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2019.10.25 『프루스트와 기호들』 제3장 배움

작성자
jongseong
작성일
2019-10-22 21:38
조회
386
다지원 기획세미나, 삶과 문학. ∥2019년 10월 25일∥jongseong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서동운, 이충민 옮김, 민음사, 1997. p.53~68



* '잃어버린 시간 찾기는 곧 진리 찾기이다.' (39) = '잃어버린 기호들의 의미'를 찾아서?
* '최종적인 계시'를 얻으면서 주인공은 '환멸'을 맛본다. = "믿고 있었던 ' 환상이 깨진다.
* ? / 예술에서의 계시가 전체를 체계화하지 못하면, 계시는 변변치 못한 것이 된다. (53)
* 기호에 민감한 것(세계를 해독할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다.(54) 그러나 이 재능은, '필연적인 마주침'이 없었다면 그냥 묻혀 버릴지 모른다. : 2장에서의 고통과 연관. 기호에 대한 민감성(재능)과 고통과의 '필연적인'(?) 마주침이 필요.
* 기성의 어떤 믿음을 이겨내야만 마주침은 효과를 발휘한다.

> 객관주의 비판 : '대상'을 기호 자체로 생각하는 것. (54)
* 대상은 기호의 운반자일 뿐이다.
* '대상'은 기호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다.
* 대상의 길로 빠져버리면 진실의 측면은 희생되어 버린다.
> 객관주의는 어떤 종류의 기호건 닥치는 대로 피해를 입힌다.
* 사물들을 소유하거나 대상들과 결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쾌락과 실제적 활동을 쫓아가는 방향이다. (지성이 가진 경향)
* '지성'은 분명한 객관적인 '의미'들을 열망한다.
* 스완이 배움을 시작할 무렵 깨닫지 못하는 것은? : '진리를 나타내는 데 말로 할 필요는 없다. 아무런 말에 기대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

> '재인식' 비판.
* 우리는 기호가 의미하는 것을 기호가 지칭하는 존재나 대상과 혼동한다. = 우리는 사물들을 '재인식'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55)
* '인식' : 기호가 의미하는 바. / '재인식' : 기호가 지칭하는 바.
* 기호가 의미하는 것과 기호가 지칭하는 존재나 대상은 다르다.
* 기호들과 의미들은 이 대상을 초월해 있다. (61)
* 왜 대상과 혼동하는가 => 외재적인 실재에 대한 이 믿음을 단념하는 것이 어려워서. (감각적 기호들)
*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결코 사랑하는 여자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육화하는 환영들, 제삼자들, 테마들과 관련이 있다. (60)
* 수월한 재인식은 편하다. '기호가 가진 본질'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경의만 표한다. 예) 브라보, 제기랄
* 기호의 본질은 인식하지 못하고, 대상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감동한다.
* 자기 기분을 드러낸다고 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55)

> 우정과 철학에 대한 비판 => '우정과 철학'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58)
* 우정과 철학 <=> 사랑과 예술
* 사랑 : 기호가 풍부하다.
*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 풍부하다. (59)
* 예술 작품 : 명시적 의미보다 '심오'하다. (기호 속에 감싸여 있어서)
* 철학에 의한 진리는 '가능적' 가치 외에는 다른 가치가 없다. ('뜻과 의도가 너무 명확하다.')

> 프루스트는 '명료한 가치'와 '아주 분명한 의미들'을 위대한 주제처럼 믿었던 사실주의적인 혹은 대중적인 예술을 혐오한다. (62)
* <찾기>의 주인공이 문학, 예술 개념의 공허를 느끼는 이유 => 예술의 분명한 용도가 있기 때문. (삶으로부터 가치와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한 예술과 삶의 결합)
* 문학은 주인공인 생각했던 만큼의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다. (64)
* 프루스트가 볼 때 중요한 것은 코타르의 어리석은 기호들, 베르뒤랭 부인의 괴상한 몸짓과 상징들이다.

> 대상에 대한 객관적 실망과 주관적 보상의 메커니즘
* 실망하는 이유 : 우리에게 아직 기호와 대상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대상이 기호들을 혼탁하게 만든다)
* > 실망을 막는 방법 : '대상 쪽에서 실망하자 그는 주관적인 측면에서 보상을 얻으려고 애쓴다' (64)
* 보상받는 길은 기호들에 개인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이다. (64)
* '게르망트 부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은 처음에는 내게 실망이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 갖가지 좋은 술의 도움으로 거의 경탄을 자아낼 만한 일이 되었다' (64) : 대상 자체는 별게 없다. 그럼에도 갖가지 노력으로 실망?을 막기위해 대상을 경탄하여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스완이 오데트에 대한 사랑에서 깨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과 같다.

> 연상들 (주체의 주관적 해석)
* 기호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아닌 '연상들'에서 찾아야 한다. : '아마도 우리는 그 기호들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페드로 안에도 라베르마 안에도 없는 연상들 가운데서 말이다' (65)
* '주관적 해석을 통해 우리는 연상의 총체들을 재구성한다' (66)
> 배움의 선의 2단계 (사랑과 예술 모두에서) (66)
* 1. 객관적 해석을 시도하다가 실망
* 2. 주관적 해석으로 실망을 막으려는 시도
* > 왜
* 기호의 의미는 주체와 관련되어 있다. 즉 그 의미는 반쯤은 주체의 주관적 연상 계열 속에서 구현된다.
* 대상이 주는 실망을 주체적 보상으로 보충해 나간다.
* 주체적 보상 = 우리는 객관적인 명료한 가치들을 '관념 연상'이라는 주관적 놀이로 대체할 수 있다 (66)

> 본질은 있다. (68)
* '기호와 의미의 진정한 통일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본질이다' (68)
* 기호의 의미는 반쯤은 '대상' 안에, 반쯤은 '주체의 주관적 연상 계열' 속에 있다. (66)
* 본질들은 대상의 속성들을 넘어서 있고, 주관성의 상태 역시 넘어서 있다.
* '기호가 자신을 방출하는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에서 본질은 기호를 구성한다'
* '의미를 파악하는 주체에게로 의미가 환원되지 않는 한에서 본질은 의미를 구성한다'
> '배움의 과정에서 최종적 결론 혹은 최종적으로 깨닫게 되는 계시가 바로 본질이다' (68)
* 사교계, 사랑, 감각적 기호들마저도 우리에게 본질을 줄 수는 없다. 그것들은 본질에 근접하기는 하지만 늘 우리를 대상의 덫이나 주관성의 올가미에 빠뜨린다. 오로지 예술의 층위에서만 본질은 드러난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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