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성: 생명" 그리고 노회찬

작성자
commons
작성일
2018-07-29 09:13
조회
547
틈새 인간


“하나의 어떤 생명을 구성하는 특이성들 또는 사건들이 그에 대응하는 정해진 한 생명의 우연한 일들과 공존한다.”

어린 왕자는 어리지 않다. 그는 작은 것이다. 작은 왕자 혹은 작은 왕자들이라고 해야 할 순수 생명들이 순간들의 틈새에서 피어오른다. 그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어떤 것 속에 있지도 않고 어떤 것에 대하여 있지도 않은)지복의 행복감은 우리를 지고한 인간으로 닿게 한다. 때로 이 행복감은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기실 생명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봄날 산책만 해도, 무더운 여름 바다로 뛰어들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왁자지껄 터들기만 해도, 틈새인간은 낯설지 않은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틈새를 숨기는 순간들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처럼 절대적으로 디디고 서도록 명령하는 집합들, 혹은 도형의 꼭지점처럼 그 점들을 이은 공간만을 살아가는 의식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대다수에겐 저주인 삶, 하지만 그들의 축복은 지복이 아니다.

“더 이상 자기 고유의 이름을 지니지 않는 사람에게 내재하는 특이한 생명을 위하여, 즉 특이한 본질을 위하여, 또는 하나의 어떤 생명....을 위하여 이런저런 개별성의 생명이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노회찬! 이미 개별성의 생명은 며칠 전 화장장으로 소멸했다. 어떤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절박한 질문 때문일까? 우리는 하지만 이라고 접속사를 붙인다. 하지만 그는 사라진 것일까? 사라졌다면 무엇을 위하여? 특이한 생명을 위하여, 틈새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노회찬이란 특이한 주체가 있었다. 남들이 “절망해야 해!”라고 말할 때 그는 춤을 추었다. 단 한 순간도 주판알을 굴리지 않으면 몰락할 것 같은 세상에서 주판으로 누군가의 등을 긁어주고, 수많은 구두들이 윤기를 내며 삶의 윤택함을 즐기라고 할 때 한 컬레의 낡은 구두만으로도 부족을 몰랐다.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게 가장 행복하고 지혜로운 것일 지도 모른다는 낯선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람, 두렵고 낯설지만 우리에겐 작은 왕자이며, 사랑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 그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비인격적이면서도 특이한 하나의 어떤 생명을 사물들 한복판에서 육화하는 주체”라고.

그가 죽은 날은 너무도 무더운 날이었다. 모든 죽은 것들이 부패되기 쉽고 더 맹렬하게 악취를 풍길 수 있는 그런 날이었는데, 아무런 포장도 없이 맨 몸을 그렇게 던졌다.
정해진 한 생명을 꾸역꾸역 감당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타까운 사건인데,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그가 틈새인간이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개별성이 가진 초월적인 의식의 지점이 없다. 그에겐 내재적인 정동만이 내면에서 웅성거리고 무한 속도로 그를 사로잡는 정념만이 있었다. 그러니 그에겐 살아가기 위해 틈새를 감추는 무한 반복의 운명은 삶이 아니었다. 그에게 죽음은 개별적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틈새 인간의 지복을 육화한 지고한 인간에겐 강박적 반복을 견디며 사는 것이 유일한 죽음이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사라지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의식의 절대적 틀 뿐이었다. 생명은 그가 가진 정동, 정념뿐이었다. 주체와 대상으로 가려지기 이전, 생명들이 고유한 가치를 반짝이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향유하며, 내재성의 지평들이 현실화되는 축제뿐이었다.

그러니 미련은 없었으리라. 우리가 낡은 의식에 겨우 매달려 있을 때 그는 자유를 택했으리라.

우리는 그의 죽음을 초월적인 사라짐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우리 안에 죽음은 이미 내재되어 있고 항상 잠재적이다. 죽음은 어쩌면 내재성으로의 회귀이며, 생명이 스스로 변이하는 조건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코 개별적인 죽음은 없다. 우리 가운데 공존하는 죽음만이 있다. 공존하는 죽음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리라. 무더운 날 노회찬의 죽음이 던진 질문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그리고 노회찬의 죽음은 말한다. “아무것도 두려워 마시라. 죽음은 이미 내가 감당했으니 삶을 살라!” 그리고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죽음일 것이고 삶일 것이다.

“생명은 오로지 잠재적인 것들만을 포함한다. 즉 생명은 잠재성들, 사건들, 특이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잠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잠재적인 것 고유의 실재성을 그에게 부여하는 내재성의 평면을 따라가면서 현실화의 과정 속에 뛰어드는 어떤 것이다. 이때 내재적인 사건은 내재적인 사건 자신을 [현실의 차원 속에] 도래하도록 하는 사물들의 상태와 체험된 상태 속에서 현실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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