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해돋이에 앞서>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2-26 19:21
조회
909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2월 26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투스트라』, 「해돋이에 앞서」

해돋이에 앞서
→ 부제를 붙인다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대하여>이리라. 뒷부분에서 명확히 나타나는데, ‘청명한 하늘’은 지상의 모든 사물 위를 덮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곧 우리 만물들을 위에서 규정짓는 목적, 의미, 낡은 가치들이 일소되었다는 뜻이다. 얼마나 상쾌하고 시원한가! 이 글을 읽고 난 후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이 글과 니체가 떠오르면서 나도 큰 상쾌함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물론 우리의 문제는 미세먼지다. 실제 미세먼지와 함께, 미세먼지 때문에 생겨난 담론들, 미세먼지가 강제한 우리의 행동과 습관들, 이런 것들도 우리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티없이 맑은(pure) 자여! 그윽한(deep) 자여! 너, 빛의 심연이여! 너를 바라보는 나는 신성한 욕망으로 몸을 떤다.
→ 니체는 새벽녘 맑은 하늘을 보고 있다. 여기서 하늘은 ‘빛의 심연’이다. 곧 모든 심연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하늘처럼 무한히 깊으면서도, 그렇지만 밝을 수도 있다.

신의 아름다움이 그의 모습을 가린다. 그와 같이 너 또한 너의 별들을 감추고 있구나. 너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너 내게 너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으렷다.
→ 새벽하늘에도 별은 있으나 ‘밝음’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담고 있는 진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온갖 것을 함께 배웠지.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에게[으로] 상승하는 법과 해맑게(uncloudedly) 미소짓는 법을 함께 배웠지.
→ 끝없는, 다시 시도하는 상승. 절대적 높이.

우리의 발 아래서 강제와 목적 죄과(guilty)라고 하는 것들이 마치 비처럼 자욱한 김을 내뿜고 있을 때, 밝은 눈을 하고 멀디 먼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해맑게 미소짓는 법을.
→ 3부 전체와 비슷하게, 이 절에서도 하늘(높이)와 땅(중력, 물론 대지와는 다르다) 사이의 대립이 드러난다. 발 아래서는 강제와 목적, 죄의식이 우리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다. 이 때문에 가벼워지지 못하고, 날거나 상승하지 못하고 ‘중력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내려다보며 미소짓는 것이 차라투스트와 하늘이다.

그리고 나서 나 홀로 방랑길에 올랐지. 밤마다 길을 잃고 내 영혼이 애타게 그리워했던 것은 누구였지? 나는 산에 올랐지. 네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를 나 산 위에서 찾았던 것이지?
→ 하늘을 만나기 위해, 하늘과 같은 높이에 이르기 위해, 산을 올랐다.

떠도는 구름들을, 살금살금 기어다니는 저 도둑고양이들에게 나 화가 난다. 저들이 내가 너와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을 앗아가고 있으니. 저 웅대하며 한없는 긍정과 아멘이라는 말 말이다.
→ 구름은 우리 위에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이며, 그로 인해 하늘과의 관계, 하늘과 같은 자유로움을 흐리는 존재다. 티없이 맑은 하늘의 ‘티’인 것. 이 ‘티’ 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긍정의 힘을 뺏기게 된다. 아멘은 의외다. ‘아멘’ 또한 긍정의 표현?

나 축복하는 자가 되었으며 그렇다고 말하는 자가 된 것이다. 나, 언젠가 축복하기 위해 벌릴 수 있는 두 손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투사였으니.
→ 긍정은 투쟁의 결과다. 우리의 손쉬운 긍정은 타협과 포기, 그에 대한 정신승리인 경우가 많다. 싸우지 않으려는 긍정과 싸워서 얻어낸 긍정.

이것이 내가 내리는 축복이니, 그것은 일체의 사물 위에 그 자신의 고유한 하늘로서, 그 자신의 둥근 지붕으로서, 그 자신의 파란 종(bell)으로서, 그리고 영원한 안전망으로서 펼쳐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복될 지어다, 이렇게 축복하는 자는!
모든 사물은 영원이라는 샘터에서, 그리고 선악의 저편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과 악 그 자체는 단지 중간에 끼어든 그늘, 누기 있는 비애, 그리고 떠도는 구름일 뿐이다.
→ 자신만의 고유한 하늘이 필요하다. 즉 스스로 세상의 목적과 의미들을 몰아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은 ‘영원(회귀)’를 통해서, 미리 정해진 목적 없이 ‘우연’을 통해서 태어났고, 때문에 선악이라는 잣대로 규정지을 수 없다. 선악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그림자와 죄책감을 만들어냈던, 그래서 하늘과 태양을 가리고 있던 범인이다.

나 “모든 사물 위에 우(chance)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라는 하늘, 뜻밖이라는 하늘, 자유분방이라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고 가르친다면 진정 그것은 축복일망정 모독은 아니다.
“뜻밖에라는 가문(Lord Chance).”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유서 깊은 귀족이다. 그것을 나 모든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나 모든 사물을 목적이라는 것의 예속 상태에서 구제해준 것이다.
→ 실로 그렇다. 때때로 사람들은 우연, 갑작스런 자유, ‘우리 삶에는 미리 정해진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다’는 말을 허무함, 인생무상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누가 의미를 부여해주길 바란다. 노예가 되길 바란다. 허무한 주인보다는 의미 있는 노예를! 티 없이 맑은 하늘이 공허한 하늘인 셈이다. 공활한 가을 하늘 속에서 허무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우리! 하지만 ‘공활함’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자유다. 이것이 진정 축복임을 아는 것, 그것이 텅 빈 하늘을 자유로운 하늘로 만끽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연 속에서 삶의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로드 찬스’ 가문의 후손이다. 니체는 텅 빈 하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묶어 놓았던 ‘목적’에서 해방시켰고, 우리의 우연성을 다시금 찾아주었다.

그 어떤 “영원한 의지”도 사물 위에 군림하거나 그것들을 꿰뚫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써, 나는 이 자유와 하늘의 청명함을 파란 종처럼 모든 사물 위에 펼쳐놓았던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가능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으니, 합리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가르침으로써, 나 저 의지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이 자유분방함과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앉혀놓았던 것이다.

얼마간의(little) 지혜,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일체의 사물에게서 저들은 차라리 우연이라는 발로 춤을 추려 한다는, 이 복된 확신을 발견했다.
오,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티없이 맑은 자여! 드높은 자여! 내게 있어서 너의 티 없는 맑음, 그것은 네게는 영원한 이성이라고 불리는 거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거미줄도 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너 신성한 우연이라는 것을 위한 무도장이며 신성한 주사위와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자를 위한 신의 탁자라는 것이다!
→ 공활하게 비어있는 하늘에서 니체는 ‘우연’을 찾아낸다. 사물은 우연에 의해 생겨나며 우연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고 요동친다. 사물의 그러한 변화가 낯설고 혼란스럽지만, 실은 일종의 ‘춤’이다. 파도 위에 떠있는 튜브, 바람에 의해 흩날리는 꽃잎들은 춤을 추고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불안이 왜 ‘복된 확신’인걸까.
이 존재의 춤과 변화들은 이성으로 얽어맬 수 없다. 모든 것을 이성의 망 속에서 포착하려는 거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연이 만들어내는 모든 변화를 긍정하는 것. 그것은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자들이다. 무슨 수가 나오든, 다시 주사위를 던지고 노는 것. 무슨 결과가 나오든 다시 창조하는 어린 아이들.

오,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부끄럼 타는 자여! 작열하는 자여! 오, 너 해돋이 앞서의 나의 행복이여! 낮이 밝아오고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헤어지자!
→ 청명한 새벽하늘 끝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다. 해가 떠오른 정오엔 ‘정오다운’ 가치전환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빈 하늘에 머물 수 많은 없다. 그러니 작별하자.


<차라투스트라를 참조할 만한 책>
- 최상욱,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메타포로 읽기』
-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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