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 인지론적 가정 발제 / 『몸의 인지구조』 세미나 2주차

작성자
Kaine
작성일
2022-05-10 13:56
조회
386
기호 : 인지론적 가정 발제 / 『몸의 인지구조』 세미나 2주차 / 220510 박혜인

시작점
이 챕터3에서는 기호 ; 인지론적 가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본론에 앞서 이 책이 시도할 인지과학과 인간경험에 대한 탐구는 초기 인지과학 영역에서 인지론이 나타나게 된 계보를 조사하고있다. (참고로 '몸의 인지과학'의 부제는 ; 인지과학과 인간경험이다.) 그 시작점이 되는 사이버네틱스를 살펴보고 있으며, 그것이 사장되는 과정 중에 중심이 될 아이디어는 살아 남았다. 지관의 전통에서 제공되는 마음의 분석은 현재 인지론이 제공하는 마음에 대한 개념과 정반대되는 주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 장은 결과적으로 인지론적 시각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인지과학의 초창기 학문의 이름은 사이버네틱스였으나 사장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지과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의 뿌리가 사이버네틱스였다는 걸 알지 못한다. 사이버네틱스의 목표는 마음의 과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이버네틱스의 연구가들은 정신현상의 구성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신경활동에 내재하는 사고의 논리적 계산>이라는 논문에서는
첫째, 두뇌와 정신활동을 이해하는 데는 논리학이 적절한 학문적 방법이 된다는 제안.
둘째, 두뇌는 논리적 원칙들을 뉴런들로 구체화시키는 장치라는 주장.
인지론의 핵심사상은, 인간의 인지현상은 계산과 비슷해서 실제로 인지현상을 기호적 표상들에 가해지는 계산적 처리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현상이 계산으로 정의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계산이라는 것은 기호들에 가해지거나 그것에 작용하는 조작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개념은 표상이라는 개념 ; 지향성이라는 개념이다. 인지론자들은 지적인 행위는 세계를 일정한 방식으로 표상하는 능력을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인지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지향적이거나 표상적 상태와 행위자가 행동할 때 나타나게 되는 물리적 변화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점이 해결해야 할 핵심적 문제가 된다. 여기가 바로 기호계산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지점이다. 기호들은 물리적인 특징과 의미론적인 내용 모두를 지니고 있다. 계산이라는 것은 기호조작이다. 계산이란 의미론적이거나 표상적이다. 컴퓨터는 사고의 기계론적 모델을 보여준다는 가정, 즉 사고는 물리적이며 기호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인지과학은 인지적, 물리적 기호 체계에 관한 연구다. 인지현상의 설명에 있어서 인지론은 물리학과 신경생리학의 단계와는 구분되는 기호의 단계를 가정한다는 점이다. 인지론적 가정이 구문론과 의미론의 관계에 관한 매우 강한 주장을 함의하고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기호로 된 코드의 구문적 속성은 그 의미론적 속성을 평행적으로 반영하거나 기호화한다. 하지만 인간 언어에 있어서는 행위설명에 필요한 모든 의미론적 구분들이 구문론적으로 충실히 반영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심은 인지와 경험에 집중된 것이기에 이런 언어에 관한 문제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인지론적 노력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이므로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인지론의 등장
1) 인공지능에서의 인지론
인지론의 등장은 인공지능 AI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인지론적 가설은 인공지능에 거의 완벽하게 적용되었다. 역시 계산론적으로 규정되는 표상들이 중심적 설명도구가 되었다. 심리표상은 형식체계에서 나타는 사건으로 규정되고 마음의 활동은 이런 표상에 명제 태도적 색채(믿음, 욕구, 의도 등)를 주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인공지능과는 달리 여기서는 자연적 인지체계가 진짜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되며 이 경우 인지적 표상은 그 체계와 대면하는 어떤 것을 향하고 있는 표상들이라 전제된다. 이런 의미에서 표상들은 지향성을 갖는다고 간주된다.

2) 인지론과 두뇌
인지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여는 인지론이 최근 두뇌 연구에 끼친 영향이다. 이런 영향의 분명한 예는 동물들에게 시각 자극이 주어졌을 때 뉴런의 전기적 반응에 대한 연구, 즉 시각피질에 대한 놀라운 연구에서 발견된다. 외부속성들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정보처리장치로 두뇌를 간주하는 기본적인 입장은 현대 신경과학과 두뇌의 기능에 관한 일반인들의 대중적 이해의 중심적 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3) 심리학과 인지론
심리학에 대한 인지론의 영향은 무엇인가? 이 점을 이해하려면 심리학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내성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내성과 집중의 명상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마음을 직접 연구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론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일단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공통적인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성주의는 행태론이라는 지배적인 학파로 대치되었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대신할 뚜렷한 한 가지 방법은 밖으로 드러난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행태론은 마음을 심리학에서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에, 20세기의 실증주의적 시대정신이었던 과학의 객관론과 조화를 이룬다.

4) 인지론과 정신분석
실제로 정신분석이론은 그 탄생에서부터 분명히 인지론적이었다. 프로이트는 후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브렌타노의 강의에 참석했으며, 브렌타노의 마음에 대한 표상적, 지향적 견해에 완전히 동조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심지어 본능이라 하더라도 표상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것은 행위를 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본능은 의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본능을 표상하는 관념만이 의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의식에서조차도 본능은 관념에 의해서만 표상된다." 심리구조와 심리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기술은 다른 심리학 체계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며 비유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보다 적합한 입장은 그런대로 괜찮은 반응을 얻은 에르델리의 인지론적 정보처리언어로 번역된 프로이트 이론이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억압/검열의 개념을 인지론적인 용어로 바꾼다면 지각이나 관념으로부터의 정보와 불안에 대한 적절한 설명 기준을 서로 맞추는 것이 된다.
만일 정보가 이 기준을 넘어서면 그 정보는 정보처리/접근 중단 박스box로 넘겨지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정보는 무의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만일 정보가 기준보다 낮으면 전의식의 단계로 넘어간 다음 의식에 주어지게 될 것이다. 결정의 단계에서 또 다른 검토과정을 거쳐 이 정보는 행위로 이어지게 되거나 억제된다. 이런 기술이 프로이트 이론에 새로운 것을 첨가하는가? 이런 작업은 무의식과 같은 프로이트적 개념을 오늘날의 '과학적' 용어로 번역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크 라캉 같은 이들은 이런 점에 반대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공평한 설명이 될 것이다. 이런 과학적 언어로의 번역은 정신분석과정의 핵심적 정신을 자세히 말해 무의식을 포함해서, 표상들의 모든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올바로 살리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업적은 자아를 '탈중심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현재 유행되고 있다. 프로이트가 실제로 한 일은 자아를 여러 개의 기본적인 자아들로 나눈 것이다. 프로이트는 필리신적 의미에서 엄밀한 인지론자가 아니다. 무의식은 의식이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표상을, 적어도 이론적으로 의식화되었거나 의식화될 표상을 가지고 있다. 인지론적 연구프로그램이 인간경험의 이해에 대해 갖는 함축은 무엇인가? 우리는 연관된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 인지론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식할 수도 없는 심리과정 또는 인지과정을 상정한다.
2) 인지론은 자아 또는 인식의 주체가 근본적으로 단편화되어 있거나 비통일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둘은 논의를 진행해가면서 점점 더 상호연결된 것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사실은 인지과학이 야기한 과학과 경험 사이의 긴장관계를 소개했을 때 이미 밝혀졌다. 거기서 모든 인지론적 이론들은 '하위인격단계'에 관한 것이라는 대니얼 데넷의 주장을 인용했었다. 보통 '무의식'이라고 말하는 것과 인지론에서 심리과정이 무의식적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보통 무의식적인 것은, 자기의식적 반성이 아니라면 적어도 정신분석과 같은 조직화된 방식에 의해서 의식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인지론은 심리적이긴 하지만 결코 의식화될 수 없는 과정들을 상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심상을 일으키는 것에 관한 규칙 또는 시각과정을 지배하는 규칙을 잠시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예 그런 규칙들을 의식할 수 없다. 만일 그런 인지과정들이 의식화될 수 있다면 그 과정들은 더 이상 신속하거나 자동적이지 못해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물론 프로이트도 마음과 의식이 동일하다는 생각에 도전했었다. 게다가 그는 마음과 의식을 구분하는 것은 곧 다루게 될 주제인 자아 또는 인식주체의 분열을 함의하는 것이라는 점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마음과 의식 사이에 본질적인 또는 필연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이 문제를 깊이 끌고 갔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데넷이 말하듯이 '새로운 인지론적 이론들이 풍부한 상상을 요구하는 호문쿨루스(인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두뇌의 작은 하위체계들,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복종하거나 자원하기도 한다)의 비유로 가득 차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하위체계들은 신장이나 슬개골처럼 개인적인 시각이나 내적인 정신생활을 결여한 생물학적 체계로 만들어진 분명한 무의식의 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상상적인 호문쿨루스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이런 '하위인격' 체계들에 대한 성격 규정은 이런 모든 비유들이 결국에 가서는 비의식적인 것으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에 단지 잠정적인 것일뿐이다. 인지의 영역에서는 반드시 의식이라는 속성을 가질 필요는 없고, 다만 분명한 표상의 단계를 지닌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체계들만이 존재한다. 물론 어떤 표상체계들은 의식을 지닌다. 그러나 이들이 반드시 표상들 또는 지향 상태들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인지론자들에게 있어서는 인지와 의식이 아니라 인지와 지향성(표상)이 분리할 수 없는 짝이 된다. 인식주체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모든 심리과정의 집합인가? 아니면 주체란 의식과 같이 다른 여러 심리과정들 중의 한 심리과정인가?
특별히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정합적이며 통일적인 '시각', 즉 우리가 사고하고 지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입지를 확보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기에, 두 가지 경우 모두 아가 존재한다는 자신의 느낌은 도전을 받는다. 하위인격 활동의 치열한 폭풍 가운데서 정합적이며 통일적인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한 가지 문제일 뿐이다. 이 불가능성은 분명히 자아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도전은 제한적인 것이리라.
자아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런 인지론적 방식으로 자아를 찾을 수는 없다고 가정할 수 있다. 아마도 사르트르가 주장했듯이 자아란 너무도 가깝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는 자아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지론적 도전은 보다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자아가 무엇이라고 가정하든지 간에 우리는 특별히 의식이 자아의 중심적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자아의 가장 중심적 속성이 인지에 필요하다는 확신에 대해 인지론이 도전하는 형세가 된다. 다시 말해 인지론적 도전은 단순히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도전은 자아라는 것은 인지에 필요조차 하지 않다는 보다 깊은 부정적 함의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과학과 경험 사이의 긴장관계는 분명하고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 인지가 자아 없이 진행된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자아를 경험하는 것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 경험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와 관련된 복잡성은 인지과학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재켄도프는 최근에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저서를 내놓았다. 인지론에 의해 밝혀진 의식, 마음 그리고 자아 이들 사이의 문제성 있는 관계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기에 재켄도프의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과학과 경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순수이론적인 접근이 얼마나 방법론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경험적으로도 불완전한가 하는 시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우리의 목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이유로 이 장을 재켄도프의 계획을 간단히 고찰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려 한다.

경험과 계산적 마음
이제 인지론의 내부에서 인식주체가 둘로 나뉘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인식은 무의식적인 기호계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식은 의식적 경험이다. 재켄도프는 그의 책에서 그가 계산적 마음과 현상적 마음이라 부르는 인지의 두 가지 측면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재켄도프가 지적하듯이 인지론은 "의식된 경험이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의 핵심은 계산적 마음과 현상적 마음 사이의 관계이기에, 재켄도프는 이 문제를 '심심문제'라고 부른다. 심심문제, 말하자면 계산적 상태와 경험 사이의 관계의 문제도 있다. 인지론적 가설을 야기한 요인이 재켄도프가 말한 '계산적 심신문제', 즉 논리적 연산이라고 간주되는 사고가 물리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였다는 점이 보다 명백해져야 할 것이다. 반면에 '심심문제'는 완성된 형태의 지향성과 의식의 문제에 관계한다. 기호적 계산으로서의 인지가 어떻게 경험된 것으로서의 세계와 관련 맺는가? 재켄도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의식적인 지각의 요소는 계산적 마음의 정보와 과정들에 의해 야기/뒷받침/투사된다"는 것이다. 의식적 지각을 "계산적 마음의 부분적 요소들의 외재화 또는 투사체"로서 간주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 연구프로그램은 어떤 요소가 의식적 지각을 '투사'하고 '뒷받침'하는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재켄도프는 이들 요소들은 계산적 마음의 중간단계 표상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켄도프는 이 '중간단계이론'을 책 전반에 걸쳐 성공적으로 다듬었다. 인지의 발제적 견해를 소개한 연후에 우리는 이 중간단계이론의 발전에 대해 다시 논의할 것이다. 현 단계에서 우리는 의식이 계산적 마음의 중간단계 표상으로부터의 투사라는 그의 기본적 사고에서 귀결되는 두 가지 중요한 결론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결론은 자신의 계산론적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재켄도프는 경험적, 현상적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의 이론은 인식주체의 분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두 결론은 지관의 전통에서처럼 인간경험에 대한 집중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적 접근으로 인지과학을 보완해가야 할 필요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재켄토프의 주장에서 이 책의 출발점이었던 근본적인 순환성의 문제가 다시 전면에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지체계의 구조, 현재 논의의 맥락에서는 계산적 마음으로 이해된 인지체계의 구조를 탐구하게 된다. 재켄도프는 일상적 경험은 적절한 현상적 증거를 얻을 수 있는 통로이며 현상적 탐구는 대체적으로 이런 마음의 산만한 상태를 대상으로 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의식적 지각이 일상적 형태에서부터 발전적으로 계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또한 이런 발전이 경험의 구조와 그 기본적인 바탕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줄 가능성도, 재켄도프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일상적 마음의 결여된 상황에서 재켄도프가 서양적 전통의 맥락에서 추구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이다. 재켄도프가 제시하는 현상적 통찰력과 계산의 놀라운 공동이론화는 이런 가능성의 추구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임을 보여준다
경험에 대한 집중적이며 동시에 개방적 자세가 갖는 의미는 재켄도프의 이론이 인식주체의 분열을 함의한다는 두 번째 결론을 살펴볼 때 다시 분명해진다.
재켄도프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의식에도 자아의 다양한 형태만큼이나 분열이 존재한다. 따라서 의식적 지각의 시각적인 형태는 청각적 의식 지각과 분명히 구분되며 이 양자는 촉각적 의식 지각과 확연히 구분된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 재켄도프의 계산적 이론은 현상적 구분에 규제를 받고 있으므로, 재켄도프는 이런 의식적 지각의 차이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재켄도프는 의식 자체가 원래적으로 분열된 것이라 주장해 이 분열을 더욱 강조한다.실제로 재켄도프가 계산적 마음과 현상적 마음 사이의 다리를 놓는데 이용한 것은 바로 이 분열이다.그러나 이 두드러진 발전은 과학과 경험 사이이 긴장관계를 단지 분명하게 했을 뿐이다.
의식적 경험이 계산적 조직체로 인해 가능하기 때문에 재켄도프가 의식적 경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재켄도프에 의하면 현상적 마음에 나타나는 구분들은 현상적 마음에 의해 제공되는 구분이 아니라 계산적 마음에 의해 현상적 마음에로 투사된 것들이다. 실제로 재켄도프는 의식은 인과력을 가진다는 생각을 분명히 부정한다. 대신에 그는 모든 인과산출능력을 계산적 단계에 존재하는 사건에만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인정해야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이 결론에서 지향성과 의식의 분리라는, 인지론적 분리의 보다 극단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그 결론이 살아 있는 경험의 흐름을 막기라도 하는가? 현대철학의 대부분의 논의에서 보듯이 철학적 결론 그 자체가 오히려 부대현상이 아닌가? 다음장에서 우리는 자아의 경험을 주제로 해서 이런 중도 탐험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자아 없는 마음과 인간경험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폭풍의 눈'인 자아에 대한 논의로 우리는 직접 들어가려고 한다. 곧 알게 되겠지만 현대인지론이 발견한 자아와 의식적 지각의 분열은 실제로 지관적 전통 전체의 중심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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