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_발제문_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_201~236쪽_최유리님

작성자
Yeonju Yu
작성일
2018-05-06 15:15
조회
1078
■다지원 페미니즘 세미나 2018년 4월 24일 제4회 (발제자 최유리)
텍스트 :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수전 브라운밀러 저, 박소영 역, 오월의봄, 2018(1975), (201~236쪽)

백인을 대상으로 삼은 폭도 폭력 : 콩고 (콩고 독립 기념 기간의 강간사태 1960-1965 “콩고위기“, 레오폴드 콩고(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여러 차례 내전이 있었고, 벨기에, 미국, 소련 등이 특정세력을 지원하는 대리전 성격을 띠었다.[출처:위키]
)

✳ 콩고 무장 세력이 1960년 7월 독립을 축하하면서 수녀를 포함한 수많은 벨기에 여성을 강간했다는 소식에 대한 반응
(1) 저자: “엉터리 루머다.“
언론들: 정치노선에 따라 다른 입장
- 영국 보수언론: “Manchester Guardian” - 무시
선정주의 언론: “Daily Mail”, "Daily Express" - 입맛을 다시며 소식을 전함
- 미국 보수언론:“National Review” - 검은 야만인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김
좌파언론: 악랄하게 조작된 거짓말이다.

ㆍ여성의 정치는 남성들이 좌우파 세력을 나눠온 전통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저자견해 p.202)

ㆍ19세기 말엽 1884년 베를린 회의(서양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 결정) 이후, 벨기에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차지하고 콩고에서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고무를 채취하면서 1885-1908년 사이에 1천만(~ 3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된다.[출처:위키]
벨기에에 의해 창설된 포르스 퓌블리크 Force Publique
- 벨기에 식민 통치자들이 콩고인에게 자신들의 보다 잔혹한 규칙을 강제하는데 이용한 무력집단이다. 문맹에 낮은 급료를 받는 흑인 부대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부족한 임금은 약탈을 통해 보충하도록 용인받았다.
- 1960년 공식독립행사 며칠 후, 병영에서 반란을 일으킴.
“(...) 콩고 군인 다수는 여성이 그 ‘재산’ 중 하나라고 간주한 것이다“라고 반란을 목격한 편집장 Helen Kitchen가 썼다.

(2) 벨기에는 브뤼셀에 (콩고군인의 백인여성) 강간 증언을 기록 수집하는 위원회를 설치
- “콩고: 1960년 7월 증거 (Congo: July 1960 Evidence)" 백서를 선전용 소책자로 출간. 피해자 여성의 이름은 지움.
- 각종 증언기록 중.. (p207) “그녀가 죽었다고 말했다. 두 군인은 그 말에 놀라서 도망가버렸다. 다른 군인들은 살인은 용인될 수 없는데 살인까지 했다며 도망간 둘을 비난했다.(...) 군인들은 수녀들이 루뭄바 파트리스 루뭄바 Patrice Lummumba 콩고 민족자결주의의 영웅이자 순교자
의 정당에 가세하지 않은 이유와 사제들과의 성관계 여부를 알고 싶어 했다. 밤마다 군인 한 명이 수녀 한 명씩을 차지하기로 되어 있었다.“

(3) 1960년 7월 미국 대학 현지 조사대의 E.S.Munger 파견
; 강간당한 여성과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고, 정부 관료나 의사, 선교사와만 인터뷰해 조사를 끝냈다.

[이하 멍거의 여러 분야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p.208)
- 가나에서 온 대사, “(...) 우리는 그에 대해 어떤 반대도 표하지 않았습니다.“
- 포르스 퓌블리크의 한 대원, “벨기에 여자들이 (스스로) 상처 낸 거예요.”
- 흑인 목사, “아이와 여자에게는 가혹하나, 벨기에인은 당할 만합니다.”
- 의사, “다른 전쟁에서도 규율을 잃은 군인들이 이와 너무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는 것을 봤습니다.”
- 의료팀 말데레즈 박사, “(...) 강간당했다고 인정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 벨기에 피난민(콩고에서 커피농장을 소유한 식민주의자), “대체 왜들 그런 건지, (...)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같이 일하고, 그들 여자랑 잤는데...”
- 경험 많은 강인한 남성기자, “그가 속한 신문이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편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 -> 집단강간 조사를 부차적인 주제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여기는 태도를 보였고, 12년 후 방글라데시, 베트남에서의 조직적 강간을 뒤늦게 보도한 언론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p.212)

ㆍ콩고군인과 민간인에게 강간당한 사람은 벨기에 여성만이 아니었다. 어떤 국적이든 외국인은 예외 없이 강간을 당했다. 짧은 기간 동안 콩고인들은 식민주의자들이 한 세기동안 흑인 여성에게 저지른 일들을 그 이상 난폭하게 되갚았다.

(4) 필리파 스카일러(피아니스트, 보수 흑인 편집자 조지 스카일러의 딸)는 현지 파견된 기자 중 드물게 유럽 국적 여성과 현지 여성의 현실을 연관지었다. 수천 명의 흑인 여성이 부족 간 분쟁에서 강간당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5) 주류 제도권 언론은 이색적인 소식 이상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6) 정부 관료와 정부지지파들: 늘상 수반되기 마련인 부작용이라며, 강간사태를 용인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뒤로 미뤘다.

ㆍ그러나 이런 관점들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강간이란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의 적대 행위임이 강간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손쉽고도 준비된 표적인 여성이 혐오스러운 압제자의 상징으로 선택되어 강간당하는 것이다. (...) 콩고 사례는 복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며, 그런 정당화를 가능케 한 것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었다.(p.213 저자견해)

5. 미국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 인디언과 노예제

인 디 언

ㆍ백인 남성은 백인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면서 선동에 이용했지만, 전작 당사자인 여성은 강간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 그러나 백인 남성의 나라에서 인디언 여성이 겪은 모욕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사실상 거의 소실되었다. (...) 이런 이유로 인디언 여성이나 백인 여성이 적의 손에 강간당한 기록은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다.(p.217)

[이하 인디언들이 여성을 강간하지 않았다는 증언들]
1676년 납치당했던 메리 롤런드슨(목사 부인)
1747년 납치됐던 이저벨라 맥코이
1777년 익명의 기록, “이 전쟁은 인디언전쟁보다 훨씬 더 악랄한데, 인디언이 아무리 포로를 잔혹하게 취급했다고 해도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읽지도 못했다.”
1780년 『웨스트모어랜드에서 납치당한 미국인들 이야기』 익명의 저자
1799년 제임슨 클린턴 장군(이로쿼이족 토벌에 참가)

ㆍ하지만 이 분석에 여성들이 성 학대 사실을 인정하는 데 거부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추가해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 포로는 억류 기간동안 인디언 아내로 산 경험을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 연애관계가 생기거나, 타협관계가 생기거나, 남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1764년 폰티액 전쟁시 부케 대령, “(...) 인디언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 야만인에게 매달렸고, (...) 애통해했고, 살기를 거부했다.”(p.219)

[이하 인디언이 여자들을 다루던 행태들에 대한 기록, 증언들] (p.220~)
ㆍ백인들이 점점 더 난폭한 행태를 보이면서, 인디언도 후퇴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되갚는 일이 많아졌다. 1842년 역사가 에버니저 믹스, “문명인이 인디언 여성을 포옹으로 오염시키기 전까지는 (...) 강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ㆍ애비 가드너샤프의 경험담(1875) : 노블 부인의 죽음
ㆍ패니 켈리의 경험담(1864) : 성적으로 이용당한 일이 전혀 없는 듯 쾌활하게 이야기를 했다.
ㆍ스탠리 베스탈 1932년 역사책 『Sitting Bull』 : 패니의 경험담 저술, “부인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패니 fanny는 엉덩이, 여자성기란 뜻도 있다.
란 이름으로 남자들끼리 통하는 농담을 자제하지 못했다.
ㆍJ.P던 1886년 역사서 『산악지대 학살』(p.222)
- 존슨 대위, (인디언에게) “붙잡힌 여성은 붙잡은 자가 부인으로 취한다. 취하려는 자가 두 명일 때, 그녀는 총살당하거나 무분별한 폭력에 노출된다. 다른 재산도 비슷하게 처리한다. ex. 말, 양자가 신속히 합의하지 않으면 총살된다.”(아파치의 분쟁 방지 표준 방식)
- 1864년 샌드크리크 대학살 콜로라도 기병대(미 북군)가 샤이엔족 마을을 습격하여 학살한 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시체를 성적으로 훼손했다. 공식작전이었음. / 콜로라도 록키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학살된 자의 2/3이 여자와 아이였다. <솔저 블루>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사적지로 지정됨.[출처:위키]
의 원인을 이렇게 주장한다.
① “인디언 모두가 여성을 아주 고약하게 취급했고, 특히 백인에게 심한 피해를 입은 후 피난 중이던 평원 인디언이 그랬다.”
② “제군들 학살당한 우리 여자와 아이들을 기억하라”는 구호를 내세운 대령 책임자 치빙턴 대령 : 감리교 목사, 인종차별주의자, “인디언 제거는 하나님의 뜻이다.”, 아들 익사 후 며느리와 결혼 [출처:위키]
의 지휘(p.234)
③ “(...) 제 몸을 넘기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는 저를 자기 부인처럼 다뤘습니다.(...) 괴롭히고 학대했습니다.”고 한 유뱅크스 부인의 진술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본 서술]
ㆍ유뱅크스 부인의 진술은 콜로라도 주지사가 샌드크리크 학살을 변명하며 발표한 글에 첨부되었다.
ㆍ유뱅크스 부인 등이 겪은 비극은 그에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선동해 샌드크리크의 인디언 여성들에게 비슷한 잔학행위를 저지르는 데 이용되었다.
ㆍ1879년 우테족에 납치당했던 미커 등 세 여성의 증언이 언론에 조롱당하고, 땅을 원했던 정부에 이용되었다.

[백인남성이 인디언 여성을 강간한 경우]
ㆍ디 브라운, “인디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기록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ㆍ‘스쿠아 squaw, 인디언 아내, 인디언 여성으로 확장해 사용하기도 한다.
’가 백인 남성의 손에서 받은 취급은 훨씬 더 나빴다. 그녀는 살아남아서 증언했다 해도 기록으로는 남지 못했다.
ㆍ1864년 샌드크리크 대학살
ㆍ1871년 그랜트 기지 근처 아파치족 거주지 습격 사건(p233)
ㆍ네즈퍼스족의 역사 기록 중, “(...) 활자화하기 힘들 정도로 극히 잔혹하게 그녀를 살해했다. 그들이 누군지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범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활자화하기 힘들 정도’라는 이유로 인디언 여성이 당한 강간에 대한 기록은 남지 못했다.
ㆍ네즈퍼스 족장 조지프의 증언, “백인 남자 한 명과 백인 여자 두 명을 붙잡았다. 여자들은 모욕당하지 않았다. 백인 군인들은 인디언 여자를 포로로 잡았을 때 모욕하지 않고 풀어준 적이 있다고 단 한 번이라도 말할 수 있는가?“

ㆍ그러나 정작 인디언 여성 본인은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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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응징의 형식을 빌려 나타난다. 타인을 응징할 때 우리 자신의 폭력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출처: 『고독6강(孤獨6講)』, 대만 작가 쟝쉰]

(발제자 개인의 견해: 남성과 여성의 성행위는 단지 육체적 행위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강간을 단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라고 한정짓기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폭력의 하나이며 폭력은 분노의 표출이고, 그 하나의 형태로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약한 대상인 어린이, 노인 등 약자에게 행해진 것이라는 점으로 확장해 보는 것이 좀 더 공감받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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