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난민화되는 삶』 | 김기남, 김현미, 미류, 송다금, 신지영, 심아정, 이다은, 이용석, 이지은, 전솔비, 쭈야, 추영롱,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 심정명 옮김 | 2020.06.03

카이로스
작성자
다중지성의정원
작성일
2020-05-30 16:06
조회
1698


보도자료

난민, 난민화되는 삶
Refugees, Being Subject to Refugeeism


난민은 ‘인간’과 ‘시민’, 즉 출생과 국적 간의 연속성을 깨뜨림으로써
인간과 시민의 권리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글쓴이 김기남, 김현미, 미류, 송다금, 신지영, 심아정, 이다은, 이용석, 이지은, 전솔비, 쭈야, 추영롱, 도미야마 이치로 | 옮긴이 심정명 | 정가 24,000원 | 쪽수 472쪽
출판일 2020년 6월 3일 | 판형 사륙판 무선 (130*188)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Potentia, 카이로스총서 65
ISBN 978-89-6195-239-2 03300 | CIP제어번호 CIP2020019758
도서분류 1. 사회학 2. 문화인류학 3. 사회비평 4. 역사
보도자료 refugee-pr-fin.hwp refugee-pr-f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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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수는 난민이라는 비국민의 신분과 젠더와 국적에 따른 차별에 의해 그리던 고국에서 잊혔다. 노수복은 소중한 가족과 일상을 저널리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을 ‘중국인 유유타’라 소개했으며, 소박한 언어였으나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초국가적 연대에 대해 말했다. …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노래로 비유하자면 이는 ‘함께 부르기’이자 ‘이어 부르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지 않는 노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다양한 측면들을 시사한다. 특히 증언의 ‘최초’의 장면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민과 국가로 말끔하게 환원할 수 없는 사람과 장소가 발견된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은 이 노래에 목소리를 덧대는 일, 함께 그리고 이어서 부르는 일이 될 것이다.
― 이지은,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 135쪽


『난민, 난민화되는 삶』 간략한 소개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했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난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현재, 로힝야 난민캠프를 비롯한 전 지구의 열악한 격리시설 곳곳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끄트머리에 있는 존재들부터 삶의 기반을 잃고 난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난민화된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연쇄되어 있는가를 보게 한다. 그리고 이 간극 혹은 한계-접점에서, 타자에게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지금 여기의 삶이 저 먼 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또 지속적으로 연결의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 책은 2018년 10월 무렵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구·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공간의 압축적인 기록이다.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이라는 이름은 ‘난민’과 ‘현장’을 서로 부딪쳐, 난민화되는 몸들이 놓인 상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주제, 즉 난민 인권활동가가 겪는 어려움, 민족국가 바깥의 위안부 할머니들, 난민화된 병역거부(기피)자, 성소수자 난민, 항상적 난민 상태의 동물들, 전체가 드러날 수 없는 난민의 이미지 등은 그 각각의 상태들이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고 사유의 그물이 된다.

<난민×현장>은 난민화되는 삶을 사상적·문학적·역사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러한 삶을 살게 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아카데미 안팎의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과 위치에서 첨예하게 토론하는 티치인(Teach-in) 공통장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난민혐오 속 뿌리 깊은 인종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난민운동의 접점, 로힝야 난민의 고통을 듣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자리, 난민을 만들어내는 전쟁에 연루된 일상에 대한 인식, 금지영역을 깨뜨려 장소의 운명을 바꾸는 힘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처럼 이 책은 아카데미 안팎, 활동가와 연구자의 차이,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서 부딪쳤던 한계-접점의 경험을 섬세하게 사유함으로써, 2018년에서 2020년까지 만들어져 온 ‘또 하나의 시공간’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 준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 상세한 소개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하다

이 책의 필자들은 2018년 10월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을 시작했다. 2018년 10월 무렵은 ‘왜’라는 질문 없이도 누구나 난민을 둘러싼 상황을 고민하게 되던 때였다. 2018년 6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은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마주한 ‘집단난민’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청원에 71만 명이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난민을 향해가기 시작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던 자리를 난민이, 성소수자가 대체해 가는 상황 속에서 ‘상호교차성’에 대한 논의가 부상했지만, 반면에 소수자와 소수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난민×현장>이 난민운동과 다른 소수자 운동(여성, 장애, 동물, 성소수자, 병역거부)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다.

난민과 다른 소수자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나 난민과 여성, 난민과 장애, 난민과 동물, 난민과 성소수자...와 같은 식으로 난민과 다른 소수자의 ‘접점’을 모색하려 했던 처음의 기획은, 난민다움, 여성다움, 성소수자다움 등 ‘~다움’을 그/녀들에게 밀어 넣고, 그러한 말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내재적 경험의 다채로운 색깔과 깊이를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고 필자들은 회고한다. <난민×현장>은 소수자 운동이 ‘정체성’을 투쟁의 기반으로 삼아,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난 관계를 만들어 왔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체성 정치’를 단지 비판하기만 하는 논의와는 거리를 뒀다. 그러나 담론의 층위에서 소수자들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은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 만들거나 소수자들 사이의 피해의 무게를 재거나 소수자 사이의 대립을 양산하는 포퓰리즘과 연결될 위험이 있었다.

어떻게 난민화되는가를 질문하는 토론 공통장을 모색하다

따라서 <난민×현장>은 ‘어떻게 난민화되는가’를 계속 질문하면서 각각이 놓여 있는 몸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사유와 활동을 전개하려고 했다. 또한 티치인이라는 형식을 전유하여, 아카데미의 안팎이나 연구자와 활동가 등 상이한 위치와 입장을 가진 존재들이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하여 안심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통장을 모색했다.

소박하지만 꾸준했던 <난민×현장>의 활동 속에서, 난민과 ‘우리’의 간극을 인식하게 하는 ‘왜 하는가’라는 물음은, ‘그래도’라는 반작용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이 책의 제목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이러한 멀어짐과 다가감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동어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제목이, <난민×현장>에게는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자각과 난민의 상태 사이에서 갈등했던 결코 안정될 수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은 난민들이 있는 자리로부터 <난민×현장>을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라는 속삭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난민화된 삶과 만나고 난민들의 곁에 서도록 촉구하는 힘이었다고 믿는다.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 부피와 무게를 부여하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아카데미 안팎, 활동가와 연구자,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서 부딪쳤던, 사유·활동·마주침의 한계-접점들을 담고 있다. 이 한계-접점들은, <난민×현장>이 난민 및 난민화되는 삶에 다가갔고 또 다가갈 수 없었던 지점들을 선명하게 표시한다.

만약 『난민, 난민화되는 삶』이 2018년 이후 난민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발행되었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가 좁히려고 하는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 난민과 ‘우리’, 활동가와 연구자, 당사자와 연구자 등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간극을 확 벌려서, 그 지점에 부피와 무게를 부여하려 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한계-접점을 더 깊이 파고들면서 <난민×현장>은 각각의 ‘몸’이 놓인 자리를 인식하는 동시에, 바로 그 자리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조금씩 상상할 수 있었다.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시대에 공통의 장소는 어떻게 가능할까?

혐오발언의 대상이 여성에서 난민으로, 다시금 성소수자로 연쇄되는 과정 속에서 혐오발언의 또 하나의 양상이 대두했다. 그것은 난민과 여성을, 난민과 노동자를, 난민과 청년을, 소수자와 소수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이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소수자들 사이의 거짓 대립을 증폭시키는 혐오 발언의 포퓰리즘적 확산을 첨예하게 비판하고, 공통의 저항의 장소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담았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정체성에 고착되고 각 그룹의 피해의 경중을 재는 폐쇄적인 운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각각의 몸이 놓여 있는 장소가 서로에게 사유의 그물이 되고 투쟁의 공통장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모색했다. 이러한 시도와 실패들은, 점차 공통장이나 공론장이라는 오프라인의 관계 맺기가 어려워져 가고 혐오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관계 맺기의 욕망과 윤리를 고민하면서 투쟁의 장소가 지닌 역사성을 질문하게 한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누가 난민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난민화하는 조건을 살핀다. 이를 통해 교차하는 권력의 억압과 착취를 비판하는 한편, ‘증언’을 듣고 말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증언’을 당사자에게 귀속시키고 절대적인 진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증언을 둘러싼 여러 관계 속에서 ‘증언’의 공통장을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다양한 화두들

철학적 차원에서, 이 책은 고통이나 상처조차 통치성의 도구로 활용하는 ‘인도주의적 통치성’(버틀러)의 세계에서, 어떻게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고통을 듣고 표현하는 공통장이 가능할지를 질문한다. 이는 고통의 재현이 고통 포르노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하는 저항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묻는다.

역사적 차원에서 이 책은 역사 속의 난민과 현재의 난민을 연결 짓고, 난민과 다른 소수자성의 한계-접점을 찾아내는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난민을 최근의 문제로만 파악하거나 난민을 국민국가 비판으로만 파악하는 시도들을 벗어나, 난민화되어가는 각자의 경험과 삶의 문제로 난민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사회이론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한국사회의 난민 문제를 인종주의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보여준다. 혐오발언이 난민을 인종화하는 측면, 아시아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지역에서 봉기 이후 불거진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폐해 등이다.

이 책은 일종의 새로운 사회운동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운동론으로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즉 권력에 의한 억압과 착취의 교차를 보는 교차성 이론을 새롭게 전유했다. 위안부, 병역거부자, 동물, 이주민 이미지 등 고전적인 주제를 2018~2020년을 관통하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운동의 흐름(성소수자 운동, 난민인권활동, 동물권, 새로운 위안부 논의, 병역거부와 가해자성, 무기거래 감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여성장애, 활동가의 위치에 대한 인식)과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드러난 한계-접점은 피해나 소수자성의 더하기나 소수성을 다른 소수성과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방식을 벗어나, 교차하는 억압의 문제를 역사적 경험 속에서 사유하게 한다.

피해와 가해의 구조를 ‘개인’에 환원시키지 않고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의 큰 틀 안에서 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논문 혹은 에세이라는 기존의 고착된 글쓰기 장르나 분과화된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간중간 들어가는 사진이나 그림, 무엇보다 글과 이미지가 교차하는 작품 자체인 글들도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고착된 장르, 분과학적 연구, 글 혹은 이미지라는 양자택일의 경직성을 벗어나 1년 반 동안 한국 사회의 난민과 마주하고 난민화된 삶을 기록한 다채로운 아카이빙, 즉 아카이브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아카이빙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우리가 난민이다’라는 동화의 논리도, ‘난민은 남일이다’라는 이화의 논리도 모두 경계한다. 오히려 난민과 난민화된 삶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파고들고, 다양한 사유와 활동과 만난다.

1부와 2부에 실린 여덟 편의 글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을 연결짓고 저항의 공통장을 모색하려는 고민을 담았다. 3부에는 티치인에서 발표되었던 다섯 편의 글을 모아 <난민×현장>이 티치인을 통해 경험한 마주침의 한계이자 언젠가 다가올 접점을 표시한다.

한국 사회의 난민화되는 삶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8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렵고 오해하기 쉬운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각각 ‘자신’의 문제로 느끼게 하며 동시에 타자에게로 다가가게 한다. 또한 활동가, 연구자, 비평가, 예술가, 변호사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5편의 글에 묻어나는 현장성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현장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는 고민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제1부 ‘매듭과 전염’은 신지영의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글은 <난민×현장>과 난민 사이의 매듭이 되어 주었던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난민의 증언을 듣는 활동가’의 증언을 듣고 썼다. 이를 통해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이 얽매인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타자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연결되려는 욕망의 전염을 상상해 보고자 했다.

제2부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은 <난민×현장>이 마주한 한계-접점을 각자의 몸이 놓인 위치에서 깊이 파고들어가 부딪친 지점의 파열음을 담았다. 이지은의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는 1991년 이전, 위안부의 경험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위안부임을 증언했던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증언에 초점을 맞춘다. 이 글은 귀향을 ‘거부’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그녀들의 증언이 서로를 비출 때, 겹쳐지면서 울려 퍼지는 ‘난민의 노래’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덧대어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심아정의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은 병역거부를 결심한 친구 박상욱 곁에서 그 병역거부 이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법을 위반한 자들의 정의’가 설 장소를 모색한 글이다. 이글은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적극적 병역이행자도 난민화된 삶으로 몰아가는 ‘국민화’의 폭력을 간파하고 비남성 및 성소수자들의 병역거부를 논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연다.

송다금의 「동물의 난민성과 재난민화」는 여성이나 난민이 ‘나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언설을 파고든다. 즉 ‘불리한 위치, 불리한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재난민화’되어 버리는 ‘동물’이 놓여 있는 상황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이 글은 동물의 항구적 재난 상태를 증명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을 통해 종차별주의와 육식문화의 폭력성을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전솔비의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는 난민다운 표정이나 옷차림 등 “~다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표현을 모색하기 위해 <이주민패션매거진> 프로젝트에 주목한다. 정형화된 이주노동자의 이미지와 그 위에 놓인 중압감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예술 프로젝트에 주목하며 이 글은 이주노동자의 ‘눈에 띄고 싶은 욕망’에 초점을 맞춰, 생존권으로 수렴되는 권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다은, 추영롱의 「이주와 정주」는 2018년 겨울과 2019년 여름에 베를린에서 만났던 난민, 이주민, 비국민, DV를 피해온 여성 등 다양한 법적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되살린 장소와 관계를, 활자와 이미지로 아카이빙한다. 이들의 작품은 지역적인 동시에 국제적인 관계로, ‘망명 중인 여성들’에게로 향해가면서, 맨몸인 채로 존재를 빛내는 만찬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제3부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은 3회에 걸친 티치인의 발표문을 모아 그 생생한 순간들을 전달한다. 이지은과 전솔비가 공동으로 쓴 「난민×현장 티치인」은 티치인 형식에 대한 설명과 각 회의 분위기와 논점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제1회인 ‘신인종주의와 난민’에서 발표되었던 김현미의 「국민은 어떻게 난민을 인종화하는가?」는 제주도에 예멘난민이 집단으로 도착하면서 시작된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을 ‘신인종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분석한 것이다. 미류의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 그리고 난민」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활동을 전개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난민운동과 소수자운동의 접점을 모색한 실험적인 글로, 연대의 조건을 사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시한다.

제2회인 ‘로힝야 난민이야기’에서 발표되었던 김기남의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로힝야 난민의 역사와 현재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면서도, 로힝야 학살에 대한 인권기록 운동을 진행해 온 활동가의 실감이 전해진다. 「지금 여기에 로힝야는 어떻게 도착해 있나」는 이지은, 전솔비, 심아정, 신지영이 함께 쓴 글로 로힝야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분석하고, 아시아의 식민주의 속 인종주의 차별이 시민권의 부여와 어떻게 연동하고 있는지 향후 난민의 재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역사와 현재의 경험 속에서 조명했다.

제3회인 ‘비군사주의와 난민’에서 발표되었던 쭈야의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는 예멘이나 시리아 등 난민을 낳는 전쟁에 한국의 군산복합체 한화 등의 무기가 수출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밝힌다. 이용석의 「병역거부운동」은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를 차분히 되짚으면서 비남성들의 병역거부운동이 지닌 의미를 교차성에 기반하여 생생하게 전해주는 한편, 향후 병역거부운동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도미야마 이치로의 「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은 심정명의 번역으로 실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이라고 했던 오키나와인들의 말을 파고든다. 이를 통해 “~라면 어쩔 수가 없지만, 나는 ~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미리 배제”된 존재들이 또 다른 “미리배제”된 존재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무의식을 묻고, 이런 무의식을 벗어날 수 있는 “다초점 확장주의”를 주장한다.


글쓴이·옮긴이 소개

글쓴이
김기남
어쩌다 인권과 인도 지원의 흐름에서 아시아 분쟁 지역의 생존 피해자들과 삶을 나누는 것이 업이 된, 서툴고 부족함 많은 그러나 아직도 큰 꿈을 꾸는 아저씨. 공동설립자로 <아디>에 참여하고 있으며 난민 캠프의 수백 명의 로힝야 생존자들을 법률대리하는 그러나 이들과 만나면 항상 우는 울보 변호사.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젠더의 정치경제학, 이주,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다. 현지조사 방법론을 활용하여 결혼이주여성, 경제 이주자, 미등록이주자, 난민 등 한국의 다양한 이주자를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 아동의 공교육 경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2005), 『친밀한 적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나』(공저, 2010),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공저, 2013),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2014), 『젠더와 사회』(2014),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 성소수자 혐오를 넘어 인권의 확장으로』(공저, 2019)가 있다.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 とみやま いちろう)
1957년생. 도시샤대학 글로벌 스터디즈 연구과 교수. 요즘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집단적으로 사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유한다는 행위 자체가 집단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사유하고 어떤 집단을 만들어 갈 것인가. 이것이 학술(學知)의 장에서 가장 물어져야 할 것이 아닐까? 이것이 사상이라는 문제가 아닐까?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 『전장의 기억』(임성모 옮김, 이산, 2002), 『폭력의 예감』(손지연 외 옮김, 그린비, 2009), 『유착의 사상』(심정명 옮김, 글항아리, 2015), 『시작의 앎』(始まりの知, 法政大学出版局, 2018 [문학과지성사, 근간]) 등이 있다. 번역되지 않은 저서 및 편저는 『근대일본과 ‘오키나와인’』(近代日本と 「沖縄人」, 日本経済評論社, 1990) , 편저로는 『기억이 말하기 시작한다』(記憶が語り始める, 東京大学出版会), 『포스트 유토피아 인류학』(ポスト·ユートピアの人類学, 石塚道子·田沼幸子共編, 人文書院, 2008), 『현대오키나와의 역사경험』(現代沖縄の歴史経験, 森宣雄共編, 青弓社, 2010), 『컨프릭트로부터 묻는다』(コンフリクトから問う, 田沼幸子共編, 大阪大学出版会, 2011), 『아마세에』(あま世へ, 森宣雄·戸邉秀明共編, 法政大学出版局, 2017), 『군사적 폭력을 묻는다』(軍事的暴力を問う, 鄭柚鎮共編, 青弓社, 2018) 등이 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간의 존엄에 던져진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평등에 도전하는, 세상을 바꾸는 힘들을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집은 인권이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밀양을 살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등을 함께 썼다.

송다금
문학연구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동물담론을 공부한다.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그리고 비인간동물 간 역학관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특히 동시대 소설 및 영화에 관심이 많다. 학교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동물난민’과 ‘여성동물’을 연구하며, 동물이 있는 현장과 학술장을 넘나드는 글을 쓴다. 최근 쓴 글로는 「구조되지 못한 동물, 도착하지 못한 난민」(『문학3』, 2019), 「‘위안부’ 재현과 담론을 통해 본 피해자성 고찰 ― <레드 마리아> 연작과 <귀향>에 주목하여-」, 『동아시아문화연구』, 2017) 등이 있다. 「<솔라리스>를 통해 본 타자의 가능성 연구」(2016)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논문을 쓰던 2015년 9월, 우연한 계기로 만나 함께 살게 된 고양이 둥이, 랑이, 봉이가 각각 건넨 ‘타자성’이라는 화두가 그 이후의 글과 삶에 많은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세 고양이와 일가를 이룬 뒤로 다른 동물의 삶도 깊이 생각하여 채식을 시작했다.

신지영
한국근현대문학과 동아시아근현대문학·사상·역사 전공.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한국 근대의 연설·좌담회 연구」(2010)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비교에 반하여 : 1945년 전후의 조선·대만·일본의 접촉사상과 대화적 텍스트」(2018)로 히토쓰바시대학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5년 전후 한국과 동아시아의 마이너리티 코뮌의 형성·변화와 이동, 접촉의 사건을 동아시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난민×현장>, <수요평화모임>, <페데리치 읽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난민, 여성, 장애, 동물의 상황을 동아시아의 식민주의 경험과 연결시키고 있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2012), 『마이너리티 코뮌』(2016), 『동아시아 속 전후일본』(일본어, 공저, 2018) 등이 있다.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 여성, 폭력을 키워드로 공부와 활동을 이어가면서 미군이 떠난 동두천과 부평을 오가며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있다. <난민×현장>, <수요평화모임>, 동물권 공부 모임 (Animal Lights Me:), 번역공동체 <잇다>를 통해 대학 바깥에서 새로운 앎과 삶을 시도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상영과 토론의 과정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 쓴 글로는 「어떤 ‘야생화’ 돼지의 삶과 죽음 ― 퀴어의 관점으로 침략종 레토릭을 재전유하기」(『문학3』 11호, 2020년), 「‘다른’ 이야기들의 가능성 ― 가해자들의 말하기(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평)」(『창작과 비평』 2020년 봄호), 「피해/가해의 틀을 흔들며 출몰하는 오키나와의 조선인 ― 가해자들의 ‘말하기’, 그 기점으로서의 오키나와」(『사이間 SAI』, 2019) 등이 있다.

이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시각예술가. 2010년대 이후 미디어 환경에서 등장한 서브 컬쳐 및 미시적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매체 및 예술작품에서의 서발턴들의 이미지 재현 방식에 대해 연구 중이며,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프로젝트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이를 시각화 하고 있다. 개인전 : <2019, 환영 받지 못하는 자, Persona Non Grata, 미디어극장아이공, 서울, 한국>, <2018, 이미지; 변환; 상, 갤러리175, 서울, 한국>, <2018, 이미지 헌팅, 소네마리, 서울, 한국> 등. 단체전 : <2019 제 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한국구애전X, 미디어 극장 아이 공>, <2019, Anti-Freeze, 합정지구, 서울, 한국>, <2018, 뉴스, 리플리에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한국>, <2018, 누가그녀를 모함했나?,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한국>, <2018, Persona Non Grata, 환영받지 못하는 자, 탈영역 우정국, 서울, 한국> 등. www.ee-da.com

이용석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003년 <전쟁없는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줄곧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해 왔고, 중간에 출판사를 다니며 노동조합 활동도 했다. 지금은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비폭력 트레이닝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이지은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국가 경계에 놓인 여성의 삶에 관해 관심이 많고, 이와 관련된 글로는 「조선인 ‘위안부’, 유동하는 표상」(2018), 「‘교환’되는 여성의 몸과 불가능한 정착기」(2017) 등이 있다. 요즘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지금 여기에 적실한 비평을 쓰고자 골몰하고 있다.

전솔비
연세대학교 비교문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 경계와 타자의 문제를 연구하며 소수자운동과 시각문화의 접점에서 공유되는 언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미디어문화연구학과에서 「영국 흑인 예술에 대한 스튜어트 홀의 비판적 개입과 그 의의 : 예술과 문화연구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 인실의 세계>, 등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쭈야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캠페인팀 코디테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소수자와 약자의 이야기를 담는 연극 연출가로도 살아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해외 무기 거래 저항행동 연대에 관심 있으며,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추영롱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주제는 ‘정치적 존재론’과 ‘헤게모니 비판’이다. 독일어 통번역가이자 독일어권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코리아 포룸』(Korea Forum)의 편집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오드리 로드 ― 베를린 시절, 1984년에서 1992년까지>의 한국어 자막 제작과 한국 배급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여성주의, 반인종차별, 비식민주의 저항 운동 네트워크의 활동가로서, 다양한 구조 속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확장하고 공명하는 데에 주력한다.


옮긴이
심정명
일본 도시샤대학교 외국인 연구원. 도미야마 이치로의 『유착의 사상』, 기시 마사히코의 『처음 만난 오키나와』, 교고쿠 나쓰히코의 『후항설백물어』 등을 번역했고, 「재난을 이야기하는 어떤 방법 :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확장되는 폭력의 기억 : 메도루마 슌의 『무지개 새』와 『눈 깊숙한 곳의 숲』을 중심으로」등의 논문을 썼다.


책 속에서 : 난민, 난민화되는 삶

분업화된 착취와 억압이 교차하며 소수자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배제하도록 ‘연루’시키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수자는 다른 소수자와의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힘들다는 상태 속에서 오히려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꿈꾸는 감각을, 어떻게 하면 솟아나게 할까?

― 신지영,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 38쪽

노수복은 “역사를 바르게 알린다는 각오”로 증언에 나섰다고 하는데, 그녀가 바로잡고자 한 역사는 민족국가의 역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군인’에 대해 “한국 사람, 일본 사람, 타이 사람, 중국 사람, 모두 친구”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역사였을 것이다. 이는 노수복에게 특별한 역사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녀가 삶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감각이었을 것이다.

― 이지은,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 110~111쪽

‘난민화’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비국민’으로서의 삶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위의 역사적 사례들은 현행의 병역거부운동의 한 단면이 ‘국민화’의 폭력에 저항하는 것임을, 그리고 더 나아가 기존의 군사주의적 사회나 국가와는 ‘다른’ 사회, ‘다른’ 국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행위이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심아정,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 147쪽

‘풀밭 돼지’ 사진은 더럽고 좁은 돼지 축사를 은폐하는 허구이다. 빨간 염소의 희망찬 홍보는 염소가 아프리카 현지 현실에서 처하게 되는 어려운 처지와 괴리된다. 공통적으로, ‘이 동물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여기는 시스템에서는 버튼 누르는 단순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동물들의 이송과 번식, 생사가 결정된다.

― 송다금, 「‘동물’의 난민성과 재난민화」, 204쪽

‘외노자’와 초라한 옷차림을 연결하는 사고를 단절시키는 패션매거진이라는 시도는 줄곧 권리 아래에 놓여온, 혹은 권리 다음에만 등장해온 욕망의 문제를 전면으로 가시화시킨다. 모든 권리가 충족된 다음에, 혹은 무엇다움으로 일단 인정받은 다음에, 당장 법의 자격으로 먼저 등록된 다음에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꿈꾸는 것이 드러나야 하는가?

― 전솔비,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 229쪽

존재함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그들의 몸은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권력을 지배했던 자들이 여성과 유색인에게 부과했던 선입견과 혐오의 표식들은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맨몸 위에 그대로 투영된다. ... 그들은 맨몸으로, 온몸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빛내며 낯선 땅에서 새로운 정치적 언어를 창작하고 있다.

― 이다은, 추영롱, 「이주와 정주 : 베를린 기록」, 257쪽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우리를 분할하는 힘의 복수성과 가변성을 이해하고, 우리가 ‘우리’가 되는 순간, 그러니까 내전 지역 난민이 병역거부자와 ‘우리’가 되는 순간, 전쟁지역·난민캠프·국가영토를 막론하고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존재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을 더 많이 발견해야 한다. 그러한 ‘우리 됨’이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더라도, ‘여기’와 ‘거기’, ‘난민’과 ‘비난민’이 함께 놓이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우리 삶을 억압하는 공통의 조건들을 드러내야 한다.

― 이지은·전솔비, 「난민×현장 :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275쪽

국민과 난민의 이분법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국민과 난민이 만나야 한다. 이런 지향만이 모두가 생존의 불안과 증오의 감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존재 자체로 소속되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은 국민과 난민의 경계를 허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 김현미, 「어떻게 국민은 난민을 인종화하는가?」, 302쪽

지금까지도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에 난색을 표하는 정부의 변명은 ‘사회적 논란’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논란의 승인이 아니라 논란을 파헤쳐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귀담아들을 말이 있는지 살피고 어떤 대안이 있는지 사회적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 미류,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 그리고 난민」, 309쪽

로힝야 생존자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나의 질문에 “인샬라”라고 답한다. 인샬라는 희망의 다른 말일 것이다. 제반 여건은 희망을 품어도 될지 의문이지만 사실 희망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샬라를 듣는 순간 내게는 이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뱉어지는 회한이 느껴진다. 그 순간 그들의 눈빛이 전달하는 것은 삶의 노곤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 김기남,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 360쪽

방위 산업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정부가 나서서 전쟁 산업을 키우고 무기를 확산하는 일에 앞장서며, 사람들이 안보를 명분으로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기에 환호하는 세계에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을 기회로 여기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 쭈야,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419쪽

절대 변하지 않고 형성 즉시 온갖 불이익과 차별을 무릅쓰고라도 발현되어야만 진정한 양심이고 그러한 양심의 자유만 보장한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양심의 고뇌를 느끼다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는 결코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 이용석, 「병역거부 운동」, 443쪽

어려움은 해결하기보다는 우선은 장에 끌어안아야 하고, 장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장의 논리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이러한 논리가 바로 장의 운명과 관련되지 않을까? 이러한 장을 구성하는 것은 말들이다. 장의 운명을 짊어지는 것이 말이라면, 이는 이미 운명이 아니다.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 도미야마 이치로, 「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 463쪽


목차

여는 글 ─ 마주침의 ‘한계-접점’에서 7

1부 전염과 매듭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 / 신지영 31

2부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 / 이지은 92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 : ‘난민화’의 메커니즘을 비추는 병역거부와 이행을 다시 생각하며 / 심아정 136
‘동물’의 난민성과 재난민화 : 사하라로 보낸 그 많은 염소는 모두 안녕할까? / 송다금 174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 : 어떤 옷차림의 사람들 / 전솔비 211
이주와 정주 : 베를린 기록 / 이다은·추영롱 240

3부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난민×현장 :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 이지은·전솔비 261

제1회 신인종주의와 난민
어떻게 국민은 난민을 인종화하는가? / 김현미 278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 그리고 난민 / 미류 303

제2회 로힝야 난민 이야기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 / 김기남 334
지금-여기에 ‘로힝야’는 어떻게 도착해 있나 : ‘로힝야 학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 신지영·심아정·이지은·전솔비 361

제3회 반군사주의와 난민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 쭈야 401
병역거부 운동 : 누구의 위치에서 어떤 평화를 말할 것인가 / 이용석 423
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 / 도미야마 이치로, 심정명 445

글쓴이와 옮긴이 소개 467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마이너리티 코뮌』(신지영 지음, 갈무리, 2016)

2009년 가을 ~ 2015년 초까지 도쿄.서울.뉴욕의 길에서 만난 소수자 마을(minority commune)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반전.반빈곤 활동,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활동, 야숙자들의 공원 점거 활동, 재일조선인 코뮌과 인종주의적 차별, 3.11 이후 탈원전.반원전 활동,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한 카운터 데모, 비밀보호법과 전쟁헌법 반대 활동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미군 기지 반대 운동, 두물머리, 세월호, 재능교육, 쌍용 자동차 투쟁을 하는 한국의 거리와 연결되며, 2014년 ‘범죄 인종주의’에 저항하며 뉴욕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아메리카 아프리칸들과 접속한다.

『증언혐오』(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이 책 『증언혐오』(그리고 이와 동시에 출간하는 『까판의 문법』)은 2019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되는 날에 시작된 증언선 윤지오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1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연구의 결실이다. 이 두 책은 하나의 사건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증언혐오』는 사람들을 위한 증언자의 증언증여와 증언자를 위한 후원자의 화폐증여에 의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을 중심에 놓고 이에 대한 혐오의 경향이 변호사, 기자, 작가 등의 전문가 집단과 SNS 등에서 발생하는 모습을 그렸다.

『까판의 문법』(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의 증언을 통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에 대한 반발, 거부, 억압, 배제의 메커니즘이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마녀사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이것은 일명 '까판'이라 불리는 반공통장 공간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 공간은 SNS 까계정에서 출발하여, 변호사·기자·작가·교수와 같은 전문가 집단,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 국회의원·경찰·검찰·법원 같은 국가기관 등에 광범위하게 산포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논리이자 주류 담론 문법으로 자리 잡아 결국 전 사회적 까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이 전 사회적 까판의 논리와 운동 메커니즘을 권력형 성폭력 가해권력이 사용하는 권력 테크놀로지로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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