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여자를 되돌아보다ㅣ박정인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11-11 14:58
조회
595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여자를 되돌아보다


박정인 해인예술법연구소장


마리아로사는 같은 여성으로서 진솔하고 상세한 관찰, 교수로 가기보다는 사회운동가로의 진보성에 대한 집중, 매섭지만 진솔한 집필력 등으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하는 여성이다.


그러한 그녀의 저서 '페미니즘의 투쟁'은 성평등사회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대 여성이 한번쯤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산이 가능한 자신의 몸에 비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소외되고 쓸쓸하며 심지어 고통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서 원죄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로사는 위대한 문장들로 푸르른 점 하나 찍어 모든 인류의 역사와 기억, 모든 순간을 연결하고 ‘여성’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다른 모든 상품과 달리 여성이 생산하는 상품은 인간, 다시 말해 노동자이다...사회적 상황은...공장의 부속물이 결코 아니며 그 자체로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결부되어 있다.”(23쪽)


마리아로사는 사회적 공장의 상태로서 모든 여성들이 사회 지배층의 논리에 따라 때로는 전쟁을 위해 취업전선에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을 위해 가정으로 비켜나서 부불노동(돈을 지불하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을 가사서비스에서 해방시켜 그들이 자본주의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남성과의 관계에서는 여성의 종속을 막을 수 없으므로 더 이상은 남성과의 관계를 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때부터였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주의력과 활기가 흩어지고, 힘이 약화되며 목표를 제한당했다.”(28쪽)


미국의 한 운동 집단이 표명하는 견해로 보면 여성과 남성은 엄격한 노동분업에 바탕을 두고 서로 상반되는 경험을 하므로 결코 진정한 의미의 공정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또한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남성이 가장으로 임금을 벌어 가족이 살 수 있을 때에는 엄격한 노동분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기계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임금이 자본에 비해 낮아져 그것이 어려워졌다. 남성의 임금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모두 임금을 벌어 가족이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사노동은 여성의 부불노동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


오랫동안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독창성을 펼칠 가능성, 노동 활동을 성장시킬 가능성을 차단당해 왔다. 그리하여 임금을 받지도 파업을 하지도 않고 가사노동을 하므로 경제 위기로 주기적으로 직장에 쫓겨나는 이들을 모두 가정의 일원으로 언제든 다시 맞아들이게 된다.


투쟁을 위해서는 가사노동에 벗어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투쟁을 통해 여자들은 서서히 대안적 자아를 찾아내게 되었고 가사노동은 죽은 노동으로 소비하는 여성, 경쟁하는 여성, 분열을 일으키는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여성을 비하한다.


1970년 이탈리아 페미니즘의 주요한 외형은 가사노동 임금운동과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 분석에서 출발한 가사노동 임금운동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자에게 국가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가사노동을 강요받는다면 기본조직 단위인 가정을 분쇄하고 여성 스스로 자녀만이 아니라 사상을 낳는 인간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분위기로 모성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상 사치가 되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접근해야 하며, 노조, 정부, 경영 정책이 합심하여 여성을 희생시키려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했든 국가가 출생률과 생식률을 통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가 여성의 운명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은 남성들과 국가를 성립할 때 수많은 저항활동을 했는데 그 때에도 여성의 노동은 가장 위험한 정치 업무였지만 정치 조직 안에서 거의 어떤 발언권도 가지지 못했다.


국가가 성립한 뒤에는 남성을 위해 언제나 대량 정리해고 대상이었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남편의 임금에 딸린 존재로 여겨지던 여성들은 저발전 질병인 비타민 결핍중과 혈액순환 문제로 대다수 사망했다.


여성은 늘 남편과 자식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은 끼니를 거른 채 잠이 들고, 매우 오랜 시간 서 있고 아주 오랜 시간 손에 물을 담그고 있었다. 그나마 농장 여성은 보수를 받지 않고 지주 아내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악명높은 관습에서 해방되어 틈틈이 일을 할 수 있고 자기 돈을 얼마간 가질 수 있으며 땅을 이용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하여 먹을 수 있어서 도시에 비해 시골 여성들의 지위가 보다 높았다.


마리아로사는 이탈리아에서 1963년 결혼과 동시에 해고된다는 조항이 법에서 금지되었지만 대다수 여성이 해고를 당한 이유는 고용 노동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여성이 계약할 때 남부에서 온 신규 이주 노동자와의 경쟁에 맞설 정도로 충분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여성은 흔히 혼자 살기 시작했고 남성과 살지 않고 여성들끼리 살며 아이를 갖지 않았다.


전쟁이 나거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국가는 국민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걸 기억하지만 보통 때 복지에는 인색하고 국민을 키운 여성은 한번도 일한 적이 없다면서 연금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계속된 재생산 거부는 여성의 존중이 없다면 계속될 것이고 가족 강화를 통한 자본을 보다 지능적으로 만드는 일이 없기를 마리아로사는 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병인 노동을 포함한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고 여성의 자율성은 쉽게 실현되기 어렵다.


섹슈얼리티, 출산, 임신중절 등에 대한 폭력적 문제를 중심으로 결국 1979년 12월 18일 유엔총회에서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채택되었다.


이후 성노동자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빈곤이나 종속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여성이 스스로 자율성을 선택하며 자신만의 삶을 사는 문제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산부인과를 두려워한다. 여성과 의학의 관계에 있어 여성의 몸에 관한 주요 정보는 여전히 의사만이 가지고 있다.


1550년부터 1650년까지 여성 10만명이 극악무도한 고문을 받고 산 채로 불태워졌는데 희생자 대부분이 지역 내 산파로서 여성의 출산, 임신 중절, 피임법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죄명을 쓰고 있었다.


여성의 몸과 관련하여 여성은 점점 더 고립되고 성적으로 억압받고 남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며 섹슈얼리티 및 출산 관련 지식과 자기 결정권은 물론 경제적 자립도 빼앗긴 채 자식을 양육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특히 여성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이유로 자궁절제술 등을 마취없이 감내했으며 고통속에 출산하는 것이 성서의 계율로서 수용되어야 했다.


최근 사정이 달라졌지만 그러한 달라진 분위기와 상황을 남성들이 수용하고 사회체제가 진보적으로 변해서는 아니다.


요즘은 남성들이 아내와 자식을 확실하게 부양할 정도로 임금을 버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남녀 모두 불안정한 임금을 받으며 두 개의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고 그 결과 여성은 가사노동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훨씬 덜 느끼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의 시선과 기대가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비록 정의를 구현하려는 욕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정체성을 쟁취하려는 욕구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피로감은 있지만 무엇이 지구에서 인류의 생명의 지속을 약속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항상 돈은 아닐 것이라고 마리아로사는 말한다. 그녀는 땅의 재생산 능력 보호와 같이 여성의 능력 보호를 위해, 농민 운동, 어민운동, 토착민 운동, 땅과 맺는 관계를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는 여성 네트워크들이 새롭게 인류의 역사에 대해 논의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성별 격차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53개국 중 108위였다. ‘경제활동 참여·기회’에서는 127위, ‘여성 고위 임원·관리직 비율’은 142위로 종합 지수보다 훨씬 낮았다. ‘임금 평등’은 119위였다. ‘교육적 성취’는 101위였고, ‘정치 권한’은 79위였다. 대한민국 여성의 현주소이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콜센터, 요양원 등의 대다수 노동자는 여성이었으며 ‘n번방 성착취 범죄’ 사건은 성폭력과 성착취를 대규모 남성 인원이 모여 기획하고 실행하며 돈을 거래하며 진행했다는 점에서 볼 때 여성의 성을 남성에게 복종시키는 도구로 활용했다.


여성가족부가 있음에도 여성과 가족이 많이 행복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리아로사는 그저 한줌의 흙처럼 한국의 변변치 못한 땅에 젖은 흙을 쏟아주며 이 책을 통해 말걸기를 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 여성의 손이 이 책에 하나둘 모여, 여성이 그동안 맺어왔던 관계 맺기에서 현실적이든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이든 어떻게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율성임을 깨닫기 바란다.


그렇게 이 책으로 채워진 성찰이 뉴욕의 우먼셰어처럼 여성이 가진 수많은 능력이 세상 적재적소에 퍼져나가길 기원해 본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11월 10일 <메가경제>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5hB8f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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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집안의 노동자 :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 이영주 옮김, 갈무리, 2017)


이 책에서 달라 코스따는 뉴딜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 투쟁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는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 재생산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간다. 그렇다면 뉴딜과 복지 국가가 설립한 여러 기관은 노동계급을 구한 구원자였는가, 아니면 노동계급이 자율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망가뜨린 파괴자였는가? 달라 코스따는 여성과 국가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복지 체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갈무리, 201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1986년에 초판이 출간된 후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오늘날 이 책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실감 나게 다가온다. 가부장제를 이용한 자본주의적 착취는 한 세대 동안 더욱더 노골적이 되었으며,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본질을 찾으며, 현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뿌리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명의 영점 ―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갈무리, 2013)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요구했던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더욱 열악해진 삶의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한 공유재 재구축을 위한 운동까지,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혁명의 영점』은 이러한 여성투쟁의 본질에 대한 페데리치의 40년간의 연구와 이론 작업을 집대성한 것이다.저자는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방식과 ‘소외된 노동’에 내재한 모순들의 이면에는, 집단적인 재생산과 관련된, 일상적인 현실을 변화시키는 폭발적 잠재력을 지닌 영점(Point Zero)이 있음을 역사와 이론, 현실 운동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9)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 마찰, 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폭력의 진부함 ― 얼굴, 이름, 목소리가 있는 개인을 위하여』(이라영 지음, 갈무리, 2020)


성폭력뿐 아니라 사회의 많은 차별과 폭력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일상적 현상이다. 이처럼 문화화된 폭력은 폭력을 폭력처럼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폭로는 이 문화화된 폭력을 보이게 만들려는 피해자 개개인의 분투이며 최후의 구조요청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사회구조에 맞서는 개인의 폭로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러한 발화가 가지는 맥락을 강조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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