그럼으로써 통제불능의 지각상태에 이르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절대 속도에 도달한 무기체계의 등장으로 공간이 소멸되는 새로운 전쟁상이 집약된 바그다드는 역시 일종의 벙커로서, 전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의 저항'과 '신체없는 저항'의 양상을 극대화한다. 기계적인 이미지에 의존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눈은 철저히 퇴화되고 온전한 판단력도 상실된다. 이는 전적으로 전쟁의 지각체계가 그 주체인 인간을 타자화한 결과이며, 그 최종적인 종착점은 인간 자체가 자폭기계인 자멸적 형상의 등장이다.

2) 그렇다면, 혁명의 속도는 어떻게 창안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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