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영대
작성일
2020-05-26 18:47
조회
407
□ 다지원 – 인류학 세미나 ∥ 2020년 5월 26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에두아르도 콘, 『숲은 생각한다』, 서론

○ 19쪽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의 발이 되어주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팡이는 죽을 운명의 연약한 자기(self)와 그 앞에 펼쳐진 세계를 매개한다. 그리하여 지팡이는 자기에게 세계의 무언가를 어떤 식으로든 표상(=재현, represent)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세계의 무언가를 표상해 준다는 점에서, 수많은 부류의 자기들에게 지팡이가 되어주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이 인공물인 것도 아니며, 이 모든 부류의 자기들이 인간인 것도 아니다. 유한성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재규어를 비롯한 여타의 살아있는 자기들 - 박테리아, 꽃, 균류, 동물 - 과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주변 세계를 표상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존재 자체를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기호론>이다. 앞으로 기호론이 자세히 설명되겠지만, 이 지팡이 이야기가 그 힌트가 된다. 콘의 기호론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기호가 인간 정신 안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언어와 같이, 우리가 임의대로 부여하는 기호(실제 사과-‘사과’라는 단어)가 아니다. 콘이 반복해서 말하지만, 우리는 언어 또는 상징적 기호만 기호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기호 및 기호론이 인간에게만 유일한 것이라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기호론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이러한 인간적 전제에서 지팡이는 단순한 도구이자 인간(만)의 발명품이다. 하지만 비상징적 기호론으로 확장시킨다면, 지팡이는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기호를 생산한다. 그래서 지팡이를 주어(주체)로 삼아, 지팡이가 세계를 표상/재현하는 것이다. 앞에 놓인 길이 평평하다면 지팡이는 그에 상응하는 반발을 손 끝에 전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손 끝에 전해지는 기호, 곧 지팡이가 세계와 만나서 스스로 생산해내는 기호를 감지한다. 그리곤 앞의 길이 평평하다, 계단이 있다 등을 이해/인식한다. 혹은 그렇게 사고한다. 길의 평평함과 지팡이의 특정한 반발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그 반발성이 평평함을 재현한다. 이런 방식이 일반화된 의미에서의 <기호>다.
이런 경우, 지팡이는 우리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사고활동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팡이와 함께, 지팡이를 통해서 사고한다. 아마 저자는 ‘기호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행위한다’, 또는 ‘기호를 새롭게 바꿔낸다/조작한다’ 등을 ‘사고한다’의 새로운 정의로, 모든 생명에게 가능한 일반적 정의로 쓰지 않을까.
그렇다면 확실히 기호를 통한 사고는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게 된다. 동물들이 다른 동물의 행동,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변화 등을 통해서, 그러한 기호들을 통해서 세계와 그 변화를 이해한다면, 동물들은 생각한다. 숲 역시 이러한 수많은 기호들을 생산하고, 또 기호들을 받아들여 변화한다면, 확실히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 안의 다른 존재들, 간이나 위, 미생물 등도 이런 기호들의 소통(communication)으로 생각하고 활동하지 않을까. 만물의 사고활동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cf. 컴퓨터는 기호조작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 23쪽 “숲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는 무언가를 표상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고의 관성을 끊어내는 데 있다. 우리의 전제와는 반대로, 표상은 관습적, 언어적, 상징적인 것 이상의 어떤 것이다. ... 비인간적인 생명-형식들 또한 세계를 표상(재현)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인간 언어의 작동 방식에 관한 우리의 전제를 바탕으로 표상의 작동방식을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표상과 언어를 혼동하게 된다. 언어적 표상은 관습적이고, 체계적으로 상호 연관되며, 지시대상과 ‘자의적으로’ 관계 맺는 기호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관습에 기초하는 그러한 ‘상징적’기호들은 인간 특유의 표상 형식이자 인간 언어를 가능케 하는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실상은 그와 다른 표상 양식들에서 창발하며 다른 표상 양식들과 연관되어 있다. 퍼스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와 같은 다른 표상 양식들은 ‘아이콘적’ 표상 양식이거나 ‘인덱스적’ 표상 양식이다.

○ 35쪽 “이는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반드시 상징적이지 않은 기호들 - 즉 관습적이지 않은 기호들 -을 활용하는지에 관한 민족지적 탐구이며, 이를 통해 이러한 기호들이 어째서 상징적인 것에 의해 전적으로 제약될 수 없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 상징적 폐쇄성이라는 확고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러한 틈새가 실존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인류학의 기초 개념인 맥락에 관한 우리의 전제를 다시 사고하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관습적인 기호가 어떻게 여러 기호 양식들 중 하나에 불과한지를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낯설게 만들고, 기존 인류학적 분석에서 상징적인 것에 의해 가려지고 왜곡되었던 여타 기호 형식들의 다양한 비상징적 특성들을 탐구하는 데 있다. 많은 측면에서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은 인간적인 것이 어떻게 인간적인 맥락 너머에 놓여 있는 것의 산물이기도 한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 우리의 인식 체계는 확실히 상징적이다. 상징적 기호들로 둘러쌓여 닫혀있다(폐쇄성).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호가 상징적인 것은 아니며, 거기엔 비상징적 기호들, 곧 상징적 폐쇄성의 틈이 있다. ‘틈새’이긴 하지만 사실 이 틈 또한 거대하지 않을까? 콘이 그리고 있는 바에 따르면, 우리의 상징기호는, 다른 이질적인 기호형식들을 총괄하는 더 큰 기호론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관습적인 상징기호가 “여러 기호 양식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은, 그것이 인류와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한에서, 인간적인 것의 성립 조건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그 성립 조건은 바로 비-인간적인 것, 탈-인간적인 것이다. 요컨대 “인간적인 맥락 너머에 놓여 있는 것의 산물”인 셈이다. 비인간적 조건을 통해서만 밝혀지는 인간적인 것, 이것이 콘이 인간을 넘어서 탐구하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 이후’이지만, 인간 외부에서 언제나 이미, 사전에 작동하고 있었다.

○ 38쪽 “무분별이 작동하는 이 살아있는 기호적 역동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부류들(kinds)’이 어떻게 인간적인 것 너머의 세계에서 창발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부류들은 그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선천적이거나 관습적인 범주들이 아니다. 부류들은 존재들이 어떤 혼동을 겪으면서도 자기들의 생태학 속에서 서로 관계맺는 방식으로부터 생겨난다.
→ 칸트를 향한, 칸트식의 ‘상관주의’에 대한 비판. 물자체의 세계에는 접근할 수 없고, 우리는 이를 우리 정신상의 구조가 낳는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이해한다. 여기서 세계의 현상들은 우리와의 관계(상관) 속에서 파악되고, 그렇게 밖에 파악되지 않는다. 최근의 철학적 논의인 사변적 실재론은 이 상관주의를 가장 큰 적으로 삼아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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