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몸의 인지과학> 1,2장 입니다

작성자
영대
작성일
2022-05-03 19:28
조회
340
다지원 – 생명 세미나 / 2022. 5. 3 / 박영대

『몸의 인지과학』 1,2장


챕터2. 인간경험이란 무엇인가? - ‘인간 경험’으로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챕터는 우리의 ‘경험’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서양 철학에서 경험을 다루는 방식을 논한다. 짧게 데카르트를, 그리고 길게 후설을 통해서. 전반부의 대략적인 내용은 경험을 경험 자체로부터 떼어놓고 추상적·이론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경험 자체와의 관련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우리의 경험(나아가 삶) 자체를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돌파구로서 불교식 접근법을 논의한다. 지관(止觀)은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매일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경험이라는 게 발생하고 체화되는지’를 인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서양 철학적 전통과 달리 경험을 추상화시켜서 보지 않는다. 경험의 발생 자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함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칫 신비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 경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마음을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에 상응하는(또는 때로 상응에 실패하는) 관념들로 구성된 주관적 의식으로 보았다. 세계를 표상하는 존재로서 마음을 이해하는 이런 견해는,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가 제안한 ‘지향성(指向性, intentionality)’의 개념으로 극에 이른다. 브렌타노에 따르면 모든 심리상태(지각, 기억 등)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리상태는 반드시 그 ‘내용을 지시’하도록 되어 있거나, 그 ‘대상을 향해 방향을 맞출’ 자세가 되어 있는 것들이다(이때 대상이란 반드시 외부세계의 대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브렌타노는 이 방향성 또는 지향성을 마음의 본질적 속성이라 했다(‘지향指向’을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행한다는 뜻의 ‘지향(志向)’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후설은 지향성의 구조, 즉 사실적, 경험적 세계와의 모든 연관을 끊은 경험 그 자체의 구조를 탐구할 특수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50) …… 이 태도[자연적 태도]는 세계는 마음 또는 인지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대상들은 우리에게 나타난 바로 그런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하는 ‘소박실재론’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태도다. (51)

소위 ‘자연적 태도’는 우리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이다. 세계는 우리 마음이나 생각과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대상은 우리에게 나타난 모습 그대로라는 것. 이후에 나오겠지만, 이 책은 이와는 근본적을 다른 태도를 주장한다. 세계는 우리 마음과 함께 작용하고 있으며, 대상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요컨대 인지는 세계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를 창출하는 능동적 행위다.
데카르트는 이런 전제 속에서 마음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정신이란 외부 사물에 대한 표상인 것이다. 우리 정신은 외부 사물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차 있으며, 사고(思考)란 이 이미지(표상)들을 조작하고 연산하는 것이다(표상주의 모델). 브렌타노는 이를 ‘지향성’으로 정의했다. 즉 마음에는 외부 대상을 향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특성이야말로 마음의 본질이 되며, 이 특성만 제대로 분석/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인 경험도 마찬가지다. 경험이라는 게 외부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 정신의 본질이나 지향성이야말로 경험을 이해하는 열쇠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 속에서 후설은 본질로 더욱 파고 들어갔고, 그 결과 ‘경험 그 자체의 구조’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때 실제 세계나 경험 자체는 더 이상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구조와 본질을 파악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설의 현상학은 ‘철학적 내성(내적 조사)’을 통해 경험의 본질적인 구조를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경험을 이런 본질적인 구조로 환원한 다음 어떻게 인간세계가 이런 구조들로부터 발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본질적 구조를 찾는 방식으로 인해, 후설은 “경험의 공유성(합의성)과 (직접적인) 체화적 성격 모두를 무시”하게 된다. 즉 경험이란 순수한 개인의 것이 아니다. 경험조차 일정한 합의적 성격과 공유성을 갖는다. 또한 경험은 완전히 정신적인 게 아니며 신체화되는 특성(신체에 새겨지는)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후설은 경험을 개인과 추상적 정신 속에 가둬두고, 그 제한된 성격을 ‘본질적 구조’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후설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생활 세계’라는 개념으로 그 일상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세계’를 도입하고 이를 ‘표상’들로 간주함으로써, 스스로 세웠던 전제(생활세계가 과학적 앎에 우선한다)는 무너트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책의 저자들에겐 이보다 큰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후설적 프로그램의 실패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이 이유를 강조하고 싶다. 경험과 ‘사상(事象) 그 자체’로 향하고자 하는 후설적 전향은 전적으로 이론적이었고, 달리 말해 전적으로 실용적 측면을 결여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전향이 과학과 경험과의 간격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점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현상적 반성과는 달리 과학은 이론을 넘어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55)

경험을 계속해서 이론적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 실용적 측면 또는 일상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활세계는 이를 만회하고자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학 본래의 접근법 안에 있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후에 보겠지만, 저자들은 경험과 삶이 지닌 근본적인 순환성 위에서 경험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실용성이나 순환성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철학은 대체로 그 한계를 공유하고 있다.
저자들은 ‘비서양적 철학’으로 눈을 돌린다. 특히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인도철학에 대한 관심에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도적 전통에서 철학은 결코 순수추상적 작업이 아니다. 철학은 지식을 얻는 특정한 수련방법(여러가지 명상법)과 연결되어(전통적으로 이 둘은 ‘얽매여’) 있다. 특별히 불교적 전통에서 집중(止, mindfulness)은 근본적인 것이다. 집중이란 마음이 체화된 경험변형에 항상 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집중은 마음을 이론과 관심에서, 즉 추상적인 태도에서부터 이끌어내 경험 그 자체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현대적 상황에 비추어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점은 이 전통에서 발전한 마음에 대한 기술과 해석들이 실제적 사용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 …… 우리는 불교사상과 수행에 관한 지식을 소수의 단편적이고 역사적이며 해석학적으로 고립된 경전 해석에 의존하여 얻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경전이 가르침에 쓰이고 있으며 불교의 명상과 수행 그리고 가르침이 성장하는 불교 집단의 살아있는 수행에서 어떻게 전송되고 있는지 우리는 직접 관찰할 수 있다. (61)

‘집중’이 독특한 건, 마음이 ‘체화된 경험(변형)’이라는 과정 자체에서 현존하고 있다/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신을 그 본질이나 구조라는 이름으로 추상화시키지 않고, 작용하고 있는 ‘체화’의 과정 안에서 그 움직임 자체를 파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교적 전통에서, 정신(마음)이란 나름의 본질을 지닌, 독립적인 별도의 사물이나 상태가 아니다. 설령 나름의 독립성이 있다 해도, 그건 신체 및 일상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독립성이다. 그러므로 정신은 항상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일상에서의 작용 속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계속해서 ‘사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험 속에서, 신체에 체화되어 있는, 그 마음을 이해하자. (이런 맥락에서 지금 서구의 조건도 좋다. 수많은 명상센터에서 집중이라는 활동 속에서 정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의 측면.)

이런 지혜가 추상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사상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지혜를 통한 지식은 어떤 것에 관한 지식이 아니다. 경험 자체와 분리되어 있는 경험에 관한 지식은 없다. 불교사상가들은 경험과 자신이 일체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지혜의 내용 혹은 이 지혜가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은 무엇인가? (66)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추상적이며 신체와 분리된 활동으로서의 반성에서, 체화된(집중된, mindful) 그리고 열려진 반성으로의 변화다. 체화되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반성을 의미한다. 이런 주장이 의도하는 바는 반성은 단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경험의 한 형태라는 것, 그리고 반성적 형태의 경험은 지관과 더불어 실행된다는 것이다. 반성이 그렇게 행해지면 우리는 습관적인 사고패턴과 선입견의 연쇄를 중단하고 생활공간에 대한 표상에 현재 주어진 것 외의 것에 대해서도 개방된 반성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반성의 형태를 집중된, 개방된 반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의 반성은 죄를 뉘우치는 반성이 아니다. 우리 존재가 지닌 순환성에 의해, 다시 돌이킨다는 의미다. 즉 우리의 초조함을 반성한다는 건, 초조함이 있고 그것을 돌이켜 본다는 의미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다. 즉 자기가 자기로부터 발생시키는 경험이다. ‘초조함을 돌이켜본다’는 경험 자체가 우리에게 체험되며, 그 체험이 지금 우리가 초조하다는 사실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초조함을 볼 수 있게 되면, 이전에 초조함에 빠져있는 것과는 다른 상태가 만들어진다. 즉 반성한다는 경험 자체로 인해 기존과는 다른 대응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수록, 우리는 초조함에 맞서는 정신의 강인함 혹은 힘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라는 것이다. 일상적 경험과 정신의 사용이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자기라는 것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해를 자기의 주관을 배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주관적 오류와는 다른, 자기의 영역이 있다. 즉 앎은 반드시 자기로 돌아와야지만(반성되어야지만), 체화될 수 있다. “이론적 반성에서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부분적인 반성만을 하고 있으며 질문은 신체로부터 멀어지게 된다.”(68)

열려진 반성인 집중의 입장에서 볼 때, 심신문제는 경험과 분리된 마음과 신체의 존재론적 관계에 대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심신문제는 실제적 경험의 측면(집중의 측면)에서 마음과 신체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관계는 어떻게 형태를 취하며 (개방적으로) 발전하는가 하는 문제여야 한다. …… 심신문제는 단순히 이론적 성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신체 전체를 다스리는 것을 포함하는 실천적으로 살아있는 체험의 문제다.
실천적이고 개방적인 반성에서 이 문제는 ‘우리의 마음과 신체 전체를 다스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이런 관련으로 신체와 따로 떼어서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수 없는 것이다. (72-73)

챕터1. 근본적 순환성 – 반성하는 과학자의 마음

우리는 근본적인 순환성 속에 존재한다. 마치 우리가 만들어낸 적 없는 세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계는 우리와 무관하게 미리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만들고, 그렇게 구성된 세계는 우리에 의해 인식된다. 그리고 그 인식은 다시금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이 순환성이 저자들의 출발점이다. (물론 뒤에서 이는 더욱 상세히 설명될 것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 인지를 공부할 때, 우리 존재(신체와 정신)를 세계와 분리시켜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 단면만을 볼 뿐이다. “두 입장(육체에서 독립된[비-체화적] 관찰자 또는 탈세계적 마음을 가정하는 입장) 어떤 것도 적절하지 않다.”

- 표상주의의 한계. (1) 연결론(connectionism). (2) 발제주의(enactive).

이 책은 이런 깊은 순환성을 탐구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의 직접성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존재의 구조에 관한 이론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46) …… 인지과학과 경험 사이의 공통의 기반을 깨달을 때만이 인지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보다 완전해지고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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