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 자화상

작성자
youngeve
작성일
2018-09-15 01:54
조회
1305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우물'은 북간도에 실제로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현동에 있는 우물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논가에는 우물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우물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김영랑의 시 '마당 앞 맑은 새암'이라는 시에 나오는 우물일 가능성이 있다. 김영랑의 시와 윤동주의 '자화상'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김영랑의 시는 다음과 같다.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 본다.

저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머-ㄴ 하늘만
내어다 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 본다.

저 깊은 땅 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 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

[출처] 김 영랑 : 마당 앞 맑은 새암|작성자 hobnob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 이것은 마치 우물 속에 우주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이 시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 연의 '우물 속에는.....(중략)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다고 표현했을까. 추억처럼 아름답다는 것일까, 자신을 용서했다는 뜻일까. 지금의 모습이 밉고 가엾지만 현재의 자기 모습을 과거의 추억처럼 용서하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과거는 현재 상태에서 자기가 과거의 일에 대해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의 모습이 과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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