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8-09-11 19:20
조회
4532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8년 9월 11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비극의 탄생』, 아카넷, 9장~13장

1. 130쪽 : 그리스 연극에서 가장 고뇌에 찬 인물, 저 비운의 오이디푸스를 소포클레스는 고귀한 인간으로 이해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지혜에도 불구하고 미망과 비참에 빠지도록 운명 지어졌지만, 자신의 저 무서운 고뇌를 통해서 결국에는 자신의 주위에 축복이 넘치는 마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 마력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 작용하게 된다. 고귀한 인간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저 심원한 시인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주인공은 자신의 극도의 수동성 속에서 최고의 능동성을 얻게 되고 이 능동성은 그의 생애를 훨씬 넘어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반면에, 젊은 시절의 의식적 노력과 정진은 단지 수동성으로 이끌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에는 아폴론적 명랑성과 디오니소스적 심연이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비극이 보여주는 표면적인 면은 아폴론적 가상에 해당한다. 디오니소스적 심연을 외면하고 은폐하기 위한 명랑함인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신화도 마찬가지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되지만, 결국 말년에 가서는 자신이 축은 땅에 축복을 가져온다. 이를 표면적으로, 즉 아폴론적 가상의 측면에서 해석하면, ‘고귀한 이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능동성은 기껏해야 고통을 안겨줄 뿐이고, 완벽하게 수동적인 상태, 특히 신과 운명에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축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마라’, ‘선을 넘지 마라’ 등이 오이디푸스 신화의 현상적, 표면적 결론인 것이다. 아마도 오이디푸스 신화를 당대에 이렇게 해석하는 흐름을 비판했을 것 같다.

2. 133쪽 : 인간이 자연에 거역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즉 비자연성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인간은 자연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도록 강요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오이디푸스의 운명의 저 무시무시한 삼위일체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을 나는 보는 것이다. 자연의 - 저 이중 성격의 스핑크스의 –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아버지의 살해자이며 어머니의 남편으로서 가장 성스러운 자연 질서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신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혜라는 것, 특히 디오니소스적인 지혜라는 것은 자연에 거역하는 하나의 만행이라고, 자신의 지혜에 의하여 자연을 파멸의 심연에 빠뜨리는 자는 그 자신에게서도 자연이 해체되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고. “지혜의 칼 끝은 지혜로운 자에게 향한다. 지혜는 자연에 대한 범죄이다.” 이 끔찍한 명제를 이 신화는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오이디푸스 신화는 그러한 표면적인 의미로 정리될 수 없다. 이는 고통을 맞서는 그리스인의 삶의 양식과 맞지 않다. 가혹하면서도 고통스런 진실은 이렇다. 인간은 자연의 비밀을 캐낼 수 있지만, 이는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자연(본성)도 거역하고 해체당할 수 밖에 없다. 운명과 자연이 설정한 경계를 넘어서 지혜와 진실을 추구하는 자, 그는 필연적으로 고뇌와 고통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끔찍한 진실을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혜를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혜는 반드시 그런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연시하고 앎에서 오는 좌절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이 오이디푸스의 가상적 의미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3. 137쪽 :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자 최고의 것을 인간은 모독행위에 의해서 얻어 내었고 이제 다시금 고통과 근심, 걱정의 홍수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욕당한 하늘의 신들은 상승하려고 숭고하게 노력하는 인류를 이런 것들로 괴롭힌다. 이것은 매우 신랄한 생각이다. 이 생각은 인간이 독신(瀆神)행위에 존엄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셈 족의 타죄신화와 기묘하게 대조된다. 셈 족의 신화에서는 악의 근원으로 간주되는 것은 호기심, 현혹에 속아 넘어감, 유혹에 약함, 음란함, 요컨대 일련의 주로 여성적인 정념들이다. 이에 반해서 아리안 족의 사고방식의 탁월성은 능동적 죄를 원래의 프로메테우스적 덕목으로 간주하는 숭고성에 있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염세주의적 비극의 윤리적 토대가 마련된다. 이러한 윤리적 토대는 인간적 악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죄뿐 아니라 이를 통해서 야기된 고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 이러한 각각의 세계들은 독립된 개체로서는 정당하지만 다른 세계와 병존하는 것으로서는 자신의 개별화 때문에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되려고 하는 영웅적 충동이 생길 경우, 즉 개별화의 속박을 넘어서 유일한 세계 본질 자체가 되려고 할 경우 개별적인 것은 사물들 속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인 모순을 스스로 떠맡게 된다. 즉 그것은 [신을] 모독하고 고통받는 것이다.
→ 오이디푸스는 이 가혹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경계를 넘어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아폴론적 형상, 개별성을 해체시켜 버렸고 고통받았다. 그 점에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되 무지한 영웅, 수동적인 영웅인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다르다. ‘미리 아는 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가혹한 진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 지혜와 불을 전달하면 고통받는다는 것을. 이를 알고 있음에도 더 고귀한 일을 실현하고자 기꺼이 고통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신을 모독하고 신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결코 지혜와 진실을 획득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죄는 경계를 넘어간 자의 훈장이다. 이것이 인간의 악과 죄, 고통까지도 정당화하는 그리스인들의 방식이었다. 타락이나 원죄를 적용해서 죄책감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숭고한 행위에서 수반되는 죄와 고통을 떳떳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그리스인들은 염세주의적이다. 그들의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와 영웅적 활동의 필연적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이 니체가 보는 ‘염세주의가 가진 윤리적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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