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 토론거리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4-01 10:06
조회
723
[해석과 질의] 비릴리오는 핵 억지력을 통해 이루어진 역설적인 평화의 측면이 정당하게 평가된 적 없다고 언급한다.(12p) 핵의 개발로 인류는 순식간에 멸종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그 위력 때문에 상호견제적인 평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일례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이라크, 리비아와 같은 침공. 내전을 치루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 역설적 평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해석과 질의] 스마트폰은 이제 신체가 되어 삶의 양태를 바꾸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는다 여기지만, 실은 이 행위가 주체적인 것 같으면서도 내면 성찰로부터 가장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눈 앞에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일상에서 우유부단한 사람을 일컫는 ‘결정장애’도 그 개인의 심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연관이 큰 것 같다. 비교적 층위가 단순했던 근대 이전과 달리, 무한한 가속화 흐름에서는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판단하기 힘들어졌고, 공감의 부재와 ‘눈 감은 공포’는 책임을 지워버렸다.

[부연과 상상] 대학 밖 인문학 강의에서 니체는 단연 인기가 가장 많은 철학자다.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하는 영원회귀의 사상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한편 어쩌면 이런 요소가 현실을 도피. 재생산하는 고급한 ‘힐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릴리오가 언급했듯 기술과 속도의 변화로 달라진 구체적 ‘현상’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니체 철학의 ‘본질’은 “사막의 성장이 아닌 막다른 골목, 닫힌 회로”(33p) 속에서의 위무가 될 것이다.

[비판과 대안] 비릴리오는 『속도와 정치』에서 난파되기 위해 배가 항해하고, 추락하기 위해 비행기가 날아다닌다고 했다. 더 많은 물건과 사람을 싣고, 기록을 경신하듯 속도를 높이는 게 ‘진보’일까? 수년 전 일어난 세월호 침몰은 과적, 정원초과, 선장의 비도덕성과 무책임, 안전교육 시스템 부재, 평형수 부족 등 총체적 무능과 가속으로 인한 사고였다. 단순히 정부와 구조적 시스템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 같다. 비릴리오는 과잉의 진보를 두고 “전선에 위치한 군인들의 ‘상호 파괴’에 대한 절망적 추구와 흡사한 대량학살일 뿐이다.”(43p)라고 분석했다. 이것은 ‘합의된 인간 희생’과도 같다. 누구의 합의일까? 스스로 보기보다 보여지길 원하고, ‘원격-객관성’에 갇힌 우리의 암묵적 합의일 것이다. 녹색평론 편집자 김종철은 한 칼럼에서 이런 답을 했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점점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도로에 차를 몰고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따지고, 다른 사람들이 양보하고 희생해주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회나 세상이 변해야 할 필요성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세상이 변하려면 자기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은 자기자신이 바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정확히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개인적인 노력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문제는 구조적이다 - 라고 흔히 지식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 구조적 변화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는 것이며, 나 자신이 변화함으로써 벌써 세계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임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이 당면한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위기에 대한 진실로 인간다운 양심적인 응답일지 모른다.”

[비판과 대안] 비릴리오는 현대적 투쟁에 걸맞는 새로은 ‘가상적’ 바리케이트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새로운 ‘가상적 바리케이트를 만들어낼 것인가? 역자의 지적처럼 비릴리오의 기술문명에 대한 진단과 비평에는 새로운 바리케이트를 위한 구체적 질문들과 체계적 방법론이 부재한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제제기를 이어받은 우리들의 몫이다. 최근 권명아의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를 읽으면서 새로운 단서를 얻었다.

권명아는 증강 현실, 인터넷 네트워킹 기술에서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봤다. 존 크레이그 프리만의 <보더 메모리얼>이 바로 그런 작업이다. “<보더 메모리얼>은 증강 현실을 이용하여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살해당한 수천 명의 이주 노동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공공예술 작업이다. 사용자들은 스마트 폰을 통해 위치기반 서비스에 기록된 ‘학살’의 장소에서 ‘상실된 신체의 잔해’를 증강 현실로 만날 수 있다.”(『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293p) 점령과 분쟁의 영역으로 국가에 점유된 현실의 영토는 증강 현실 속에서 모두의 영토가 된다. 또한 국경과 인종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참여는 단지 ‘4차 산업 혁명’의 산물이 아니고 ‘점거(오큐파이) 운동’과 같이 물질적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거하고 저항의 상징적 실천으로 만든 저항 운동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성폭력 생존자들의 해시태크 운동 또한 온라인 담론 공간을 점거하면서, 기존의 물질적인 제도에 저항하는 오큐파이 운동의 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아닌, 새로운 기술을 점유해 물리적 한계를 넘어 저항하는 것, 그러나 가상에 갇히지 않고 현실을 변증법적으로 오가는 네트워크. 이것이야말로 비릴리오가 말한 새로운 ‘가상적’ 바리케이트가 아닐까?

참고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시리아내전 -프로젝트 시리아> https://www.youtube.com/watch?v=TIv5iH5_i1c
<온라인 동영상으로 ‘월가 점령 시위 (Occupy Wall Street!)’ 들여다보기>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jinbo_media_07&nid=6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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