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11/10 『프롤레타리아의 밤』 4장 순찰로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11-10 19:16
조회
478
삶과 예술 세미나 ∥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 손보미
텍스트: 『프롤레타리아의 밤』자크 랑시에르 지음,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4장 순찰로

(103)
파리의 심장부에서 지옥의 심장부로. 불길한 영향, 전염병, ‘다른 곳’으로부터 불어닥친 해악에 떠밀려 나선형의 일주를 하는 식자공.
“누구나 알 듯, 불길한 영향이 산업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모든 사회적 해악의 단일한 원천; 경제학은 경쟁이라고, 도덕은 이기주의라고 명명한 이 근본적 해악

(103,4)
목수와는 다른 식자공의 병, 왕국, 세계.
식자공의 병: 영혼의 고통과 신체의 고통의 동일한 영속적 교환
식자공의 왕국: 도시의 거리와 소음과 볼거리
식자공의 세계는 유년의 길로부터 치명적으로 분리되지는 않는다.
식자공의 추방은 지리적 탈주이기에 앞서서, 환각이라는 형태를 띤다.

(105)
식자공이 산문에 사용하는 메타포: 현실을 허구 쪽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일정한 강조.
노동은 요구에 대한 예속에서 빠져나온 삶, 즉 독립의 수단이었다.
떠돌이 식자공은 마침내 얻어낸 노동에서 손상된 기운을 되찾는다.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불안에 대립하는 유력한 공리potent topic가 노동이었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노동
▶식자공의 현실과 허구란 어떤 것들일까?

(106,7)
나흘의 노동일이 끝나고 다섯째 날 식자공이 다리 위에 못박혀 있는 이유는 다리가 그를 여행자들의 가상의 시선 아래 놓아두기 때문이다.
“희망. 현기증이 나를, 물결이 또한 나를, 저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이, 살짝 잠든 채, 파리로 데려가 주리라는.”
추방지에서 유년의 고향으로, 모성의 도시로 돌아가겠다는 욕망은 진짜 현기증이 아니라 현기증에의 욕망이다.
문제는 여행자들(부자 질문자들)의 다급한 시선이 어떻게 (가난한 죽음의 평등과 반대되는) 풍요로운 삶의 평등을 정의해 주는 여행을 식별할 수 있겠는가이다.

(108)
노동자 투사들에게는 영혼이 신체의 고통을 증폭시키고 신체가 영혼의 상처로 인해 시들어가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하지만 이중의 삶이라는 불가능한 임무에 굴복했던 사람들의 고갈과 유사한 (사도 직분의 노동자들이 가지는) 정치적 무기력도 있다.
▶영혼과 신체의 분리를 넘어서는 투사의 삶, 경험.

(109)
노동자가 자신이 말하거나 쓴 것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죽을 때. 아무도 그들이 무엇으로 인해 죽었는지는 모른다.
많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죽음이, 장벽을 넘어서고자 했던 인민의 아이들의 전설적인 죽음을 표시하는, 고독과 현기증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의 포기라는 특성을 갖는다.
▶ 식자공의 현기증

(109-11)
쉬페르낭은 자신의 인물이 현기증에 굴복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인물이 저 다른 인물인 분신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부여주어야 한다.
분신: 구멍난 시간을 지닌 식자공과 동일 인물인 타자. 사유하는 프롤레타리아. 시간의 척도가 없는, ... 인쇄할 것이 없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틀림없이 인쇄를 못해 고민이던 텍스트들이 너무 많았던 친구.
이 이야기에 교훈적 결말은 없다. 하지만 서사의 본체는 근면한 노동자의 좋은 직업이라는 반정립적인 이미지를 이미 파괴해버렸다. 노동과 비-노동,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공동 경계에서, 하나의 동일한 병이 노동자의 운명과 작가의 운명을 똑같이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111-3)
위엄의 위계hierarchy of functions를 전복하는 주요 위험은 사유 노동 thought-work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있다.
- 노동에 취미도 재능도 없는 고아 조르주의 이야기
사유하는 프롤레타리아란 죽음 아니면 예속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형용모순이다.
따라서 [라 뤼슈]는 “물질적인 실존이 생각하고 쓰는 방식에 달려 있는 사람들”을 협력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대패질하는 게 덜 귤욕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프롤레타리아만을 협력자로 인정한다.

(113)
대패의 음악을 찬미하는 금은 세공사가 있다. 하지만 생시몽 주의 무리의 활기를 믿지 않는 진짜 목수는 이 음악을 누리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양도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신체는 대여한다는 것과, 시간의 “독재적 활동의 광란”에서 “여가의 편린들을 절취한다는”것은 매일매일의 엄청난 시험이다.

(113,4)
육체노동과 사유노동의, 낮의 일과 밤의 일의, 신체의 요청과 영혼의 요청의 분할에서, 균형점이 가정하는 기하학의 섬세함이 있다. 이 기하학은 밤을 낮으로 삼고 낮을 밤으로 삼는 (넝마주의 루이마리 퐁티가 행한) 단순 전복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115)
연장tool은 예속의 도구이지만 그것 없이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독립의 최소 조건이다. 고니(시몽 주의 무리의 활기를 믿지 않는 진짜 목수)가 택한 도급 노동자의 자유는 어렵게 확보되는 것이다. 경쟁은 가혹하고 자유의 대가는 비싸기 때문이다.
▶ 랑시에르는 생시몽 주의 조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조직과 반목하며 개인적 수단으로 자유를 확보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한계도 지적한다. 하지만 고니의 글에서 또한 흥미로운 전복을 발견한다.

(116,7)
자기집에 있음. 이는 가부장적 몽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는 장인의 작업장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자기집’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아직 거처가 아닌, 사막 같은 공간을 향하는 것이다. 이곳(자기집)은 마루깔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외관상의 소유인 동시에 자유의 현실로 연출해낼 수 있는 자리다.
어떤 외관상의 소유. 노동자가 자기 노동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는 것.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불안적은 감내할 때 가능한 것인데, 이러한 소유는 도구들과 생산물 사이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우선 자신이 시간과 맺는 관계의 전복에서 생긴다.
“시간의 엄밀함에 숨이 가빠지지 않는 이 노동자는 자기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채비를 한다. 그는 자신의 연장들을 우정으로 다룬다. 그는 노동의 장소와 시간에 우울해지지 않는다.”
이 흥미로운 전복은 동일한 것으로 동일한 것을 –자유로운 노동의 열기로 예속적인 노동의 열기를 – 치료하는 동종요법이다.

(119,20)
자유로워지는 청각과 시각.
마루 깔기 노동자(도급제 노동자)의 영혼은 그를 둘러싼 광격들을 “거울보다도 더 잘” 반영한다. 어느 순간 그는 일손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광할한 전망을 향해 날아가, 결국에는 이웃집 소유자들보다 그 (창밖의) 전망을 더 잘 즐긴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시선에 주어지는 이러한 소유는 “관념의 궁궐들”을 상기시키지 않는가?
이 (마루 깔기 노동자의) 미망illusion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투명하다. 이것은 자신의 원인들도 효과들도 모르지 않으며 자신이 봉사하는 적과의 그 어떤 협약도 맺지 않는다.
“그는 착취보다는 날품팔이를 더 의식한다. 그는 사물의 필요에만 복종한다고 믿으며 그런 만큼 그의 해방이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낡은 사회는 거기에 무시무시한 전갈 발톱을 그의 존재 안으로 비열하게 집어넣어 그가 나이를 먹기 전에 파멸시키려 하며, 그가 적에게 유리하도록 사용하는 자신의 용기의 극도의 흥분 상태에 관해 미망에 빠지게 한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노동, 배달플랫폼 노동이 전갈 발톱의 결과물들이다.

(121)
자아 소유를 통한 자아 상실의 재생산. 해방의 현실성에 입각하는 착취에 유리한 미망.
여기서 정의되는 운동은 나선 운동이다. 동일한 에너지가 적에게 유리하도록 소비되는 원환들과의 유사성 안에서, 다른 사회적 실존 양식을 향한 실효적 상승을 실현한다.
해방의 미망은 원을 그리며 지배적 재생산에 가장 가까운 곳을 통과하면서도 이미 결정적으로 비켜 간 곡선의 도정이다.
장인다움의 역사와는 다른 역사에 속하는 노동자 유형의 형성.

(122)
이러한 입문(다른 역사의 시작)은 식자공의 지옥으로의 하강을 정의한 것에 반정립적인 시간 분할을 확정한다. 존재 안에서 비-존재(부재, 미망, 미래)의 실정적인 현존. a positive presence of nonbeing—absence, illusion, future—in being
여기서 예견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부활이다. 또한 실업의 휴지 시간은 자유에 취한 어느 정복자의 행진이다.
“이 노동자는 자기 일의 불확실성 안에서 은밀한 쾌락을 끌어낸다.”

(123)
마루 까는 노동자의 꿈과 식자공의 꿈은 (자유를 향한 수단?) 하나하나 대립한다.
식자공의 꿈: 궁핍을 감내하는 운명
마루 까는 노동자의 꿈: 욕구와 날품팔이의 순환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행. 이 꿈에는 계산의 유희적 측면도 있다.

(124,5)
수도자의 경제학에서 문제는 “자신의” 대상을 소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소유하는 것이며, 착취가 예속성에 주는 선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힘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수도자의 경제학의 법칙은 구직 활동을 그의 자유의 발전에 연동시키며, 해당 경비를 늘린다. 식자공이 작업장에서 작업장으로 전전하며 의무적으고 무용하게 돌아다니는 데 반해 수도자 경제학자(마루 깔리 노동자, 도급제 노동자)의 구직 행위는 일종의 트랙경기 또는 사냥이라는 형상을 띤다. 이 사냥은 구직의 불안으로 분절되지 않는다.
반역자(경제학을 하는 수도자)의 궤적은 매개자, 기생자들의 도정과 교차하거나 그것을 뒤따른다. 노예의 세계와 주인의 세계의 유동적인 경계에 있는 그들. 해방된 자들이라는 수상한 주민들. 하청업자들, 창업을 준비하는 직인들, 여인숙 주인들, 포도주 상인들, 십장들 ...


(126)
낡은 사회가 자신의 법을 부과하는 한 자유의 주변은 착취의 주변이기도 하다. 이 주변에서 반역적인 그림자 사냥꾼은 이러한 노동자들과 고용주들 일부를 조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7-9)
도급제 노동자의 매혹적인 노동의 왕국으로 올라가보면, 그를 잡아끄는 창문이 항상 있고 이 넓은 전망에 돌연 그늘진 두 점이 나타난다. 기업 정신과 개혁 정신이 이 시절에 세운 두 건물인 공장과 독방 감옥이 그것들이다.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신의 제국 지평 위에 있는 이 두 그림자로부터 시선을 떼어낼 수 없다. 공장은 그가 탈출한 곳과 유사한 자리다. 그의 호기심을 모델 감옥의 감독자를 향한다.

(130,1)
판옵티크 배치의 효과는 교정 장치가 수감자의 행위들과 관련 사실들에 관한 앎을 장악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교정 장치의 앎에서 벗어나는 행위들과 사실들을 제거하고 이것들이 주인의 시선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 실존하도록 하는 것을 제거해내는 데 있다.
The panoptic setup is designed not so much to ensure that the penitentiary apparatus can keep tabs on the prisoner’s deeds and gestures as it is to strip them of anything that escapes knowing, anything that allows them to exist elsewhere or otherwise than in the gaze of the master.
피감시자는 관찰되고 교정되는 자가 아니라, 갇혀 있는 인질이다.
어둠이 전혀 없는, 무엇도 공모되거나 거래될 수 없는, 어떤 희망도 향유될 수 없는 감옥. 자유의 꿈이 통과할 수 있는 균열과 틈이 없는 세계. 결점없는 건물
▶앎의 의지가 아닌 무지의 의지.

(131,2)
결점 없는 이 건물들을 건설한 이들이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무덤을 세웠다는 의식을 어떻게 갖지 않겠는가?
프롤레타리아를 감옥의 길로 이끄는 이유들의 상세한 목록은 ‘가장 약한 사람들과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는 분할에 의해 즉각 부인된다. 이 분할은 평범한 범죄의 병인론을 타락과 위반이라는 두 극단과 연관시킨다. 프롤레타리아와 범죄자의 특권적인 관계는 이러한 이중 거부를 통과한다.
범죄자는 사회적 예지 결핍의 특수한 희생자라기보다는 이러한 결핍에 맞서는 전반적인 항의의 특이한 행위자를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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