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8/8 「천개의 고원」 pp,822~833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8-08 11:15
조회
317
들뢰즈와의 마주침 세미나 ∥ 2021년 8월 8일 일요일 ∥ 손보미
텍스트: 「천개의 고원」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새물결


13 기원전 7000년 - 포획 장치


명제 11 어느 쪽이 먼저 발생했는가?

포획의 첫 번째 극 을 제국적 또는 전제적 극이라 부르자. 태고의 원국가가 머나먼 옛날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맑스주의에 따르면 국가 장치는 혈연에 의한 토지의 지배라는 코드를 가진 원시 농업 공동체에서 수립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 공동체를 공적 기능과 관료기구의 원천이 되는 전제적인 황제의 권력에 복종시킨다. 이것이 바로 속박, 매듭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이처럼 덧코드화 또는 <기표> 속에서 국가의 기호 체제는 (국가 장치는) 성립된다. 기계적 노예화 체계, 최초의 “거대 기계”. 황제-전제군주는 왕이나 폭군이 아니다. 왕과 폭군은 사유제가 등장할 때 오직 이 제도의 하나의 기능(함수)로서 존재할 수 있지만, 이와 달리 제국 체제 아래서는 모든 것이 공적인 것이 된다. 공적인 것은 곧 전제군주의 강력한 소유권이다. 이러한 소유권은 공동체들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여기서는 어떤 것을 주어도 소유권의 양도나 사유화는 동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빌려준 대가로 되돌려주는 것은 이자나 이윤 형태가 아니라 “지대”형태를 취하며 바로 이것이 사용 임차권, 또는 수익 공여권과 함께 돌아오기 때문이다. (822-824)

맑스와 차일드는 제국적 국가가 탄생하려면 공적 기능을 발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잠재적 잉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아나톨리아의 사탈 휘위크는 제국이 서로 다른 영토에서 얻어지는 야생의 종자나 동물의 비축자로서 이종 교배나 자연 도태를 가능하게 해주고, 이로부터 농업과 목축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농업, 목축, 야금술이 국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달리 말하면 농촌이 서서히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시가 농촌을 만드는 것이고, 국가가 일정한 생산양식(예컨대 농업)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국가가 생산을 하나의 “양식”으로 만든다. (824, 825)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두 가지 명제를 통해 진화론적인 틀 (점진적 발전 모델)을 깨뜨린다. 1) 소위 원시 사회들은 아직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 없는 사회인 것이 아니라, 국가 형태의 결정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즉 국가 형태를 저지하는 메커니즘을 조직하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다. 2) 국가는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국가의 출현은 도저히 환원 불가능한 전면적 절단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클라스트르의 설명은 진화론과 결별하기에 충분하지는 않다. (826)

모든 것이 국가일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국가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문자 뿐만 아니라 말, 즉 언어 활동이나 언어 체계도 국가를 전제하는 것이다. 원시 사회들은 “처음부터” 가까운 이웃들만이 아니라 먼 곳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러한 관계들은 국가를 경유했을 것이다. 말과 언어 활동은 먼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간의 관계를 규정한다. 언어(체계)는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언어(체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언어(체계)는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번역을 위한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도 국가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벡터들과 국가를 “추구하는” 경향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있다. (827)

“채집민-수렵민-목축민-농경민-산업인”이라는 경제적 진화론은 불가능하다. “유목민-반유목민-정주민”이라는 행동학적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분산된 집단의 자즉자족 경제- 마을과 소읍-도시-국가”라는 환경론적 진화론도 더 낳지 않다. 도시는 소읍을 경과하지 않고 농업을 창조하며 유목민은 정주민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목적 삶은 정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되기”, 즉 하나의 운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인들로부터 국가로, 다시 국가로부터 유목민들의 전쟁 기계로 지그재그 식의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유추해서도 안 된다. 국가가 전쟁 기계를 전유 이 기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경우에도 그만큼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오직 “되기” 속에서만, 상호 작용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역사는 그저 다양한 종류의 “되기”의 [공시적] 공존을 연속적으로 번역할 뿐이다. 그리고 국가는 언제나 이미 거기에, 즉 다른 곳 또는 바로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827-829)

국가는 출현하기 전부터 이미 원시 사회들이 그 존속을 저지하는 현실적 한계로서 또는 이 사회들이 수렴되어가지만 자기-소멸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시에 이 사회들 속에는 국가를 향하는 벡터들과 국가를 저지하는 메커니즘이 동시에 존재하고, 접근할수록 비켜나는 수렴점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저지한다는 것은 동시에 선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가 실제로 출현할 때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우연성이 개입하게 된다. 국가는 일단 출현하면 채집민-수렵민들에게 작용을 가해 경작, 목축, 분업의 확대 등을 강요한다. 그러나 출현하기 전부터 이미 국가는 채집-수렵민들에게 수렴파 또는 구심파로서, 즉 기호의 전도 또는 국가의 출현을 초래하는 소렴점에서 말끔히 사라져버리는 소실파 형태로 작용한다. (따라서) 국가“이전”의 원시인들과 원시인들 “이후”의 국가라는 역방향의 두 가지 운동, 두 가지 방향의 시간의 동시성 또는 공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829, 830)

중앙 권력의 형성을 저지하는 동시에 예견해주는 집단적 메커니즘들이 있다. 중앙 권력은 문턱 또는 정도에 따라 성립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문턱을 넘어서면 예견되는 것이 실제로 성립하던지(고름) 혹은 성립하지 않게 되며, 또 저지되었던 것은 그런 상태를 벗어나 현실에 도래하게 된다. 이러한 문턱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들과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고름의 문턱들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도시와 국가는 서로 보충하는 관계에 있더라도 동일한 것이 아니다. “도시 혁명”과 “국가 혁명”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각각의 양상은 다르다. (830,831)

도시는 도로의 상관물이다. 도시는 오직 순환과 회로의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 회로상의 특이점이 바로 도시다. 도시는 입구와 출구에 의해 규정되며, 따라서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빈도를 요구한다. 도시는 극화 작용을 촉발한다. 문, 즉 수평선 위를 따라 다양한 장소를 거쳐 나가는 흐름을 유발하는 것이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다른 도시들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횡단적 고름 현상 또는 그물망이다. 도시는 탈영토화의 문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최대의 탈영토화는 연안의 상업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시는 온갖 유형의 점-회로의 조합으로서 수평선 위에서 대위법을 이룬다. 도시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국지적 통합을 이룬다. 도시 유형의 권력은 국가의 관료제와는 너무도 다른 관직 제도를 발명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큰 시민적 폭력인지는 아무도 무른다. (831,832)

국가는 도시와는 다른 방법으로 나아간다. 국가는 내적 고름 현상이다. 국가는 다양한 점의 집합을, 즉 아주 특수하며 서열상으로도 아주 다양한 지리적, 인종적, 언어적, 도덕적, 경제적, 기술적 점들을 공명시킨다. 도시가 농촌과 공명하도록 만들고 성층 작용에 의해 작동한다. 즉 수평적인 선들의 내부를 상하로 가로지르는 계층화된 수직체를 만든다. 국가 자체가 하나의 회로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공명을 위한 내부 회로일 뿐이다. 여기서 탈영토화는, 영토 자체가 대상이 되어, 영토가 지층 형성과 공명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국가의 중앙 권력은 계층적이며, 공무 기구를 형성하게 된다. 국가는 하위의 것을 종속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만 분리시킨 것을 재통합시킬 수 있으므로 중심은 한가운데가 아니라 정상에 있게 된다. 모든 국가는 국지적이 아니라 전면적인 통합이며 빈도가 아니라 공명의 잉여 작용이며 중간에서의 극화 작용이 아니라 영토의 성층 작용의 조작이다. (83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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