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430 ~ 441

작성자
commons
작성일
2020-09-05 13:36
조회
426
<계급의 양극성>

1. 자본주의 운동이, 그 미분 비들의 작동에 있어, 지정 가능한 고정된 극한 전체를 교묘히 피하고, 그 내부 극한들을 넘어서며 이전하고, 절단의 절단을 언제나 조작하는 것이라면, 사회주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PT와 BG를 구별하는 극한을, 즉 경제적 재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기도 한 투쟁을 이끌어 가는 큰 절단을 고정내지 지정하기에 이르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식으로 국가 장치를 정복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언제나 문제였고 여전히 문제이다.

2. 레닌과 러시아 혁명의 엄청난 성과는... 계급의식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로 자본주의국가들에 계급의 양극성을 인정하라고 강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자체 속에서 국가자본주의가 부활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고전전 자본주의가 레닌주의의 위대한 절단을 돌리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언제나 절단들의 절단들을 통해, 통제되지 않는 혁명적 요소들울,,, 주변부로 몰아냄으로써 인정된 계급이 부문들을 자신의 공리계에 통합할 수 있었다. 이제 사회주의 국가의 포화되는 공리계와 자본주의 국가의 냉소적인 옛 공리계 간이 선택만이 남았다.

3. 계급의 이해관계는 그램분자적 거대 집합들의 차원에 머무른다. 그것은 하나의 집단적 전의식을 정의할 따름이며, 이 전의식은 반드시 이와 구별되는 의식 속에서 재현되므로 이 층위에서는 의식이 배반하는지 아닌지, ..물을 필요조차 없다. 이와 반대로 참된 무의식은 집단의 욕망 속에 있으며, 이 욕망은 욕망 기계들의 분자적 차원을 작동한다. 바로 여기에, 즉 집단의 무의식적 욕망들과 계급의 전의식적 이해관계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

4.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만, ..이로부터 간접적으로 도출되는 물음들, 극 계급의 전의식과 계급 의식의 재현적 형식들에 대해, 이해관계들의 본성과 이것들의 실현 과정에 대해 물음들을 제기할 수 있다. 라이히는 욕망과 이해관계를 사전에 구별할 권리들을 요청하는 결백한 절박함을 지닌 채 항상 돌아온다.



<욕망과 이해관계>

1. 욕망은 절대로 속는 법이 없다. (Desire can never be deceived) 이해관계는 속거나 오인하거나 배반당할 수 있지만, 욕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라이히는 외친다. 아니다 대중들은 속지 않았다. 대중들은 파시즘을 원했다. 설명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 사람들은 자기 이해관계에 거슬려서 욕망하는 수가 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이용하는데,capitalism profits from this 사회주의, 당, 당 지도부도 이것을 이용한다but so does socialism. 오인들이 아닌 완전히 반동적인 무의식적 투자들인 작업들에 몸을 맡긴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까? Q> 이용당하는 욕망과 이윤을 취하게 하는 욕망? 전자는 속는 욕망이고 후자는 흐름의 잉여가치를 낳는 욕망?

2. 라이히의 <전통적 고착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 전통적 고착들 또한 역사적 과정의 일부를 이루며, 우리를 국가의 현대적 기능들로 다시 데려간다. 문명화된 현대사회들은 탈코드화와 탈영토화하는 것을 다른 편에서 재영토화한다. 이 새-영토성은 종종 인공적-잔여적-의고적이다. 다만 이것들은 완전히 현행적인 기능을 하는 의고주의인데, 이는 곧 코드의 파편들을 <벽돌처럼 쌓고> 구획하고 재도입하며, 옛 코드들을 부활시키고, 사이비 코드들 내지 전문어들을 발명하는 우리의 현대적 방식이다. - 자본주의의 파시즘과 사회주의의 권력의 인물화. //Q> 욕망과 이해관계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가? 의고주의의 방식(재영토화)과 분열증적 방식(탈영토화)?

3. 현대 국가의 기능이 탈코드화되고, 탈영토화된 흐름들의 조절이라는 것이 참라면, 이 기능의 주요 양상들 중 하나는 재영토화를 행하고, 그리하여 탈코드화된 흐름들의 사회 공리계의 어떤 끄트머리에서라도 도주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 중앙은행의 역할, 주변부의 재영토화, 주변부의 경제적 정치적 자기-중심화, 때론 지방 전제군주들의 의고적 형식등

4. 극한에서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둘은 서로를 취하거나 아니면 동일한 과정의 표리와 같으니까.



<탈영토화와 자본주의적 재영토화들- 그 관계, 경향적 저하 법칙>


1. 국가에 의한 조절의 이 본질적 양상이 자본주의 자체의 경제 사회 공리계에 직접 기초한다. 의고적 내지 인공적인 새-영토성들의 윤곽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탈영토화된 흐름들의 결헙 자체(극한?)이다.

2. 맑스가 발견한 부의 본성은 주체적이고 추상적인 본질이다. 더 이상 객체의 측면에서, 즉 영토 기계나 전제군주 기계 같은 외부 조건들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맑스는 본질적으로 <냉소적인>이 발견을 새로운 영토화에 의해 수정한다. 주체적 추상적 본질로서의 생산은, 생산을 새로이 대상화하고, 생산을 재영토화함으로써 생산을 소외하는 재산의 형식으로만 발견된다... 왜 자본주의가 자기가 처음에 탈영토화한 것을 끊임없이 재영토화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3. ⌜자본⌟에서의 이중 운동: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추상적 부의 주체적 본질, <생산을 위한 생산>. 자기 목적으로서의 생산..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만 진행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는 <자본을 위한 생산>. <이용 가능한 자본 가치의 가치증대> 라는 특정 생산양식인 한에서, 자기 고유의 제한된 목적의 틀 안에서만 진행될 수 있다. 첫째 양상에서는 탈영토화하면서, 가지 고유의 극한들을 넘어선다. 둘째 양상에서는 내재적인 내부 극한들과 장벽들이 있는데, 내재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상대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것들은 확대된 규모로 자기를 재산함으로써만 넘어설 수 있다. .. 바로 이런 까닭에 경항적 저하의 법칙, 즉 늘 극복되고 늘 재생산되기 때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극한들이라는 법칙은, ... 그 귀결로서. 아니 그 직접적 발현으로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라는 두 운동의 동시성을 갖는 것 같다.


<공리계의 두 극-전제군주 기표와 분열증 형상, 편집증과 분열증>

1. 현대사회들의 사회 공리계가 두 극 사이에 붙잡혀 있고, 끊임없이 한 극과 다른 극 사이를 왕복한다. ... 현대사회들을 초코드화하고 재영토화하는 통일체로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원국가와 하나의 절대적 문턱으로 끌고 가는 풀려난 흐름들 사이에 현대사회는 붙잡혀 있다. .. 현대 사회들은 두 방향 사이에 붙잡혀 있다 의고주의와 미래주의. 신-의고주의와 탈-미래주의, 편집증과 분열증 사이에, 현대 사회들은 두 극 사이에서 흔들거린다. ... 망상의 두 극은 애매하고 변형되기도 하며, 의고주의나 민속의 방식은 이런저런 상황에서 갑자기 위험한 진보적 가치를 짊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그것이 파시즘이 되거나 혁명적이 되는가 하는 점은 보편적 망상the universal delirium의 문제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우선 특히 정신의학자들이 입을 다문다. .. 현대사회 공리계마저도 자기 고유의 절단이 행사되는 극들 중 한 극(으로 자신을 부활시키면서만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유일한 국가는 퇴각해서 전제 역사를 위한 유일한 절단을 구성한다.


< 세 개의 거대 사회 기계들 요약 –영토 기계, 전제군주 기계, 자본주의 기계(코드화, 초코드화, 탈코드화)>


1.우리는 미개, 야만, 문명에 대응하는 세 개의 거대 사회 기계를 구별했다.

2. 현대의 공리계는 .. 자신의 내재성의 바닥에서 초월적 원국가를 자신의 내부화된 극한으로서, 또는 자신이 왕복하도록 규정된 두 극의 하나로서 재생산한다, 이 공리계의 태연하고 냉소적인 성격 밑에서는 이 공리계의 다른 극- 그것의 사고들, 고장들, 및 그것의 초월적 부활들로서 그것의 내재적 조절들이라는 벽 너머로 그것이 탈코드화하는 것을 뛰어넘고 이행시킬 기회들-을 형성하는 거대한 힘들이 공리계를 움직인다.

3. 각 유형의 사회기계는 어떤 종류의 ‘재현’을 생산하는데, 이 재현의 요소들은 사회체의 표면에서 조직된다. 연결-함의 체계, 분리-종속 체계, 결합-조정 체계, 결합-조정체계는 흐름들의 탈코드화에 대응한다. 탈영토화, 공리계, 재영토화, 이런 것들이 현대 사회에에서 욕망의 재현의 표면에 있는 세 요소이다.

4. 사회적 생산과 욕망적 생산 사이에 ‘본성의 동일성’이 있지만 ‘체제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때,... 1) 본성의 동일성은 현대자본주의 재현의 체제에서 최고점에 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체제의 차이는 -반생산이 욕망에 침투하여 욕망을 짓부수는 환상적인 죽음 본능을 풀어놓으면서 그 내재성과 탈코드화 덕분에 체계 속에 국지화된 채 머물러 있지 않고 생산 전체를 가로질러 퍼져 있으니까, 체제의 차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재현의 체제에서 가장 가장 큰 것- 양심의 가책, 자발적 노예?- 이고, 또 이 재현은 욕망에 대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강한 억압-탄압의 조작을 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언제나 안에서 생기지만 밖에서 도래해야만 하는 이 죽음은 무엇읽까?- 자본주의의 경우 죽음을 도래하게 하는 이 바깥은 무엇일까? A> 원국가?

5. 사회에 대한 일반 이론은 흐름들에 대한 일반화된 이론a generalized theory of flows이다. 바로 이 이론과 관련해서 사회적 생산과 욕망적 생산의 관계, 각 경우에 있어서이 관계의 변주들,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 관계의 극한들을 평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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