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데카르트 아닌 꽁디약, 멘드비랑, 라베쏭을 아는가?ㅣ이윤하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5-07 13:14
조회
1095
 

데카르트 아닌 꽁디약, 멘드비랑, 라베쏭을 아는가?


이윤하(고양이를 사랑하고,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심리상담사)


데까르뜨, 베르그손, 들뢰즈의 이름을 아는가? YES.

꽁디약, 멘드비랑, 라베쏭을 아는가? NO.

나는 이랬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아주 단순하게도 그것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 있다. ... 이 책에서 우리가 주로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내용은 바로 프랑스철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부분에 해당한다. p. 14


심리상담과 미술치료를 하고 있는 나는 상담실에 온 내담자에의 방향을 우선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해보곤 한다. 묶어야 할 사람과 풀어야 할 사람. 범죄자 혹은 가해자이거나 인간적이라는 행동의 경계를 벗어난 이들의 경우엔 그의 공격적인 리비도를 묶어야 했으며, 타인의 욕망까지 자신이 짊어진 이들의 책임과 억울한 감정을 풀어야 했다. 인간적-이라는 단어의 두 가지 방향이라는 이전의 논문 아이디어는 그로부터 비롯된 생각이었다. "A가 그래도 지 아비 장례에는 찾아왔다면서. 짐승같은 놈이 그래도 인간이긴 했네.", "T씨가 눈물을 보였다고? 오. 그 로봇도 인간적인 구석이 있구나." 두 상황의 인간적-이라는 단어은 한쪽은 문명과 문화를, 다른 한쪽은 감정과 정념를 향하고 있다. 서로 상반된 방향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인간적-'이라는 같은 단어가 쓰이고 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지닌 내게 닿은, 근현대 프랑스철학의 뿌리들 속 다음의 멘드비랑의 이론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듣도 보도 못했던 프랑스 철학자의 이름이었는데 말이다. 맞다. 문제는 아주 단순하게도 그것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에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습관에 대한 논고에서 운동적 활동성과 감성적 활동성이라 명명한 것을 여기서는 인간 본성을 이루는 두 근본적인 요소들 즉 의지적 운동성과 수동적 정념affection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것들을 내적 감관 혹은 반성의 기능에 의해 단번에 파악되는 것으로 전제한다. p.124

사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생명성에 종속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의지적, 정신적 능동성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본성이 어떻게 인간 안에서 화해할 수 있는가? 비랑은 두 세계의 상관성을 설명하려 시도하나 결국 이원성은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결론내린다. p.125

데까르뜨는 그 이념의 천재성에 비해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사유하는 주체의 추상적 직관에만 머물렀다는 것이 비랑의 생각이다. 사유하는 주체는 의식 내면의 생생한 움직임을 보지 못하고 형식적 체계 구성의 토대가 될 뿐이다. 비랑은 이렇게 형식성과 추상성에 사로잡히지 않은 의식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려 하며 그것을 <의지적 운동>이라는 구체적 경험에서 찾는데 이것이 비랑 철학의 두 번째 시기를 구성한다. p. 124


이러한 멘 드 비랑의 『습관에 관한 논고』와 『사유의 분해에 관한 논고』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습관은 제 2의 본성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구와 함께 시작하는 그의 감각이론과 습관이론은 매우 흥미로우며 진지하고 또 유려하다. 저자는 '비랑의 철학은 한 시대의 문제들과 온몸으로 씨름한 근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식론자이자 인간학자이다.'라고 말한다.

내겐 라베쏭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 책의 <4장 의지에서 생명으로-라베쏭>은 그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의 철학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철학계의 뒷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아!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서 묘하게 기운을 얻는 이가 부디 나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이런 천재도 안티와 좌절의 시기가 있는데. ' 뭐 이런 식의 보편화의 위로가 있지 않으려나.


1842년에 '정신과학과 정치학 한림원'에 자리를 얻기 위해 두 번이나 입후보하였으나 꾸쟁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한다. 이때부터 라베쏭은 꾸쟁의 영향력으로 약 40년간 공식적인 철학 활동에서 떠나 있게 된다. ... 1868년 다시 한번 '정신과학과 정치학 한림원'에 입후보하지만 꾸쟁 사후 1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 꾸쟁의 철학과 절충주의 학파를 다루는 방식이 당대의 경향에서 너무 독립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 1881년 꾸쟁 사후 14년 만에 68세의 라베쏭은 '정신과학과 정치학 한림원'에 자리를 얻는다. p. 202-203


라베쏭의 이론의 소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자연과 습관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다음 인용은 그의 일부이다. 여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에 대한 정의, 에토스와 헥시스 등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다.


“우리가 건축가가 되는 것은 건축을 함으로써이고 키타라 연주자가 되는 것은 키타라를 연주함으로써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롭게 되며 온유한 행동을 함으로써 온유하게 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용기 있게 된다.” p. 212


이후 라베쏭의 철학이 펼쳐지는데, 라베쏭 철학의 독특한 점은 그 의미를 다른 철학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자신 안에서 취하는 존재의 의식과 그 행동을 이야기하는 그의 이론으로 볼 때,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바라보고 의식하고 정의내리는 그의 행동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정신이 자기 자신 안에서 취하는 존재existence의 의식, 그 존재로부터 모든 다른 존재가 유출되고 의존하는 이 의식은 바로 행동action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이러한 행동의 의식을 원리로 삼는 철학이 실증주의적 유심론이다. p. 255-256


이에 대해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라베쏭의 다음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동시에 라베쏭은 이러한 철학이 미래의 철학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유심론적 실재론 혹은 유심론적 실증주의라고 불릴 만한 사유의 지배를 일반적 특징으로 하는 철학의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예측할 수 있다.” 라베쏭에 의하면 “정신이 자신 안에서 취하는 존재의 의식”을 근본원리로 하며, 이 존재의 의식은 다름 아닌 “행동”action이다.이는 데까르뜨의 사유하는 자아의 원초적 직관을 행동의 의식으로 바꾸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 우리가 여전히 코기토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관념적 코기토가 아니라, 멘 드 비랑의 경우 내재적인 한에서 신체적 코기토라 할 수 있다.

이쯤되니 라베쏭의 생성과 습관, 의지, 생명적 자발성 등의 개념과 이론도 매우 궁금하지 않은가? 베르그손은 라베쏭의 사상에 대해 "한 세대 전체에 영감을 주어 그의 독창성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또 그런 베그르손의 시선 너머의 다른 방향에서 그를 마주해보고 싶지 않은가? 이 책은 그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어 준다. 그런데 대체 이 철학자는 40년간 꾸쟁의 영향으로 철학을 떠나있었다는 데도 어쩜 이리 사유가 총총하고 통찰력이 깊단 말인가? 참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꽁디약은 말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철학의 거인들 데까르뜨와 베그르손과 들뢰즈도 이 책에 담겨있다. 하니 인용할 부분은 넘치고 넘쳐서 사실 어떤 구절을 가져와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또 다 읽고 이 서평을 쓰고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먹어 소화하지 못하는 탓으로 다시 씹어읽어야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그만큼 곱씹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와 같은 천재적 개인의 연구와 구분되는 집단적이고 끝없는 노력의 축적 과정으로서의 철학사를 선호한다. 개개인이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렵다고 해도 집단적 노력은 끊임없는 비판과 수정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p. 12


저자의 이런 노력이 너무 반갑고 귀하고 감사하다. 덕분에 잘 알지 못했던 근현대 프랑스 철학의 뿌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눈이 밝고 발이 빠른 이가 그린 프랑스 철학의 지도를 손에 쥐게 된 느낌이 든다. 자! 당신은 이를 통해 어디로 가고 싶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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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 : 깡길렘, 시몽동, 들뢰즈와의 대화』(황수영 지음, 갈무리, 2014)


이 책은 현대 프랑스철학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한 사유의 흐름을 밝은 빛 아래서 조명하는 책이다. 그것은 단순히 각 철학자들에 대한 이론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들을 서로 대면시키고 그들이 전력을 다해 씨름한 문제들을 공통의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베르그손은 생명에 대해 최초의 거대서사를 썼다. 그의 생명철학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수려한 문체 속에서 생명의 예측불가능한 창조와 인간의 자유를 역설함으로써 많은 독자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바 있다.


인지와 자본』(황수영·조정환 외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 출간 직후인 2011년 5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린 실험심포지엄 <인지와 자본>은 열띤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책 『인지와 자본』은 이 실험심포지엄의 연속이자 다른 버전이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 필자 조정환, 황수영, 이정우, 최호영은 심포지엄의 발표주제들을 확장하여 세공할 뿐만 아니라 이 심포지엄에서 다루어지지 못한 주제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개념무기들 : 들뢰즈 실천철학의 행동학』(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이 책에서 저자는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윤리학(ethic)을 행동학(ethology)으로 읽었듯이 들뢰즈의 철학을 행동학으로 독해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실체가 슬픔으로 정동되는 수동상태를 넘어서 기쁨으로 정동하는 능동상태로 이행함으로써 구원과 지복에 이르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진화과정을 서술한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이 행동학적 이행과정을 운동과 역량이라는 두 차원의 교차 속에서 규명하는 철학적 인물로 그려진다.


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


이현대 철학의 ‘사변적 전회’를 선도한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 만나는 풍경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를 현대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설득력 있게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화를 넘어서는 ‘실재론적 객체지향 형이상학’을 인류세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철학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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